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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루 이야기

불안이 잠식할 때

審神者物語 - 肆, 懸念を抱く時



(대침구 에피소드 7 끝부터 시작합니다.)

 

 

“…차갑기도 하지만, 다정하기도 해.”

“그런가.”

 

미카즈키는 하치스카와의 대화를 마치고 찻잔을 들여다보았다. 찻잎이 찻잔 속 소용돌이에 휘날리며 바로 섰다. 아주 잔잔하고 조용한 흐름이었고, 결과는 좋다고 나왔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찻잎 점이라는 것이다. 찻잔 속에 폭풍이 불 일은 적다. 심지어 누군가가 휘젓지도 않았는데 이리 나온다면 아루지의 영력이 관련된 것일 텐데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과정이 좋지 않다. 그녀는 분명 혼마루가 안정될 때까지 작은 모습을 유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위험할 선택을 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인가? 어찌 됐건 이번 일이 끝나면 혼마루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미카즈키가 그리 달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다가올 재난을 예고하듯이 구름이 달을 슬며시 가리고 있었다.

 


 

호네바미와 자신은 유독 사리카 근처를 따랐다. 특히 호네바미는 사리카에게 꽤나 뜻깊은 아이이다. 시간소행군이었던 그에게 ‘혼자가 되지 않게 해주마.’라고 말하며 데려오지 않았던가. 아루지 또한 그 말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매일매일 저녁으로 호네바미에게 날아와 “오늘 뭐 했어?” 하며 다정히 물었다.

 

사실 대답의 반 이상은 그를 챙겨주는 자신에게서 많이 나왔다. 토시로들 중에서 조금 겉도는 것 같던 다른 단도들을 잘 돌봐주었더니, 이번 호네바미 또한 자신이 챙겨주겠다고 자청했다. 같은 와키자시의 같은 도파인 것을 생각하자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자신은 유독 다른 남사들을 챙겼다. 그 행동이 다른 남사들에게는 아주 상냥한 형제라고 비칠지도 몰랐으나, 사실은 조금 이유가 달랐다. 그냥, 그렇게 다른 동생들을 챙기면 혼자 있지 않으니까 온갖 잡생각이 사라진다. 그래서 호네바미가 ‘혼자가 되는 것이 무섭다.’라는 말을 하며 들어왔다고 했을 때 기묘한 동질감을 느껴 자꾸 호네바미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겸사겸사 호네바미를 챙겨주게 되었다.

 

어찌 됐건 아루지가 그리 물으면 자신은 성심껏 그녀의 물음에 답을 해주고 답으로 그녀가 마구 쓰다듬어주거나 포옹을 해줬는데,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나마즈오 또한 아루지와 친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네바미에게만 묻고 포옹해주던 그녀가 요즘 들어서는 자신에게도 포옹해주는 것이 잦아지고 며칠 전부터는 자신한테도 “오늘 재밌는 일 있었어?”하고 따로 물어보기도 했다. 덕분에 제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해졌다. 이 이야기를 몰래 호네바미에게 해봤더니, 호네바미 또한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이 가진 공통점이 좀 더 늘어났다.

 

그러다 오늘은 아루지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끙끙 소리를 내며 무언가 상자째로 옮기는 것을 보아하니, 대침구예비작전이다 뭐다 뒤숭숭한 와중에도 아루지는 따로 준비하는 것이 모양이었다. 그래서 호네바미와 같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루지, 뭐해요?”

“음? 아하! 호네즈오들이구나.”

 

요즘에는 아루지는 호네바미와 자신을 저렇게 동시에 부르기도 했다. 그와 자신은 어느 새부터인가 한 세트가 된 것 같다. 뭐, 나쁘지 않았다.

 

“요즘 대침구예비작전인지 뭔지 바쁘지 뭐니, 근데 나갈 수 있는 남사는 한정적이고, 나가봤자 딱히 좋은 결과도 못 얻고…. 그래서 남사들을 응원하고자 준비했지.”

“뭔가요?”

“이름하야 아루지 일일 카페!”

 

그녀는 종이 하나를 두 사람에게 내밀어보았다. 내용은 각각 커피를 추출하는 법과 음료 만드는 법 등이 책처럼 묶여있는 형태였다. 요리책에 가까운 형태였다. 아루지가 사는 현세에서는 자주 보이는 형태다. 살펴보니 들어오는 물건은 전부 커피를 추출하는 기계거나 음료를 데우는 용도로 보였다. 그 외로는 비품주문서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정부에 요청한 예산이 통과되었던 모양이다. 이런 서류 업무는 많이 힘들 텐데. 앞으로 자신들도 조금 일을 나누어달라고 해볼까? 나마즈오는 그리 생각했다.

 

“그나저나 조금 도와줄래? 미카즈키도 불렀지만 조금 빠듯하네….”

 

어쨌든 이걸 전부 혼마루 현관문 앞에 둘 순 없으므로, 빠르게 아루지와 함께 물건을 살펴보았다. 주문 수량대로 맞게 들어왔는지, 시킨 것이 맞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있자 녹색 수레를 돌돌 끌며 오는 미카즈키가 나타났다.

