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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루 이야기

도검 도난 사건

審神者物語 - 參, 刀剣の盗難事件

*해당 이야기는 타로타치 서사 이후에 진행되는 이야기 입니다. 약간의 언급이 있습니다.

 

 

 

 

 

사리카의 저주 해결 사건은 발 빠르게 이쪽 분야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다. 그 거대한 저주를 해결했다는 한국인을 보기 위해 너도나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집 위치 자체가 좋지 않은 곳이라 보고 도망가는 사람도 잦았다. 그중 몇몇은 저주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집 근처로 오긴 왔으나, 기에 짓눌려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얼쩡거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보통 그런 사람은 죽지 직전까지 몰린 사람이어서, 안타깝게 여긴 사리카나 미사키 양의 주장으로 사례금을 받는 형식으로 도와주는 흐름으로 흘러갔다. 덕분에 몇 사례밖에 해결하지 않았음에도 가나가와현에 수상하기 짝이 없는 “해주사解呪事”가 있다는 소문은 멀리 퍼져나갔다.

 

특히 전국에서도 골치가 아픈 저주에 걸린 사람을 해결해주었기에 그쪽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1달 안으로 죽는다는 사람에게 씌인 저주를 해결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그러다 보니 절이나 신사의 신관도 가끔 사리카의 집에 와서 의견을 여쭙거나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번에도 그런 경우이다. 심지어 상황이 급한지 직접 벨을 여러 번 눌러 사람을 불렀다.

 

“계시오?”

 

요번에도 간단하게 부탁하는 건이겠거니 싶었던 사리카는 밖에서 간단히 이야기할 심산이었으나, 안으로 들어가서 말하고 싶다고 말하여 결국 안으로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스님을 모셨다. 보통 사람도 집의 터가 안 좋아 문 앞에서만 간단히 대화하는 와중에도 집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외향으로부터 골치 아플 중대사를 의뢰할 사람이라 고등학교 2학년의 미사키 양도 바짝 긴장하며 차를 내왔다.

 

“긴말하지 않겠소. 도와주시오.”

“무슨 사건인지 들어봐야 알겠죠….”

 

사리카는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답했다. 그녀는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매일같이 업무에 시달렸다.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이렇게 바쁜지 몰랐던 그녀는 어영부영하다 눈치채보니 사니와 업무까지 한꺼번에 처리하고 있었다. 겹벌이를 창업부터 해야 한다니,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일주일 동안은 잠자는 시간밖에 못 쉬었다. 일이 어찌나 많은지 드럽게 바빠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심정이다. 이렇게 자신을 불러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의 계산 착오 때문이기도 했다.

어디서 자신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새어나갔는지, 아니면 미사키 양의 저주를 풀어준 일이 널리 퍼진 건지 자신이 개업하기도 전에 전국에서 오기 시작했다. 집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경찰에게도 순찰을 부탁한 데다가 그 와중에 정말로 위험한 사람이 있었다. 도둑이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사람들도 절박한 사람이었기에, 개업도 안 한 채로 수입을 받기도 모호해서 바로 개업 신청에 저주 해결에… 골 아프게 세무사 사무실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결국, 탐정업과 흥신소 업으로 개업 신고를 아슬아슬하게 때려버리면서 온갖 서류로 싸인 아수라장을 정리했었다. 그게 저번 주였다. 그 업무량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번 OO사 스님도 사리카의 명성을 듣고 온 경우이다. 지난주에 주말 없이 일해서 일 좀 그만 받고 좀 발 뻗고 낮잠이나 때리고 싶었다. 앞으로 주택을 사업장으로 신고하지 말고 어디 빌려서 없으면 전화하지 말라고 해놔야지 정말. 이렇게 집까지 찾아와 고개를 숙이고 돈도 준다는데 안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심지어 일이 잘만 풀리면 거래처가 될 가능성도 크다. 결국, 쉬고 싶었던 몸을 이끌며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설명하기 어려우니 일단 OO절로 와주셨으면 하오.”

 

잠도 모자라는데…. 결국 사리카는 좀비 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스님이 말하는 곳으로 향했다. 스님은 동네에 있는 이름 있는 큰 절의 스님이었다. 주지 스님은 자리를 비워 다른 스님들과 같이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저 너무 졸리는데 조금만 조사하고 가서 쉴게요.”

“너무 힘드시면 방이라도 빌려드리리다.”

 

바빠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오는 내내 조는 내 모습을 본 스님이 안쓰러움에 한 마디 해주셨다. 그럼 나야 감사한 일이지. 잠깐 조사하고 절에서라도 빨리 쉬어야지.

 

“일단 이쪽을 봐주시게나.”

 

스님이 가리킨 곳은 들어가는 곳이 한 단 높고 불단이 방의 한 벽면에 놓은 곳이었다. 딱 봐도 물건 최근에 봉납 받은 곳 같았다. 스님 말로는 완전 봉납 받기 전에 이 봉납실에서 선향을 일주일 동안 쐬게 한 후에 창고 쪽으로 옮긴다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혼자 말없이 방 안으로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뭔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 나는 군말 없이 스님을 뒤따라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한쪽 벽면에 쭉 늘어선 불단 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붉은 불단 속에 여러 물건이 늘어져 있고, 모든 불단이 전부 가득 찬 와중에 단 한 곳. 가운데 불단의 가장 중간 단이 전부 비어있었다.

 

“커다란 불단인데 여기 안에 넣는 건가요?”

“그렇소. 여기 있던 물건은 최근에 봉납 받은 와키자시라오.”

“요즘 쓰는 용도도 없는 칼을…”

 

내가 혼마루 사니와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요즘 그만한 크기의 칼을 어디다 쓰는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들어온 지 알 수 없어서 한마디 덧붙이자 스님도 알 길이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하긴 뭐 스님이 접수 안 했을 수도 있고. 나는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접수하는 스님 하나, 제사를 치르고 판별하는 스님 둘이오. 원래는 주지스님과 내가 했는데 현재 잠시 사정이 생겨 안 계시네. “

“근데 와키자시는 어디 갔나요? 창고에?”

 

내가 왜 여기에는 와키자시가 없는지 여쭤보니 침묵을 몇 초 유지하고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도둑맞은 상태네.”

“그럼 경찰에 연락하시는 게…”

“도둑이 인간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말이야.”

 

이건 또 뭔 소리인가? 나는 스님을 향해 미간을 찡그리며 쳐다보았고, 스님은 내 표정을 보지 않고 따라 나와달라고 말했다. 속으로 뭐라 구시렁대려다가, 하여간 졸리니까 빨리 이야기만 듣고 잠시 잘 거라고 속을 달랬다. 이 욱하는 성질 좀 고쳐야 하는데. 그리 다짐하며 얌전히 방에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스님이 막 봉납실에서 나온 스님과 나를 보고는, 다가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찰이 왔다 가시긴 하셨어요. CCTV보고는 내부 소행일 가능성이 크지 않냐고 하시는데 저희가 보기에는 CCTV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모습이 찍혀있어요.”

 

뒷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어요? 라고 물어보려다가 노트북으로 틀어주는 화면을 보고 기겁했다. 검은색이 계속 주위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인간인가? 싶을 것이 칼을 가지고 가는 장면이었고,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 형태가 뚜렷해졌다.

그 모습은 가히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고 거미처럼 기어가는 모습에 위는 인간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나는 기겁하며 노트북을 닫으며 물었다.

 

“... 이거 경찰에게 보여줬어요?”

“네. 그렇죠.”

“역시 이것도 문제가 있나?”

“고, 공양하세요.”

 

‘노트북을 어떻게 공양하지.’하는 소리가 들린 건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이걸 보다간 기가 약한 사람은 안 좋은 영향이 미칠 게 분명하다. 근데 이 외모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나는 이어 물었다.

 

“사건 발생 날은 언제였죠?”

“저번 주 화요일이었소.”

 

그럼 당장 임시 봉납실 들어가 영기를 훑어봐도 알 수가 없겠군. 그럼 그냥 좀 자고 일어나서 알아보겠다고 하고 비구니분의 방을 신세를 지기로 했다.

 

“미안해요. 주지 스님이 자리 비우셔서 요즘 이리저리 절이 어수선해요. 잘만한 방이…”

“딱 한두 시간만 자게 해주시면 돼요.”

 

스님에게 연락받은 비구니들이 머무는 채에서 깜짝 놀라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심지어 지금 바쁜 시기인지 이리저리 부산스러워서 잘못하면 그냥 집으로 가라고 쫓겨날 처지로 보였다. 그건 안돼. 좀만 잘 거야! 내가 진짜 두 손 싹싹 빌 기세로 부탁하자 알겠다고 하고 좁은 구석방을 마련해 주었다. 하. 진짜 잠깐만 자자. 풀썩 바닥에 몸을 눕히마자 왜 이제야 잠드냐고 몸이 타박하는 듯,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떠들썩하고도 어수선한 소리가 들린다. 너무 많이 잔 건가? 나는 한껏 찡그린 채로 몸을 일으켰다. 내 몸 위에 올라와서 놀고 있던 부유령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참고로 부유령들은 내 근처에 있어도 바람을 타는 것 외에 영향을 받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내가 잘 때 심심해서 올라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일은 이제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내려가질 않는 부유령을 툭툭 털고 방 밖으로 나가보았다. 이상하게도 절의 지형은 똑같은 데 잠들기 전과 달리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잠들기 전에 모두 어수선했던 것을 기억해서 다들 바쁜가 싶어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갔고, 그제야 알아챘다.

 

‘나, 왜 이렇게 자꾸 이계로 이동하는 거야?’

 

바깥은 이계의 주민들 몇몇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강아지처럼 보이는 주민도 있었고, 뱀처럼 보이는 주민도 있었지만 나에게 신경도 쓰지 않으며 이곳을 나돌아다니고 있었다.

 

[인간들도 불쌍해]

[하필 모른 척도 못 하네]

[나 같으면 모른 척할 거야]

‘뭔가 있었군.’

 

아무래도 도난사건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 그들의 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까 있던 본당으로 들어갔다. 낮말은 새가 듣고 이계 말은 내가 듣는다.

 

이계 통로의 절이라고 해서 그들이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결계는 아주 위험한 놈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용도고 안에 어쩌다가 들어온 놈들은 정화해서 내보내야 하니까 결계를 듬성듬성 해놓는다. 그래서 이런 이계 주민들이 절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사실 기본적으로 절에 들어올 수 있는 이계의 주민들은 저런 결계를 지나서 들어온 것이므로, 위험하지 않으니까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조금 탐문 조사를 해볼까. 나는 보이는 주민들에게 말을 걸며 저번 주 화요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딸꾹질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 정보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대답을 해주었다. 좀 더듬거리긴 했지만, 상냥하기도 해라.

 

[모, 몰라! 난 몰라! 그때 없었어!]

[그, 글쎄요, 저도 건네 들은 거라… 근데 가도 되나요?]

[묻지 마! 그때 다들 절에 서린 기운이 이상해서 도망쳤다고!]

 

물론 대답만 해주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아무래도 절에 봉납 들어온 물건 중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만 건진 채로, 봉납실로 향했다.

