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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아드사리-C

어느 여름의 기다림

 (a5기준 편집)

 

 

하늘이 높고

구름도 많이 없는

그런 어느 날이였다.

 

 

 

 

어느 여름의 기다림

 

 

 

 

정신이 드니 어느 집의 화장실이였다. 정확히는 욕조에 넘실거리는 물 안이였다. 욕조 안에 있던 나는 옷도 전부 입고 있던 채로 쫄딱 젖어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오늘은 어느 아침, 월세내며 살고 있던 자그마한 원룸에서 문을 열고 뛰쳐나오는 때였다. 그랬었다. 근데 나는 어느 집의 욕조 안이다. 확실한 건, 내 월세방은 욕조가 없다. 흘러넘치는 물 안에서, 여전히 수돗물이 틀어져 있어 나는 수돗물을 잠갔다.

‘누구집인지도 모르는데 이 절약정신…’

습관화 된 것이겠지만, 돈이 없어 수도세 내는 것에 민감했다. 물을 잠그자 마자 드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수도세인가..’하는 것 뿐이였다. 

‘여긴 누구집이지…?’

여긴 어딘지 알기 위해 몸을 움직여 물에 축 처진 몸으로 욕조 밖으로 나왔을때는, 정말 내 기억속 외출했던 모습 그대로, 심지어 가방까지 욕조에 빠져있었다. 나는 욕조에서 건저냈지만, 안에 있는 화장품의 생각까지 미쳤을때에는, 이미 화장품 일부가 물에 침범당한 이후였다.

낙담한 채로 화장실에서 나오니, 집은 깨끗해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다만 몇일 들어오지 않은 건지, 얇게 먼지가 앉아있었다. 물론 먼지가 쌓여있었어도 쇼파나, 가구들을은 한 눈에 꽤나 비싼 가구였음을 짐작가능할 정도였다. 다만 가구들의 색은 통일되지 않고 자기 멋대로였다.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 다행이였다. 일단 수건과 가운이 있었기에 빨리 갈아입고 몸을 닦았다. 젖어 벗어놓은 옷들을 가지고 집을 이잡 듯 뒤졌고 화장실 옆 방에 있는 드럼세탁기를 발견했다.

 

음. 이걸로 빨래 다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나. 그리고 마르면 빨리 집에서 나갈께요 미안해요 집주인! 미안하니까 청소할께요! 대충이지만! 

미안한 마음에 나는 먼지털이와 걸레를 들었다.

 

****

 

밤이 되었지만, 집주인은 오지 않았다.

빨래는 집안을 뒤져 나온 드라이기로 옷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어느 정도 말라서 나는 청소로 먼지 묻은 몸을 한번 씻어내고-죄송합니다집주인님죄송합니다.- 옷을 갈아입었다.

애초에 내가 눈을 떴을 때부터 좀 시간이 늦은 오후였었다. 집에 갈걸 그랬나 하는 고민과 함께, 누가 이 집에 들여보내준 지도 모르잖아하고 나가지 않는 고민이 싸웠다.

그리고

 

‘삐리릭’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아드리크?”

“엉?”

들어오는 사람은 알코올 냄새를 풍기는 아드리크였다. 옆에 여자를 달고 있는. 같이 들어오는 여자는 나랑 같이 몸이 굳었고…

 

결국 그 여자는 아드리크 얼굴에 손바닥 자국을 남기며 사라져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물론, 나도 삐딱하게 쇼파에 앉았다. 애인이 바람피는 장면같은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알코올에 절인듯한 이 핑크피클같은 녀석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였다. 생전 처음보는 얼굴로 나를 낮게 깔아 뭉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누구야?”

 

나는 화났다. 확실히 화났다. 아니 화낼 수 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근처에 있던 쿠션을 잡아 계속 때렸다.

 

“이 쭉쩡이 피클아!”

“아야! 아야! 진정하고 이야기해!”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씨발! 여자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믿으면 안됬는데!”

“잠깐만, 내가 언제?”

 

나는 더 이상 이성적으로 생각할 자신이 없었다. 남은 그의 볼따구에 싸대기를 날렸다.

 

‘짝’

 

물론 내 손은 아까 그녀보다 약했지만. 양 볼이 손바닥 자국이 난 아드리크가 쏘아보자, 그 이후 기억은 또 끊겼다. 그가 이후에 말하길, 홧병으로 기절한 것 같다고 했다. 하긴,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화를 냈으니 당연하다.

 

일어나니 아침이였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이 났다. 떨어진 자존감이 나를 갉아먹었다.

 

‘쳤어…. 욕도 했네..’

 

내가 아드리크와 사귀게 되면서 결심했던 것 중 하나는, 욕과 육체적 폭력을 동시에 하지 말자는 거였다. 인간쓰레기가 되면,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사실 지금까지는 아드리크가 맞춰준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건 정말로 잘하는 놈이기에.

 

“이 쓰레기야..”

 

나는 이불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햇빛이 나던 말던,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야, 일어나.”

 

근처에 있었는지 몰랐던 아드리크가 날 일어나라고 흔들고 있지만 아랑코 하지 않았다.

 

‘…어? 그러고보니 맞다. 여기 아드리크 집인데.’

 

웅크릴 장소의 지번이 틀렸다. 그리고 방금 아드리크 이놈이 한 말이, 나를,

 

‘야라고?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거야?’

 

이 진짜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나는 이불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를 쏘아보았다. 아드리크는 삐딱하게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양 볼에 뭔갈 붙이고.

 

“그래. 일어났다.”

“묻겠는데, 너 뭐야?”

“니 애인이였다. 어제까지!”

 

나는 가지고 있던 배게를 그에게 집어던졌다. 그는 인상을 더 찌뿌리며 말했다.

 

“아니, 그래서 이름이 뭔데? 여기 비번은 어떻게 알았어?”

“눈을 뜨니 여기였으니 네가 데리고 왔겠지! 그리고 이름? 이름을 물어봤어? 진짜 죽을래? 그러면서 모텔가자고 해서 갔냐?!”

 

그는 순간 놀란 듯 눈이 동그래졌지만, 이내 그 기색을 숨기며 말했다.

 

“아니, 너같이 특이한 머리카락이면 보통 이름을 안잊겠지. 근데 진짜 몰라! 네가 너를 꼬셨다고?”

“뭐라고? 그럼 니가 고백했던 날도 기억 못해?!”

 

나는 근처 가방을 뒤져서 휴대폰을 꺼냈다. 물은 먹었지만, 다행이도 잘 말려 기동이 되었다. 나는 그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사진 들이댔다.

 

“이것도 기억 못 해? 증거가 있는데?!”

 

그는 정말 폰 속 사진을 보고 어지러운지 충격을 받았는지 침대로 앉았다. 충격이라니, 충격은 내가 받아야 할 텐데.

 

“…줘 봐.”

 

나는 휴대폰을 던지듯 넘겼다. 그는 여유만만하게 그 폰을 받더니, 갤러리의 여러 가지 사진을 보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나를 보며 쓴 약이라도 우물거리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정말로 기억이 안나는데, 이름이 뭐야?”

“…사리카.”

 

그냥 정말로 맛이 간 건가? 아니면… 기억상실인가? 그는 약간 찌푸린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쓰레기지만 그래도 양다리 걸치는 쓰레기 짓은 안했는데…”

“하지만 어제 했지.”

 

그는 내 가시돋힌 답변에 마른 세수를 하듯 얼굴을 감싸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난 지금까지 기절하거나, 뭔가 기억을 잃어본 적이 없는데.. 너 사기당한 거 아냐?”

 

도끼같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다물었다.

 

“그건 커플링이야?”

“그래.. 이제 필요 없겠지만.”

 

나는 그에게 반지를 빼서 돌려주었다.

 

“넌 끼고 있지도 않네… 뭐 그 정도 인연이였던거겠지.”

 

내가 말했는데 억울하고 우울하고, 무엇보다 울고 싶어졌다. 내가 한 말에 내가 상쳐받아버려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질질 짜고 있으니, 반지를 보던 그가 외쳤다.

 

“잠깐만, 반지에는 2017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래, 우리 2016년에 만나서 다음해에 맞췄잖아.”

 

그는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본 얼굴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 2008년인데?!” 

“…….뭐라고?”

 

우리는 동시에 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서로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실로 달려가 티비를 켜 아무 채널이나 틀었다. 채널에서는 뉴스가 나오며 달 날짜가 나와있었다. 그리고 거실에 놓인 캘랜더는, 정확히

 

“2008년….?”

“그래.”

 

그는 무덤덤하게 침실에서 걸어나왔다.

 

“그, 그럼 911 테러도 안일어났다고?”

“그건 2001년인데.”

“아 맞다. 내가 중학생 때였지. 그러면… 오사마 빈 라덴이 안잡혔다고?”

“뭐?”

 

내가 안되는 머리로 근현대 세계사를 쥐어 짜내어 묻자, 그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서로의 얼굴에 물음표를 띄울 수 밖에 없었다.

 

“응???”

“어???”

