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외의 이야기

단풍산으로 가자

츠루카에AU 단편

*제 드림이 아닌 아마씨드(@ ama_seed)님의 드림입니다.

 

어렸을 적 숨바꼭질하던 카에. 친구들끼리 놀다가 연속으로 제일 먼저 발각되어서 다음에는 좀 더 오래 숨고 싶어 하는 참에 어떤 하얀 어른이 카에의 뒤에서 말을 건다.

 

"뭐야, 숨고 싶어? 숨겨줄까?"

 

카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응... 그래야 할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하얀 남자는 하하 웃고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어린 카에에게 말했다. 카에는 멋도 모르고 그 남자를 따라갔다. 그가 따라오라고 한 곳은 꽤 오래된 집이지만 멀끔하고 깔끔했다. 꽤 고즈넉하고, 바람도 선선했다. 분명 바깥만 해도 시끄럽고 더웠는데 말이다. 카에는 뒤를 돌아 자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잠깐만 혼자 숨다 오자. 시원하기도 한데 뭐가 나쁘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오랜만에 손님인가, 그래 뭐가 좋나? 어린 손님이니 초콜릿 과자가 좋나?”

“물만 주셔도 괜찮아요.”

“착하구나. 하지만 내가 너를 접대할 권리를 앗아가지 말아다오.”

“…그럼 조금만 주세요.”

 

착한 카에는 하얀 남자가 내온 과자 중 가장 싸 보이는 쌀과자를 뜯어 입에 물었다. 같이 준 냉차는 시원해 보이기도 해서 손이 자주 갔다. 남자는 카에를 바라보고는 그냥 웃을 뿐이다.

 

“푸흐흐…어찌 이리 귀여울까?”

 

카에는 자신 앞에 있는 이 자를 어린 자신을 귀여워하는 이웃집 상냥한 이상한 할아버지 정도로 취급하기로 했다. 카에는 혼자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똑 하고 잘라서 대답했다.

 

“그냥, 어른이 보기에 어린애들은 다 귀엽대요.”

“그건 아니다. 너라서 귀여운 거지. 어디, 어린아이가 놀거나 읽을 만한 게 있을까?”

 

카에는 그 말에 조르르 따라가서 남자가 모아둔 책장을 보았다. 엄청 오래된 책에 널브러진 책 하나를 집어 들어 몇페이지만 넘겨도 오래된 한자들만이 가득했다. 이제 카에 머릿속에서는 숨바꼭질이 사라졌다. 먼저 들어온 남자는 책 몇 개를 꺼내 보더니 이리저리 살피며 먼지를 탁탁 털고는 말했다.

 

“이거 읽어주마.”

 

남자가 연 책에는 요괴담 같은 옛날 그림이 가득했다. 하지만 안의 글자는 한자는커녕 꼬부랑글씨로 보였기에, 카에는 남자를 총총 따라가 근처에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옛날옛날 어느 노부부는 아이가 없어서 하늘에게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대. 그리고 겨우 아이를 가졌지."

 

카에는 남자가 도란도란 읽어주기 전에 이야기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흘림 글자였지만 어떻게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밖에서 카에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에야, 카에야. 카에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에 남자가 신발은 챙겨야지. 하며 신발을 챙겨주었고, 허둥지둥 인사를 하고 나갔다. 밖에는 카에의 부모님이 엉엉 울며 카에를 찾고 있었다. 카에는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뛰어갔다.

 

"요 녀석! 너 그동안 어디 있었어?!"

"숨바꼭질하다가 저기 할아버지 집에... 미안."

 

카에는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부모님은 사색이 되어 카에를 다그치는 것이 아닌가.

 

"너, 정말 바른 데로 말해. 저기 갔었다고? 할아버지?"

"응? 응. 할아버지가 과자 주고 물도 주고 책도 읽어줬어."

 

그 대답을 듣고도 여전히 사색인 얼굴로 마주 보는 부모님을 보고 난 이후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어째서 하얀 남자를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는가? 백발이라서? 그 남자는 왜 오래된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가? 결정적으로 부모님은 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바라보고 있는가?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당황한 카에가 고개를 푹 숙이자, 부모님이 카에를 향해 말했다.

 

“잊어. 카에야. 잊어. 알았지?”

“응? 응….”

 

그렇다고 이런 기억을 송두리째 잊을 순 없을 것이다. 십년이 지나도, 십오년이 지나도 말이다.

 

때는 카에가 어른이 된 이후였다. 오랜만의 휴일에 도서관에 간 카에는 툭 떨어진 책을 보았다. 이름은 [기조 모미지 전설]이라는 옛날 오래된 동화책이었다.

어라?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카에는 홀린 듯이 그 책을 가져가 펼쳤다. 책은 상태가 오래된 건지 종이 끝부터 누렇게 번져있었다.

 

카에는 파라락 책을 넘겨 읽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다시 읽어도, 다시 읽어도 자신과 아는 내용이 달랐다. 책의 내용은 하반신을 단속하지 못한 남자에게 여자가 분노하며 저주를 내리고 추방당하고… 뭐, 이런 내용이었지만 자신이 아는 내용은 분명 기억을 잃은 여자가 남자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단풍산으로 가는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그 이야기 결말은 어땠더라. 해피엔딩? 아니면 새드엔딩? 어느 쪽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자신은 왜 이런 내용으로 알고 있지? 카에는 기억을 허우적거리며 되새겼다. 그러다가 문득,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있던 놀이터를 기억해냈다. 오래된 놀이터지만 재개발이 무산되어 아직도 남아있고 녹슨 흔적이 있는 놀이터였다. 자신 또한 옛날에 저기서 놀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 너머로 있었던 옛일을 기억해냈다.