 

이계 통로를 통해 봉납실과 겹쳐진 곳으로 들어오니 인계에서 보던 모습과는 좀 달랐다. 연회장인 듯 방 자체도 컸고, 안에는 가장 가운데에 선향이 피워져 있었다. 그리고 봉납물에 새겨진 영혼들은 각 자리에 수갑이나 밧줄에 묶인 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채 가만히 앉아 서로 어울려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입구로 들어온 내게 하나의 눈길도 주지 않으며 자기들끼리 쑥덕이기 바빴다. 시장통 같이 들리는 소리가 엮였다. 이 정도로 말이 많으면 여기서 나랑 대화해줄 존재가 있지 않을까? 나는 연회장처럼 보이는 그들 가운데를 걸어갔다. 그러자 숨이 막히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히, 히익…]

“...안 죽여요.”

 

소리 지르며 주저앉는 봉납물이 많아지자 나도 당황스러워 변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묶여있는 아이들에게 나도 공포를 심어주고 싶진 않다.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그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서 지난주 화요일 일을 기억하시는 분?”

[으흑! 역시 우리를 끌고 가려고…]

“아니 실종된 건지 납치한 건지 조사 중이라, 도와줄 존재 있나요?”

 

그들은 웅성거렸다.

 

[도와주면 우리는 뭘 얻을 수 있지?]

“뭐… 원한다면 저희 집에서 정화해드릴까요? 묶여있지 않아도 되고…. 음 또 무슨 장점이 있으려나. 아, 정화는 금방 끝나요.”

 

난 적외선 살균 소독기나 소독솜 같은 거 이용할 거지만. 내 말을 전하자, 그중 하나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 봉납물은 머리에 있는 걸 보아하니 꽃비녀인가. 검붉은 장식이 인상적이다.

 

[그럼 내가 대답해 줄게. 나 줄에 묶여 있는 거 싫어.]

“좋아요.”

 

그는 인간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새까만 글자가 낀 것처럼 보여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실해 보이는 표정 정도는 보인다.

 

[어느 거부터 말해야 하지? 일단 이쪽으로는 오지 않았고, 인간 쪽 통로로 왔어. 그리고 우리 옆에 있는 그 칼을 뺏어가듯 쥐어가더라고.]

“인간이었나요?”

[인간인가? 모르겠어. 아무튼, 칼 맞지? 그 애는 직후 바닥에 내팽개쳐서… 그 순간 놈이 뭐라고 외쳤는데 모습이 바뀌더라고.]

“무슨 모습으로 보였나요?”

[하반신은 거미랑 같았고, 위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같은 모습.]

 

정확히 외모가 일치한다. 그럼 절에 들어온 사람이 있단 말인가? 나는 골똘히 안되는 머리를 굴려봤다. 골몰하느라 찡그리는 표정을 본 건지 그 아이가 추가해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 걸어 나갔어.]

“스스로.”

 

인간계에서 누군가 영향을 주었지만 어쨌든 스스로 걸어 나간 것이군. 돌아나가서 CCTV를 다시 확인해보고 움직여야겠어. 이 정도로는 나가기 힘들겠다고 판단한 건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또! 또… 주인을 구하러 간다고 했어.]

“주인?”

[응.]

 

주인. 하반신은 거미와 같은 모양새. 상반신은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 와키자시.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이거 시간소행군 아니야? 내 몸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럼 그 와키자시를 그 모습을 만든 건 시간소행군의 우두머리급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연관이 있는 사람.

 

“...인계에서 스님께 부탁해 볼게.”

 

적어도 이 목격자가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여기에 가만둘 순 없지. 봉납물은 내 말에 기뻐하며 반대쪽으로 나가면 인계로 바로 갈 수 있다고 덧붙여주었다. 그 말을 듣고 옳다구나 싶어 바로 반대쪽 문으로 향했다. 일을 빠르게 진행해야겠다.

 

“언제부터 거기에 계셨소?”

 

스님이 나를 보며 깜짝 놀라 말을 건넸다. 주변이 어둑어둑하고 선향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아마도 바로 봉납실로 이동된 것 같았다. 이계 통로를 이용하면 자주 겪는 당황스러운 점 중 하나인데, 눈을 떴을 땐 이미 이계 통로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통로를 너무 자주 이용하면 도둑놈처럼 보이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어휴 또 홍길동처럼 움직여버렸잖아.

 

“저도 모르게 이계에 휩쓸려서요…. 그나저나 스님. 봉납물 중에 비녀를 양도받을 수 있을까요?”

“비녀? 아 저 검붉은 비녀 말이오?”

“네.”

 

내 말을 들은 스님은 난감해했지만, 봉납해주신 분께 사례해서라도 급하게 양도받고 싶다고 말하자 혹시 홀린 거 아닌지 나의 주변을 살펴보는 듯했다.

 

“그게 아니라 방금 이계에서 그 비녀가 증언해줬는데… 아휴 안 믿으실 건 아는데요, 보호가 필요해 보여서요.”

“비녀가 증언했다고?”

“네… 안 믿으실 건 아는데요, 어쨌든 제게 증언해준 만큼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요.”

 

내가 열심히 스님께 경찰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예를 들며 설명해주자, 못 믿는 눈치였지만 알겠다며 아까 CCTV를 보여준 스님에게 몇 가지 처리를 부탁하였다. 그 스님은 갑작스레 하는 이야기가 봉납 당한 비녀를 내주라는 말에 수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어, 그분께 사례금을 시주해드리며 부탁드리니 이번만이라고 말씀하면서 처리해주셨다. 또, 잊지 않게 CCTV를 다시 한번 보여달라고 부탁드렸다.

 

“또요?”

“네. 그 시간대 말고 앞뒤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 게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어 보이는 스님은 여전히 나를 미심쩍다는 눈으로 힐끗 보고는, 다시 노트북을 피며 해당 영상을 맘껏 보라고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봉납실로 비녀로 가지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홀로 남겨진 나는 그 전의 녹화내용을 확인했다.

 

CCTV가 설치된 곳이 절 대문 쪽이기 때문에 누군가 들어갔다 나간 것만 확인할 수 있다. 아까 찍힌 놈의 정체가 시간소행군인 것도 확인할 겸, 겸사겸사 그 시간대를 틀고 앞뒤로 되감기 시작했다. 앞에는 사람이 떼로 몰려왔기 때문에 화질도 안 좋아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었으나, 뒤 영상은 누군가 보이긴 했다. 물론 내가 부정을 보는 힘이 있어 그놈도 거뭇거뭇하게 보였다. 그때쯤 신문지에 감싼 비녀를 들고 스님이 나왔다.

 

“여깄습니다. 완전히 양도받은 거라 다행이지, 다음부터 그런 부탁 하시면 안 됩니다.”

“감사해요. 근데 이 사람 누군지 아시나요?”

 

나는 해당 영상을 정지시키고 물었다. 나는 정확히 까매 보이는 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스님에게는 제대로 보일까?

 

“모르겠네요. 뒷모습만으로는….”

“역시 뒷모습이었군요.”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비녀를 건네받았다. 여기서 절에서는 수사 종료다. 나는 나를 불러온 나이 든 스님께 결과를 보고했다.

 

“일단, 경찰에게는 내부 소행이라고 판단되니 수사를 중지해달라고 말씀드리세요.”

“왜인가?”

“검에 무언가 씌어 스스로 나간 것입니다. 경찰 수사로는 우리가 보이는 내용이 아니라 다른 내용으로 보여 내부인이 지목당할 가능성이 있어요. 또, 검에 씌인 정황이 수상하니 한동안은 절에 외부인을 들이는 건 경계하시는 게 좋을 수 있겠네요. 검 자체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검 사진이나 외견을 묘사한 거 있으면 같이 주세요.”

“으음…”

 

스님은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옆에서 다른 스님도 큰 스님이라고 부르며 내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듯했으나,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휴, 이쪽은 안심인가.

 

“대신, 더 부탁할 게 더 있소.”

 

또 뭘 의뢰하는 거야! 절이니까 스스로 좀 해! 목까지 튀어나오려는 반항심을 다시 꿀꺽 삼켰다.

 

“옆 동네 신사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거기서 자주 사용하는 단도가 사라졌다더군. 비슷한 일일 수도 있으니 가봤으면 좋겠소. 되도록 빠를수록 좋소.”

“주소… 주시면 바로 가볼게요.”

 

스님은 바로 주소를 적어서 검의 사진과 함께 넘겨주었다. 그 사진과 주소가 적힌 메모 종이를 곱게 받아 비녀와 함께 바로 신사로 출발했다.

 

 



 

 

‘왜 이렇게 나한테 맡기는 거지.’

 

그렇다. 이 작은 신사에서 모셔지고 있던 단도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러 내가 오자, 벗은 발로 신관이 뛰어와 연락받았다고 여러 번 인사하며 나를 맞이하고는 창고로 안내했다. 참고로 나이가 드신 분이 그래서 내가 미안해 죽을 뻔했다. 밖에 경찰도 있는데 말이다.

 

발견한 지 별로 안됐는지 출동한 몇몇 경찰이 노란색 라인을 치고 창고를 찍고 있었다. 나는 이 oo 신사의 신관에게 정보 확인차 물었다.

 

“방금 도난당한 걸 발견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일단 지문을 채취해 가신다는데 아무래도 빨리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돌려받지 못할 것 같아서요.”

“으음.”

[바로 다른 곳에 온 거야?]

 

내 가슴 쪽 주머니에 꽂혀있는 비녀가 말을 걸어서 나는 그가 들을 수 있는 말로 그렇다고 답했다. 내 앞에 서 있는 신관은 전 질문에 대해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리겠다며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했다. 창고가 소란스러워서 도둑인가 싶어서 나와보니, 창고 문이 활짝 열려있어서 안을 조심히 들여다보니 창고에 둔 물건이 조금 어수선해져 있고 제례나 중요한 일에 사용하는 단도가 사라졌다고.

 

“뭐야? 탐정이야?”

 

내가 신관에게 사정을 듣고 있자, 출동한 경찰 한 명이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탐정 가지고 되겠어? 하여간 고지식한 사람들이란.”

[저놈 신벌 받는 거 아냐?]

 

나도 동의한다. 신관님에게 무례한 말을 하자 신체가 모셔진 신단도 꿈틀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도 나를 욕하는 게 보여서 욱할 뻔했네. 진정하자. 경찰을 주먹으로 치면 나는 유치장 간다. 저쪽도 화나 보이니까 돈도 넣고 진정시키고 가야 하겠네.

 

“가신다고 하니까 저는 들어갈 수 있죠?”

“아주 젊으신 탐정이시구만? 게다가 여자?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까 두고 보자고.”

 

두고 보시던가. 나는 콧바람도 안 뀌었다. 이렇게 말하면서 무능한 놈은 해변의 모래처럼 널려있다. 어차피 이번 사건은 자기가 해결 못 할 텐데 무슨 상관인가. 나는 놈의 말을 무시하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슬슬 채취 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왔다.

 

“채취는 다 했지만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럼 또 이계로 들어가서 보게? 도와줘?]

 

하. 짜증 나게. 하지만 원래 당일부터 며칠 동안은 절차상 출입을 금하는 게 맞기 때문에, 나는 비녀와 함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이번에도 이계 통로로 들어가야 하나. 어디 들어갈 수 있는 곳 없나? 그렇게 서 있다가 열린 문 안으로 창고를 들여다보았는데, 영기가 바로 느껴졌다. 사건이 발생한 지 별로 안 돼서인가?

 

‘아냐,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겠는걸.’