 

한동안 휴전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

 

나는 그에게 일단 털어놓았다. 나는 2017년에서 왔으며, 미래의 그와 데이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고 설명했다. 내 집도 정확하게 외우고 있어, 어린 아드리크와 함께 집을 나서 월셋집으로 향했다.

 

“말도 안돼..”

“…..”

 

내 월셋집이 있던 곳에는, 공사현장이 있었다. 길게 쌓여있던 원룸아파트는 없었다. 그는 내 폰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 지도에는 표시가 되네. 심지어 집 앞이라고 표시되어있는데.”

“…….”

 

절망적. 절망적 문자 그대로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나는 그냥,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려고 문을 나서다가 정신 차리니 얘네 집이였던 것 뿐이다. 내 월셋집을 뒤로하고 아드리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생각해보니 아드리크 전원주택에 살지 않았던가? 나한테 자랑할 때 본인이 3명이 살기 좋게 해놨다고 했었는데.

 

“자, 잠깐, 너 아파트말고 전원주택인 곳에 살았잖아. 창훈이랑, 다비드랑.”

“…? 뭐야 그 둘도 알고 있어? 한번 만나러 가볼까?”

“아니.. 어차피 모를 것 같으니 그만둬 줘.”

 

나는 축 처진 채로, 축 처진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운전하며 말했다.

 

“맞아. 그 아파트는 아지트야”

“아지트?”

“애인을 데리고 그 집으로 갈 순 없잖아.”

 

망할 부르주아 같으니라고. 나는 욕을 속으로 삼켰다. 그런 내 정신을 뚫고 지나가는 것은, 끼익 하는 소리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차. 기억해버렸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자식은 한 번 운전에 면허정지 먹을 정도로 거친 운전을 한다. 그래서 미래에서도 내가 똑바로 운전안하면 무면허인 내가 운전한다고 협박했었다. 나는 아드리크를 때리며 욕을 했다.

 

“망할! 너 내가 타고 있을 때, 80KM로 운전하라고!…”

“난 미래의 내가 아니라 그럴 이유는 없는데”

 

그는 시큰둥하게 무시하는 답변을 했으나, 그게 문제가 아니였다. 

 

“웁….”

“아니 FUCK! 줄일께! 줄인다고! 하지마!”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누르고, 그는 얌전히 운전하며 나왔던 아파트로 돌아갔다. 그 동안,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사진 들어있었던거, 디카야?”

“….아니 스마트폰.”

“스마트폰? 앗 그러고보니 액정터치식이던데”

“응. 정전식. 압력식은 내가 대학생때 써봤는데 주머니에 넣어도 눌러지더라.”

 

아파트에 들어가서도 그는 쉴새없이 물어봤다. 예를 들어 반지를 돌려주면서,

 

“미래의 나는 너의 어떤 점에 반했대?”

“응? 어……. 나도 물어봤었는데 그냥 다 좋다고 하던데.”

“뭐지? 미래의 나는 눈이 삐악!”

 

물론 다리를 걷어차줬다.

 

 

*****

그 후, 나에게 한참 질문 한 후에 말해준 사실인데, 그는 대학원생이였다. 열심히 보스턴 대학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이따금, 일이 진전되지 않을 때 신경질적으로 여자나 남자와 만나 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내가 바이라는 이야기는 했었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는데 알고는 있었지.”

“음? 근데 꽤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네. 동양은 엄청나다던데.”

 

그는 정말 신기한 사람 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취급이 조금 맘에 들지 않았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해. 앞으로 십년 후면 동양에는 페미니즘 물결로 들썩인다고. 상대의 성정체성이 어떻든 간에 아웃팅에 대해 상대방이 상처받을 행동하는 게 성차별주의자지.”

“흠.. 그건 그렇네. 네 말이 맞아.”

“자꾸 당연한 거 묻네. 혹시 내가 당연히 성차별할꺼라고 생각했어? 실망인데.”

“아니, 아냐!”

 

그는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가 제안한 것이 있다. 원래 시대로 돌아가기 전까진 이 아파트에서 지내라고. 그는 ‘어차피 잘 안써.’라고 말했다. 그에게 아파트 키를 건네받자 생각나는 게 있었다.

 

“잠깐, 나 그럼 여기 아직 통장 개설 안됬을 텐데.”

“응?”

“어떡하지. 그럼 돈 뭘로 써? 뭘로 사먹어?”

“뭘 그거 가지고 고민해?”

“고민하지 보통! 지금 이 시대의 나는… 고등학생이구나! 통장 개설도 아직 제대로 못했겠네! 제기랄!”

 

현재는 통장개설이 어려워 고민하는데 그때는 청소년이라 개설할 시간이 없다니! 삐-은행이라던가 삐-은행 통장 있으면 지금 돈을 넣고 쓸 텐데-같은 고민을 하고 있자니, 어린 아드리크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부터 이상한 고민을 하는데, 미래의 나는 너에게 카드를 준적이 없어?”

“아무리 남자친구가 잘 산다고 해도 카드를 덥썩 받아쓰는 건 예의가 아니지.”

“?”

“그리고 지금도 일이 바쁠 때만 받을께. 지금도 당장 바쁜거면 내가 식재료 사러 가고.”

 

내 모습이 이상한건지 그는 꽤나 당황한 얼굴이였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입을 열어 말했다.

 

“그.. 미래의 나와 사귀었을 때 뭐 비싼 것도 안사줬어?”

“사줄려고 했는데 내가 세자리 수 이상은 싫다고 거절했어.”

“뭐? 그걸 누구 입에 붙여?”

 

그는 정말 의외라는 반응을 하며 얼굴을 찌뿌렸다. 지금까지 보였던 행동 중에 제일 크게 반응하는 것이였다. 물론, 이해는 한다. 예전에도 저랬기 때문이다.

 

“그야 너무 부담스럽잖아. 그 대신에 입생로랑 틴트라던가, 디올 립스틱이라던가는 받아본 적 있는데.”

“그거야 애인이 아니라도 줄 것 같은데.”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의 소비생활을 탓해야하나 생각했다. 일단, 애인이 아니라도 그런 선물을 한다는 것부터 내가 화내야 할 타이밍이지.

 

“애인이 아니라도 줄 것 같다고…?”

“틀린 건 아니잖아?”

 

나는 그를 두 번째로 걷어찼다. 그는 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틀린 건 아니지만, 주변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간다. 건드리면 선물을 주는 선물상자정도로 생각하는 거겠지.”

“그보다 정말 아프다고. 미래의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매일 맞는다고?”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 애인이 아닌데 뿌려도 되는 건 음료수나 여행선물뿐이야. 아니면 명절선물세트.”

“흐음”

 

그는 일단 알았다는 표정을 했다. 또한, 오늘 대학교에 나가야한다는 일정을 알렸다. 차라리 시간표를 달라고 하자, 시간표랑 상관없이 어차피 오후 10시까지는 대학교에 있는다고 했다. 

 

‘천재라고 생각은 했지만, 노력도 엄청나게 한다니까.’

 

내 대학교 시절은 수업만 끝나면 바로 튀었었지.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한 건 시험기간 때뿐이다. 그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는 학교를 가고, 나는 장을 봐오기로 했다. 고급맨션이여서인지, 근처에 큰 마트가 있어서 금방 배웅했지만.

 

“몸 상하게 하지 말고.”

“니가 창훈이냐?”

“그리고 담배 작작 펴. 하여간 몸 안좋은 건 쏙쏙 골라서 한다니까.”

 

그는 좀 충격 받은 얼굴로 나에게 반문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담배향이 나는지 코로 확인했다.

 

“그렇게 담배냄새난다고?”

“응. 희미하게 입에서 담배냄새 나던데.”

“정말로?”

“어. 그리고 알코올냄새도 아직 나더라. 해장 안하고 가도 되?”

 

나는 그에게 요구르트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내가 해장을 요구르트로 한다고?”

“아니 미래의 네가 쓰는 방법은 아니고. 그냥 지금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건 위장보호하는 요구르트정도지.”

 

그는 어이없어 보였다. 물론 나도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만일 해장하면 내가 있는데 요구르트로 끝나겠냐? 내가 북어국부터 시작해서 잣죽까지 먹여봤는데. 나는 카트에 북어랑 잣죽 재료를 넣으면서 말했다.

 

“앗, 생각난 김에 집 환기시키고 대청소해야겠다. 청소기는 어딨어?”

“일단 화장실 옆방에 있긴 한데, 그냥 사람 시켜.”

“아니 일단 내가 남는 인력인데 굳이?”

“흠. 맞는 말이긴 하네.”

 

카트를 계산대에 가져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아드리크는 학교로 향했고, 나는 배웅하며 아파트로 돌아갔다.

 

*****

 

“정말 뭐야, suit…"

 

그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단 한번도 이런 사람을 만난 적 없기에. 아니, 잔소리 하는 점에서는 자신의 친구 한창훈이랑 좀 비슷할 지도 몰랐다.