 

“이런, 물건이 많구나?”

“수레 더 가져와야 할 듯? 그리고 다른 남사들도 불러주고.”

 

아루지는 조그마한 몸집으로 무거운 것부터 가져가야 한다며 택배를 순서대로 영력으로 수레에 얹어줬지만, 미카즈키는 이렇게 무거우면 수레로 못 옮긴다며 티격태격을 시작했다.

 

사실 이리 미카즈키가 도와주는 건 좀 특이한 일이다. 원래 미카즈키였다면 이런 일은 다른 남사에게 떠넘기며 차나 마시고 있었을 터이다. 같이 물건을 옮기는 호네바미 또한 이런 상황을 잘 알까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래도 이런 일에는 젬병인 모양이니. 뭐 이러는 본인도 그리 잘 잡아내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어서 이시키리마루와 타로타치가 부산히 움직이는 자신들을 보고 물건 옮기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나서자 어색함은 더해졌다. 아무리 아루지에게 맞춰서 하는 가족 역할극이라고 해도 저리 어색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타로타치와 이시키리마루는 손발이 잘 맞아서 서로 혈연관계라고 해도 믿을 수 있지만, 미카즈키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도움이라고 하기보단 괜히 아루지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철관음 같은 건 없느냐?”

“아루지 돈 없어….”

 

안 그래도 원래보다 작은 모습을 하고 있어 하찮아 보이는데 치마 주머니를 뒤집어 까며 먼지 터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루지의 권위는 땅 위 먼지처럼 떨어졌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조금 더 친근해 보인다고 할까. 나마즈오 자신에게는 나쁘지 않아 소리 내 밝게 웃었다. 그래, 맞아. 아루지도 뭐라 하지 않는데 괜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재빨리 아루지 근처로 가서 자신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카페는 처음 해봐요! 어떤 음료 만들 거죠? 나한테 맡겨주세요!”

“에엥? 아냐 아냐! 감사 행사니까 내가 다 제조할건데도? 흠… 어디 보자…. 나마즈오가 도와둘 거면, 남사들이 어떤 과일을 좋아하는지 설문을 해줬으면 해.”

“설문?”

“커피랑 차 말고도 과일음료도 넣으려고 하거든. 딸기 같은 거 말이야. 써줄 테니까 부탁해도 돼?”

 

아루지는 위에 놓여있던 주문서 뒤에다가 재빨리 대충 쓰기 시작했다. 후보군 과일은 딸기, 파인애플, 키위, 블루베리, 자몽, 배 정도를 적어두었다. 이 중에서 고르라는 건가?

 

“상위 몇 개까지 발탁이죠?”

“음 과일 사는 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세 개정도?”

 

이에 호네바미와 자신에게 짧은 종이를 넘겨주었다. 펜과 함께 넘겨준 걸 보아, 혼마루에 있는 남사들과 이야기를 터보라는 건가? 호네바미는 뜻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그런 의미로 준 것 같았다. 자신이 아루지를 바라보자 그녀는 크게 윙크를 했다.

 

 


 

좋았어. 호네바미랑 나마즈오가 선호도 조사는 잘해줄 것이다. 어차피 아루지 일일 카페는 겨우 1회분으로 끝낼 것도 아니고, 들여온 기계도 사용하고 나면 탕비실로 옮길 것이다. 나중에 사용법도 두면 피카츄 돈가스처럼 좋아하는 남사들도 생기고 알아서 해 먹겠지. 그러니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직관적으로 바로 알 수 있게 대충 워드로 쳐둔 거지만 말이다. 앞장에는 간단히 기계로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만 적어두었다. 자신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해본 적 없으니 유튜브나 인터넷을 따라 만들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그리고 과일음료는 믹서기에 갈아서 위에다 토핑만 해주면 되니까…과일 청을 넣는 에이드나 과일 차 음료 같은 건 한국 마트에서 조달하면 되고. 아무튼, 거의 준비가 다 되어간다.

 

대침구예비작전으로 뒤숭숭할 텐데 이 정도면 애들도 좀 괜찮지 않을까? 이 혼마루가 만들어진 지 겨우 한 달 남짓한 시간이다. 친해질 애들은 친해질 애들끼리 뭉쳐서 다행이겠지만, 자신은 친화력이 낮은 애들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일단 가장 생각해야 할 것은 호네바미와 나마즈오다. 호네바미는 말이 없으니 일단 다른 남사들에게 얼굴을 터놓아야 한다. 나마즈오야 모두와 친한 것 같긴 한데 뭔가 가끔 눈빛이 묘한 게, 정작 속을 터놓을 정도의 친한 남사는 없는 느낌이라 걱정된다. 억지로 발랄하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지난 일주일 동안 호네바미와 돌아다니는 것을 들어본 결과 나마즈오는 동생 챙기느라 바쁘더라.