[아깝다. 조금 놀다 들어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순전 놀 생각뿐이잖아. 이 자식. 확실히 얘는 묶여서 정화 당했으면 더 날뛰었겠군. 내가 데려와서 다행이야. 나는 멀리서 영기를 더듬으며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놓여있던 단검을 던졌다. 그 누군가는 영기의 형상을 보니 하반신이 인간이라기보다 얇은 여러 개의 다리로 보인다. 그리고 그 단도는 갑작스럽게 요괴화 혹은 츠쿠모가미화 된 것 같다. 인간처럼 보이는 영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쭉 입구로 끌려가는 자국과 버둥거린 영기의 흔적. 이건 끌려간 거군. 안을 더 자세히 볼 필요도 없다.

 

나는 신관님에게 단도 생김새를 요청했고, 마지막으로 찍은 당시의 사진을 라인으로 건네받아 알아보고 연락드린다고 말씀드렸다. 더해, 물건은 내가 찾아볼 테니 만일 자기가 발견할 시에는 경찰에게는 누군가가 이미 빌려 갔던 거라고 말씀드리라고 전달했다.

 

그렇게 일단 신사를 나서기 전에, 나는 신사에 모셔진 신을 향해 300엔을 넣었다. 이 정도면 체면치레는 하셨죠? 내가 끈을 흔들자, 신사에 모셔지는 듯한 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진정하는 듯했다. 그래. 사고 치시지 마세요. 나는 그제야 신관의 배웅을 받으며 내려올 수 있었다.

 

드디어 집에 가겠군. 나는 버스를 타고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분명 처음 절에 갈 때는 해가 중천에 뜬 날씨였는데, 집에 갈 때가 되니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것 같았다. 하긴. 진짜 너무 힘들었다.

 

“나왔어.”

 

외출했었는지 교복이 아닌 옷을 입은 미사키 양이 내가 오자 바로 뛰어나왔다. 문 앞에 달린 화이트보드를 보자, 우리끼리 정한 당번이 차례가 보인다. 아, 오늘은 내가 저녁 당번이었구나. 너무 피곤해서 장도 못 봤는데.

 

“저녁 어떡할까요? 저도 방금 들어와서.”

“음, 나가서 먹을까?”

 

주말 없이 일하다 보니 이 일은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다. 처치 곤란한 건도 전부 깔끔하게 해결해줬더니 죽는 줄 알았다고 눈물 흘리면서 돈을 탈탈 털어주신 첫 손님 덕분이지만 말이다. 시각을 보니 아직 6시. 혼마루에서 정부안건서류 처리해놓고 가기 딱 알맞은 시간이군.

 

“잠깐 저쪽에서 처리할 게 있어서 갔다 오고 나가서 먹자. 그동안 이걸 소독솜으로 닦아줄래?”

[어어어? 어어? 소독?]

“대신! 오늘 초밥 먹어요.”

“그래그래.”

 

나는 신문지에 쌓인 비녀를 미사키 양에게 건넸고, 그녀는 초밥 먹는다는 기쁨에 젖어 비녀를 룰루랄라 받아갔다. 비녀에 있는 놈의 당황한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화이팅! 이라고 외쳐주며 방으로 빠지고는 바로 앱을 켜고 혼마루로 가는 통로를 열었다.

 

나는 작은 모습으로 후다닥 날아 들어가 미카즈키와 근시인 타로를 찾았다.

 

“미카즈키! 타로야!”

“네, 무슨 일이십니까?”

“이런, 이번에도 내가 필요하느냐.”

 

내가 부산스럽게 부르며 내 집무실 근처 휴식실로 들어가자, 그 둘이 각각 집무실과 휴식실에서 나왔다. 근시인 타로는 내가 자리 비운 사이에도 서류업무를 한 모양이다. 역시 성실한 아이이다. 내가 뭐… … 저지른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 일단 그 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니 접어두자. 타로는 내가 부르자 약간 상기된 얼굴로 수줍게 다가왔다. 칭찬을 바라는 듯한 모범생 모습으로 말이다. 흐윽! 죄책감이!

그와 다르게 미카즈키는 느긋하게 휴식실에서 꿀 같은 휴식을 즐겼군. 하지만 미카즈키에게 뭐라고 할 순 없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정부 관련 서류는 전부 처리하고 쉬는 것이다. 타로는 내 업무까지 대리하는 거지만 말이다. 난 둘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정부에 정보요청보고서를 써야 할 것 같아.”

 

이어 검의 사진을 내밀며 자초지종을 둘에게 설명했다. 내가 사는 현세에서 검 두 개가 실종됐다는 점. 시간소행군처럼 보이는 와키자시가 스스로 걸어 나갔다는 점, 그리고 단도 하나가 그 와키자시에게 끌려가서 행방불명이라는 점. 왜 하필이면 이 사건의 피해물건들이 전부 검이라는 점 등등을 내세워 내 주장을 펼치자, 타로는 곧바로 업무 모드에 들어가고는 알겠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서류를 준비하러 간 타로와는 다르게 미카즈키는 계속 와키자시 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오래된 검이니 뭔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뭔가 느껴져? 이상해?”

“그건 아니지만 말이다. 눈에 익숙해서 말이다.”

“혹시 아는 검이야?”

“내가 알기론… 호네바미 토시로와 비슷하구나. 하지만 새것처럼 보이는 게 복제품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뭐, 정확한 건 아니니 참고해서만 들어두렴. 일단 정부에게 보고서를 보내도록 하마.”

 

미카즈키는 그렇게 업무실로 들어가 타로와 같이 합동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타로는 첨부 보고서를, 미카즈키는 정부에 요청보고서를 적었다.

 

“이걸 전부 손으로 써?”

“음, 사실 안 그래도 되지만 나는 이게 편하단다. …그나저나, 시간이 늦었는데 저녁은 안 먹어도 되느냐?”

“아 맞다!”

 

나는 펄쩍 뛰어오르고는 둘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바로 전달할 업무를 적기 시작했다. 미사키가 초밥을 기대할 텐데 더 기다리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됐건 미사키 양은 최근 내가 정신없이 일할 때 집안일을 많이 도와줬다. 보호자 어른으로서 더 이상의 체면 구기는 일은 없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여러 지시사항을 전달한 후, 후다닥 혼마루를 나가 집에 돌아왔다. 집 안에는 내가 부탁한 데로 비녀를 소독을 다 한 채로 기다리는 미사키를 데리고 나갈 수 있었다. 봉납물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집안 가득했지만 일단 미사키에게 밥 먹이는 게 먼저잖니. 내 지갑에 현금과 카드는 장전되어있으니 가서 좋아하는 초밥을 잔뜩 먹이면 된다. 나는 봉납물과 가택신에게 집 잘 보고 있으라는 말을 전달한 후, 미사키와 함께 집을 나섰다.

 

초밥집은 미사키가 아는 곳이 없어 내가 인터넷으로 찾아 별점을 보며 찾은 후에야 들어갔다. 여행객이 잘 오지 않는 곳이어서 새로 이사 온 사람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총이 느껴졌지만, 미사키 양과 함께 들어가니 인사하며 맞아주었다. 뒤에서 귀신의 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쑥덕거리는 거 들어보니 뒤에서 뭐라 할지는 알만하다.

 

나는 생선 여러 종류를 못 먹기에 장어와 연어를 시켰고, 미사키는 그 사실에 놀라워하며 여럿 비싼 초밥을 시키기 시작했다. 시키기 전에 내 눈치를 보길래 내가 한동안 당번을 못 했으니까 마음껏 시키라는 말을 덧붙여서야 가능했던 거지만. 어차피 나는 해산물 잘 못 먹어서 괜찮다. 애나 잔뜩 먹이는 게 낫지. 우리는 카운터 좌석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나저나 사람이 그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 이렇게 바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며 구운 연어 초밥도 연이어 시켰다. 아주 두툼한 연어가 구워진 채로 내 앞에 대령 되고, 미사키 앞으로는 참치 초밥이 놓였다. 좋은 생선을 쓰는지 바로바로 회 뜨는 모습도 보였고, 실제로 너무 맛있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초밥이 연어와 장어뿐이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리고 아줌마가 해산물 못 먹는 것도요.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 그건… 한국에서 해산물 많이 안 먹고 자라서.”

“헤헤, 아줌마도 참. 웃겨!”

 

내 입맛이 아직 어른답지 않은 건 알고 있다. 근데 어쩌겠는가! 진짜 못 먹겠는걸. 나는 화제를 회피하며 이어 말했다.

 

“그나저나 학교는 어때?”

“저, 요즘에 친구가 생겼어요.”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은 완전 그 나이대 학생 같았다. 하지만 말에서는 그동안의 고생이 느껴졌다. 가문 내에서 받았던 냉대 때문인가? 하긴 그 정도로 가문 내부에서 말이 많았으면 밖의 사람들도 말이 많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나는 웃으며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요즘 아줌마가 잘 못 챙겨줬지. 필요한 건 아줌마 카드를 썼겠지만, 일단 이걸로 친구랑 쇼핑도 하고 놀러 다니렴. 모자라면 말하고.”

 

최소한 이게 보호자로서 할 일이 맞으니까. 요즘 바빠서 못 챙겨준 것이 마음에 내내 걸렸다. 카드는 내 명의라서 필요한 것 외에는 선뜻 못 썼을 것이다. 카드를 받아주는 곳이 큰 곳만 있기도 하고. 그래서 용돈을 건넸다. 미사키는 내 행동에 엄청 놀라 하며 이미 카드로 쓰고 있다고 절레절레 손을 저었다. 그러나 내 고집은 꺾을 수 없었고, 미사키도 슬슬 자기 물건을 많이 갖추고 싶었기에 내가 억지로 쥐여주자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저 나이대에는 적당히 애들하고도 놀 줄 알아야지. 외모만 저렇게 꾸몄지 속은 완전 여린 모범생이라 쉴 줄 모르는 게 신경 쓰였다. 이때는 놀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그리고 최근 두 주일 동안 미안함을 돈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으니 다행이야.

 

 


 

 

“긴급 안건입니다. 들어주십시오.”

 

타로타치는 주인이 넘긴 권한으로 1부대부터 4부대까지 한꺼번에 불러모았다. 남사들은 반복적으로 원정을 나가는 일정을 반복하고 있어서 이번 긴급호출이 즐거운 듯했다.

 

“1부대원들 전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에 전원 대기로 통신을 맡습니다.”

“그럼, 통신을 받으며 좋은 정보를 획득하길 기원하는 의식을 올리지.”

“네~! 통신을 맡습니다~.”

 

 

이시키리마루는 원정부대원들에게 하나하나씩 축복해주기 시작했다. 과연 이 혼마루의 상냥한 할아버지다. 이어 같은 대태도라인인 호타루마루는 손을 번쩍 들고는 가볍게 평소 말투로 대답했다. 역시 각자의 성격이 잘 보인달까. 한껏 느긋하다. 심지어 이들은 타로랑 같이 합을 많이 맞춰 타로의 말에 가장 협조적이다.

 

“그렇게 되었으니, 타 부대원들에게 이번 정보수집을 맡기지.”

“큰일이야, 이래선 멋이 안 나잖아.”