 

‘미래의 애인? 미래에서 나에게 왜? 어째서? 무엇보다, 왜 저렇게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듯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잔소리하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사실은 전부 사기극이 아닐지, 우연히 집이 열려있어서 들어온 정신이상자 스토커일지도 몰랐다. 사진은, 합성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은 합성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말이 안되지 않는가. 사진 속의 자신은 정말로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녀를 내쫒지 않은 것은,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이렇게 단조로운 일상 말고도, 조금 색다른 일상도 재밌겠지. 지금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일탈의 짜릿함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자신은 집안의 구제불능이 아니였던가? 아드리크는 일단 아파트에 돌아가면 그녀의 행동을 관찰하기로 했다.

 

아파트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거실에 있는 쇼파에 지쳐 늘어져 있었다. 대청소를 했고, 침대 시트도 빨았다고 했다. 밖에 널려 있는 이불은 집게로 집혀 있었고, 이 집에 없었던 빨래 두드리개도 사온 모양이였다. 나중에 사기꾼이라고 밝혀져도, 카드를 건내주길 잘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으.. 힘들어. 어깨 주물러줘.”

 

아드리크는 코웃음쳤다. 그리고 일어나라고 그녀를 툭툭 쳤다. 그녀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쪼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그녀 앞에 있던 탁자에는 서재에 있었던 빈 공책 하나에 숫자가 써있었다. 계산기도 옆에 있었다.

 

“이건 뭐야?”

“그야 가계부쓰지.. 남의 돈을 함부로 쓰기 싫어서.”

 

완벽한 서민행동으로 물들어 있는 그녀였다. 그가 노트를 확인해보니 이정도의 푼돈은 신경도 안쓰이는 액수였지만, 그녀는 달랐다. 새삼 그녀가 사기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자신이 신경쓰는 금액이 될려면 0이 몇 개 더 붙어야한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당황하며 자신의 한 달 생활금액의 몇 배라고 팔을 붕붕 휘둘렀다. 그녀는 그리고 그 옆에 영수증을 일일히 붙였다. 그는 그녀의 옆에서 그 행동을 다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가계부를 작성하다 들어가서 자라고 말할려고 했던 그녀는 아드리크를 발견하고는, 오늘 빨아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는 이불을 그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고 특별히 매트릭스 위에서 잘 생각이 없던 그녀도 가계부를 쓰다 거실에서 잠들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녀가 준 온기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쇼파에서 잠들어 일어나니 명백히 자신을 생각해 덮어준 이불과 사랑스럽게 쇼파 밑에서 다른 담요를 색색이며 잠들어있는 그녀. 섬유유연제 향이 이렇게 좋았었던가? 아드리크는 깨우고 싶지 않다는 감정과 깨워야 한다는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결국, 그는 명백히 누가봐도 부끄러워 하는 표정으로 스스로 아침을 만들기로 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아침을 망치고 나서였다. 이상한 냄새가 나 깨어난 그녀는 부스스하게 아드리크를 불렀다. 그땐 이미 아드리크가 서투른 솜씨로 아침밥을 차린 후였다. 그녀는 잠이 덜 깬 채로 식탁에 앉아 그가 만든 밥을 먹었다. 그가 자신이 만든 밥을 한 숟갈 뜨고 나서 바로 뺏어 버릴려고 했지만, 그녀는 밥그릇을 잡고 꿋꿋히 먹었다.

 

“생각해서 만들어 준 것을 어떻게 버려.”

“…”

“아드리크가 직접 만든 거 못 먹겠으면 내가 새로 해줄게.”

“아냐, 먹을 거야. 먹는다고.”

 

그는 바삭하게 구워져서 질긴 베이컨을 포크로 신경질적으로 집었다. 앞에서 말없이 그 음식을 먹는 그녀를 바라보니 정말로, 미래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 모습 그 자체였다. 그는 형용할 수 없는 울렁거림에 입을 다물고, 밥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 뒤, 옷을 다시 입고 나갈려는 그를 그녀는 잠시 불렀다. 그녀는 넥타이가 삐뚤어지게 보였는지, 그의 넥타이를 꼬물거리며 다시 메주었다. 그리고 잘 갔다오라고 배웅해주었다.

형용할 수 없는 울렁거림이 그의 몸 전체를 감쌌다. 이것이 설레임이라는 것을 자신의 심연의 감정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뇌의 사고는 그것을 밀어내었다. 

그는 대학교에서 잠시 담배를 피울 때마다 그녀가 자꾸 떠올랐다. 오늘도 그 아파트에 갈 생각을 하고는, 피식 새어나가는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옷을 좀 더 가져가야지-라는 생각 뿐이였다. 그렇기에 그는 원래 자신이 머물고 있던 전원주택에 잠시 들렀다. 그의 친구이자 형제 같은 한창훈은 여자에 정신팔려 학업을 놓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다비드도 옆에서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당연하다. 이렇게 연속으로 저택에 안온 적은 없었으니. 그렇지만, 그의 성적이나 주변 사람들의 관계는 완벽했다. 그가 말이 없자, 두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서 학교에서 보자며 나갔다.

아파트로 돌아오니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8시를 넘겨 그녀에게 저녁으로는 너무 늦게 먹는 거 아니냐고 말했더니, TV에서 나온 요리가 먹음직스러워 도전해봤는데 레시피를 잘못 해석한 건지(역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것 같았다.) 완벽하게 실패해서, 실패한 요리를 버리고 간단한 걸 하는 중이라고 했다.

 

“요리 잘하는 편 아니였어?”

“아니, 그냥 먹고 죽지 않을 만큼만…. 창훈이처럼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고….”

 

그녀는 축 처진 어깨로 대답했다. 그녀는 파스타 면을 삶아 차갑게 찬 물에 씻었다. 그렇게 자신 없게 말하는 그녀를 보니, 아침에 자신에게 못 먹겠으면 다시 해준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럼 내 것도.”

“응?”

“어차피 면 엄청 많이 삶았네. 삶다가 잘못 넣었지?”

 

사리카는 아드리크의 물음에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드리크는 그 미소에 움찔했으나 미묘한 움직임이였기에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맞아. 파스타면 삶을 때마다 항상 너무 적어보여서 더 넣게 되더라. 알았어. 소스는…토마토면 되지?”

“이건?”

 

딱봐도 그녀 옆에 맛있게 만든 소스가 따로 있는 걸로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먹기에는 많이 매워… 토마토가 나을 거야.”

 

그녀가 단언하듯이 부엌 선반에서 토마토 소스를 꺼냈다. 아드리크는 약간 토라진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일단 해서 줘.”

‘인터넷 레시피 검색해서 만든 쫄면 소스인데..’ 

 

사리카는 조용히 말을 삼키고 더 이상 군말 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아드리크가 조를 때는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정답이였다. 왜 그랬는지 몸소 체험해봐라-라는 그녀의 마인드였다.

결국 그녀의 예상대로 아드리크는 매운지 켁켁거리기 시작했고, 사리카는 오늘 사서 만들어놓았던 치킨스톡 냉수를 말없이 꺼내 그릇에 부었다. 앞으로 아드리크는 음식에 관해서는 그녀의 말을 잘 듣기로 다짐했다.

설거지는 자신이 한다고 하자, 그녀는 어차피 집에서 놀고 먹었다고 괜찮다며 앉아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부엌에서 반쫒겨난 그는, 그녀가 정리한 이 아파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고급맨션이여도 이렇게 사람이 살지 않는 느낌이 나는 아파트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는지 여러 곳에 그림액자나 그림이 대충 걸려있었는데, 그것이 흉물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그림들은 액자가 깨끗이 닦여 있는 채로 걸려있었다. 그는 새삼 놀랐다. 거실을 다시 둘러보니 게임 타이틀부터 abcd 순서대로 정리되어있었고, 먼지를 썼던 플레이스테이션2는 먼지가 닦인채로 얌전히 tv선반에 들어가 있었으며, 시간이 멈춰있었던 거실의 시계는, 건전지를 갈아주었는지 시간이 맞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있던 커튼은 없었는데, 아마 세탁하는 것 같았다. 놀라는 아드리크의 모습을 본 사리카는,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아, 그거 좀 먼지가 많아서.. 아직 많이는 못했어. 거실은 정리만 한 수준이고, 음 거기 커튼 빠는 중인데…. 내일 걸 수 있을지 모르겠네. ”

“많이 못하다니, 굉장히 달라졌는데.”

“앗 아까 보고 있던 그림은, 뒤에 벽지에 자국이 남았더라고… 그래서 다른 그림이랑 바꿀려다가 말았어. 그리고 액자가 없길래 혹시나 해서 만져봤더니 물감 쓴 게 만져지더라. 햇빛 안닿는 곳에 둬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서 일단 놔뒀어. 나중에 다비드에게 물어봐서 옮기던가 해야할 것 같은데?”

 

그녀는 그간 집에 있으면서 청소한 것을 재잘재잘 떠들었다. 아드리크는 사리카가 말하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이런 별거 아닌 그림따위-다비드가 이 생각을 알면 깜짝 놀라 경멸의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냥 적당한 곳에 걸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였던가?”

“아니, 달라. 정확히는 풍족하게 돈으로 사는 느낌이야.”