 

그 정도면 눈치가 둔해 터진 자신도 혼자 있기 싫어해서 자꾸 일을 만드는 타입인 것을 알겠다. 잃어버린 과거 기억 때문일까? 호네바미랑 자꾸 겹쳐 보여서,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뭐, 사실 지금 당장 언급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소우자나 후도나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남사는 많았다. 심지어 부임한 지 별로 안된 인간인 자신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이시키리마루라는 믿음직스러운 원군을 내세웠건만, 정작 오는 중요한 애들은 안 오고 다른 애들이 오는 모양이다. 물론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고민을 한 남사들의 마음을 풀어주었으니 그것도 잘된 일이지만.

 

남사들이 조금 이 혼마루를 편해라 했으면 좋겠다. 남사들에게는 이곳이 ‘집’이지 않은가.

 

사리카는 그리 생각하며 일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다 산 다음, 나마즈오에게 설문 결과를 받아 정리해놓고 한국에서 해야 할 일 때문에 일찍 출국했다. 일본에는 없지만, 한국에는 있는 자동차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있어야 할 곳에는 자동차가 없어서 엄청 불편하고, 정작 한국에는 부모님과의 추억 때문에 어찌하지도 못하는 자동차가 있다니. 얄궂은 일이다.

 

“딸기랑 블루베리, 그리고 배랑… 참외 살까?”

 

물론 참외는 사리카 사심이다. 투표 결과는 딸기랑 블루베리랑 배 세 가지이다. 아무래도 우리 혼마루에는 신 것을 그다지 많이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신 원두로 준비해놨는데. 어쩔 수 없지.

 

사리카는 과일을 사고 자동차까지 맡긴 후에, 택시로 물건들을 전부 집으로 옮긴 후에야 혼마루로 물건들을 바삐 날랐다. 그나저나 이제 안 일인데, 자신이 한국에서 혼마루를 열어두면 혼마루에 있는 바닷가 끝에서 바다가 갈라지며 그쪽으로 나와졌다. 아주 쓸모가 없다 쓸모가. 물론 자신이 영력이 있던 덕분에 과일들이랑 과일 청은 무사히 바닷가로 옮겨놨지만, 다른 한국 사니와들은 어쩌라고. 뭐, 혼마루마다 생김새와 구조가 다르다고 하였으니까… 그럼 자신만 이 꽝에 당첨인 건가? 어휴 정말.

 

일일 카페를 여는 당일도 부지런히 움직여 세팅했다. 아루지 휴식실 전체에 깔아놓고, 휴식실 앞에는 [일일 카페] 같은 문구도 적어놓고 남사들이 편히 들어오라는 듯이 말이다. 솔직히 남사들끼리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신과는 아예 친하지 않은 남사들도 많으니까 언제든 오라는 뜻으로. 닫아놨던 문도 다 활짝 열어놨다.

 

그래,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오지 않으면 혼마루 내부에서 어슬렁거리는 놈들을 전원 납치해서라도 강제로 오게 하겠다. 후후. 후후후….

 

 

그렇게 남사와 교류 목적의 아루지 일일 카페가 열렸다.

 

물론, 오전에는 남사들이 잘 오지 않았으니 원정 나가기 전 애들에게 음료수를 하나씩 선택하게 해서 마시게 했다. 메뉴판만 계속 돌려보던 남사들은 한국어를 못 알아보겠다고 투덜거려서 결국 사리카가 일본어 발음까지 추가 기재하고 나서야 주문을 시작했다.

 

“그럼 난 커피. 블랙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시킨 거 맞아?”

 

제일 먼저 초기도인 하치스카가 나섰다. 다른 남사들이 메뉴를 보고 많이 고민하니까 나서준 것일까? 역시 자신의 완벽한 초기도다. 사리카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주문을 확인했으나, 돌아오는 말은 당연하고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었다.

 

“아메리카노가 뭐야?”

“아휴! 그것도 문제였구나. 블랙커피와 비슷한 거! 따뜻한 거 맞지? 시럽은?”

 

한국메뉴로 써놓았더니 애들에게 전혀 설명이 안 된 것 같다. 메뉴 옆에 기재해둬야지. 커피 원액+물 이런 거로.

 

“당연히 따뜻한 거지. 시럽은 필요 없고. 좋아. 기다리면 나와?”

“그럼! 기다려. 다음 애들 주문 먼저 받을게!”

“그럼 난 옥수수 차를.”

“나야 편하지만 옥수수 차로 괜찮겠어? 그리고 옥수수 차는 따뜻한 거만 가능한데 그것도 괜찮아?”

 

참고로 옥수수 차는 그냥 볶은 옥수수알을 사 왔으므로 끓는 물에 우리고 내면 된다. 주문한 카센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착하고 얌전한 아이야.

 

“에… 그럼 나도 옥수수 차. 원정 끝나고 다시 와서 주문해도 돼?”

“재료만 남아있다면 물론. 일단 옥수수 차 끓여줄게. 다음! 소우자는 뭐 마실래?”