 

옆에서는 활약을 못 하겠다는 같은 부대의 남사 말이 들렸다. 미카즈키는 단지 온화하게 웃으며 다른 원정부대원들을 보았다. 나란히 서 있는 부대장들을 보면 신기하고 조금 웃기기도 했다. 하치스카 코테츠가 3원정대 대장, 미다레 토시로가 2원정대 대장, 센고 무라마사는 4원정대 대장이었다. 여기에 1부대장 타로타치를 더하니 아루지의 장발 미인 취향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상황을 방관하며 느긋하게 차를 홀짝였다. 그 와중에 타로타치는 아루지에게 단단히 묶인 듯하지만 나머지는 어떠려나. 아직 아루지가 취임한 지 별로 되지 않아 남사들은 묘하게 아루지를 인정하지 못하는 느낌이 남아있었다. 그건 본인에게도 해당하지 않는 말이 아니다. 물론 그는 이건 아루지 탓이 크다고 생각했다. 서류 업무 같은 일은 잘하지만, 성격이 너무 대충이다. 예를 들자면, 출진할 때도 ‘중상입고 오지 마라. 장비는 깨 먹든 말든 어차피 나보다 너희가 더 잘하니 알아서 해라.’라는 태도를 보이곤 알아서 잘하고 올 거라며 근시 근처에서 뒹굴고 있다. 남사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녀의 태도는 신뢰도를 깎아 먹는 문제가 있다. 다시 그는 다른 남사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각각의 표정은 불만이 있었지만, 대체로 단도들은 의견이 따로 없는 듯했다. 하긴 제 주인은 단도들을 단체로 귀여워하지 않았던가. 나머지 대원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당연한 감정, 원정 나가서 활약할 생각에 의기양양한 감정,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자신을 감싸 남의 시선을 받지 않으려는 남사 제각각이었다. 부대를 지휘하는 자가 성실한 타로타치가 아니었으면 남사들을 이리 다루긴 힘들었겠지. 그는 다시 차를 홀짝였다.

 

“그럼 명상의 시간을 좀 가질까.”

“출진 준비하며 통신을 맡으라는 거잖아!”

 

대놓고 놀겠다는 발언에 하치스카가 버럭 소리 지르며 딴지를 걸었다. 그에 야마부시가 캇캇캇 웃어대자, 하치스카는 한숨을 쉬고 무시하며 자신의 부대를 점검했다. 3부대는 혼마루에 처음 입성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남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야만바기리, 카슈, 카센, 거기에 야스사다를 더한 부대. 타도들로만 구성된 이 부대는 사람 많은 곳에서 밀정하고 올 것이다. 미다레 토시로도 그 모습을 보고 단도들을 향해 “집합! 우리도 점검하자!” 하며 2부대원들을 모았다. 2부대원들은 전원 단도 남사들로 마에다, 고코타이, 사요, 야겐, 하카타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로 오래 같은 부대로 나갔는지 서로 갑옷을 점검해주고 꽁꽁 동여매는 모습이 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동작들이라 믿음직해 보였다. 이들은 전쟁터 정찰과 은폐를 위주로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서 그들을 훑어보는 자는 4부대 대장은, 센고 무라마사다. 외모로써는 가장 못 믿음직한데도 아루지는 마지막 4부대 대장으로 센고 무라마사를 임명했다.

 

“huhu, 우리도 질 수 없지요.”

 

그는 요도답게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부대원들을 점검시켰다. 이즈미노카미, 도타누키는 이미 신이 나서 몸을 풀고 있었고, 톤보키리는 이미 준비를 완료했다. 히게키리와 그의 동생 히자마루도 별 의견이 없는 듯 출진 준비를 완료하고 무라마사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요도전설을 쓸 시간입니다.”

 

그는 눈을 번뜩였다. 이번 주인은 센고 무라마사에게 꽤 호의적인 자였다. 심지어 다른 남사의 눈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을 4부대 대장으로 임명한 자. 자신의 성격을 몰라서 생각 없이 정한 것 같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조금 달랐다. 옷을 벗어 날뛰고 싶으면 원정에서 영력의 힘을 키워오라는 배려였지. 그런 무조건적인 믿음과 배려에는 실적으로 답하는 게 맞을 것이다.

 

1부대 제외 모든 부대가 준비를 마치자, 타로타치는 대장들을 불러 아루지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3부대는 세이죠 작전(4-2) 쪽으로 출발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눈에 띌 것입니다. 이어 2부대는 미노국 결전(3-1)으로 가서 이상이 없는지 정찰 부탁드립니다. 다음으로 4부대는 교호 대기근(2-3)으로 가서 조사 부탁드립니다.”

 

타로타치가 가야 할 곳을 지정해주자, 미다레가 그에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했다.

 

“타로타치, 있잖아, 임무가 우선이야, 정보가 우선이야?”

“정보입니다. 임무는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허가를 하시고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만일 아무것도 발견 못 하면 비슷한 시기의 다른 원정으로 나가도 되는지 말해줘.”

“허가합니다.”

 

부대장마다 타로타치에게 질문을 던졌고, 근시로서의 재량과 아루지가 명령한 것을 통합하여 결정을 내렸다. 과연, 이 혼마루의 타로타치는 유능하다.

심지어 출진하지 못하는 남사들에게는 역사를 달달 외우게 시키거나 당번 일 대타를 지정하는 등의 일을 부여했다. 이 혼마루에서 타로타치가 아루지를 짝사랑하는 것을 남사들 전원이 모르지 못할 정도로 아루지의 업무처리와 비슷했다. 정보를 수집해 빠른 속도로 합당한 결론을 내리거나 다른 남사의 의견을 물어 바로 처리해버리는 것이 특히 그렇다. 사랑할수록 상대를 잘 관찰하게 되는 일은 당연하고, 아무래도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영향으로 비슷하게 따라 하는 것이겠지.

 

결과는 시간에 달렸다. 이 늦은 밤, 나가는 남사들 손에는 빈 활명수 병이나 비타민 음료병이 들려있어 출진하지 않는 남사들이 병을 받았고 분리수거 통에 병이 놓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딱 다녀온다!”

“우와, 좋겠다~.”

 

이런 말을 하는 남사는 4부대 예비 부대원 시시오였고, 히죽이며 나가는 이즈미노카미와 도타누키를 부럽다는 표정으로 배웅했다. 미카즈키는 그리 나가는 4부대의 부대장을 잠시 불렀다.

 

“무슨 일이지요?”

“하나 부탁할 게 있네만.”

 

미카즈키가 그리 무라마사에게 언질을 줄 때쯤에 사리카는 남사들이 밤새 많이 고생하지 않기를 빌었다.

 

 


 

 

사리카는 오랜만에 잠을 제대로 잤다. 최근 이 주 동안 업무에 쫓겨서 잠을 많이 못 잤기 때문에 길게 잤다지만, 중간에 깨서 미사키의 도시락을 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어제 돌아온 길에 마트에 들려 회와 이것저것 주워서 돌아왔기 때문에 재료 문제는 전혀 없었다. 연어를 굽고 빠개서 만든 연어 주먹밥과 이것저것을 넣어주며 오늘만은 미사키가 집안일에 신경 안 써도 되게 움직였다. 물론, 룰루랄라 등교하는 미사키를 보고 다시 방으로 가 쓰러져 잠만 잤다.

 

한낮에 다시 일어나니 드디어 몸을 움직일 만했다. 이것저것 집 안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몸도 풀고 나서야 작은 모습으로 혼마루에 입성했다.

 

“왔다! 아루지 죽는 줄 알았다!”

 

기쁜 마음에 혼마루에 들어오니 남사들은 초주검 상태였다. 밤새 돌아다니던 부대 소속 남사들은 침대에 엎어져 있었고, 1부대원들만 돌아가면서 잔 듯 멀쩡했다. 심지어 침대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방에 엎어서 자는 남사도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힘들어 누워있는 휴게실에 카슈나 야만바기리 같은. 얘네들도 잠이 부족했구나. 근데 어쩔 수 없는 게 긴급 사안이지 않았나. 안쓰러운 마음에 그들에게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었다.

 

그 와중에 근시인 타로타치가 사리카를 발견했다. 그는 발그레 올라온 볼의 홍조를 숨기고 다가와 보고했다.

 

“보고드립니다. 현재 4부대가 출진한 에도시기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그래? 다른 남사들은?”

“휴식 중입니다.”

 

정확히는 자는 중이 맞으나 이미 앞에 쓰러진 남사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아루지에게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사리카는 타로에게 보고서를 건네받았다.

 

미카즈키의 추천으로 4부대는 교호 대기근 2-3을 정찰하고 가역 인부집합소 2-2로 출진을 요청받았으나 교호 대기근 2-3에서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역수자들이 분포되어 있어서 정찰 후 퇴각. 가역 인부집합소 2-2는 시간이 남던 3부대가 출진하여 확인하니 똑같이 이상할 정도로 역수자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각자 보고서의 문체는 전부 달랐다. 앞장은 유려하고 잘 빠진 문자였으나, 뒤는 딱딱하고 인쇄된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정자, 밑의 이상이 없다는 귀여운 문자와 함께 하나마루 모양이 보이는 거로 보아 미다레가 마지막에 작성했나 보다. 사리카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남사들 수리방에 갈 정도로 다친 애는 없지?”

“없습니다. 바로 빠졌으니까요.”

“시간 정부의 보고서는?”

 

그녀가 그 말을 하자마자 미카즈키가 그 둘을 발견하고는 느긋하게 다가와 말했다.

 

“자아, 보고도 좋지만, 사니와 업무실에서 들어가 받으려무나.”

“이잉, 귀찮아.”

 

사리카는 미카즈키의 말에 반색했으나, 휴게실에서 자는 남사들을 방으로 옮기는 이시키리가 넌지시 말했다.

 

“보고 받는 체면치레는 중요한 것이란다. 업무실에서 받으렴.”

“에엑, 이시키리까지.”

“이런, 아루지 편을 들어줄 거로 생각했구나. 하지만 장소를 지정해서 업무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단다.”

 

바쁠수록 말이다. 라는 말을 덧붙여주며 사리카를 업무실로 가서 처리하라고 설득했고, 사리카도 나름 그가 왜 그리 말해주는지 이해했기 때문에 터덜터덜 사니와 업무실로 걸어 들어가 앉았다. 그제야 제대로 된 보고가 시작되었다.

 

“자, 그럼 정부에게서 온 답변을 읽어주마.”

“응.”

“해당 연도에서 역사의 개변 시도가 포착되었다. 시기는 에도시대로의 개입. 첨부한 단도는 도검 남사로 해당하는 검이 없으나, 분체를 억지로 끼워 넣은 정황으로 추측된다. 와키자시는 호네바미로 추정되며, 각 교호 대기근 2-3과 가역 인부집합소 2-2에 개입한 모양이다. 교호 대기근은 상대적으로 가역 인부집합소보다 소행군의 숫자가 적은 편으로. 어느 쪽이 와키자시가 맞더라도 함정일 수 있는 상황이다. 필히 조심하기 바란다. 추가로 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며 각기…”

“각기?”

 

미카즈키는 보고서를 읽다 난색을 표했다. 여유로운 표정의 그가 이런 난감한 표정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사리카는 날아가 보고서의 글자를 바라보았다. 글자가 어렵진 않았다.

 

“내 이름이 쓰여 있네.”

“예?”

 

타로타치 또한 뒷말을 기다리다가 사리카의 말을 듣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사리카는 오히려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하는 남사들에게 한자를 못 읽겠다고 다시 떠넘겼다. 미카즈키는 아까보다는 작은 목소리로 마저 읽었다.