 

그가 느끼기에 따듯하고, 집안이 무언가 빛으로 가득 찬 느낌이였다. 그런 모습에 사리카는 참견하여 한마디 덧붙였지만. 돈 많은 그에게는 차이가 딱히 없었다. 처음 보는 집안의 이런 분위기는 색달랐다. 매일 어렸을 때 집에 도착하면, 부모님께 고용된 사람들이 맞이하는 딱딱한 분위기의 집이였다고 회상한다. 십년이 지나도 그건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가 있던 자리라는 것은 그랬으니까. 그나마 온기가 있는 곳이라고 느낀 자리는, 한창훈이라는 놈과 다비드 셋이서 놀 때였다.

 

“앗, 맞다. 청소기 필터 다되서 샀어. 그리고 내일은 침실 청소할거야. 또… 사실 거실 카페트 못 빨았거든. 별로 상관 없을 것 같았는데 어제 자고 일어나니 심각하더라. 카페트 빨아야지.”

 

아드리크는 뇌 속에서 저 멀리 밀어 치워뒀던 감정이, 좀 더 커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멀리 치워버렸다. 그녀는 무심하게 그렇게 말하며 빨래한 것을 가져와서 쇼파 위에서 천천히 접기 시작했다. 아드리크는 그 모습을 보며 따라하기 시작했다.

 

“안개줘도 되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따로 놀았다. 그는 그 얼굴을 보며 피식 웃고는 묵묵히 접었다.

 

‘마치.. 신혼부부같네.’

 

그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에 너무 놀라버렸다. 갑자기 침범한 감정을 다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감정, 완전히 구석으로 밀어넣어야한다고 생각한 그는 서재로 들어가 잡념을 떨치고 공부하기로 했다. 그녀는 짧게 박수를 치며 응원한다고 했다. 

 

‘도데체 뭘 응원한다는 건지.’

 

아드리크는 속으로 사리카를 짧게 욕했다. 정말 눈치라곤 없는 여자라고. 그는 상념을 떨치며, 서재 안에서 졸업논문을 토대로 새로운 연구주제를 정하기로 했다.

집중을 하다 문뜩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1시가 되었다. 이제 슬슬 잘까 싶어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불이 완전히 꺼져 있었다. 침실에 들어가서 자는 모양인 것 같았다. 냉장고를 여니, 토마토를 간 것 같은 빨간 음료가 컵에 담겨 랩에 씌워진 상태였다.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을 보니 자신을 위해 갈아놓은 것을 알았다. 이런 취급은 그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뇌는 십년 후 자신에 대해 봉착했다. 그렇게 십년 후의 자신을 좋아하나. 하긴 그러니 커플링도 차고, 처음 만났을 때 화내다 기절하지.

이런 상념은 좋지 않다. 이러면 괜히 공부하면서 감정을 밀어넣은게 아니였는데. 그는 우울해졌다.

우울해진 그는, 잠시 그녀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슬쩍 침실문을 조용히 여니, 그녀는 정말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들어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어둠으로 얼룩진 이 침실은, 자신에게 있어서 그냥 섹스로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에 불과했었는데.. 그녀가 이 침실에 누워 있는 것으로 어둠은 부드러운 남색으로 바뀌어 방에 구석구석 스며들어있었다. 그녀는 잠버릇이 나쁜 지 이불을 걷어찼다 인형을 안 듯 이불을 안고 있었다. 그는 마음껏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 옆으로 기어 들어가 그녀를 안 듯 잠들었다.

 

그는 눈을 떴다. 정말 기가막히게 그는 6시가 되면 눈을 떴다. 버릇이자 습관이였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그녀가 옆에서 칭얼거렸다. 그녀는 아침에 잠이 많은 타입인지, 아직도 자고 있었다. 기회라고 생각한 아드리크는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는, 화장실로 씻으러 사라졌다.

씻고 나왔을 때는, 사리카는 이미 부엌에 있었다. 물론, 조는 채로.

 

“졸리면 자는 게 낫지 않아?”

“응구르…”

 

그녀는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채로 뭐라고 웅얼거렸다. 머리상태도 아까 아드리크가 마구 쓰다듬은 채로였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주면서 요리하는 그녀 옆에 서있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갈려고 할 때, 그녀는 여전히 조는 듯이 벽에 머리 박고 서있었다. 왠지 심술이 나서, 그녀를 깨워 볼에 묻은 소스를 지우라고 가르키며 자신의 볼을 콕콕 찔렀다. 그녀는 잠에 취한 상태로, 그가 찌른 볼에 뽀뽀를 했다.

아드리크는 순간 몸을 멈췄다. 사리카는 아직도 졸고 있는 상태로 사태 파악을 못했다. 그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후다닥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문틈 사이로 그녀의 잘 다녀오라는 말이 들렸다.

바보같은 여자 같으니라고. 그는 짧게 속으로 읊조렸다.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잠에 취해 볼에 뽀뽀한단 말인가? 다시 생각하면 할 수록 그의 얼굴은 달아올랐다. 차에 올라타고도 진정이 안돼 한 손으로 양 눈을 가렸다. 도저히 그 아파트에 돌아가서 진정할 자신이 없어 아파트에 늦게 들어갔다.

그녀는 현관에서 졸고 있었다. 그는 어처구니 없었어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렇게도 자신이 좋단 말인가? 걷어낼 수 없이 커진 감정을 이젠 물러낼 생각도 안드는 듯이 그의 뇌를 가득 차지했다. 현관문 앞에서 앉아서 벽에 기대 조는 그녀를 앉아서 빤히 바라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아드리크의 손길을 눈치챈 듯, 그녀는 눈을 떴다.

 

“뭘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냥.”

 

그녀는 그의 말에 토라진 듯이 대답했다. 그는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는, 현관문 앞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왜 여기에 앉아?”

“나도 그냥.”

 

그는 가방을 저쪽으로 내팽겨쳤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그의 팔을 찰싹 쳤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그의 팔을 당기며 일어나게 했다. 아드리크는 웃으며 일어났다.

 

“왜 이렇게 따라와?”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가 옷을 갈아입는 곳까지 졸졸 따라와있었다. 그는 고양이나 강아지를 떠올리고 그녀에게 대입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버릇되서..?”

 

그녀가 있을 때마다 여러 번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그녀의 행동을 보아하니, 미래의 자신은 그녀와 같이 생활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짜증이 치솟았다. 거칠게 넥타이를 푸니, 넥타이가 엉켰다. 그녀는 그걸 보고 그의 넥타이에 손을 뻗어 그의 넥타이를 익숙하게 풀어주었다. 어느 하나라도 그에게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뭐 이렇게 익숙하게 풀어?’

 

아드리크의 입이 부루퉁하게 나왔다. 그걸 본 사리카는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화났어?”

“…..”

“넥타이라면 예전부터 네가 나한테 풀어달라고 자주 부탁해서야. 넥타이 메는 것도 자주 부탁했어.”

“아주 그냥 동거했나보네?”

 

그는 뭐 때문에 화가 나는지 모르는 채로 삐딱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 모습에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 웃고 있었다.

 

“아니 왜 웃는거야?”

“귀여워서. 아참. 네가 내 좁은 월셋집에 쳐들어와서 자꾸 묵고 가서, 거의 반동거 상태야. 내가 일 그만둬서 네가 자꾸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하고 있어.”

“귀엽다니? 누가?”

“너. 아드리크. 내 앞에 잘생긴 남자.”

 

그는 입을 꾹 다문채로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굳이 마지막 단어를 붙여서 도발하다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말을 들어보니 미래의 나에게 귀엽다고 많이 말하는 모양이고. 전에 들었던 그녀의 나이가 지금 자신보다 4살 많은 상태니,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몰랐다. 괜시리 그녀에게 말 하나 보탰다.

 

“멋있지는 않고?”

“응? 당연히 멋있지.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귀여워.”

 

그는 졌다는 걸 인정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방금은 정말 유치했다. 얌전히 그녀의 쓰다듬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분하지만 기분 좋았다.

얌전히 옷을 갈아입자, 침실이 깨끗해진 것이 보였다. 그는 현관에서 자고 있던 그녀를 보니, 오늘 정말 피곤하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청소말고, 좀 쉬는 건?”

“엑 아직 서재는 청소 못했어.”

“천천히 해. 지루하면 게임이라도 하는 게 어때?”

 

그는 거실로 나와 플레이스테이션2를 가르켰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대학교때 플스2를 해봤는데… 게임 전부가 호흡이 너무 길어서 지루해. 오래 못 매달리겠더라.”

“흠.. 그럼 퍼즐게임은?”

“완전 좋아해.”

 

그녀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피식 웃고는 서재에서 NDS와 타이틀 몇 개 꺼내와 건네주었다. 그녀는 그걸 받으며 반색했다.

 

“와-! 언제적 타이틀이야. 완전 오랜만이네! 고등학교때 자주 했는데!”

“…고등학교때?”

“헤헷. 그때 한국에 막 나왔을 때거든. 한 지금으로부터 1년 후인가? 올해인가?”