“…저는 빼주시지요. 천하를 거부하고 주군임을 거부하는 자의 사사는 필요 없습니다. 아니면… 당신도 천하를 원하십니까? 저를 거느려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커피 따뜻한 거? 시럽 없이?”

“방금 제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하! 그럼, 옥수수 차로.”

“…당신, 제 말 안 듣고 있죠?”

 

소우자는 여전히 날카로운 말로 자신을 쿡쿡 찔렀다. 그러나 이럴수록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주는 것이 맞는 상대방법일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이 맞다는 자신은 없지마는. 그렇지만, 상대가 날카로운 말로 말을 건다고 해도 내가 날카로운 말을 건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몇몇이 커피와 옥수수 차로 주문을 통일하자, 나는 한꺼번에 옥수수 차를 우렸다. 애들이 너무 착해서 메뉴 통일도 해주고… 나는 복 받은 아루지야. 내가 혼자서 웃자, 그걸 마주한 소우자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소매를 가렸다. 아이고, 아루지가 혼자 웃을 수도 있지. 머리가 그리 움직이든 손은 로스팅 기계에서 원두 가루를 툭툭 가지런히 하고 샷을 뽑았다. 이러면 커피는 금방 나가겠군. 양손을 움직이며 커피를 먼저 내보냈다.

 

“커피 나왔다. 남사 휴식실에서 먹으며 쉬다가 원정 나가면 돼!”

“몇 시까지 출진해?”

“한 시간 후까지!”

 

그리고 그다음 원정대가 와서 음료를 주문했다. 아이고 바쁘다. 4부대는 센고 무라마사를 필두로 대부분 녹차나 커피를 주문했다. 애들이 전원 군더더기 없이 먹는 타입이라 그런가. 나야 편했다. 녹차 가루를 타서 주면 되는 것이고, 슬슬 옥수수 차도 다 우렸고. 커피도 금방 원액을 우리고.

 

“옥수수 차랑 녹차랑 커피 나왔다!”

“주군, 근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루지라니까… 사기에 영향이 있지! 이렇게 쉬다 보면 너희끼리도 이야기할 시간이 있잖니? 그렇게 친분을 쌓는 거지! 그리고 아직 혼마루 운영된 지도 겨우 한 달이라고?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4 부대원들에게도 음료를 전달하자, 다소곳이 전달받는 톤보키리가 이 행사의 의미를 물어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해주었다. 물론 얼마나 가까워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히게키리와 히자마루도 거들었다.

 

“huhuhu, 주인이 세심한 배려는 좋습니다만, 저는 벗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군요.”

“센고 무라마사.”

“다들 놀라니까 웬만하면 자제하도록 하렴.”

“뭐, 어쩔 수 없군요.”

 

물론 무라마사의 아주 깜찍한 말도 빠뜨릴 수 없다. 으음. 저것도 고쳐야 할 점일까? 모르겠네. 그냥 본인 성격인 것 같은데 말이야. 일단 유보하자.

 

“아루지. 내 것은?”

“근데 애기들이 이런 거 마셔도 되겠어?”

“애기 아니거든!! 최신 유행 칼일 뿐이야! 어이 도타누키, 너도 말 좀 해봐라!”

“겉모습은 아무래도 좋잖아?”

 

아니야. 너희는 겉모습이나 나이가 문제가 아니야. 이즈미노카미 키가 몇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 그냥 단지 너희 둘이 어울리고 다니는 게 약간 고등학생 같은 푸릇푸릇함이 있단 말이야. 초기도 애들이랑 같이 말이야.

 

“나로서는 아무래도 너희들은 아기인 편이지… 초콜릿 음료라던가 그런 것도 마련해뒀긴 하는데…진짜 괜찮겠어?”

“참나! 이래 봬도 300살이라고!”

“나! 나는 그거 줘!”

“좋아, 좋아. 시시오는 초콜릿 음료로 줄게.”

 

그래. 내가 고생하더라도 너희들 먹어야 하지 않겠니. 나도 카페인에 민감해서 초콜릿 음료에는 많이 신경 썼지. 유튜브 뒤져서 초콜릿 소스를 미리 만들어뒀다고. 이거랑 우유에 섞고 잘 섞어준 후에 컵에 옮기면 짜잔!

 

“초콜릿 음료 나왔지롱!”

“뭐야, 뭐야?! 맛있겠다!”

“하, 이 아줌마, 신경 많이 썼다고. 맘에 들면 나중에 더 마시러 와!”

 

그래, 내가 온갖 유튜브를 뒤져서 많이 안단 레시피를 가져왔단다. 이거 오늘 만든 건 오늘 내로 없애야 하니까 마시고 싶으면 원정 끝나고 또 오려무나.