 

“타타리가미 사리카의 힘이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하였으며, 최초의 약조대로 해결을 부탁드립니다.”

“음.”

 

사리카는 작은 모습으로 점 같은 눈을 감으며 팔을 엇갈려 얹어 근엄한 척을 했다. 그래봤자 하찮음만 더해질 뿐이다. 옆에는 보고서를 가져온 콘노스케가 뛰어왔다.

 

“임명 당시 부탁드렸던 일이네요.”

“근데 왜 아루지의 힘이 역수자들이게.”

“대충은 예상이 가.”

 

사리카는 눈을 뜨며 말했다. 내내 생각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아이에게 내 조각을 건네주었다. 물론 그 조각의 힘으로 일으킨 것일 수도 있으나,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어떠한 ‘확신’이 들었다. 특히 자신의 영혼이 합쳐졌을 때 있었던 그 자동차 사고. 그게 과연 우연일까? 혼마루의 사니와가 된 이후로는 그 사건과 사니와가 된 정부의 결정과 뭔가 연결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콘노스케는 알고 있을 법했으나, 그에 관련되어 입을 열지 않는 모양새를 보니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귀여운 근시와 매일 아루지 놀리기에 바쁜 미인 할아버지에게는 말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니와 임명받을 때 내 조각을 건네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적으로 있으니 와서 힘써주길 바란다고 했어.”

“이런, 그런 말은 빨리해줘야 한단다.”

 

미카즈키가 사리카를 타박하자, 사리카가 잘못했다고 가볍게 인사했다. 사실 사리카의 잘못은 말하지 않은 것뿐이겠지만 말이다. 그때 타로타치가 정색하며 아루지에게 되물었다.

 

“잠시만요, 그럼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가?”

“조각이라면, 영혼이 쪼개어진 것입니까?”

“... 헤헤?”

 

타로타치가 정색하며 되묻자, 사리카는 그제야 자신이 뭔 말을 시인했는지 알아챘다. 보통 인간의 영혼을 쪼갠다는 뜻은 죽는 것과 같다. 신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신이라고 해도 그건 아주 위험한 짓이다.

 

“아루지!”

“아냐 아냐, 나 진짜 괜찮아! 그럼, 우리 대기근으로 출발해볼까? 애들 상태가 괜찮으면 지금 바로 1, 2부대만 데려다가 가자.”

“그럼 아루지는 혼마루에 계십시오.”

“안돼. 그럼 긴급 상황에 대비 못 해.”

“아루지.”

“난 생각보다 강하단다.”

 

타로는 아루지를 끔찍이 여겼다. 하긴 생에서 겨우 두 번째 주인이고, 한참 봉납 되다가 겨우 맞이한 주인이 아니던가. 미카즈키는 둘을 유심히 관찰했다. 한쪽은 그래도 초반에는 아루지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니, 순식간에 다른 한쪽이 그걸 휘어잡았다. 저렇게 사람을 잡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이다. 심지어 이 작은 주인은 지금까지 봐왔던 옹고집 중 가장 옹고집이다. 어차피 타로는 그녀의 고집에 무릎 꿇겠지. 원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게 사랑 아니던가.

 

“정말 이번 아루지는, 심보가 고약한 말썽꾸러기로구나.”

“난 할배가 더 고약하다고 생각해.”

“어허, 정말 심보가 못됐구나.”

 

타로타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미카즈키는 쉽게 수긍했다. 애초에 정부에서 직접 언급할 정도라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

 

“하지만…”

“하하하, 정부에서 직접 언급할 정도의 사니와다. 믿어주렴.”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루지의 실력을 가장 믿지 않는 자는 미카즈키 본인이라는 것을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교호 대기근. 서일본으로 시작한 대규모 기근으로 소빙하기로 추정되는 시기에 계속되는 비와 냉해 등으로 수확 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까지 발생하여 사람들이 많이 아사하는 사건 중 하나이다.

 

저 멀리 사람들 사이로 먹을 것이 없어 가진 자들의 것이라도 빼앗고자 단검으로 재물을 약탈하는 굶주린 자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사이에 뱀같이 몸을 꼬며 날아다니는 흉흉한 단검과 그 주위의 시간소행군들이 대거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대부분 단도와 협차들이라 속도는 단도 부대가 보완해주면 된다. 사리카는 이시키리마루의 말에 훌쩍 올라탔다.

 

“이런, 내 말에 타는 거냐?”

“타로가 화났어….”

“저런.”

 

위험한 데도 굳이 굳이 출전하는 사리카의 모습에 타로는 드물게 아루지를 향해 화를 다 숨기지 못했다. 걱정되는 거야 알겠다만.

 

“뭐, 내가 가장 기동이 느리니 굳이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단다. 아루지를 아끼는 타로로써는 이게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지.”

 

이시키리는 이번 아루지에 대해 딱히 불만이 없는 타입이었다. 모양새는 안 좋아도 사과할 때는 확실히 하고, 일 처리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루지로써 인망이나 일머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자신한테 남사들 중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고 혼마루 순찰도 부탁하지 않았던가.

 

“기동력으로 기죽지 마! 더 빠를 수 있다고 생각해!”

“기는 딱히 죽지 않았다만….”

“후딱!”

“이런, 보채지 말거라.”

 

가끔 이렇게 보채는 것 외에는 정말 그는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의 앞에는 저기 빠르게 달려가는 단도 부대와 그 뒤를 따르는 태도 미카즈키와 쇼쿠다이키리, 야마부시가 길을 뚫고 있었다. 그 바로 뒤에서 말을 탄 호타루마루와 타로타치가 대태도를 휘두르며 순식간에 시간소행군들이 타격을 받고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사라졌다. 이시키리가 휘둘러야 할 순간은 별로 없었다. 간혹 넘어오는 잔챙이들을 쳐내는 것일 뿐.

 

바로 앞만 해도 이런데, 돌진하며 길을 뚫는 단도 부대는 더 신나게 날뛰고 있었다. 달려오는 말과 남사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고, 시간소행군들은 남사들을 쳐다보았다. 가장 놀란 것은 사리카를 보자마자 정확히 사리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지성하게 각개전투로 남사들과 싸우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이시키리가 놀랐으나, 그 앞에 있던 타로타치와 호타루마루가 대태도로 쳐냈다.

 

“내 일격은 폭풍과 같이!”

“짜안~ 필살기지요!”

 

사리카는 고개를 들어 시간소행군을 바라보았다. 타로와 호타루가 잘 쳐 내준 덕분에 신사에서 잃어버린 것 같던 단도를 멀리서 쳐다보았다. 몸을 기묘하게 꿈틀거리는 뱀과 같은 저 뼈가 멀리서 상식 외로 큰 몸뚱어리로 똬리를 틀어 사리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고싶어죽고싶어이런고통속에서살고싶지않아]

 

입에서 나오는 말과 몸의 움직임이 다르다. 심해와도 같은 검은 영기가 단도를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놓고 있었다. 저건 사리카의 영기와 비슷하지만, 너무나도 더러워 부정이 끼어있었다. 이런 기운을 상대가 쓴다는 건가. 이시키리는 말을 몰며 적의 대장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단도가 뱉는 절망적인 소리와 부정적인 기운을 가까이 마주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영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력이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리카와 달리 다른 남사들은 태연히 단도와 대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다가갈 수는 없는지 멈춰서자, 이시키리 또한 멈춰 섰다.

 

작은 모습을 유지하던 사리카는 말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다른 남사들도 저 기운에는 함부로 다가가지 못해서 멈춘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시키리에게 자신을 내려달라고 부탁하자, 이시키리 또한 말에서 내려서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말에서 내린 건 이시키리와 다시 원래 모습을 한 사리카뿐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공격할까?”

“안돼. 기다려.”

“네, 네.”

 

쇼쿠다이키리는 두 손 두 발을 들면서 아루지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 상황에서도 ‘이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언젠가 이러다 크게 당할 텐데.’ 하며 걱정하는 모습이 그다웠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사리카는 언령을 써서 적에게 질문을 넘겼다. 그에 이시키리는 조금 놀랐다. 영력이 높다고는 들었지만, 언령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인간은 오랜만에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없어.]

[너의 원 願은 무엇이냐.]

 

계속해서 그녀가 끈질기게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동시에 쓸데없이 대답을 생각하는 척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말에 힘을 담아 언령으로 상대를 옭아맸다. 저런 사용방법은 처음이라 미카즈키도 감탄했다. 제법 솜씨가 좋지 않느냐는 등의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 고통으로 벗어나는 것…. 이 고통이 왜 오는지 아는 것. 괴로워, 괴로워….]

[너의 고통은 무엇이냐.]

 

남사들은 다들 그 대답으로 부정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부정을 공격해서 끝내는 것으로 깔끔하지 않은가. 그래서 다들 칼을 고쳐잡았다. 말이 나오면 바로 베어버릴 수 있게 말이다. 특히 신검으로 사용되는 타로타치는 저 말을 듣고 바로 칼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허나, 이시키리마루는 무언가 맘에 걸려 말에 타지 못했다. 저 단도의 영력이 매우 불안했다.

 

[사는 것.]

 

역시나 대답과 함께 영력이 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부풀린다. 이래서 불안하게 보였던가. 이시키리는 아루지의 앞으로 다가가 막았다. 이윽고 단도는 자신의 몸을 한껏 부풀리며 다시 한번 더 대답한다.

 

[존재하는 것.]

 

이런 걸 벨 수 있을까? 이시키리마루가 사리카 앞에서 칼을 고쳐 들며 다가오는 영력을 자르고 있을 때, 사리카의 입이 열렸다.

 

[그 고통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

[왜? 그건 왜지? 당신 때문에? 내 몸에 두른 이 힘 때문에?]

 

마치 고양이가 털을 세우는 거 마냥 뼈를 부풀어 세웠다. 이 이상 위험하다고 판단한 남사들이 칼을 휘두르지만 헛칼질이었다. 무슨 깡패 같은 힘인가. 이 이상 언령을 지속하는 건 위험하다. 더는 남사들도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조금씩 남사들의 옷이 찢기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버틸만하지만… 타로타치가 그녀를 부르며 적어도 그녀가 피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의 아루지인 사리카는 퇴각명령을 내리지 않고 가만히, 단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가 괴로운 것은, 네가 존재하고자 해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존재하지 않으면 괴롭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순 없지. 나는 사후에도 괴로웠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어찌하냔 말이냐? 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냔 말이다!!]

 

이무기처럼 입을 벌리며 쩌렁쩌렁 말하는 용태가 심상치 않다. 놈의 기운이 점점 붉은 빛을 띠고 있는 기세는 남사들을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미카즈키는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은 굳건한 표정으로 상대와 맞서고 있었다. 옹고집인 그녀가 절대 물러서지 않을 줄 알았다만, 이 정도로 대항하기 어렵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뭐,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스러져버리면 그만인 삶. 적당히 고집을 부리는 게 좋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아루지를 지키다 부서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 일이다.

 

[고통보다 더 큰 것을 찾으면 벗어날 수 있다.]

[더 큰 것?]

[너는 분명 너의 원 願이 고통과 관련되어있다고 말했지. 하지만 아닐 것이다. 다시 묻겠다. 너는 ‘무엇’이냐.]

