환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땡볕의 햇빛이 그를 찌르듯 내리쬐고 푹푹 찌는 더위 덕분에 땀을 잔뜩 흘린다. 근처 사람들을 도와주고 얻은 밀짚모자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만 이도 못 할 짓이다. 집에 있지 밖에 나와서 무슨 고생이람. 그런 생각도 하였지만, 그는 고개를 내리 저었다. 집에 가봤자 이제 그 집은 자기 집이 아닌데 돌아갈 수 없었다.
*
그 집은 누나가 해준 집이었다. 항상 누나가 웃으면서 맞아주었고, 동생도 항상 크레용을 들고 스케치북이나 더럽히고 있었다. 청소나 빨래는 곧잘 해주었지만, 밥은 내가 하는 일도 많았다. 귀찮았지만 혼자 살던 때와는 다르게 즐거웠다.
그러나 누나는 사라졌다. 없던 사람이 되어버리고 동생과 나, 둘만 남았다. 급하게 누나를 찾으러 나섰을 때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람 맞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하지만 누나가 사라졌다고 해도 기억에서 전부 사라진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동생과 나는 누나는 존재한다고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찾아다녔다.
동사무소에서 뗀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내 남동생 또한 없는 존재였고, 누나 또한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누나는 존재했는데, 왜 이제 와서 없다고 하는 거지?
이럴 거면 친절히 대해주지 말지. 이럴 거면 가족이 되어주지 말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아로 있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나날이었기에 놓고 싶지 않았다. 항상 집은 춥고 배고프고 빛도 들어오지 않아 새파란 전기등을 키는 곳이었다. 누나를 만나고 나서야 집이란 찬란한 빛이 넘실거리고 달콤하고 시원한 물이 출렁거리는 장소로 바뀌었는데. 아무리 집이 좁아도, 날씨가 더워도 노을 지는 창문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정겹게 떠들고 멋 모르는 동생은 가족 그림으로 우리 셋을 그린 그 시간이 도저히 잊히지 않는 것을.
사실 이곳에 온 건 다름이 아니다. 누군가 누나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말을 듣고 동생과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신기한 새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는 그리 흔한 목격 정보도 아니니 바로 뛰어올 수 있었다.
[그거 알어? 가끔 여기서 신기한 마을로 가는 길이 나온대. 술 취한 우리 집 양반이 2년 전에 어떤 파란색 머리카락의 여자를 만나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거기가 어디죠?’
[여기? OO구 OO동인데…. 자세한 정보는 와서 일을 도와주면 줄껴.]
‘갈께요.’
그 말 하나만 믿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이곳으로 향했지만 일은 거의 중노동이었다. 농사일을 도와주는 게 다 그런 거지만. 그래도 나름 근육에 자신 있는 몸이었는데 녹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점은 동생이 체력이 좋아서 자신보다 많이 도움 되는 거일까. 형으로써 이러면 안 되지만 힘든 걸 어쩌나.
“아….”
더운 날씨에 바람이 싱그럽게 불어온다. 고맙게도 시원한 내음과 동시에 짠맛이 났다. 바다를 보니 누나가 생각나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을 눈에 새겼다.
푸른 들판과 손질되지 않는 풀들을 가로질러 걸어 나가면 자신이 올라온 언덕 등지였다. 저 밑에는 조그맣다고 주장하는 정보상 할머니가 살고 있는데, 정보상을 은퇴하고 이런 시골 마을에 들어와 작지만 농사하고 지낸다. 언덕이 말이 좋아 언덕이지 거의 산지에 가깝다. 누런 햇볕이 내리쬐는 밑으로 내려가면 저기 동생이 열심히 심부름하며 오고 가고 있다. 저 녀석, 처음 봤을 때는 꼼짝없이 초등학생 저학년이었는데, 요즘 따라 나날이 키가 커가고 있다. 누나가 보면 정말 좋아할 텐데.
풀들에 기대 숨어 앉아있던 내가 손에 턱을 올리고 삐딱하게 쳐다보고 있으면 동생은 이제 부리나케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든다. 여기 풀들 키 크다고? 잘도 봤네. 나는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뒤돌아 10분, 아니 20분을 걸어 나가면 바닷가가 보인다. 해변까지는 그 배는 걸어가야 한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시골 농지다웠다. 그래도 가끔 동생과 저 해변을 거닐고 있으면 누나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도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뭘 그렇게 쳐다보냐며 괜히 자신을 놀려먹을 존재가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물까지 튀기겠지.
이렇게 보니 누나를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뜻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골치 아프고 사고뭉치인 존재를 누가 달갑게 여기겠는가. 그렇지만 처음 생긴 가족이니까, 자신들을 평생 안고 갈 것 같이 굴어놓고 왜 갑자기 자신들을 버리고 사라져버린 거냐고, 우리가 꼴 보기 싫었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돌아오는 대답이 우리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길 간절히 빌면서.