 

그녀는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 옛날을 추억하는 거겠지. 그는 전신을 뚫는 이 감각이 울렁거림을 뛰어넘어 자신의 몸까지 움직이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걸 느낀 그녀가 말했다.

 

“응? 무슨 일 있어?”

“아니…..자자. 늦었으니.”

 

그는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말했다. 자연스래 옷을 갈아입고 같은 침대에 눕자 사리카는 그제서야 깨달은 듯 말했다

 

“같이 자자고…?!”

“뭘 새삼스래.. 어제도 같이 잤잖아.”

“언제!?”

“너 잘 때.”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뭘 새삼스래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침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자자. 별짓 안할 거야.”

“…음. 알았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신뢰가능한 존재였던가? 혼란에 쌓여가는 가운데 사리카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자는거 정말 오랜만이다.”

“…어제도 잤어.”

“응응. 근데 나는 몰랐잖아.”

 

그녀는 키득키득거렸다. 그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 아드리크 또한 기분이 좋아져 조용히 웃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안자고..?”

“말하다보면 잠이 올 거야. 빨리.”

 

그녀의 재촉에 아드리크는 뭔가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오늘 창훈이랑 다비드가..”

“응”

 

둘은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별로 재밌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그녀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도중에 그녀가 먼저 잠들었지만, 그건 그도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을 때였다.

그렇게 만난지 네 번째 날이 지났다.

 

그리고 다음 날은, 휴일이였다. 아침에 먼저 일어난 아드리크는, 사리카에게 카페라떼를 타서 주었다. 그녀는 아무말 없이 받아 마셨다. 그러며 볼 때마다 그녀가 집안에 있는 게 조금 답답해보였던 그는, 대학교에 늦게 나갈테니 근처 공원이라도 가자고 했다. 

 

“옷.. 없는데…”

“어?”

“그, 사실, 옷 안샀어.. 허락맡고 카드사용해야할 것 같아서..”

“….”

“그치만, 그치만! 옷 비싸잖아!”

 

그녀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는 그녀의 옷차림을 보았다.

 

‘어쩐지 파자마만 입고 있었더라니..’

 

그 이유가 자신이 늦게와서가 아닌, 옷이 없어서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결국 그녀는 매서운 그의 눈초리에 두 손을 들고 옷을 사기로 했다.

집 근처의 백화점에 차를 대고 올라가자, 그녀는 다시 한 번 거부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안가면 안되?”

“가기로 했잖아. 무슨 치과가기 싫어하는 애처럼..”

 

결국 맥없이 그녀는 끌려갔다. 도데체 왜 이러는건지. 자꾸 안움직이는 그녀를 뒤에서 밀며 쇼핑몰에 들어갔다.

옷 매장에 들어서자, 그녀는 기겁했다. 그는 무슨 문제라도 되는지 그녀를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여기말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졸랐다. 그제서야 그는 눈치챘다. 선물도 절대 세자리 이상으로는 안받았다고 했지. 그는 명품 매장쪽을 빠져나갔다. 가까이 그녀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다른 옷 매장쪽으로 들어서야, 그녀가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당기고 있는걸 깨달았다.

 

“또 왜?”

“아니, 그.. 옷보다 급한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뭔데.”

“그……속옷.”

 

그녀는 힘겹다는 듯이 겨우 속옷이라는 단어를 뱉었다. 그는 눈치껏 그녀가 브래지어를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여름에, 브래지어 하나로는 버티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며, 속옷매장으로 건너갔다.

그녀의 행동은 옷 쇼핑을 잘 좋아하지 않는 듯 싶었다. 그녀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니, 속옷매장에서도 직원에게 자신의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G컵말이죠?”

 

순간 아드리크는 너무 놀라 노골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빤히 보았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자 부끄러워하면서 그의 정강이를 찼다. 그에 짧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억울하다는 듯이 사리카를 쳐다보며 말했다.

 

“뭘 부끄러워 해? 어제도 침대에서 노브라였으면”

 

그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정강이를 찰 기세였다. 아드리크는 매를 버는 입을 다물었다. 그 후 순조롭게 속옷 몇 개를 고르고, 그녀와 그는 옷 매장으로 향했다. 

옷을 살 때 그녀는 심플하면서 리본이 있는 것으로 골랐다. 아마 취향인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귀의 리본을 보며 알 듯한 얼굴을 했다. 그녀가 선택한 건 심플하지만 목쪽에 리본으로 묶는 끈이 있는, 검은색 원피스 한 장과 단색의 미디길이의 치마와 바지등등. 상의는 여름이니 인견을 우선적으로 고른 모양이였다. 

그 후 산 옷들은 자동차에 놔두고, 그는 그녀를 데리고 근처 공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체력이 좀 낮은 듯, 금새 지친 모습에 그는 그녀를 이끌고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자마자 그녀는 꽤 힘든 듯 카페에 가자마자 지쳐 앉았다. 그는 음료수 메뉴를 물었다.

 

“뭐 시킬까?”

“으음, 나 커피는 약하니까, 아이스 초코..”

 

그녀는 어물거렸다. 그는 얼굴을 찌뿌렸다. 진작에 커피가 약하다는 것을 알려줬으면, 아침에 카페라떼를 주진 않았을 텐데. 그녀도 그가 아침의 음료를 생각해낸 듯하자 변명을 내밀었다.

 

“너무 자주 마시거나 농도가 높지 않으면 되. 블랙 커피라던가.. 그건 정말로 심장이 빨리 뛰어서 몸이 이상해지거든. 물론, 우유 섞인 라떼는 한 잔 정도면 괜찮아. 이번에는 초콜렛 마실래!”

“알았어. 다음부터는 커피 안된다고 꼭 말해.”

 

카페인 쇼크라는 변명을 대자, 그는 부루퉁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스 초코와 아이스 카페라떼를 시켰다. 그가 나온 음료까지 가져오자, 정말 고마워하는 것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에 아드리크의 화도 자연스레 풀렸다.

 

“아이스 쵸코 너무 좋아…..”

 

그는 무심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할려고 했는지 놀라 움찔 굳어버렸다.

 

“왜 그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누가봐도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사리카는 그를 바라보다 그가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알고 돌린 화제에 답해줬다.

 

“초콜렛 좋아해?”

“물론. 스타벅스 초콜렛은 솔직히 헤이즐넛맛에 가까워서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흐음. 그럼 초콜렛 말고는 뭘 좋아해?”

“밀크티. 가게에서 주는 플레인으로 마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건 meito 밀크티 가루지.”

“그게 맛있어?”

“정말로 마법의 가루야. 오죽하면 카페에서 쓴다고 광고를 하겠어?”

 

사리카는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아드리크와 이어갔다. 그는 이런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대화를 회피했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렇지만 말하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앉았다. 둘은 쇼핑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아드리크는 그 이후 많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화제 하나만 던져주면 그녀는 여러 가지 조잘조잘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아파트로 데려다주고, 대학교로 간다고 했다. 그녀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아드리크는 그 날 아파트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섭섭한 감정으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이였다. 혹시 몰라 식탁에 냉장고에 반찬있다는 메모를 남겨놨지만 옮겨진 흔적은 없었다. 애초에 옮겨져 있어도 사리카가 눈치챌 리가 없지만. 부루퉁한 표정으로 그녀는 그가 준 닌텐도로 빈둥빈둥 놀면서 생각했다.

 

“이래도 되는건가? 적어도 이쪽 폰 번호 받아놓을 걸 그랬나?”

 

그녀는 약간 불안감에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입으로 튀어나왔다. 이어서 깨달은 것은,

 

“어쩌지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는 방법따위…모르는데….”

 

그녀는 아무래도 그가 도와주지 않을거라면, 혼자서라도 알아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도서관에 가볼까 싶었지만, 영어로 된 책이라니 죽어도 읽고 싶지 앉았다. 애초에 그걸 보통 대여기간인 2주안에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녀는 결국 불안감에 뛰쳐나가 동화책이라도 샀다. 서점 아주머니가 좋은 엄마가 될꺼라고 여라가지 동화책을 추천해줬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추천해주는 동화책을 샀다. 그가 올 때까지 교양삼아 영어 동화책을 읽기로 했다. 모르는 단어는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 날이였다. 그 날도 아드리크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있던 시간대에서 라인이라도 잘 받아줄걸.’ 따위 생각하며 기동하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읽혀지지 않는 라인메시지를 그에게 보냈다. 대부분의 메시지는 [완전 나빴어 왜 아파트에 안오는데?] [이 쫌생아] [여친따위 아무래도 좋은거지?] 따위의 그녀의 화난 감정이 녹아난 별 내용 없는 것이였다. 1이라는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혹시 모른다며 핸드폰에 나와있는 그 전화번호로 집에 있는 전화기로 연결해보았다. 하지만 대기음만 이어지자 사리카는 말없이 수화기를 내렸다.

기분이 덜풀린 그녀는 자신의 기분을 풀기 위해 칵테일 새우와 카레재료를 사 새우카레를 맛있게 해먹었다. 카레만은 그녀가 정말 잘했으니까.

 

그리고 화요일날, 수요일날, 그리고, 그리고…

그녀는 쓸쓸한 표정으로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침실로 들어가 잠을 잤다. 왠지 차인 기분에 눈물도 났다.