 

미카즈키는 다시 눈을 떴다. 확실히 그녀의 언령과 내용에 놈은 크게 동요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회색의 부정한 기운이 거의 단도와 합쳐져 뱀처럼 입을 벌렸건만, 지금은 점점 두 개의 힘이 분리되고 있다.

 

[나는… 단도.]

[그래. 신사에 모셔지던 검이라고 했다. 그럼 네가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하느냐?]

 

그에 신검인 타로타치와 이시키리마루가 순간 동요했으나, 정말 찰나의 일이었다. 그들은 다시 검을 고쳐잡았다. 지금 공격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던 그들 사이로 다시 단도에서 확연히 두 힘이 분리되고 있었다. 그리 드러난 정순한 기운의 모습은 아주 작았다. 잘못하면 파괴될 수 있는 아주 미숙한 기운의 영혼.

 

[신사에서… 줄을 끊었어.]

[그래. 안 좋은 것을 끊는 의식을 했구나. 그다음에는?]

 

사리카는 그리 말하고 이시키리마루 옆으로 뛰어갔다. 지금이 승부수를 걸 지점이다.

 

“지금으로부터 삼 문답 대답이 끝날 때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해.”

“방법이 있느냐?”

“지금부터 내 힘의 일부를 직접 이시키리마루 검체에 불어넣을 거야. 입은 상처가 심해질 수 있는데, 괴로워도 타이밍 맞춰 휘둘러. 알았어?”

 

뭐 이런 주인이 다 있나. 이시키리마루는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는 다 어떻게 해볼 만한 능력이 있었다.

 

“꼭 내가 해야 하는 것이냐?”

“이시키리마루가 좋지. 오래된 신검일수록 병마처럼 살아 있는 것에 달라붙은 부정만 자르는 것에는 능숙할 테니까.”

“이런 이런, 나를 너무 믿는구나.”

 

사리카는 이후 대답을 듣지 않고 이시키리마루 본체에 자신의 힘 일부를 불어넣었다. 그 순간 이시키리마루는 용오름 하는 바람 속을 칼 하나로 헤집는 느낌이 들었으나, 굳건하게 버텼다.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믿는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을 ‘신검’으로써 믿어주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나를 향해 종이를 문질렀어.]

[의식해줄 정도로 너는 귀한 존재였구나.]

 

사리카가 외치듯 언령을 외쳤다. 이로써 언령의 삼 문답이 완성되었다. 세 가지의 문답을 주고받음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윽고 한 단계 높은 영혼으로 완성된다. 서서히 미숙한 영혼이 조금씩 하나의 영혼으로 완성되기 좋은 모양새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부정함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걸 전부 털어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병마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 기운을 뗄 수 있게 그 자신이 도와줘야 한다. 이시키리마루는 있는 힘껏 날을 하늘 위로 향했다. 검에 넣은 주인의 힘으로 인해 몸 하나하나가 울렁이며 터질 듯이 괴로웠으나, 삼 문답을 주도하며 오래 언령을 썼을 아루지만큼은 아니니라. 그는 눈을 감고 용솟음치는 바람의 흐름을 읽었다. 읽어야만 때에 맞춰 다를 수 있다.

 

[... 귀했구나. 나.]

 

이시키리마루는 이내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를 내며 단도의 부정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검에 휩싸인 바람은 그걸 타고 하나의 무형의 칼이 되어 부정한 힘을 잘라버렸다.

 

 

성공이다. 이무기처럼 커져 있던 소행군의 몸은 이시키리마루가 내지른 검기에 풍선 터지듯 찢어졌다. 그 사이 소행군에게 들려있던 단도는 하늘에서 툭 굴러떨어지며 사리카의 발치로 미끄러져 왔다. 그에 사리카는 단도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잡아 자신의 품속에 넣었다. 하지만 신검으로써 검을 휘두른 이시키리마루는 찢어진 그의 옷이 신경 쓰지도 못한 채, 뒤로 넘어졌다.

 

“너무한 주인을 들인 것 같구나.”

“주인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아루지면 돼. 아루지면.”

 

사리카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은 이시키리에게 투덜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이시키리마루나, 사리카나 서로 요번처럼 합을 맞추는 것은 처음이고 서툴렀지만, 결과가 좋았다. 그는 다른 남사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미카즈키는 이시키리마루를 놀란 듯이 쳐다보고는 다행이라는 듯이 웃었으나, 그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렇게 해결될지 몰랐던 것이지. 타로타치는 아루지의 안전에 한숨 돌렸지만, 그녀와 합을 맞출 기회를 가진 이시키리마루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다른 남사도 타로타치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 와중에 전과 같이 평정을 유지하는 건 호타루마루 정도인가. 이시키리마루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단도들 앞에서 속 편하게 단도 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잖아? 그치?”

“아루지상 다이스키!”

“나도오!”

 

달려오는 미다레 토시로의 말에 인간 모습으로 늠름하게 서 있던 주인은 어디 가고 작고 주접부리고 위엄 없는 아루지가 되어 폴짝 미다레에게 안겼다. 뭐, 엄청나게 잘 해결했는데 느낄 새도 없구나. 하지만 어린 단도도 위험에서 구출해냈으니, 반은 해결이다. 문제는…나머지 하나군.

 

부대원들은 일단 귀환하고 정비 후, 다음 가역 인부집합소 2-2로 출발하기로 했다.

 

 


 

정비실에서 사리카는 도움패를 내밀며 많은 요괴를 부르며 1부대를 치료하게 했다. 겨우 경상이라고 투지를 불태우던 야마부시도 있었으나, 다음 장소는 소행군도 소행군이지만 화마가 즐비한 장소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할 순 없다는 의견에 따라 무시되었다.

 

방금 아루지와 합을 맞춘 것을 본 1부대원들과 2부대원들의 사기가 꽤나 고무적이다. 하치스카는 그런 남사들을 이해 못 한다는 듯이 쳐다보았으나, 이내 무시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보고했다.

 

“와중에 우리 3부대는 정찰을 따로 하고 왔어. 적이 그 전보다 더 불어나 있어.”

“큰일이네. 불도 장난 아닐 텐데.”

“내가 보기엔 4부대원에 추가로 임시부대와 같이 출전하는 게 좋겠어. 영력의 강함은 둘째치고, 일단 불을 어느 정도 잡아야 다가갈 수 있을 테니.”

 

사리카가 이 사건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갑을 못 잡자, 하치스카가 진심 어린 충언을 했다. 이 말은 상당히 이성적인 판단이라, 타로에게 시켜 영력의 강한 순서대로 추가 6명을 올려 짜달라고 부탁했다. 하세베, 나마즈오, 시시오, 모노요시, 닛카리, 오오쿠리카라가 그 후보군으로 선발되었다. 이때, 타로는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고, 혼마루는 누가 지킵니까?”

“... 불하고 관련된 검 전부 빼자.”

“그럼, 나도 쉬게 해주려무나. 방금 무리한 것 같아서 나아도 나은 것 같지 않으니.”

 

그래서 나마즈오와 이시키리마루,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빠졌다. 물론 쇼쿠다이키리는 사기가 충분히 오른 터라 반발이 있었으나, ‘혼마루를 지켜줄 믿음직한 남사가 적어서…’ 라는 사리카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남기로 했다.

 

“음… 임시부대는 너무 처음 나가는 애들만 구성하지 말고 조금 부대를 바꾸자. 나가 본 남사가 임시라도 부대장도 잘할 것 아냐. 그리고 애들을 더 뽑아서…”

 

사리카는 타로가 쓴 부대에 추가로 더 수정하여 최종적으로 부대를 좀 바꾸었다. 1부대의 빈자리에는 하세베와 카슈 키요미츠가 들어갔다.

 

“1부대? 정말?”

“그래. 임시지만.”

“충정으로 모시겠습니다.”

 

카슈가 빠진 3부대에는 닛카리와 모노요시가 들어가고, 야만바기리가 임시부대로 빠졌다. 4부대도 톤보키리와 히자마루가 임시부대로 빠지고 호리카와와 시시오가 투입된다. 2번대는 단도특수부대니 특별히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임시부대에 추가로 아키타 토시로와 오오쿠리하라, 무츠노카미가 들어갔다.

 

“괜찮을까? 오오쿠리하라는…”

“괜찮습니다. 위기 순간에는 잘 도와주니까요. 무츠노카미가 있으니 빠지는 남사가 없는지 잘 확인할 것입니다.”

“오옹~! 맡겨두라구잉!”

 

요번에 드디어 실전 투입되는 무츠는 손을 번쩍 들며 파이팅을 넣었다. 저 정도의 구김살이면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리카는 무츠에게 한 번 더 부대원들이 흩어지지 않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고, “으하하! 걱정도 팔자인겨! 걱정 붙들어먀!” 라며 아루지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메이레키 대화재 장소에 온 남사들은 거대한 화마에 일차적으로 당황했다. 물을 뿌리며 불을 잡는 것도 한계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비명을 지르며 나오는 사람들과 아비규환인 거리 상황이다.

 

‘어리석었어.’

 

이래서 책상공론이 안 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리 대비하면 된다고 생각해두고 배치까지 완료했건만. 화마에 대한 무서움을 배우지 않은 남사들이나 그녀 자신 또한 이리 위축되는데, 화재를 겪은 남사들은 어떨지 상상도 안 갔다. 그냥 나마즈오를 안 데려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화마와 같이 불 속을 걷는 거미처럼 있는 거대한 저 와키자시 소행군. 화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데 왜 저리 거침없이 걷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단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게 우선이다. 사리카는 작은 모습을 해지하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이다. 우리는 불을 끄러 온 것이 아니니까. 서서히 나타나는 시간소행군이 대피시키는 사리카를 향해 공격하기도 해서 미카즈키가 한소리 하면서 구하기도 했다. 미카즈키는 사리카를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한 번 가렸다.

 

“정신을 차리거라. 우리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

“알아, 알고 있는데!”

“우리는 남사를 구하러 온 것이다. 잊지 말렴.”

 

미카즈키는 그녀의 시야를 가렸던 손을 떼었다. 확실히, 예정된 비극을 막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역사개변이겠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화마 속에 숨어든 소행군들이다. 미카즈키의 차가운 손길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 알았어.”

 

그가 손을 떼주자, 사리카는 다시 뇌를 재시동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와키자시, 호네바미 토시로의 구출이다. 불을 번지게 하는 시간소행군을 잡는 것이 먼저다. 사리카는 부대를 다시 불러모았다.

 

“이렇게 하면 끝도 없을 거야. 전처럼 부대를 다시 짜자.”

“여기서 말입니까?”

“무립니다. 주군.”

“그렇게 많이 바꾸는 게 아니라 진을 바꾸는 거야. 불에 강한 단도 두 명이 1부대 바로 앞에 두 명 자원 받을게. 계속 둘이 돌아가면서 물이나 바람으로 길을 빠르게 뚫어줘. 나머지는 따라오며 불타 떨어지는 물건을 베거나 예상치 못한 불길에 대비해줘.”

 

사리카가 그리 말하며 2부대를 바라보자,

 

“맡겨주시라! 속도는 자신있당께.”

“하카타 다음으로는 대장인 내가 가장 빠른 걸!”

 

호기 좋게 미다레와 하카타가 대답했다. 2부대의 나머지 남사들은 자신감이 적었지만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리카는 그다음 1부대와 4부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미다레와 하카타 뒤에 타로타치와 나. 그리고 양옆에 발이 빠른 미카즈키와 히게키리가 엄호, 후방은 하세베와 카슈가 불이 퇴로를 막지 않게 경계하자.”