“형~!”
뒤에서 우렁차게 소리치는 동생의 목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으로 나는 다시 뒤를 돌았다. 마주한 동생의 눈높이는 자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높아져 있었다. 진짜 언제 이렇게 컸지. 처음 동생이라고 온 이 애를 볼 때마다 쓸쓸하고 질투가 났던 건, 정말 누가 뭐라고 해도 누나 동생과 같은 머리색이었기 때문이다. 뭐, 머리색이나 채도는 좀 다르겠지. 그렇지만 점점 옅어져서 청록색처럼 보이는 머리카락은 누나와 형상이 비슷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질투했었다. 누나의 진짜 동생은 아니고 주운 거라고 했었지. 단지 비슷한 존재라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
그런데 누나, 나는 왜 주웠어?
누나와 비슷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개처럼 부려지다가 버려져서 흙탕물이 묻은 것 같은 난 누나와 닮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주운 거야? 혹시 그것 때문에
“형.”
“어.”
우릴 버렸어?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 눈물을 훔치며 울지 않았던 양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밀짚모자에서 방금 꺼내진 듯한 머리카락은 부스스해서 동생다웠다.
“울어?”
“눈치도 없게, 자식. 그런 건 묻는 거 아니야.”
내가 고개를 돌리자, 동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한동안 짠 바닷바람을 맡으며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 짜네.
*
“뭔 청승 부리고 앉아있어.”
밖에서 늦게 돌아온 우리 둘을 보며 할매는 우리 둘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어휴. 더 부려 먹으려고 했더니 남자 새끼가 도움도 안 되고 말이야.”
“뭐야!? 이 할매가…! 애초에 [목격자]라던 할멈 영감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됬잖아!”
“됐고, 얼른 밥이나 차려둬! 밥맛 떨어지겠구먼. 에이그.”
그랬다. 할멈의 말 한마디에 의존해 이 시골로 뛰어왔지만, 할멈의 영감은 돌아간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제 가장 가까운 이웃집에 심부름하러 갔다가 알게 되었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어제부터 이 사실로 따지기 시작하니 자기도 들은 게 있어서 안다고 고집을 부리며 자신을 국자로 내려치고는 부려 먹는 것이었다. 어제부터는 대들었다고 내가 밥을 짓고 있었다. 젠장.
오늘도 내가 밥 당번인가. 동생은 할멈 앞에 앉아서 같이 풀이나 까고 있고 나는 궁시렁거리며 밥을 올렸다. 심지어 중간에 야무지게 야참도 먹었는데 세척도 내 일이라니.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 요리는 금방 하니까.
그래도 한 사람이 더 늘어서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는 건 쓸데없는 상상을 그만두게 해준다. 그러니까 누나 생각을 조금 덜 하게 되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을 줄여도 쓸데없는 결론이 하나 계속 떠오르는데, 그건 바로….
“우리 속은 거 아닌가?”
“뭬야?”
할멈은 또 국자로 내 머리를 연주했다. 딱. 딱. 딱. 좋은 머리 다 나빠지겠네. 기분 나빠진 나는 할멈에게 반격했다.
“아! 그만 쳐요! 잘생긴 외모 다 무너지겠네.”
“자기도취도 그쯤 하면 예술이다, 인마! 누나 없다고 질질 짜는 코흘리개 주제에!”
“아, 질질 안 짰어! 코흘리개는 누가 코흘리개야?!”
내가 울었지, 질질 짜진 않았어! 이 할멈이 자꾸 나를 어린애처럼 만드네?
“네 동생이 더 든든하고 듬직햐!”
“그건 맞아.”
그건… 할 말이 없다. 나는 동생을 돌아보았다. 시안은 묵묵히 나랑 할멈을 보며 밥을 먹는 중이었다. 녀석도 누나를 보고 싶어 할 텐데 내 앞에서 그런 떼쓰는 말을 한 적은 적다. 아니… 내 표정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녀석도 나 때문에 말 못했겠지. 나는 내게 남겨진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듬직하지. …근데 할멈이 보기엔 시안이가 생각보다 일을 더 잘해서 그런 거 아닌가? 나보다 일을 더 잽싸게 해내더라.
“형이란 게 생각보다 비실비실혀가지고 원하는 만큼 일도 못 해 먹고, 몸도 못 움직이고, 맨날 농땡이 까고 말이야, 어?”
“아,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 다짜고짜 끌려와서 일주일은 일했구만.”
“일주일은 무슨! 4일밖에 안햐씨어!”
4일밖에 안됬던가? 뭐, 원래 의사였고 업무도 서류 일만 했는데 이 정도 일 해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 참나. 이렇게 흙먼지 날리는 일을 돈 한 푼도 안 받고 일해주는 건데.
“쯧. 빨리 씻고 잠이나 자라.”
동생이나 나나 더는 일에 지쳐서 군말 없이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여러 가지 일로 많이 고생해서 기력 없이 정말로 말 그대로 뻗었다.