 

‘아드리크 나쁜 새끼’

 

그녀는 또 홧김에 전달되지 않는 라인 메시지를 썼다. [아드리크 이 나쁜 새끼야!] 라고.

 

 

 

*****

(이 이후로는 https://www.youtube.com/watch?v=lxPbhBXUxLU&list=RD8dqNwVUofxo&index=23 반복재생 추천)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그녀와 쇼핑한지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슬슬 사람이 깰 듯한 시각의 새벽 5시였다. 사리카는 현관문에 쓰러지는 소리에 깼다. 달려나가보니 아드리크가 쓰러져 있었다.

그 술쎄다는 아드리크가 이렇게 꼬꾸러질 정도로 마시다니. 얼마나 마셨는지 증명하듯, 몸에서 알코올 냄새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심하게 났다. 사리카는 그를 들쳐메고 침실로 힘겹게 옮겼다.

 

‘토할려나?’

 

그를 쿡쿡 찔러보던 그녀는, 부엌에 가서 꿀물을 탔다. 전에 사뒀던 잣과 쌀을 불려 밥솥으로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만드는 중이였는데, 아드리크가 비틀비틀 걸어나왔다. 눈은 퀭했고 밑은 어두웠다. 초점은 약간 엇나간 것 같았다. 아드리크가 앉자, 사리카는 그 앞에 꿀물을 내밀었다. 그는 초점이 나간 듯한 얼굴로 물을 받아 마셨다.

 

“좀 기다려.”

 

그녀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그는 뭔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사리카를 껴안았다.

그녀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십년 후 아드리크처럼 자신을 꼭 껴안은 느낌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줬더라-하고 생각한 사리카는 아드리크를 달래 듯 안아주며 말했다.

 

“많이 힘들어?”

“어”

“하긴, 교수되는 거 힘들지.”

“어……아니, 그건 아니고.”

 

방금 누가 교수기만한 것 같은데? 사리카는 피식 웃었다.

 

“술은 왜 그렇게 마셨대.”

“너 때문에.”

“응? 나?”

“어.”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니가 찼지 내가 찼냐?’하는 입밖으로 내뱉지 못할 말을 삼키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생활비?’ 라는 의문이 잔류했다. 역시 학생에게 한 사람 생활비는 부담되겠지? 라는 것과 함께. 그녀는 아마도 이건 것 같다고 확신하고 말을 어렵게 꺼냈다.

 

“음.. 힘들면 나 아르바이트라도 구해볼까?”

“누가 집밖으로 나가래!?”

 

그는 오히려 바락 소리를 외쳐서 그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렇게 악쓰는 아드리크는 처음 봤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그는 실언했다는 표정으로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며 더 세게 안았다. 그는 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활비로 힘들다는게 아냐….”

“엣, 그럼..?”

 

그녀는 의자를 끌고와 나란히 의자를 붙여 안고는, 아드리크와 얼굴을 맞췄다. 정확히는 눈을 맞췄다. 아드리크의 얼굴은 복잡한 감정으로 얼룩덜룩한 얼굴이였지만, 그녀는 그것까지 캐치할 정도로 눈치가 좋진 않았다. 다만, 그녀 눈에 그의 얼굴은 약간 헬숙해진 것만 들어왔다.

 

“얼굴 봐. 무슨 고생을 하길래 이래. 너 얼굴이 생명이잖아.”

“연예인 아닌데..”

“아냐 연예인 아니여도 넌 얼굴이 생명이야. 미래의 넌, 이 얼굴로 나한테 원하는 걸 다 부탁하거든. 예를 들어, 키스같은.”

 

내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말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녀도 자연스래 따라 웃었다.

 

“근데 생활비 아니면 왜 그래? 뭐 때문이야?”

 

그는 잠시 말하기 싫은 듯 눈을 돌렸다가, 걱정스럽게 보는 그녀의 눈과 마주치고는 우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도데체 나한테 왜 그래?”

“엥?”

“왜, 왜…, 너 없이 난 살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뭐, 뭔 소리야!? 진짜? 갑자기?”

 

그녀는 얼굴이 달아오를 수 밖에 없었다. 아드리크에게 가볍게 주먹으로 투닥투닥했지만, 아드리크는 조금 진지한 것 같았다. 그에 사리카는 약간 장난식으로 말을 했다.

 

“근데 그거 고백이야?”

 

그녀의 말과 동시에 그의 얼굴도 달아올라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사리카는 기분이 좋아진 듯, 피하는 아드리크의 맞은편으로 따라갔다.

 

“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읏….”

“응?”

“…좋아해. 맞아. 사리카 널 좋아해.”

 

그는 수줍은 얼굴로 뭔가를 쥐어짜낸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십년 후 아드리크는 이렇게 수줍게 말한 적 없는데. 과거로 온 지 처음으로 가슴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괜히 그녀는 그를 놀려주고 싶었다.

 

“그 좋아함은 어느 좋아함이야?”

“어?”

“빨리. 그 좋아함이 친구로써 좋아함일 수도 있잖아.”

“그….”

 

명백히 당황한 목소리가 나오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지금 자신을 놀리는 상황임을 알았다. 그는 억울하다는 듯 더욱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리카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처음에는 너란 존재가 어이없었어. 어떻게 첫날 싸대기 때리는 여자가 좋았겠어? 하지만 다음날에는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웃기지 않아? 단 하루만에 평가가 달라졌어. 이 모든 게 사기라고 해도 자신있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어. 그런데, 그 이후 하루 만에 너를 사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후 현관문에서 나를 배웅할 때, 사리카 그 때 네가 무슨 짓을 한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지.”

 

그녀는 정말로 그때의 기억은 없었기에 잠자고 듣고 있기로 했다다.

 

“볼에 키스했어. 네가. 그때부터 나는 망가졌어. 너의 생각으로 뇌가 가득 찼어. 결국 못 참고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다가 잠든 모습을 보고 계속 이렇게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어. 다른 사람들에게 너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아드리크의 솔직한 감정을 입으로 내뱉자, 사리카는 아드리크의 눈을 마주첬다. 다정하게 웃는 얼굴에 아드리크의 눈은 더욱 보석 반짝여졌다. 곧 눈물이 되어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을 보며 루비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우리 같이 옷을 사러 나갔을 때,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어. 이런 것, 이런 관계, 이런 감정 전부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라 혼란스러웠어. 난 처음에 너를 나만의 비밀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였어. 애초에 처음부터 네가 미래의 내 애인인 것부터 이렇게 될 징조였는지도 몰라. 너랑 만나지 않는 일주일. 그 사이에 학교와 내 친구 창훈이랑 다비드를 만나면서 생각했지. 이것이 사랑과 행복이구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같이 있으면 편해지는 그런.”

 

천천히, 애절하게 그는 그녀의 볼에 손바닥으로 자신의 체온을 전달했다. 손끝으로 전달되는 체온은 사리카가 느끼기에도 충분히 정열적이였다. 그는 정말 소중하다는 듯이 사리카를 만졌다. 깨지면 안되는 듯, 누구에게도 넘겨주고 싶지 않다는 듯 독점욕과 애절함이 점칠된 손길이였다. 사리카에겐 이미 익숙한 손길. 십년 후에도 비슷한 느낌이였기에, 마치 십년 후로 돌아온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럴리는 없었지만. 다만, 눈치가 둔한 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십년 후와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라는 정도였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를 만나지 않은 일주일. 그때 깨달았어. 나는 이 아파트에서 온전히 ‘아드리크’로 있을 수 있었어. 난 그 호칭을 정말 싫어했는데. 네가 나를 향해 그 호칭을 부르는게 그리웠어. 너무나도 네가 보고 싶었지만 만나면 이 욕망을, 내 감정을 피하면서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고, 이 현실에 안주할까봐 만나지 않았어. 단지 너랑 만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욕망을 들쳐보았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인데, 무심코 피하고 있었던 것을.”

 

그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좀 더 그녀와 가깝게 다가갔다. 그리고 루비같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너와 연인이 되고 싶었어. 연인이 되어서 공원에서 데이트하면서 가슴 떨리게 손 잡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너와 키스하고 싶었어. 너와 닿고 싶었어. 그 욕망으로 나는 일주일을 보냈어.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어.”

 

아드리크는 사리카가 도망가지 못하게 껴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그녀의 어깨 쪽으로 숙였다. 그녀가 무슨 반응을 하던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서 절대로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했다. 마치 족쇄를 채우 듯하는 포옹이, 상대에게 절박함을 건네주었다.

 

“사랑해. 사랑해. 네가 너무 한순간에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서, 그때부터 나는 이상해졌어. 자꾸 무얼봐도 네가 생각나고, 무얼해도 네가 가장 먼저 생각나고, 오늘 가서 뭘 해줘야지 하는 생각에 흐트러지고, 그리고, 그리고..”

 

그는 말을 삼켰다. 이 말을 하면 더 이상 관계가 돌아킬 수 없는 듯한 그런 여운이 남는 목소리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알았다.