 

단도 애들인 2부대는 새벽에 원정을 나가서 아직이고. 오후에 돌아오려나. 2부대들의 주문을 바로 쳐내니 한가해졌다. 이럴 수가. 50명분이라고 준비했는데 너무 과하게 했나? 아직 초콜릿 시럽도 그렇고 과일도 그렇고 아직 산더미처럼 쌓아놨는데. 물론 과일은 애들에게 간식으로 먹으라고 해도 되긴 한데…. 으음. 빨리 다른 애들도 오라고 해야겠다. 나는 카운터를 닦고 애들이 나간 자리를 닦으며 카페 업무를 설렁설렁하고 있자니, 미카즈키와 이시키리가 걸어왔다. 저 멀리 타로가 숨어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아하하. 에이, 저 덩치로? 저… 덩치로? 아니 숨은 거 맞아? 일단 모르는 척하고 미카즈키랑 이시키리를 맞이하자.

 

“이런, 많이 늦었나?”

“아니? 아주 딱 맞게 왔어.”

 

솔직히 열자마자 원정대원 남사들에게 음료를 뽑아줬으니 이때 오면 오픈 런이지. 근데 이시키리마루는 원래 이때쯤 신사에 있는데 말이다. 나는 결국 궁금함을 못 참고 바로 물어봤다.

 

“그나저나 원래 점심때까지는 신사에 있는 거 아니었어?”

“느낌이… 아, 이런. 미카즈키에게 들어서 먼저 내려왔단다.”

 

방금 미카즈키가 웃으면서 이시키리마루 바라봤다. 분명 이시키리마루가 미카즈키 눈치 봐서 말 바꿨다. 내가 그에게 슬쩍 시선을 주자, 그는 모르는 척 메뉴를 물어왔다.

 

“오호라… 이건 뭐라고 하는 거냐?”

“녹차라떼. 녹차랑 우유 섞은 거.”

“다른 차는…”

“레몬차랑 오미자차인데 이건 과일 청 들어간 거야. 아니면 옥수수 차도 되고.”

“철관음은 어디 있나?”

“아루지 돈 없다니까.”

 

또 개그 해줘야 만족하려나. 나는 내 주머니로 손을 넣은 다음 주먹을 쥐어 꺼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그걸 한쪽 손에 받쳐 내밀며 펴주었다.

 

“짜안! 아무것도 없습니다.”

“앗하하하! 좋아, 좋단다.”

“언제까지 이런 개그 할 거니?”

 

이 시답지 않은 개그는 나도 하기 싫거든. 얼른 빨리 주문해달라고. 나는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럼 빨리 주문해줘.”

“그럼 나는…녹차로.”

“이런, 옥수수 차라는 것도 있구나. 아루지는 이런 걸 먹는 건가? 그럼 한번 먹어보마.”

 

미카즈키 누가 봐도 귀족이나 황제 즈음 되는 높은 사람처럼 말하는군. 어디 민중의 구수함을 맛보라지. 나는 옥수수 차를 다시 올리고 끓였다. 이시키리가 주문한 녹차는 금방 낼 수 있어서 금방 나왔다.

 

“근데 재료를 너무 많이 사지 않았나.”

“뭐, 남은 건 전부 탕비실에 넣어둘 거니까. 대충 50명이 있으니 누군가 먹겠지. 더 먹고 싶으면 말해.”

 

나는 더이상 남사가 오지 않자, 바로 남은 컵들이나 탁자를 부지런히 정리하며 답했다. 카운터 안에는 커피 내리는 기계를 수건으로 닦고, 이것저것 한번 닦고. 그러고도 더 남사가 오지 않자 나도 좀 쉬기로 했다. 어차피 이벤트인데 중간중간에 나도 쉬어야지. 나는 오미자 청으로 차를 타고 서서 휴식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이내 근처에 앉은 이시키리마루와 미카즈키가 계속 말을 걸어 대답해 주었다. 물론 대부분 장난스러운 대화가 다였다. 예를 들자면.

 

“… 음.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이건 무슨 녹차니?”

“현미 녹차.”

“… 탕비실에 있던 거 아니니?”

“잘 아는군.”

“날로 먹는구나.”

“둘 다 진실을 안 죄로 입을 다물어 줘야겠어.”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다. 주변에서 이런 식으로 하는 농담을 들었는지 말을 거는 남사들이 생겼고, 나는 그에 성심성의껏 농담을 해줬다. 잠깐, 근데 보통 반대 아냐? 나 진짜 힘들게 사는구나. 그래도 남사들이 착해서 이런 농담으로도 잘 웃어주니 다행이네. 물론 소우자처럼 웃지 않는 남사도 몇몇 있었긴 하지 말이다.

 

그 후, 원정대원들은 슬슬 원정으로 출발했고, 심심했던 나는 숨어있는 타로 보고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타로야, 그만하고 나와서 주문해주지 않으련?”

“… 다 보이셨습니까?”

“보통 보이지 않을까?”

 

너의 은폐 수치를 생각하라는 잔혹한 말을 꺼내지 못하며 그리 말을 돌렸다. 슬슬 돌아다니던 지로도 타로와 나를 보며 걸어왔다.

 

“안녕~.”

“으악! 너 아침부터 술 마셨니?!”