그런데 잠자리가 뒤숭숭했던 탓일까. 깜깜한 밤에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벌레들의 울음소리밖에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데 말이다. 찌르르 거리는 소리에 나는 홀린 건지 뭔지 갑자기 몸이 찌뿌둥하고 더워 밖으로 나섰다.
밖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아까 푸르른 풀들은 이제 까만색이 되어 자신의 발길을 막아섰다. 좀만 걸으면 뱀이라도 나올 분위기였다.
그럼 뭐 어떠랴. 누나가 데리고 온 이후 자신은 약골이지만 질병이든 독이 든 통하지 않았다. 누나는 즉사만 안 하는 거라고 몸 좀 조심하라고 했지만, 어차피….
“그건 누나가 직접 다시 말해줘야지.”
세찬 바람에 조금 몸이 으슬으슬해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뉘엿뉘엿 걸었다. 도쿄보다 윗 지방도 아니고, 오히려 더운 날씨에 도쿄랑 엇비슷한 위도라 밤이 이렇게까지 싸늘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마치 지금이 겨울인데 내가 날씨를 몰라 여름옷을 입고 나온 것같이 굴다니. 날씨도 참 변덕쟁이다.
“….”
나는 아까 언덕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 경사가 높지도 않은 언덕이었는데 올라가는 데 힘이 들었다. 힘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은 눈부시게 빛났다. 조금만 있으면 오로라라도 드리울 듯이 말이다. 빛도 없는 시골이다 보니 하늘은 마치 땅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이렇게 공기가 맑으니 담배라도 피우고 싶어졌다. 누나 때문에 끊었긴 하지만 가져오긴 할걸.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바닷가가 보였다. 뒤에서 보이는 배들의 빛이 하늘로 높이 솟아 붉은색 기둥을 세웠다.
….
근데 여기 새벽에 어선이 나가는 곳이던가?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그렇게 돌아보았을 때였다.
무지개처럼 반짝이는 빛과 함께 낮과 같은 빛이 문처럼 어느 한 장소가 보였다. 마치 그곳만 다른 세상인 것처럼. 따스한 햇볕이 녹아내리고 계절도 달리 지속되는 듯이 노란색 갈대가 반짝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여기가 내가 찾던 그 장소라고.
나는 황급히 내려가 동생을 깨우고 짐을 쌌다. 그 문이 없어질까 봐 재빠르게 졸려서 눈을 부비는 동생의 손을 이끌며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마치 우리의 마음을 알 듯 정보상을 은퇴한 할머니는 일어나지 않았고, 서늘한 바람이 언덕을 가로질러 불었으며, 여전히 그 문처럼 생긴 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가 그 문 앞으로 뛰어가자, 하늘의 별들이 마치 비가 떨어지는 듯이 쏟아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문의 형상은 일렁거렸다.
“서둘러!“
“응!”
나와 동생은 그렇게 그 문을 향해 들어갔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처럼 달려드는 우리에게 빛을 환하게 뿜어내고, 우리는 빛을 팔로 가리며 허우적거리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빛을 수영하는 것처럼.
빛이 시야를 전부 가려서 새하얗게 되고, 눈부심에 눈을 몇 번이고 껌벅이며 새하얀 빛이 잦아들었을 때 내가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어느 관공서 바닥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상 현상이 일어난 이곳이 당연히, 당연히…! 누나가 있는 곳일 줄 알았단 말이다. 그러나 내 시야 앞에 파란색 화면이 뜨며 나를 맞이한 것은….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민원 접수] [추가 민원] [민원실안내]]
이런 창이 뜰 줄은 정말, 꿈에서도 몰랐다!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도 모르는 나는 일단 민원 접수라고 소리쳤다. 일단 소리치면 누군가 나오겠지.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예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이런 고 테크놀로지에 저런 옷이라니, 되게 안 어울린다.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말을 걸었다.
“여긴 어디죠?”
“여긴 시간 정부 무사시국 OO 지부 민원센터입니다.”
“형, 시간 정부가 어디야?”
“나도 모르겠는데.”
엉뚱한 대답에 나도 내 상식선에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내 대답을 듣고 표정이 딱딱해지더니 뭔가 허공에 키보드를 쳤다. 그러자 통화 화면이 그 사람 앞에 뜨고는, [통화 연결 중] 같은 글자가 나오는 것이다.
“…상부로 연결해주세요. 여긴 무사시국 OO 지부. 시간미아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심상치 않은 발언에 나는 사태가 이상하게 굴러간다는 느낌에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그냥 남자의 하카마단을 붙잡고 늘어지며 단지 이것만 말했다.
“여기 누나 있지요?”
“[누나]요?”
“응, 여기서 파란 머리 여자를 봤다고 했는데.”
“파란 머리 여자가 한 둘인가….”
직원의 그 말에 나는 필사적으로 되물었다. 일단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누나가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름은, 이름은 사리카야.”