 

“말해줘. 아드리크.”

“….”

“말하지 않으면 나는 몰라. 아드리크? 너의 감정을 말하는 것을 힘겨워하지마. 회피하지마. 잘 알고 있잖아? 말하지 않으면”

“네가……십년 후로 돌아가 사라진다면?”

 

사리카는 순간 숨을 멈췄다.

 

“십년 후로 돌아가버리면? 너는 갑자기 십년 전으로 돌아왔으니 언젠가 갑자기 돌아가겠지. 내가 이 아파트에 돌아왔는데 네가 없으면? 나는? 나는…..불안함에 아파트로 가기 두려웠어. 자꾸 아파트에 네가 없을 것 같았어.”

“……”

“사실, 일주일간 아예 안온게 아냐. 네가 잠들었을 때 잠시 집에 들렸었어. 그리고 깨달았어. 여긴 너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 네가 누워있던 거실의 카페트, 네가 손수 빤 이불,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한 게임 타이틀, 못 보는 사이 청소해놓은 서재….”

 

그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투둑. 흐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아드리크의 마음을 대변하 듯.

 

“그런데 만일, 네가 갑자기 미래로 돌아가버리면, 네가 없는, 네가 없었던 그 텅 빈 아파트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그녀 또한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 못했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발, 제발 말해줘. 미래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아드리크”

 

사리카는, 자신을 껴안고 있던 아드리크의 팔을 풀어, 아드리크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드리크를 대하는, 어찌보면 습관이였다. 아드리크는 자꾸 자신 앞에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자신과 얼굴을 마주친 채로 진심을 물어보면, 그제서야 솔직히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그의 눈을 마주보았다. 마치 고양이키스하는 것처럼.

 

“미래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십년 후에 만날 수 없게 될 거야.”

“…..알아. 안다고.”

 

그는 절규하듯 외쳤다. 빗소리와 합쳐져, 가장 슬픈 외침이 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만일 돌아가지 못한다면, 아드리크 옆에 있을께.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십년 후, 아드리크 네가 나를 찾아 마중와줘.”

“싫어. 그냥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줘. 빈말이라도 좋아. 제발.”

 

사리카는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새삼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는 울 때 정말 이뻤다. 그녀의 이런 감정을 알고 미래의 아드리크는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울 듯한 얼굴로 꼬리를 흔들었지. 그녀는 살짝 그의 입술에 버드키스를 했다. 잠깐이지만, 그는 울음을 멈췄다.

 

“그거 알아? 난 아드리크의 우는 얼굴에 약해. 그래서 아드리크는 미래에 만나는 나를 쉽게 꼬셨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네가 사라지면….”

“너무 슬퍼하지마. 헤어지면.. 그래 8년 후면 우리는 만났을 거야. 우리가 만난 그 날도 여름이였지. 그때 그 세계에 있는 나에게 멋있는 모습 보여줘. 귀여운 모습도 잔뜩 보여줘. 반할 수 있게 말이야.”

 

사리카는 아드리크를 달래는 듯이 천천히, 그리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였다.

 

“들어봐. 난 아드리크 처음 성당에서 만났어. 성당 안다니지? 그때도 창훈이 따라 왔던 걸로 기억해. 내가 영어가 서툴러서, 너까지 합류에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지. 창훈이한테 내가 한글을 다시 가르쳐주었어. 많이 잊어버렸더라고.”

 

그녀는 아드리크의 손을 잡았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그녀가 잡은 손을 바라보며 다른 한 손으로 다시 잡았다.

 

“너는 처음에 창훈이 근처에 여자가 어슬렁거리는 게 신기해서 나를 만나러 왔어. 근데 웃긴 건, 사실 창훈이에게 한글 다시 가르쳐주는 게 일본어도 알려주기 위한 전초작업이였거든. 창훈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일본인이라. 남몰래 하는 거였어. 아참, 지금 너는 모르겠네. 미츠키라고 하는 일본인 여성이야.”

“…아무래도 좋잖아 그건.”

“그렇지. 아무튼 그러다가 미츠키 양까지 스터디 그룹에 합류해서, 완전 미팅 분위기였지. 그러다가 언제 한번 분위기가 이상해서 내가 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간다고 나갔지. 그래서 네가 괜찮냐고 묻더라고. 그 때 한바탕 웃었는데.”

 

사리카는 쿡쿡 웃고는 아드리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얌전히 그녀가 말하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로, 아드리크 너는 나랑 단 둘이 남는 경우가 많았어. 그 두 사람 오해풀고, 잘 되라고. 그러다가 오해가 완전히 풀려서 다같이 놀러가기로 했어. 네가 수상스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다들 휘말린 너에게 미안한 마음에 바다로 갔지. 그때도 여름날이였어. 그날 밤에 별 보려고 나왔는데 너랑 마주쳤지.”

“그래서?”

“같이 별을 보고 이야기 하다가 들어갔어. 그리고 나중에 겨울에 여기에 또 오게 되. 크루즈파티였던가? 그때는 네 친구랑 네 친구가 데려온 다른 사람들이랑 많이 만났는데, 이상한 놈이 있어서 너랑 그 사람이랑 싸웠거든. 별장 분위기도 이상해서 밤에 바다쪽으로 나와 걸었어. 그리고 다시 여름처럼 너랑 만났지. 또 이것도 나중에 말해줘서 알았는데, 네가 나 보고 쫒아 나왔다더라.”

 

그녀는 이번엔 아드리크가 아닌 비오는 밖의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리카는 그 때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알고보니 너랑 싸운 그 나쁜 놈은 내 욕해서 싸운 거였더라고. 그래서 잘했다고 웃었어. 그 이후, 이야기하다가 별을 보는데 별똥별이 떨어지는 거야. 그때 소원을 빌었거든. 난 철없이 복권당첨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넌 그때 내 소원에 같이 있어달라고 빌었었대. 로맨틱하지 않아?”

“…이런 말 왜 하는거야.”

“이런 일을, 이 시대에 내가 경험했으면 좋겠어. 너랑 경험한 내 추억들. 너무나도 좋았거든. 잊을 수 없는 그 추억들.”

 

아드리크가 보는 그녀는, 이제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별빛처럼. 그는 사리카가 잡은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게 아쉬우면 지금이라도 나랑 같이 있으면 되겠네. 8년 후에 후회없이 나를 만날 수 있게.”

“절대 불가능해.”

“하지만, 안하는 것보다 낫지. 지금 당장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봐. 나랑 어디로 가서 뭐할까?”

 

조용하고, 다정다감한 목소리에 그는 다시 울어버릴 것 같았다. 밖에 내리는 비가 창문에 달라붙어 흘러내리는 것처럼, 그의 눈물은 떨어졌다.

 

“당장 키스하고 싶어.”

“좋아.”

 

그녀는 조용히 아드리크를 향해 눈을 감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며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포갰다. 사탕을 조심스레 핥듯이,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쓸어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살짝 집어넣었다.

 

밖으로 투둑 투둑 비가 내렸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로 얼룩진 키스를 했다.

 

 

*****

 

 

아드리크는 자신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뚝뚝 다크서클 진한 얼굴로 울어서 한숨 재웠다. 아마도 지금의 아드리크로써는, 8년씩이나 기다릴 수 없는 것이겠지. 알고 있다. 아무리 약속해도, 지금 그에겐 머나먼 약속이 되어버리겠지. 사실, 아드리크가 그렇게 말하는 점에서 그녀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단지 그녀의 감이였기에, 그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물어, 조용히 이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했다. 장보러 나갈 때, 그는 심히 불안해했지만, 손을 잡고 나란히 걷자 안심한 듯한 얼굴이였다.

마트에서는 카레 재료를 샀다. 만일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자신있는 카레를 하고 싶었다.

 

“돼지고기가 나을까? 햄? 아니면 닭가슴살?”

“…햄이 더 간단하지 않아?”

“간단한 게 아니라, 아드리크가 생각하기에 카레에 넣으면 맛있는거.”

“…역시 아무거나 좋은데.”

“그럼 역시 돼지고기인가….”

 

나는 중얼거리며 돼지고기를 집었다. 가장 평범한 게 돼지고기라고 했다. 그리고 맵지 않은 맛의 일본 카레블럭을 집었다. 양파랑 감자랑 당근은 카트 안에 있었다. 그 외 더 살 건 없나 둘러봤지만, 그가 더 의욕이 없어 여기까지만 골라 계산했다.

장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보다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지마, 사리카!”

 

거실 화장실 문에 명백하게 물로 된 벽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곳으로 들어가면,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겠지. 그도 한 눈에 눈치챈 것 같았다. 아드리크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잡았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드리크.”

“사리카 제발.”

“일단 카레 만들자.”

“가면…어?”

 

아드리크는 얼떨떨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나는 최대한 그의 눈에 예쁘게 보이기 위해 웃었다. 그리고 그를 부엌으로 재촉였다.

 

“얼른.”

“….”

 

아드리크는 나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왔고, 그는 감자칼로 감자껍질을 깎았다. 나는 당근을 씻어 껍질을 잘라 크게 자르고 있으니, 그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며 원하는 것을 조르는 아이처럼 말했다.