 

지로는 혼마루에 온 지 별로 되지 않았다. 그 대태도들 중에서 가장 늦게 혼마루에 온 데다가, 아직 영력 레벨이 낮아서 1부대에 간간이 배치하면서 도는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혼 술주정뱅이만 있는데 그중 매일 술 마시고 있는 원탑 술주정뱅이. 물론 지로만한 남사가 한 명 더 있다. 그건 후도다. 매일매일 술 냄새가 나서 코가 상대적으로 예민한 내가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술 냄새 안 내면 안 되니?

 

“아하, 이거 음료 파는구나! 이쁜이 지로는 술이 좋아용!”

“술 안 팔아.”

“으음… 그럼 사케!”

“나가.”

 

회사에서 일 없을 때 술 마시는 것까지 허용해줬으면 됐지, 왜 이래? 나는 제대로 된 주문을 할 때까지 문전박대하기로 했다. 음? 잠깐만.

 

“이거 오미자 청이라는 건데… 청주에 말아먹으면 과일주 될 걸? 근데 많이 마시면 안 되는”

“그럼 이거 줘!”

“아, 알았어. 청만 담아줄 테니까 조금씩 덜어 먹어. 알겠지?”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지로가 제조대로 들어올 기세로 빨리 달라며 고개를 들이밀자, 곤란해하는 나를 보고 지로를 말려준 건 타로였다.

 

“아루지가 곤란해하지 않습니까, 지로.”

“그렇지만 오미자 주라니. 엄청 맛있을 것 같잖아.”

“아루지가 곤란해하니까 그만두십시오. 아루지, 도와드릴까요?”

“으음, 지금만으로도 충분해. 남사들을 위한 이벤트니까. 타로도 뭐 음료수 시켜서 앉아있어.”

 

타로는 뭇내 자신을 도와주지 못해서 서글펐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다가, 내가 지로에 추천해준 오미자차를 마시기로 했다. 이렇게 아루지 카페 죽돌이가 네 명이 되었다.

 

 

오후가 되니 원정을 마친 단도들이 다른 단도들과 함께 우르르 카페에 도착했다. 어서 오라고 말하기도 전에 나와 눈이 마주친 미다레가 제일 먼저 달려와 주문할 거라고 빵긋 웃었다. 으으 힐링 된다. 우리 집 미다레는 최고 아이돌 힐링… 아니 이게 아니라.

 

“으음, 아루지가 추천해줄 수 있어?”

“역시 미다레는 딸기라떼일까? 딸기랑 우유 갈아서 위에 딸기 얹은 거.”

 

손이 더럽게 많이 가는 음료이나, 내가 미다레에게 이 음료를 해주려고 일부러 새벽같이 딸기나 다른 과일을 잘라놨다. 으음. 역시 미다레가 먹는 거 보고 싶다.

 

“나도… 추천해… 주세요!”

“고코타이도 딸기라떼 먹을래?”

“주군, 저는 간단한 것도 괜찮습니다.”

“간단한 거라면 레몬차나 오미자차가 제일 빠른데, 이걸로 해줄까?”

“네! 부탁드립니다.”

 

사실 다들 예쁜 음료를 보며 후후후, 엄청 힘들게 만든 음료를 가져다줬더니 다들 행복해하며 하나씩 맛보기 시작했다. 같은 토시로들이지만 주문은 다 제각각이라, 내 나름대로 신경 써서 주었는데 이 아루지와 조금이라도 친해진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

 

하카타는 배 주스를 마시며 눈을 반짝였고, 미다레도 딸기라떼를 보며 행복해하고, 사요는 블루베리 주스를 보고 색이 특이하다며 몇 번 빨대로 휘저었다. 아키타도 딸기 주스를 마시며 얌전히 미다레나 하카타의 말을 듣고 있고, 심지어 마에다는 오미자차를 마시며 커피를 시킨 야겐과 이야기를 하며 홀짝이고 있으니… 이거 천국인가? 토시로들 너무 귀엽다. 미치겠다. 다 안아보고 싶다.

 

“아루지!”

 

토시로 이야기하니까 저 멀리서 호네바미랑 나마즈오가 말 당번을 끝내고 손을 흔들며 왔다. 이 기특한 두 명에게도 많이 신세를 졌는데 뭘 해줘야 할까.

 

“벌써 끝내고 왔어?”

“응! 어떤 거 도와줄까요?”

“안 도와줘도 돼. 음료수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이거 마셔도 돼?”

“옥수수 차? 물론이지.”

 

오전에도 그렇고, 오후에도 옥수수 차 은근 선호도가 높은 걸 보아하니 탕비실 신메뉴로 넣어놔야겠다. 나는 군말 없이 옥수수 차를 불에 올렸다. 아! 생각해보니 카페에 구수한 옥수수 차향으로 가득하구나. 이럴 수가.

 

“혹시 옥수수 차가 더 남으면 한 잔 부탁해도 되니? 아무래도 향이 좋아서.”

“좋아 좋아. 근데 옥수수 차 양이 별로 없어서 이시키리가 마지막일 거야.”