“응?”
내가 그렇게 덧붙이자, 직원은 갸우뚱하며 말을 이었다.
“옆 지부 혼마루 사니와 아니야?”
*
이렇게 나와 동생은 옆 지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단지 그 옆 지부가 섬이기 때문에 엄청 배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우웩. 물살도 심했고 해당 구역 자체가 전체적으로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게이트보다는 배를 타고 가는 걸 추천한단다. 잘못하면 바다로 추락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진짜 누나는 있는 거지?”
“아 있다니까. 걱정마슈.”
“진짜지?”
“거참, 이 사니와랑 엮이는 인외는 전부 미친놈이 되나….”
불쌍하다는 듯이 이쪽을 보지도 않고 혀를 차는 선장이 그리 말했다. 선장은 예민한 건지 우리들에 대한 걸 빠르게 눈치챘다. 이렇게 빠르게 알아보는 사람은 이제까지 없었는데.
“우리가 인간이 아닌 건 어떻게 알았지?”
“나도 영력은 있슈. 근데 마을에서 사니와는 한 가정당 한 명까지라, 누나가 대신해서 사니와가 됬지.”
마치 그리운 듯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선장은 레이더를 바라보았다. 레이더상 근처에 섬이 하나 보인다. 곧, 누나가 있는 섬에 도착한다. 철썩 치는 파도가 배를 때리며 배가 흔들렸지만, 나는 잠시 흔들렸지만 서서 그의 말을 경청하다 말했다.
“누나가 그리운 마음은 나도 알아.”
“뭐 죽었다고 했남? 은퇴해서 잘 살아 계슈.”
“뭐라고? 아니, 그러면 왜 그런 표정인 거야?”
“사니와를 한 번 하면 인간과는 멀어지니까. 밥 먹듯이 실종됬다 돌아오는 일이 많슈. 사니와는 그런 일이지.”
선장은 차분해진 눈빛으로 다시 선박을 조종했다. 덕분에 출렁거리는 바다 한 가운데에 서있는 것 같아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져 주저앉았다. 여기 파도는 왜 이렇게 거친 건지. 토할 것 같기도 했다. 선장은 자신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어 말했다.
“멀미 심한가 본데. 아무튼 저 섬은 조심해.”
“아까 미친놈이 된다는 거랑 관련 있어?”
“맞슈. …누님이 사니와니까 대충 거기 생태는 아는 편이지. 그런데 저 섬은… 도검남사들이 사니와에게 구는 거 보면 거의 미쳐있다고 봐도 무방해.”
그에 나는 선장실에서 기어 나와 우리가 도착할 섬을 바라보았다. 꽤 커 보이고 평온해 보였다. 해안가 주변에는 마을이 번영한 듯이 여러 사람이 보였다.
“사는 사람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사니와가 저런 거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고. 하긴. 저 지부 들어오고 나서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인간한테는 멀쩡하게 굴지. 근데 손님은 인외라고 했잖슈. 마을에는 정착한 인외들도 꽤 있으니껜.”
혀를 차는 듯한 목소리와 요동치는 배, 크게 들리는 엔진 소음과 파도 소리에 숨이 살짝 멎을 것 같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덕분에 멀미는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잦아지는 파도와 함께 선착장에 조심히 배가 들어섰다.
완전히 배가 정박하자 나와 동생은 배에서 내렸다. 선장은 그런 우리를 보고 잠시 자신을 보고 배 상태를 보더니, 3시간 이후에 출발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덧붙여 이런 말을 속삭이는 것이다.
“도망갈 거면 3시간 후에 오슈.”
왜 이런 말을 해주는지 알 수 없어 다시 물었더니, 자신은 인외라고 하기에는 너무 인간 같기에 말해주는 거라고 했다. 어차피 인외라면 사니와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잠시 도망가도 괜찮다고.
헛소리. 지금 누나를 만나러 왔는데 대체 무슨 배려를 해주는 건가? 나는 그럴 일 없다고 단언하고 배 수리는 뭐든 빨랑 가버리라는 생각하며 선착장에서 빠져나왔다. 이런 신경질적인 나와 달리 동생은 꽤 인사성 있고 예의 발랐다. 선장에게도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내 뒤에 착실히 따라붙었으니까. 그리고는 먼저 자신보다 많이 달려 나가서는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뭔가 있나? 똑같이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 외에는 잘 모르겠다. 내 표정을 보자마자 그게 아니라는 듯이 시안이는 환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형, 여기 누나가 있는 게 느껴져.”
“뭐? 어떻게?”
“저기 키 큰 사람 있잖아. 그 사람에게서 느껴져.”
동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눈길을 옮겼더니, 되게 커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흰색 신사 의상…. 포니테일을 하고 있고 손가락이 금색으로 길쭉한 남자라. 저러면 생활이 가능한가? 뭐, 그런 의문은 집어치우고, 나는 동생을 데리고 그자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만 말 좀 물읍시다.”