 

“안가는 거야?”

“지금은. 카레 같이 만들기로 했잖아.”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내 감인데, 저거 안없어져.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집안 전체로 퍼져갈 거야. 그러니까, 오늘 저녁을 먹고 이야기하자.”

“그럼, 밖으로 나가면….”

“이미 집안으로 들어온 이상, 나가봤자 따라 올걸. 시간이란 그런거니까.”

 

나는 본능적으로 갑작스레 나타난 물 벽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단지, 어느 정도의 짧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일 뿐이라고 내 뇌 안으로 누군가 속삭였다. 시간회복력이란 그런거야. 라고 이 세계가 말하는 듯 싶었다. 묵묵히 카레재료를 손질하자, 거실에는 채소 자르는 소리만이 울렸다. 아드리크는 물론,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채소를 깍뚝썰기를 했다. 그는 남은 양파를 깠다. 아드리크는 숨김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휴지로 닦자, 양파 때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눈에 보이는 거짓말에 내가 그렇구나-라고 대답했다.

완성된 카레를 떠서 식탁에 놓으니, 그는 정말로 카레를 먹고 싶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먹는 모습을 보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억지로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어?”

“…응.”

“십년 후에도, 카레 해줄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명백하게 우는 목소리였고, 나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리는 천천히 카레를 떠먹었다. 

눈물 맛 카레였다.

 

카레를 다 먹고 양치질 후, 설거지를 할 때도 그는 나를 뒤에서 안으며 떨어지지 않았다.

 

“울지마.”

“…응.”

“내가 갈 때, 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이면 안되지.”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설거지는 간단해서 금방 끝났다. 손에 남은 물기를 닦자, 아드리크는 손을 뻗어 내 양손을 잡아 자신의 양 볼로 끌어 당겼다.

 

“그러고보니 처음 만났을 때 이 손으로 싸대기 맞았는데.” 

“그랬었지. 누가 여자 데리고 오래?”

“…팔년 동안 여자 정리해야겠네.”

“당연한 걸.”

 

울던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물론, 나도 아드리크와 같이 웃었다. 천천히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날 잊더라도, 적어도 십년 후에는 기억해야해.”

“안 잊어.”

“만일, 내가 만난 미래의 아드리크도 이 파란만장한 이주일 겪었다면, 잊어버린게 맞는 걸. 언급도 안했으니. 큰 기대는 안할게.”

“아냐 기대해.”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도 아까부터 웃는 얼굴이였다. 다행이다. 많이 울지 않아서.

 

“많이 울지 않아서 다행이야.”

“….”

 

나는 발꿈치를 들어 그에게 입을 맞췄다. 아드리크는, 팔을 뻗어 나를 안고는,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안 나는, 그의 욕심을 받아들였다. 눈을 감고 짧게 키스를 이었다. 입을 뗐을 때에는, 그는 다시 울 것 같은 눈이 되어있었다.

 

“선물이야.”

“사리카, 역시 가지마.”

“말했잖아. 가야해. 저건 반드시 나를 삼켜. ‘반드시 일어날 일’이야확신해.”

 

나는 손을 올려 그의 볼을 만졌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을 보며 말했다.

 

“아예 울지말라는 소리 안할게. 많이 울지마.”

“….”

“갈게. 알았지? 8년 후에, 꼭 나랑 만나야해.”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아니 어린 아드리크는 그런 나를 보며 똑같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한마디를 남기고 물의 벽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십년 후에 또 만나.”

 

 

*****

 

 

그녀가 실종되었다. 약속시간까지 안와 여러번 통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불통이였다. 세 번째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을 때, 아드리크를 불안감이 삼켜버렸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통해 경찰과 사립탐정까지 고용해 그녀를 수색하게 했다. 불안해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녀가 실종된지 25시간 째, 그는 그녀의 월셋방에서 팔을 덜덜 떨며 다리도 크게 떨었다. 10분마다 일어나서 움직였다가, 다시 침대에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불안증세도 이런 불안증세가 없었다.

그 때였을까, 아드리크의 핸드폰에 무언가 알림이 떴다. 그는 급하게 핸드폰을 다잡았다.

아직까지 별다른 수확이 없다는 문자였다. 이런 연락 필요 없다는 듯이 그는 식탁을 세게 쳤다. 주먹을 쥔 손에서는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 피가 나왔다. 하지만 아픔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를 데이트날로 잡는 게 아니였는데. 그냥 내가 월셋방으로 데리러 왔어야 했어.’

 

그는 탁자에 애꿎은 자신의 머리를 박았다. 큰 소리가 났다. 그녀가 봤으면 무슨 짓이냐고 뭐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지금 자신의 곁에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옆에서 붕붕 떠는 전화음에 신경질이 났다.

 

“찾은 거 아니면 통화걸지 말라니까!”

그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던질려고 했다. 위에 뜬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

 

[완전 나빴어 왜 아파트에 안오는데?] 

[이 쫌생아] 

[여친따위 아무래도 좋은거지?] 

[대답해. 아드리크 이 나쁜 새끼야. 여자랑 놀고 있냐?]

[아드리크 이 나쁜 새끼야!] 

 

한꺼번에 들어오는 라인문자. 발신인은 사리카였다. 문자내용에도 놀랐지만, 그 내용을 보는 즉시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에 어지러워 비틀거렸다.

 

‘십년 후로부터 온……. 사리카!’

 

이 라인 문자로, 그는 잊어버렸던 것인지, 아니면 새로 쓰여진 것일지 모르는 기억이 머릿속으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으며, 그가 사고 잊혀져버린 아파트로 뛰어갔다. 그 자신이 운전할 자신이 없어 택시를 급하게 잡아 탔다.

 

그는 급하게 뛰어갔다. 그 아파트를 살려고 계약할 때부터 이상했다. 무언가 어떤 억지력으로 이 아파트를 사라고 상황이 종용했다. 이렇게까지 몰리면, 안사면 더욱이 안될 것 같은 기분까지 들어서, 일단 사놨었다. 그 아파트는, 판 사람이 말하기를 ‘잊혀진 아파트’라고 했다. 새로 입주하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실종되어 잊혀졌다고. 서류를 찾아보니 20년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계약되어 있었다고 했다. 아마 서류 상 오류거나 사기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하길, 계약한 사람의 이름은 놀랍게도 그 사람의 이름은 자신과 같았다. 아드리크, 이바노브. 그러고보니 자신의 선조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지. 가운데 이름은 비슷하면서도 철자가 달랐지만. 읽으면 비슷한 발음이였다. 살 때부터, 그 집안에는 이상한 메모가 놓여있었다.

 

[My Love, didn't connect with me, to Sarika 

(사랑하는, 이어지지 못한 그녀, 사리카에게.)]

 

처음 살 때 웃기는 메모라고 하며 쓰레기통에 구겨버렸다. 과거의 자신을 패고 싶었다. 그건 웃기는 게 아니였다. 만일 그녀가 시간을 뛰어넘은 게 사실이라면, 20년대로부터 지금으로 뛰어넘어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로도. 웃을 일이 아니였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못 기다리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몇 번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너무 방치된지 오래되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문 앞에 도착했다.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도 안하고 뛰쳐와서, 자신의 주머니를 이잡 듯 뒤졌다. 주머니에 있을 리가 없지만, 정말로 열쇠가 어딨는지 모르므로, 사람을 불러 뜯어 열 기세로.

정확히 28시간 전, 그녀랑 데이트하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던 중이였다. 콘돔까지 챙기던 중에, 자신의 책상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기억하지 못하는 열쇠라서 어딘가 자물쇠열쇠인가? 하고 챙겨넣었던 그 열쇠가, 지금 주머니에서 나왔다. 

이것이 그녀가 말했던 ‘반드시 일어나야할 일’이라면…. 그는 가지고 있던 열쇠를 열쇠구멍에 집어넣었다. 

문이 열렸다….

그가 문을 열고 몇 발자국 들어가자,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윽,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는데..”

 

명확히 사리카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물이 튀기는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보이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아드리크는 그 쪽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물에 쫄딱 젖어있었다.

 

“앗, 아드리크다.”

“뭐가 ‘앗, 아드리크다.’야.”

그녀가 과거에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과 같이, 그는 울먹이는 눈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가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고, 대학원생이던 아드리크는 도저히 그 아파트에 들어가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쇼파도 화내면서 그가 차, 비스듬이 기울어져있었다. 몇 개는 그가 던져진 채로 방치되어있었다. 청소기도 굴러다녔다. NDS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정리해둔 타이틀 순서 그대로 먼지가 쌓여있었다. 당연하다. 만질 수 없었으니까. 그는 문을 닫아 아파트 문을 잠궜다. 그리고 다신 그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곳이 먼지투성이였다. 그런 먼지투성이 집안에서 쫄딱 젖은 사리카는 자신에게 달려온 아드리크에게 말했다.

 

“많이 울었어?”

“응.”

 

그 먼지투성이 아파트에서, 그는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를 미래로 보냈을 때와 같은 울먹이는 눈으로.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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