 

역시 향에는 못 이기는 듯, 이시키리가 한잔 더 부탁했다. 이걸로 옥수수 차는 매진이라 메뉴에 표시해두고, 옥수수 차를 호네바미와 나마즈오에게 내어주며 말했다.

 

“편히 쉬면서 가렴. 아 맞다! 참외 먹을래? 이건 내가 먹으려고 사 온 건데.”

“오? 아루지. 이쪽도 내어주렴.”

“좋아. 근데 지금 있는 애들에게 다 주려고 하니까, 천천히 내올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카운터로 들어가 앞치마를 고쳐 쥐었다. 들여온 과일을 넣어둔 것 중에는 참외도 있으니까 많이는 아니지만, 한 소쿠리는 사놨지! 노랗게 익은 껍질을 보니 기분도 좋아진다. 애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슬슬 노란 껍질을 과도로 사각사각 깎았다.

 

 


 

“걱정하던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핫하하, 그러면 좋겠지만 말이다.”

“점괘가 틀린 거 아닌가?”

 

이시키리가 넌지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역시 과보호로 보이는 건가? 평화로운 일이 가득하고 이리 혼마루 성채의 관리인이 알뜰살뜰하게 남사들을 돌봐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위기의식이 사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엄연히 정부에서 대침구예비작전을 하는 이 시기는 바짝 정신을 차리는 게 맞다. 본인이 예견하는 게 맞았다면, 그들은 반드시.

 

“으음. 그러면 좋겠지만,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그건 큰일이군. 추워서 그런가?”

“역시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말이야.”

 

잘 떠오르지도 않는 꿈이 신경에 거슬리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잠자리가 추워서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무섭거나 추운 느낌의 꿈은 아니었다. 미카즈키는 아루지라고 부르라고 주장하는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단도들과 자신의 근시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있을 일로 인해 많이 상처받을까 걱정이었다. 메이레키 대화재 때에도 그녀는 어쩌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구출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당장 눈앞에 놓인 사람을 구하는 일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모습. 그녀도 이해할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 아루지가 놓여있다면, 당장 자신을 던져서라도 그녀를 구하는 것뿐이고, 반대의 상황이었으면 아루지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도 지금 그러려는 것일 뿐. 그 ‘당장’이 다른 남사나 아루지의 기준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아루지를 부탁하지.”

“이런, 마침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아루지는 처음에 굉장히 낯가렸으면서 의외로 이시키리마루를 의지하니까 말이야.”

“그것이 의외인가?”

“하하하.”

 

그리 시답잖은 말로 얼마 남지 않은 일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은 영원히 잊히지 않았다. 편히 앉아있는 아루지, 그리고 그 옆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타로타치. 술을 홀짝이며 그 말에 끼어들고, 그 옆 테이블에는 단도들이 들뜬 모습으로 떠들며 행복해하는 것에 더해 혼마루에 잘 녹아들고 있지 못해 다른 남사들이 쭈뼛쭈뼛 오니 아루지가 반기는 모습. 이런 모습을 보다 보면, 이 혼마루의 일상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남사들이. 그리고 이 장소가, 또… 자신의 눈은 성심성의껏 남사들을 대하는 사리카에게로 눈길이 갔다. 저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괜히 장난치고 싶어진다.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차라리 그러면 이리 정들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똑같은 눈빛이다. 성심성의로 가득 찬, 상냥한 주인이 이곳에 서 있었다. 존재했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곳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나마 행복으로 물든 이곳이 말이다..

 

 

그렇게, 다들 웃는 얼굴을 하는 일상을 보냈다.

 

 

다음날 올 불행을 모르는 채로.

 

단지, 타로타치와 미카즈키, 그리고 사리카만 그를 암시하는 어둑어둑한 꿈을 꾸었을 뿐이다.

 

괴로워하는 창백하고 마른 사리카. 혼마루 위에서 몸부림치며 피를 토하고, 필름이 끊기듯이 여러 장면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지고는 움직이지 못하는 남사들의 형체가 보인다. 그 형태를 보아하니, 긴 포니테일에 흰색 머리끈, 큰 몸체는 타로타치였고, 사리카에게 달려가는 남사는 한쪽 머리만 살짝 길게 휘날리며 머리띠에 술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미카즈키였다. 그 둘은 마루에 피를 토하고, 딱딱히 굳어가는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뇌리에 새겨지듯 새겨지는 꿈은 불길하게 세 사람을 깨우기 충분했다.

 

그러나 일어난 사리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꿈 중에 자신이 죽는 꿈은 길몽일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 쳐봐도 그런 꿈은 길몽! 이라고 땅땅 확정시키는 말도 많았다. 그래서 어차피 꿈이기에 그런 식으로 찜찜함을 해결한 그녀는 출국하러 나가는 와중에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까지 깡그리 몽땅 잊어버렸다. 다시 기억해내는 것은, 일본의 집으로 돌아와 혼마루로 들어가는 저녁 즈음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남사들이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1부대원 전원이 직접 작은 자신을 데리러 왔고, 오랜만에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며 호사를 누린다고 기쁘게 받아들이며 혼마루로 가던 도중 마주해버렸다.