“네. 못 보던 얼굴이시군요.”
남자는 내 말투에 불편한 듯했으나 곧잘 대답해주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지, 경계하는 건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우리 대화에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았다. 황금색 같은 눈동자는 마치 맹수의 눈동자 같아서 나도 조금 움트러 들었지만, 그래도 이쪽은 급하단 말이다. 나는 바로 다음 말을 이어 물었다.
“혹시 파란색 머리카락의 여자를 아십니까?”
“그건 왜 물으시는지….”
‘네가 뭔데 누나의 힘이 느껴지는 건데?’ 라고 다짜고짜 말하기에는 예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은 시비 거는 말을 꿀꺽 삼키고 이어 물었다. 원래 잘하는 거잖아. 알량한 척, 약자인 척 위장하는 것.
“…잃어버린 누나를 찾고 있어. 뒤에 있는 남동생도 함께야. 남동생이 당신한테서 누나의 힘이 느껴진다고 해서.”
“….”
커다란 키를 한 남자가 자신들을 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야로 훑는 게 느껴졌다. 황금으로 빛나는 눈이 마치 맹수와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구랑 닮은 느낌인데?’
그랬다. 자신이 아는 그 남자랑 비슷하긴 한 것 같았다. 외모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행동 자체가 말이다. 혹시 여기서 누나가 새 가정을 꾸렸다면, 거기에 우리가 필요 없어서 버렸다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고.
“… 옆 지부에서 연락이 온 분들이군요.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남자는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어지러운 몸뚱아리를 이끌고 남자가 가는 길로 따라갔다. 처음에는 되게 빠르게 걸어가기에, 우리를 놓고 가려고 하는 건가? 싶어 이를 악물고 따라갔다. 시안은 내 행동에 바짝 따라붙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그런 말과 함께 따라가자,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는 곧바로 자신의 걸음이 빨랐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군. 그건 다행이었다.
우리는 마을 한쪽 길로 따라 올라갔다. 옆에는 번화가가 지나갔고, 또 시장이 지나가고, 주택가가 지나갔다. 점점 밭이 나오고 우리는, 아니 동생은 멀쩡했으나 내가 지쳐 잠시 주저앉았다. 그는 점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 이쪽으로 가는 게 맞나?
“업히십시오.”
“뭐?”
“아까부터 몸 상태도 안 좋으신 것 같고, 귀가가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 말하는 것입니다. 제 등에 업히십시오. 동생 분은 따라올 수 있으시겠지요?”
“아니….”
“내가 업을게. 나는 문제 없으니까.”
내가 상대를 꺼리는 걸 깨달았는지, 시안이가 먼저 자기 등을 보였다. 언제 저렇게 컸담. 물론 저 남자 등에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역습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이 무투파가 아니었다. 애초에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두뇌파가 아니던가. 누나는 항상 자길 보며 허당이라고 키득거렸었지만.
“업으시고 따라오실 수 있겠습니까?”
“문제없어. 저기 산 중턱까지 가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 시안은 눈도 좋았었지. 동생 등에 업혀 고개를 들어 산을 보니 중턱에 건물이 여러 채 있는 게 보였다. 저기에는 무엇이 있길래 저기서 지내는 거지. 선장이 말해준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기에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이쪽에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느껴지고 있었다.
누나는… 누나는 인간과 교류하는 걸 좋아했는데….
시안이가 펄쩍펄쩍 뛰며 앞서가는 커다란 남자를 뒤따라갔다. 시안이도 생각보다 더 체력이 좋고 이런 거에는 지지 않는 편인데도 상대는 시안과 지지 않는 속도로 뛰었다. 그리고 밭을 지나고 커다란 건물들을 바깥을 두른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벽에는 커다란 문도 딸려있었고, 그 문 앞에 있던 굳게 닫힌 문이 하얀색 남자가 문을 열고, 그에 뒤따라 걸어나오는 여자가 보였다. 머리색은 파란색이 아니고 흰색에 가까웠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청록색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청록색 눈동자가 반짝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연 하늘에 가까운 머리카락, 파란색에 가까워진 눈동자, 장난스럽다기보다는 진지한 표정. 다만, 자신이 기억하는 이목구비는 그대로여서 안심했다.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리움에 사무친, 원망 맺힌 말이 속 안에서 나올 것 같았다. 우리 없이 행복했어? 속에서는 이미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데도 입에서 가시가 튀어나오지 않고 증발한 것은, 상대도 자신과 똑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
“환아! 시안아!”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가진 모든 불안이 씻어내렸다.
누나가 우릴 버린 게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았다. 단지 그 사실이 우리 셋 서로를 부둥켜안아서 눈물 흘리게 했다.
“이러실 줄 알았으면 제가 옆 지부에 가서 동생분들을 모셔 오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아냐 아냐. 그러면 통신하다 울었을 거야.”