“허메. 기동 빠른 애들만 전부?”

“그래. 지금 빠른 애들은 이 정도지? 이건 내가 [창槍진] 이라고 자주 말하는데, 이리 돌진할 거야.”

“이런 돌진 형태라니, 그대로 가는 건 위험해!”

 

타로타치가 뭐라 하기도 전에 하치스카가 반대했다. 그러다 사방이 불길로 막히면 어쩌라는 건가. 사리카는 하치의 걱정도 이해했다. 그래서 덧붙여서 말했다.

 

“절대로! 괜찮아.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하세베와 카슈 뒤에 따라와도 돼.”

 

분통이 터진 듯한 얼굴로 결국 하치스카가 수긍했다. 사리카는 다시 작은 모습으로 타로 앞에 말을 탔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번에 타로가 나랑 합을 맞출 거야. 단숨에 녀석 앞으로 가서 검을 잡을 준비해.”

 

사리카는 진지한 얼굴로 뜻을 전하고는 타로 품에 폭 달라붙었다. 정말 조금 전까지 명령을 내리던 늠름한 주인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분명 전 장소에서 단도를 구할 때도 이런 모습을 비치고는 바로 위엄을 없애셨지. 아무래도 이건 주인이 추구하는 ‘도道’일 테니 그 건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분명 조금 전에 이시키리마루와 합을 맞추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자신과도… 투지가 끓어올라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호네바미로 추정되는 소행군이 화마를 집어삼키며 커졌다. 그리고 몸을 불리게 하는 저 힘은 확실히 사리카의 힘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건 그녀 자신이 반드시 개입해서 구해내야 한다. 그리 생각하며 창槍진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진의 시작이다.

 

불탄 거리를 누비었다. 그 와중에 스러지는 소행군들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이번 사태로 미루어볼 때, 저 아이들도 누군가의 남사들이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이런 곳에서 스러질 남사들이 아닐 텐데.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남사들이었을 텐데. 그렇기에 하나하나 눈에 새기었다. 저 아이들의 마지막은 주인에게 닿지 않을 것이니까.

 

그때 몸을 불리는 대장 와키자시가 정확히 사리카를 바라보았다.

 

[찾았다.]

 

돌진하던 남사들이 한기를 느꼈다. 신기하기도 하지. 주변은 전부 화염에 휩싸였는데 한기를 순간 느끼다니. 설마 저 녀석은 그녀가 이렇게 돌진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우리들의 왕이다! 우리들의 왕이 될 자이다!]

“뭐?”

“헛소리를!”

 

주변 곳곳에서 반발이 튀어나왔다. 그제야 사리카는 타로 품에서 떨어져 그를 바라보았다. 흉흉한 눈과 풀어헤친 머리. 주인을 찾지 않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선동에 휩쓸려 점점 눈처럼 불어나는 소행군이 돌진하는 부대를 덮쳤다.

 

“타로, 던져!”

“무엇을 말입니까?”

“나를!”

 

상상도 하지 못한 명령에 타로가 당황했으나, 사리카는 더 고민할 겨를이 없다고 자신을 들어 던지라고 했다. 옆에 있던 미카즈키나 히게키리도 이게 무슨 명령인지 이해 못 해 소행군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이런, 너무 수가 많구나. 웃을 때가 아닌가.”

“이 이상은 무리야.”

 

보조하던 미카즈키나 히게키리도 손을 들 정도의 많은 소행군이 사리카 쪽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더 지체했다간 화마가 이쪽을 덮치리라. 결국, 그 찰나에 수많은 저울질을 하던 타로는 자신의 주인을 화마에서 탈출시킨다는 명목으로 사리카를 멀리 던졌다. 던져진 쪽으로 소행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뒤에서 사리카를 엄호하던 부대들이 그들을 따라가 베기 시작했다.

 

“놓치지 않아!”

 

히게키리의 그 말 바로 직후, 주인이 작아서 공처럼 날아가던 방향 쪽에서 소금 냄새가 날라왔다.

 

“소금?”

 

동시에 처음 보는 강한 영력과 대량의 물과 휘젓는 바람이 소행군을 날아가는 나무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똑바로 서 있는 것은 바로, 평소와 다른 모습의 주인이었다.

 

처음 보는 옷이었다. 안은 붉은색 기모노 같기도 했으나, 기모노치고는 짧았고 그 밑에 치마를 입었다. 붉은색 상의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 눈에 띄는 건 알과 용이었다.

 

겉옷은 금박을 입힌 건지 불꽃 속에서 흩날릴 때도 별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휘날리는 그녀의 귀에는 하지도 않던 투박한 금귀걸이가 걸려있었고, 눈은 평소와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사리카는 호네바미로 추정되는 대장 하나를 바라보며 손을 휘저었다. 그 손짓 하나에 바람 한 결이 겹쳐지고, 다음 손짓하나에 물이 깃들었으며, 그리고 주먹 쥐어 끌어올린 손끝에는… 상고시대의 시작에나 들려있을 듯한 오래된 옛 검이 들려있었다. 동시에 칼을 뽑으며 흘러넘친 물은 주변의 화마를 잡아먹었다. 오래된 옛 검은 아무리 봐도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다. 끝은 뭉뚝했으며, 철제인지 청동인지 모를 검 끝에는 커다란 장식이 달려있었으나 그걸 확인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전체적으로는 검사를 상대하기에는 안 좋은 칼이다.

하지만 그 판단은 오산이었다. 하늘에 서 있는 그녀에게 시간소행군이 다가와 공격했지만, 단 일격에 그를 쫓아냈다. 검사인가? 라고 느낄 법하지만, 그녀의 몸짓에서는 검사의 노련함 같은 것은 담겨있지 않았다. 즉, 전부 "영력"이라는 것이다. 저런 방식의 운영은 분명 효율적이지 못하겠지. 전부 영력을 막대하게 써서 하늘에 서 있고, 시간소행군과 단신으로 싸워서 이긴 것이다.

 

"호오, 직접 임명했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나?"

 

놀라움에 미카즈키는 짧게 읊조렸다. 옆에 있던 타로와 히게키리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자신이 요괴를 베었을 때도 저런 힘을 가졌을까?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힘이 움직이며 소리쳤다.

 

[들어라! 나는 왕으로서 실패한 자이다! 너희들에게 왕은 없다. 단지 너희들은 주인을 살리지 못해 시간을 헤매는 미아일 뿐이다!]

[웃기지 마라! 당신이 우리의 왕이다! 세뇌당한 왕에게 가라! 뺏어라!]

 

더는 못 듣겠다는 듯이 그녀가 물을 휘두르며 대장에게 언령을 시도했다.

 

[답해라! 너의 목적이 나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주인을 구하는 것인가?]

[전부 틀리다! 나는! 나는!]

 

상대도 윽박지르며 답한다. 그의 날카로운 발은 괴로운지 버둥거리며 주변의 다른 시간소행군을 공격했으며, 그렇게 수십의 시간소행군이 스러졌다. 그러다 풀어헤친 머릿속에서 붉은색이 아닌 보라색 눈동자가 언뜻 보였다. 성공이다. 광기에 조종당하던 것 같던 붉은 눈이 아니라 차분한 보라색 눈이 허망하게 사리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무엇을 원했지?]

 

그것을 그녀가 놓칠세라 받아쳤다.

 

[너는 주인을 위해 싸웠느냐?]

[과거에는 분명 그랬다.]

[하면 왜 이곳에 왔느냐?]

[모른다.]

 

삼 문답으로는 택도 없군. 사리카는 언령의 추에 자신의 힘을 다시 얹었다. 존재의 삼 문답이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이라면, 다음은 ‘영혼’이 살아 있는지 묻는 오 문답 절차를 들어가야 한다. 첫 번째 문장은 이리 시작한다. 영혼을 기억해라. 자신을 기억해라.

 

[너의 영혼을 기억해라! 너는 주인을 위해 검을 휘둘렀느냐?]

 

그녀는 검을 치켜들어 바람을 일으켰다. 검 주변에 일렁이는 바람으로 상대 와키자시에게 달라붙는 부정을 일부 벗겨내고 있다. 사리카는 타이밍을 재며 타로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슬슬 이 문답을 끝내야 할 시간이다. 타로는 자신의 주인 손짓을 보고 퍼뜩 사리카가 있는 쪽으로 말을 몰아 슬쩍 전진했다. 그에 앞에 있던 단도 부대도 움직였다.

 

[그렇다]

[그렇다면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이냐? 화마느냐?]

 

그녀가 되물었다. 이것이 마지막 문답이다.

 

[아니… 혼자가 되는 것이다.]

[좋다. 혼자가 되지 않게 해주마. 왕은 못되지만 그건 해줄 수 있을 터이다.]

 

사리카는 그리 호기롭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검에 재주가 없어 저렇게 바짝 달라붙어 있는 것은 자르지 못한다. 신검인 타로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녀는 재빨리 타로가 있는 곳으로 추락하며 타로를 불렀다.

 

“타로!!”

 

마치 여러 번 손발을 맞춰본 파트너처럼 타로가 그녀 바로 밑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그녀가 추락하며 칼을 내밀자, 그는 아루지가 앞의 명령을 상기해 검을 다잡았다. 사리카가 가지고 있던 검과 타로의 검체가 부딪히고 공명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한쪽이 가지고 있는 영력이 다른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칼이 사라지며 사리카는 타로 품으로 굴러들어와 자세를 다잡았다.

 

허나, 너무 많은 영력을 검체에 넣은 것인지 타로가 잡고 있던 검이 바람에 계속 흔들렸다. 이건 명백한 사리카의 미스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영력을 검을 맞대는 방식으로 넣어본 적이 없다. 그녀는 얼른 주체못하는 타로의 팔을 다잡아주며 호네바미 쪽을 향해 말했다. 그는 사리카와 타로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보이니? 영력은 신경 쓰지 말고 휘둘러!”

 

주인에게서 전해지는 손의 온기가 자신의 팔로 이어져 홧홧해졌다. 그러나 그런 감상에 빠져있을 때는 아니다. 믿음을 주었으면 실력으로 보답하는 것이 당연한 검사의 자세이다. 흔들림이 멎어가는 칼을 호네바미에 달라붙은 저것을 향해 휘둘렀다.

 

“내 일격은 폭풍과 같도다!”

 

사리카는 단순히 자신이 영력만 잘못 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타로의 영력 자체가 바람과 비슷해서 유독 흔들렸던 거다. 이윽고 자신의 영력과 타로의 영력이 섞여 호네바미에게 엉겨 붙어있던 부정을 찢고 하늘로 날아갔다. 바람과 물의 영력이 쏘아진 하늘은 바로 먹구름을 만들고 몸을 불려 일대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제, 화마는 비가 옴과 동시에 천천히 잡아먹혀 들어간다.