 

아주 커다란, 대태도의 시간소행군을.

 

그 와중에 약속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미카즈키 무네치카였다.

 

“안돼! 미카즈키 무네치카!”

“여긴 맡겨주려무나. 혼마루를 지키렴. 그리고…주인을 부탁한다.”

 

그가 등 뒤로 남사들과 아루지에게 말하는 것은 단지 이 말뿐이었다. 아루지가 입을 떡 벌리며 미카즈키를 말리려고 하자, 이제 근시인 타로가 그녀를 막았다. 이 둘은, 꿈에서 언뜻 보였던 죽음의 그림자를 확연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리카는 타로의 눈동자를 보며 겨우겨우 그런 꿈을 꿨다는 생각을 기억해냈다. 그 꿈에서도 타로는 저 멀리 이런 눈동자를 하고 있었지. 미카즈키는 어땠더라. 등밖에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사리카는 억울함에 차올라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용서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핫하하, 그래, 그러려무나. 그래, 잘 들어두렴. 내 이름은 미카즈키 무네치카.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부여해주마. 자, 따라와라.”

 

얼핏 보면 긴급상황이기에 남사들도 일단 사리카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혼마루로 데려왔고, 그것이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갑자기 혼마루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분명 작은 모습이 아니라 영력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정신적인 문제인가? 초기도인 하치스카와 근시인 타로타치가 와서 그녀에게 뭐라 말을 걸어도, 어깨를 잡아 흔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이건 마치

 

그때와 똑같지 않은가.

 

자신이 내내 기다리던 과거의 그 사람을 떠내보던 그때와. 멍청하게 돌아온다던 말을 믿고, 대가야를, 천하를 내게 돌려준다는 그 한마디만 믿어버리고 언덕으로 몰려서 그 언덕에서 풍장을 당하면서까지.

 

저주받고 싶지 않다고 놈들이 부하들을 죽이기 시작해도 멍청하게, 그냥 가만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무능한 여왕이. 그때와 비슷한 나이로, 저 멀리 저잣거리에 걸린 그의 목을 보고도 현실 부정하며 앉아있었던,

 

 

그때와.

 

 

그들이뭐라고말했던가?기억나지않는다.왜그들은죽어서까지자신을기다렸는가?모르겠다.여왕인자신이멍청해서?하늘의운명이었기에?자신이바다의재앙이었기에?정치를제대로통합시키지못해서?백성들의고통을해결해주지못해서?대체왜,왜,왜….

 

“아루지.”

 

대체자신이뭐라고?차라리이모든게바다였다면깔끔하게끝났을텐데.이래서땅위에사는누군가의위에서는것이싫었다.자신은또다시실패할것이다.어렵게쌓아놓은업적이아니었나.그냥자신은단지누군가를구하고싶다는일념으로시작한일이었는데.

 

“안돼. 지금 상태가 이상해.”

“잠시만 비켜주려무나.”

 

차라리바다였다면,동해였다면조금달라지지않았을까?지금이일이일어난것도외국의땅.결국땅이다.아,그래.산신님이라면자신의편을들어주지않을까?그녀는항상자신을가여워했다.낯선땅에서인간의몸을빌려사는자신을말이다.그사람을,지금자신의신하인…..

 

“정신차려라!”

“아루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남사들도 미카즈키랑 똑같은 남사다. 자신이 그의 말을 믿고 멍청하게 있을 때도 여전히 자신을 기다려주었던, 성불하면서도 자신을 생각해주었던, 그들과 똑같은 자들이다. 언제까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있던 타로타치와 이시키리마루, 그리고 이어 미카즈키와 함께해온 초기도, 하치스카를 바라보았다. 진짜 멍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구나. 이런 상황일수록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한심스러운 성채의 주인이 아닐 수 없다.

 

“…하치스카 코테츠.”

“괜찮아? 상황 설명은 들었는데.”

“정부로부터 연락은?”

“방금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연락 왔어.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최대 중앙. 그리고 최후방이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여왕은 이제 그만둘 것이다.

 

“1부대는 나와 함께 중앙으로 출전한다.”

 

나는 주저앉았던 다리에 힘을 주어 다시 일어섰다. 혼자서 일어서는 건 이제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작은 모습도 아니다. 성채의 영력이 오염되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남사들을 걱정해야 한다. 오염된 영력은 정화하면 된다. 어차피 슬슬 혼마루 내부에 설치할 정화강석을 바다 요괴들에게 부탁해서 여러 개 구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국에 간 것도 그쪽 연락과 함께 교환할 물건을 찾으러 발 바쁘게 뛰어다니는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미카즈키는….”

“포기해.”

 

두 번 다시, 그 멍청한 여왕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때와 비슷하게 눈을 가지런히 떴다. 내 옷은 비록 그때의 옷차림으로 돌아가지만,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