“지금도 우십니다만.”
커다란 남자랑 누나는 퍽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거 혹시….
“누나가 우는 게 뭐 어때서.”
내가 말하기도 전에 동생이 먼저 뾰로통하게 말했다. 맞아. 울 수도 있지.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거 아닌가.
“호흡기가 안 좋아서 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
“언제부터!?”
“아잇 참.”
누나는 쑥스러운 듯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걱정에 괜찮다고 호흡기가 약한 것일 뿐 몸이 안 좋진 않다고 덧붙였다. 원래도 그랬냐는 질문에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티도 내지 않았는데. 의사였던 나도 몰랐는데. 어떻게 이들은 그런 것까지 아는 거지? 질투라는 감정이 확 올라와 그를 흘겨보았다.
“어서 들어와. 어서.”
내가 그러든 말든 누나는 울다 만, 눈가가 붉은 얼굴로 웃으며 자신을 안으로 이끌었다. 그 재촉임에 나는 한 가지 남은 불안함을 깨달았다. 왜 선장은 여기가 이상하다고 한 거지? 선장은… 왜 기다린다고 한 거지? 왜?
“… 응.”
대답과 함께 들어가는 순간 더한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안에는 잘생긴 남자들이 한가득이었다. 어린애들도 있었고, 머리 긴 남자…어라? 여기 왜 남자밖에 없지?
…어라?
그 이후 비명 지를 일이 일어날 것도 모르는 채로, 나는 불안함에 휩싸여 누나에게 이끌림에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
“누나 미쳤어?!”
“응?”
누나는 뭐가 문제라는 듯이 되물었다.
그래, 누나는… 성안에서 시안 또래만 한 여자아이랑 남자아이를 아들딸이라며 소개해준 것이다. 만나지 못한 몇 년 사이에 이런 애가 생겼다고? 육아는 어떻게 한 건데? 그래서 우리에게 연락도 못 하고 바빴어? 그 자리에서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부글부글 끓었다.
아냐, 그래. 육아 중요하지…. 그것만으로도 바쁘긴 하지. 나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했다. 누나랑 비슷한 머리카락 색의 애들이 총 8명가량.
…대체 어쩌자고 8명을 낳았어?! 그게 가능해? 나는 차마 내뱉지 못 할 말을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가라앉혔다. 하지만 뒤따라 들린 누나의 목소리에 그걸 참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이 삼촌이니까 그래도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었어.”
“….”
그래도 우리를 생각해준 것일까? 하긴, 우리가 누나의 동생이면, 이 애들은 우리들의 조카겠구나. 시안은 그것을 깨달았는지 쭈뼛거렸다. 시안에게는 자신보다 어린 친인척 관계는 단 한번도 없어서 어색해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들에게 나쁘게 대하지 않을 것을 알고 달려들었다. 작은 애들에게 아주 감싸이다 못해 한 명은 등에 업고 있었다. 정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내 주변에도 쭈뼛쭈뼛 애들이 다가와 내 바지 밑단을 잡았다. 나는 억지로 웃느라 눈썹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 같았다. 그래, 애들은 죄가 없지. 그 와중 금발의 남자애가 나를 신기하게 보다가 내 손을 잡았다. 아직 어린애라 그런지 땀기 있는 손아귀였다.
…이런 애들을 두고 누나가 어떻게 떠나겠는가? 오히려 누나다운 모습에 한숨을 푹 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나를 껴안았다.
으음, 이건 나쁘지 않을지도…. 나는 애들의 이름을 일일이 들으며 소개받았다. 가장 키가 큰 단발의 여자아이가 리코고, 가장 큰 남자아이는 카무이, 시안에게 다리에 매달린 분홍색 머리 여자아이는 소리, 그 근처에 누나의 장난기를 닮은 건지 활달한 흑발의 남자아이는 사이, 시안 등 뒤에 작은 매달린 아이는 히카리. 방금 나를 껴안은 금발의 남자아이는 노아. 머뭇거리며 내 주변에서 내 소매를 잡은 아이는 카요. 애는 누나를 닮아 청록색 머리인 것 같았다.
그러나 누나는 그 외의 남자를 소개해주지 않았다. 답답했던 내가 결국 말을 꺼냈다.
“누나, 이 애들 아빠 누구야?”
“각기 다릅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키가 큰 남자였다.
하, 여섯글자로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구나. 그것도 그가 그렇게 대답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이어서 나온 말에는 넘어질 뻔했지만 말이다.
“앞에 큰 딸인 리코는 제 아이입니다.”
“너네 뭐 하는 놈들이야.”
당황스러운 대답에 기겁하며 나는 누나를 등 뒤로 숨기고 다시 불었다. 내가 그렇게 경계하며 되묻자,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힘을 빼고 최대한 무해한 척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그의 뒤에서 엄청 아름다워 보이는 남자가 웃으며 다가오는 것 아니겠는가!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자화자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랑 외모가 조금 비슷했기 때문이다.