 

그리고 사리카가 빗속에서 부정이 벚꽃처럼 떨어지는 호네바미를 받으러 덜 무너진 저택의 지붕을 향해 날아갔다. 타로 또한 이번에는 말이 부담 지게 할 생각이 없는 듯 말에서 내려 사리카가 날아간 곳을 향해 바짝 뒤쫓아갔다. 떨어지는 비와 벚꽃잎으로 둘러싸인 호네바미를 받은 사리카는 바로 지붕 위를 구를 것이다. 빠르게 도착한 단도 남사들이 주변에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 타로를 이끌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 둘을 타로가 받아들었고, 길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다행히 미다레와 하카타가 재빨리 위험한 것을 칼로 베어버리며 자리를 확보해, 푹신한 잔디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피해서 아무도 남지 않은 정원에 대자로 누운 세 사람이 눈을 깜박였다. 타로는 허리를 들어 올리며 주인과 호네바미가 무사한지 보았다. 그에 단도들이 곁으로 달려왔고, 다친 곳 없이 멀쩡한 것을 확인한 그들이 호네바미에게 웃으며 안겨들었다.

 

“혼자가 아니면 되지?”

“하이고마, 마음고생 많았구마!”

“... 외로운 건 마찬가지니까.”

“이걸로 안심이네요.”

“함께 하겠습니다.”

“가, 같이… 있어요!”

“어려운 거 없으니 말해. 맞지? 대장?”

 

열렬하게 호네바미를 환영해주는 말이 호네바미 가슴 안쪽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그리 감동적인 장면에 사리카는 작은 몸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넝마처럼 타로에게 안겨있는 채, 대답이 없었다. 뒤따라 달려온 미카즈키와 히게키리가 두 사람의 상태를 보고 물었는데 이유는 즉 슨…

 

“영력 다 썼어….”

“음?”

“쪼, 쫌만 기다리면 다시 차긴 하는데…. 다 썼어…. 이잉….”

 

정말로 힘든지 타로에게 바짝 붙어서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이없어하는 두 사람의 표정 아래에 사리카가 다시 한번 말했다.

 

“으아아앙 못 움직이겠어….”

 

안 그래도 작은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오니 쉼표 같은지라, 미카즈키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울며 업어달라는 사리카의 투정에 미카즈키는 아루지를 잡아 들었다. 사리카는 다시 힘없이 울며 떼를 부렸다.

 

“흐아아앙 업어줘…. 못 걸어가….”

 

힘없이 미카즈키에게 잡힌 채로 훌쩍이는 아루지를 보니 타로던 근처에 있던 히게키리던 아까 봤던 위엄이나 근엄은 물에 솜사탕 푼 것처럼 사라짐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고 움직이려던 타로가 앓는 소리를 냈다. 타로도 마찬가지로 타격이 있었나 보다. 몸의 이상 같은 게 아니라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많이 쓴 영력 쪽인 것 같았다.

 

“이런, 저도… 못 일어나겠군요. 도와주시겠습니까?”

“내가 뭐랬어!”

 

뒤를 이어 잔소리를 하는 하치스카가 도착해서 고래고래 뭐라 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톤보키리와 이즈미노카미가 연이어 도착해 타로를 부축하였다. 미카즈키 품 안에서 사리카는 또 징징거리는 중이다.

 

“위험하다고 하니 불나방처럼 날아가더구나.”

“흐아앙, 안아주는 사람 바꿔줘! 바꿔줘!”

 

사리카는 안겨서 돌아갈 때까지 잔소리를 듣는 건 싫다며 얄미운 소리만 해대는 미카즈키 뺨을 꼬집고 쭈욱 당겼다.

 

"아루지가 올해로 몇 살이더라…. 그래, 앞자리가 3이 아니더냐. 홧화화, 애 올히 으이 오으냐 (핫하하, 내 볼이 그리 좋으냐?)?"

"흐아앙 바꿔줘, 바꿔줘!!"

 

연이어 도착한 남사들이 그 풍경을 보고 놀랐다. 그 '미카즈키'의 뺨을 당기는 자가 있으리라고 생각 못 했다며 진귀한 장면을 슬쩍 엿보기 시작했다. 그리 시선이 집중되자 왜 내 말 안 들어주냐고 연이어 행패를 잔뜩 부리던 사리카는 바꿔줄 때까지 사리카가 볼을 잡아당길 거라며 떼를 써서 결국 하치가 그녀를 받아갔다.

 

 

 

 

그들이 가도 계속 비가 내린다.

비는 화마를 덮고, 이윽고 전소되어 앙상하게 남은 집더미만 남았어도

비가 그친 후에는 원래 역사와 다름이 없었다.

 

 

메이레키 대화재

1657년 음력 1월 20일.

진화 완료.

 

호네바미 토시로 구출 완료.

신사의 검 구출 완료.

 

 

 


 

 

사리카는 쑤시는 허리를 두들기며 일어났다. 그제 어제는 엄청나게 무리해서 굴러다니다 초주검 상태로 오늘 새벽에야 현세로 귀가했다. 오늘 오후까지 내리 누워있었는데도 몸살이 와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평일이었기 때문에 미사키가 걱정했지만 괜찮다며 현세로 넘어온 남사 야겐이 보증하자 안심하고 학교로 등교했다. 한참 벚꽃 필 때 아닌가. 인간관계가 중요한 시기니 미사키에게 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야겐은 처음 현세로 불러들인 남사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몸살이 걸려서 사리카 혼자 현세로 나오기가 어려워서, 현세로 사리카를 안고 돌아와 그녀를 살뜰히 돌봤다. 역시 이런 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내 혼마루에 있어서 다행이야 싶어서 안심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는데, 이런 표정을 눈치챈 야겐에게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었다. ‘대장, 이런 식으로 몸을 축내다간 사니와일 오래 못해.’ 라던가. 그 이후 다음 타자로 회복하고 온 타로가 알뜰하게 요리나 집안일을 하며 사리카가 먹을 죽을 요리하거나 하고 있다. 아아, 타로가 있어서 다행이야. 사리카는 또 눈물을 찔끔 흘렸다.

 

“주인.”

“아루지라고 부르렴.”

“아루지.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역시 하루 더 쉬는 것이.”

“현세에 일어난 일이 있으니 큰일로 번지기 전에 좀 빨리 해결하는 것이 나을 거야. 호네바미를 불러오련? ”

 

결국, 죽과 함께 비상약을 먹고 저녁이 돼서야 몸을 좀 움직일 수 있었다. 타로는 좀 더 잘 모실 수 있었다며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일단 자식이 한 사고는 빨리 부모가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은가? 심지어 호네바미 검체를 돌려주기도 어렵게 됐으니 절에 가서 대략적인 사정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결국, 호네바미가 현세로 나왔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한 일은 책임지겠어.”

“걱정하지 말렴. 내가 함께하지 않니.”

 

사리카는 그가 추워할까봐 제복 위로 겉옷을 걸쳐주었다. 야만바기리가 두르고 다닐 법한 후드 겉옷이다. 일단 단도부터 돌려줘야겠지. 우리는 빠른 이동을 위해 이계의 통로를 사용해 옆 동네 신사로 걸어갔다.

 

이계의 통로는 시간 공간이 조금 일그러져 있어서 잘만하면 옆 동네 신사로 15분 안에도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이러다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엉뚱한 장소로 이동될 수 있으므로 손을 꽉 붙잡고 이동해야 한다. 사리카는 호네바미의 손을 다잡고 핸드폰 플래시를 켜며 길을 나섰다.

 

막 사리카의 혼마루에 들어온 호네바미는 이렇게까지 사진을 생각해주는 주인이 처음이라 생소했다. 손을 잡고 걷는다는 건 검일 때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자신이 불타기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졸졸 사리카의 손을 자신도 잡으며 따라갔다.

 

옆 신사에는 바닥을 쓸다가 숲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리카와 그와 키가 비슷한 호네바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겉옷으로 호네바미에게 후드를 씌워 호네바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호네바미가 들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 신사에 있던 검이었다.

 

“찾으시던 물건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사리카의 말에 호네바미는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와 두 손으로 단검을 내밀었다. 그에 신사의 신관은 얼떨결에 검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금방 돌려줄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탓이다. 그는 잠시동안 어버버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후딱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사이 사리카는 신사의 모금함 쪽으로 호네바미를 데리고 가 기도를 시켰다. 기억하지 못하는 일로 사과해야 하는 부당함이 있었음에도, 아이는 경건하게 주인이 건네준 현세의 돈을 넣고, 줄을 흔들어 예의를 다해 신에게 사죄와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신사는 아와타구치가의 신사 분가로써, 여행자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기이한 일이다. 호네바미에게 좋은 여행이 됐기를 기원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신사의 신관님이 사례 드릴 것이 적어서 죄송하다며 백화점 지하에서 샀을 것 같음 음식을 전달해주었다. 이름을 보니 두부전병에, 안에는 적지만 사례금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런 돈보다 호네바미가 혼마루에게 더 큰 선물이었던 지라, 금액은 신경 쓰지 않고 인사를 하며 이계 통로로 돌아갔다.

 

“신기한 사람이야….”

 

그 둘이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출구는 그쪽이 아니라고 말리지도 못한 채로 그들은 떠났다. 신관님은 저것이 영능력이라는 것인지 신기해하며 걸음을 돌렸다.

 

절에서는 큰 스님이 영감이 꽤 있는 편인지 사리카와 호네바미가 오는 것을 알고 나와 있었다. 그런 길을 자주 이용하다간 큰일 날 거라고 전달하면서, 호네바미와 사리카를 안으로 들였다.

 

사실 그리 긴 이야깃거리는 아니었다. 호네바미의 검체가 완벽히 정화된 모습을 보고, 스님은 봉납할 필요가 없다며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고 스님이 입을 열며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와키자시를 들고 온 사람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소”

“무슨 일이길래 그러세요?”

“양도받을 때 쓴 전화번호나, 주소나 전부 엉터리입니다.”

 

사리카가 묻자 옆에서 수행 중인 스님이 말했다. 심지어 그걸 받은 사람이 주지 스님이어서 그리 적었는데, 주지 스님은 그 전날부터 지금까지도 출장 중이다. 한마디로,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주지스님과 통화 해보니, 그대가 가져가면 됐다고 하더군.”

“... 저 그냥 스님이 의뢰하신 거 아니었나요?”

“아니오. 주지 스님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으니……. 일단, 이 와키자시는 당신이 처리해줬으면 좋겠구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제가 데려갈 생각이었어요.”

 

사리카는 스님들에게 호네바미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부정이 타서 다른 이계에서 소란을 일으켰기에, 정화하고 자신이 맡기로 했다고 말이다. 물론, 칼이 인간 모습을 하는 츠쿠모가미 형태를 보고 기겁하였지만 그리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냥 단지 사례금을 사리카에게 내 주었다.

 

그렇게 사리카는 현세의 일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주지 스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속만 앓는 큰 스님의 생각이 깊어져만 갔다.

 

 

 

혼마루에는 보고서와 업무배치가 이루어졌다. 호네바미가 들어온 이후 나마즈오가 알뜰살뜰하게 돌봐주고 있지만 역시 원정이라도 여러 번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잠시 단도 부대에 하카타 대신 투입되기로 하고, 하카타는 혼마루 재정업무를 일부 맡았다. 아무래도 남사들 월급 배분은 하카타가 하게 될 것 같다.

 

미카즈키는 시간 정부에게 보고서를 써서 작성했는데, 위에는 이 보고서로 난리가 났다고 콘노스케가 전했다. 콘노스케는 이어 시간소행군이 혼마루를 추격하고 있고 일부는 공격당했다고 확인하였으며, 이번 사태는 그로 인한 피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아직 보고서는 작성 중이지만, 앞으로 시간소행군의 침략 예방을 위해 수련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연락받았다.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사리카는 소매를 단단히 걷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