 

근데, 자신은 이틀 동안 행방불명 상태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왜 기억은 겨우 몇 시간밖에 없는가?

 

카에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으나, 부모님의 말씀은 다정하고 왠지 옛날이야기라고 운을 띄우면 무척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카에는 어쩔까 싶어 다음 휴일, 그 시각 그 위치에 있던 옛날 그 할아버지 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저벅저벅. 가벼운 옷차림에 핸드폰만 들고 그곳으로 향했다. 어차피 대낮인데다가 여름이니까, 뭐 괜찮겠지, 하고서. 자신의 기억상 놀이터 반대편으로 직전 해서…. 그래, 어렸던 자신이 앞에 있는 것처럼 현실에 추억을 덧깔아 움직였다. 

 

마치 작은 오르골 소리로 자신을 유인하듯…카에는 홀린 듯이 그 위치로 걸었다. 하얀색 남자가 있는 곳은, 그곳은 바람과 함께 풍경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오랜만에 손님인가?”

“어?”

 

카에는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그때와 비슷하게 생긴 하얀 남자가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하얀 남자는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다가도, 다시 고개를 돌려서 ‘아직은 이르지 않나?’하며 중얼거리고는 자신을 다시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닐세, 괜찮네. 날도 더운데, 들어와서 이야기 하는 건 어떤가?”

 

남자는 순식간에 그녀를 집 안으로 초대했고, 살인적인 날씨에 나올만한 반응이고 상대 또한 나쁜 의도는 없는 것 같아 카에는 그를 따라갔다.

 

자신에게 유독 무방비한 남자는 추억과 같이 냉차를 대접해주었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이 냉차는 향을 맡아보니 비쌀 것 같은 향이 났다. 싼 차는 달콤하거나 과일 향이 나지 않던가? 그런 느낌 없이 깔끔하고 담백했다.

 

“좋아할 것 같아서 백차로 준비했네.”

 

자신도 안 마셔본 백차를 선호할지 어떻게 알고 준비해? 하면서 한 모금 더 마셨다. 이상하게 입안에 감도는 느낌이 좋았다. 집 내부도 예전에 봐뒀던 그 추억과 똑같았다.

 

“저,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뭔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무언가?”

 

다짜고짜 말하기 어려운 말이고 상대방도 뜬금없이 뭐라고 할지 당황스러운데도, 카에는 궁금증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라 입을 열었다.

 

“저, 어렸을 적에 여기 와본 적 있거든요. 그때 계신 할아버지가….”

“푸웃, 쿨럭, 쿨럭!!”

“아, 괜찮으세요?”

“아, 아니 괜찮네. 계속 말해보게나.”

 

남자는 사례가 들린 듯 연신 콜록거리며 입을 소매로 닦았다. 그러고 보니 여름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더운데 하얀색 유카타를 입고 있었다. 꽤 돈이 많은 집안인가. 싶어 빠르게 볼일 보고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튼 그 할아버지가 읽어주신 모미지 전설을 다시 읽고 싶어서요.”

“….”

 

이번엔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읽는다고 해도 자신은 한자는 읽지 못하겠지. 카에는 멋쩍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이어 말했다.

 

“최근에 다시 읽으려니 이상하게 제가 알던 이야기와 달라서, 아, 그러니까 할아버지께서 읽어주신 이야기가 읽고 싶은 거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읽고….”

“다시 읽고?”

 

상대방의 차가운 표정에 카에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뭘 잘못 말했지? 뭔가 실수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한 말은 없지 않았나? 당황한 티가 나지 않게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이어 나갔다.

 

“그, 이야기가 마지막에 어떻게 됬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서…. 결말이 알고 싶어서요.”

“하하하!”

 

남자는 미친놈처럼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것 아닌가? 어안이 벙벙해진 카에가 고개를 들고 다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자, 순식간에 남자가 그녀 앞에 다가왔다. 도망갈 수 없을 정도의 압박이 남자에게서 느껴졌다. 이 집착은 오직 카에만의 것이었다. 주춤 벗어나고자 아예 뒤로 넘어진 카에에게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결말? 아무것도 없지. 그럼, 당연하지 않은가? 우린 단풍산에 아직 못 간 걸. 그 이야기는 어디를 가도 들을 수 없어. 우리의 이야기니까. 할아버지? 그래, 너를 위해 기꺼이 이런 몸이 되었다. 아아, 어딜 내빼는가? 바보같이…. 나갈 수 없어. 네가 스스로 이곳으로 걸어온 이상, 아무도 너를 찾지 못하고 나가지 못한다. 저번에는 내가 초대해 네가 멋대로 나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불가능해. 그래, 이번에는 몸도 아프지 않고 단풍산에 갈 수 있겠구나. 그곳에서 단풍을 맞으며 혼인을 올리자. 그런 약속한 적이 없다고? 그래, 그렇겠지. 이미 없었던 일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단풍산에서는 피를 뱉어도 단풍 같아 보이니 거기서 혼례를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하던 아픈 카에를 자신 아래에서 파르르 떨며 누운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단풍산이구나."

 

 

'그 외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 보지도 않았던 남편이 기억을 잃고 나니 구애하는데요!  (0) 2025.03.27
춤추는 대수사선(은혼AU드림추리소설)  (0) 2025.03.27
너와 반딧불이  (0) 2025.03.27
마녀의 낙원  (0) 2025.03.27
존슨  (0) 202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