“누구더냐?”
뒤에 서 있던 누나는 환히 웃으며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그 남자에게 나를 소개해주는 것 아닌가? 나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 남동생. 이것 봐. 미카즈키랑 얼굴 쏙 닮았지? 인체 다시 구성시킬 때 미카즈키 얼굴을 참고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펄쩍 뛰며 되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도대체? 내가 설명을 요구하며 누나에게 되묻자, 누나는 단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음? 어…. 환이 인외됬을 때 얼굴 구성을 내가 도와줬었잖아? 미카즈키를 참고해서….”
“왜!?”
“본인 외모 특징 이야기할 때 너 잘생겼다고 말했잖아.”
생각해보니 우리가 남매가 된 그때 골목길에서 그런 헛소리를 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의 얼굴을 본떴다고? 그때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왜!?”
“이런 잘생김 아니었어?! 이런 예쁜 잘생김은 미카즈키가 제일이라고!?”
“핫핫하! 그래그래, 처남인 건가?”
“굳이 따지자면 맏아들 아닐까?”
“헛소리하지 마! 누나!”
“형인 거야?”
남자랑 비슷하게 생긴 큰아들이 저벅저벅 걸어와서 내 눈치를 살폈다. 아까 카무이라고 했던가…. 아니, 내게 이런 시련이. 나는 분명히 삼촌이라고 선을 그으며 누나에게 따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게 다 뭐야? 남편이 왜 이렇게 많은데?! 언제부터 만났어? 왜 나는 몰랐어?”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
누나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내가 누나 어깨를 잡고 제대로 설명하라고 흔들자, 아까 그 남자가 사이에 끼어들며 내 손을 찰싹 때렸다.
“처남이라고 해도,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난 이곳저곳에서 처남 소리 듣기 싫은데. 인정한 적 없으니까.”
그의 말에 내가 바짝 털을 세우듯 으르렁거리니, 나와 비슷한 외모가 비슷한 그 남자는 곤란한 듯이 말을 이었다.
“으음, 정말 주인과 비슷한 타입이구나. 닮았구만. 저기 막내 처남은 멍때리는 주인과 닮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무얼, 별말 하지 않았단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는 타입의 남자였다. 고풍스러운 옛 일본 옷을 입고 있는 것부터 고압적인 느낌을 받았고, 천천히 말하는 것에서 누나에게 주입받은 한국식 특유의 짜증남을 얻었으며, 돌려 말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는 점에서도 화를 얻었다. 내 옆에 있던 키 큰 남자는 조용히 이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자가 아마 사람들의 대표겠지. 여기서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안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표정에 보였는지 남자는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여긴 주인의 성이요, 주인의 집이고, 우리들은 주인들의 남편들이란다.”
“‘우리들’이 누군데?”
“전원.”
“… 미친 소리 하지 마. 누나, 아니지?”
나는 누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시선을 회피하는 누나일 뿐이었다.
“누나?”
“아니…. 그… 전부 그런 관계인 건 아니고. 그러니까…대충 이해해!”
“뭘? 여기 들어올 때 본 존재 중에는 애도 있었는데 뭘 이해하란 거야?”
“아 걔네들은 아니야.”
“… 불행 중 다행이네. 아니 이게 다행인가?”
나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누나의 자유의지로 하렘성을 차렸다고?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라노벨 소설도 이것보단 현실성 있을 것 같은데. 무슨 라노벨 소설도 아니고…. 내가 다시 고개를 내려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고 할 때, 나랑 아까 대화했던 남자가 누나 앞에 여우처럼 다소곳이 서서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빨리 말해주렴, 주인.”
“응? 뭘?”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응? 그, 그렇지?”
누나가 당황하며 대답을 이어가고, 남자는 나에게 보란 듯이 들었느냐? 하고 되물었을 때가 돼서야 이 상황을 벼락 맞은 듯이 이해했다.
이새끼들이 누나를 우리가 있는 세계로 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도망갈 거면 3시간 후에 오슈.]
어쩐지 아까부터 선장의 목소리가 들리더라. 내가 재빨리 누나의 손을 잡고 뛰려는 동시에, 아까 그 남사에게 다시 되잡혔다. 나나 그나 험악한 표정이었다.
“주인을 데리고 나가는 게 허락될 것 같으냐?”
“대체 왜 애가 겁먹을 소리만 하는 거야? 환아, 너도 멈춰.”
“못 멈춰.”
“얘가! … 잠깐만, 둘이서 이야기하고 올게. 환이 너도 이쪽으로 와봐.”
나는 못 간다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버티려고 했으나, 누나가 내 팔을 확 당기는 바람에 목줄에 끌려가는 애완견처럼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열받게 미카즈키라는 남자는 픽 한번 웃었다. 이새끼가 진짜.
“기 싸움 하지 말고 이리 와.”
아까랑 다르게, 어르고 달래는 목소리나 장난치는 목소리도 아니라 혼내는 말투라 나는 그를 더 이상 신경 쓰지 못하는 채로 반사적으로 겁먹은 채로 누나를 따라갔다. 이렇게 화내는 건 처음보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놈을 째려보는 것을 중단하고 누나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다. 길을 꺾고 꺾어 남사들이 주변에 보이지 않자, 이제야 누나는 내가 아는 투덜거리는 톤으로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어휴, 하여간 쨉도 안되면서 까불긴.”
“뭐!? 그럼 쨉도 안되면 까불면 안 돼!?”
내가 억울해서 소리치자, 누나가 뒤돌아서 화내며 목소리 높여 이어 말했다.
“당연하지! 네 몸 다치면 어떻게 골치 아플지 상상이 안 간다. 네 몸 지금 당장 어디서든 치료 불가능해! 네 몸 소중히 여겨.”
“내가 애인가?”
“으휴, 너 5쨜짜리 인외에요. 인외치곤 엄~청 어린애라고.”
그리고는 내 이마를 툭 치는 거 아닌가. 나는 누나가 걱정되어서 이야기 한 건데…. 나는 속으로 터져 나오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내보냈다.
“내 참. 울기는…. 진짜 네가 걱정되어서 말한 거야. 너 지금 다치면 큰일 나.”
“나도 누나가 걱정되어서 말한 건데….”
“그 마음을 누나가 이해 못하겠니. 알아. 근데 내가 결정한 거고, 강압 같은 거 없었어. 정말이야. 여기 애들은 나 때문에 슬펐거든. 지금 너랑 비슷하게….”
누나는 항상 그랬듯이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우는 사람을 어깨나 등을 쓰다듬으면서 달래는 건 하나도 안 변했네. 나는 침착히 누나가 말하는 변명을 들었다.
대략 누나가 큰 잘못을 해서 이 애들이 방치되었고, 그로 인해 여기 애들의 정신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으로 판단하고 여기에 남게 되었다고. 뒤이어 사니와와 도검남사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미카즈키를 알고 있는 건…대략 내가 이해하기에는 도검남사라는 외모가 지정된 인외를 본사에서 분양받는 것인데, 광고지로 온 걸 보관해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 외모를 구성할 때 참고했다고….
내가 인간으로 죽었던 그 때, 몸이 불탔고 이런저런 곳이 쓸리고 다쳤었지. 아마 얼굴도 다친 거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별생각 없이 날 안심시키려고 그때 이런저런 말을 걸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내가 자신을 치료해주는 존재를 억지로 안심시키려고 별 소리를 다 했다 싶다.
“그래서 애들 안정시키려고 여기에 있기로 한 거야. 너 못 만나러 간 거는, 이건 변명 같지만 나는 너희가 잘 지내는 줄 알았어.”
“누나….”
“거기 생활에 잘 적응했는데 내가 말 걸면 안 될 줄 알았어. 그게 규칙이거든. 그래서 못했던 거야. 이건 온전히 내 불찰이고 내 잘못이지. 그러니까 나를 원망해.”
누나는 내 손을 잡고 도닥이며 그렇게 조용히 말해주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누나가 남편들에게 원망을 쏟아내지 말라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알아. 그렇지만… 나는 누나가 괴로운 거 보기 싫어. 나는 그 말을 밖으로 솔직하게 내뱉는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어허, 씁. 난 나갈 생각 없어. 너도 이곳을 넘어왔으니까, 원하는 곳에 정착할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 할까?”
“… 난 누나랑 헤어지기 싫어.”
당연했다. 나는 누나라는 집을 찾아온 거니까. 시안이도 마찬가지다. 뭐, 시안이야 진실을 알든 말든 아까 조카들이랑 노는 게 즐거워 보였으니 상관없겠다만. 내가 시무룩하게 누나 팔을 붙잡자, 누나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내 눈가를 톡톡 두들겨주었다.
“그래, 그럼 너도 사니와할래?”
“응?”
“시안이도 많이 컸더라. 언제 저렇게 컸던지. 아니 이게 아니지. 여기서 사니와 안 해도 사니와 교육받을 수 있으니까. 너도 연수받는 것처럼 해도 되고.”
“내가?… 누나처럼?”
모든 걸 잘 해내는 누나처럼? 항상 강한 누나처럼? 내가 되묻자 누나는 마냥 웃어주며 이야기했다.
“너도 못 할 건 없지. 정부에서 초기도 정해주면 괜찮을 거야. 연수받고 사니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채로 누나 건물에 살면 돼. 어때?”
아무것도 안 해도 여기 있어도 된다고? 일 안 해도? 누나가 새 가정을 꾸렸어도 여기 있어도 돼?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위해 누나에게 되물었다. ‘나, 여기 있어도 돼?’라고.
“물론이지. 내 동생인데.”
나는 몇 년 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모든 불안감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