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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루 이야기

에피소드 J 미카도는 달로, 카구야히메는 바다로.

 

사리카는 찌뿌둥하게 일어섰다. 이 오밤중까지 업무실에서 일했다. 정말 사니와를 이렇게까지 부려먹는건가. 사실 대부분의 책임은 사리카 본인에게 있다. 자신이 초반에 이것저것 다 집어넣어서 일을 진행시키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다시 서류를 보자니 졸음이 쏟아지고… 지루한 것도 있지만 날이 늦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혼마루 정원 좀 걸어가야겠다.

 

밤이 깊어 달빛이 환하게 빛났고, 지금 등이 켜져있는 건물은 한 채도 없었다. 하긴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 깨어있으면 남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수도. 달은 하늘 높이 떠있었고, 달빛을 비추는 연못 덕에 정원은 환했다. 그리고, 별채에 미카즈키가 갑옷을 입은 채로 넓은 술잔에 잔을 기울이며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일이람. 이 늦은 시간까지. 지금이 새벽 1시 아닌가? 할아버지는 이제 자야할 시간일텐데. 생각해보니 미카즈키가 수행을 다녀온 이후에 말을 많이 못해본 것 같아서 그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안자?”

“으음? 내 주인이야말로 아직까지도 자지 않는가?”

 

또, 또다.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고 ‘주인’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남사였다. 대체 왜 이러는 건가. 저번 일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날아간 이후라 옆에 앉아 조금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일이 바빠서 말이야. 누구누구가 이제 정부안건을 많이 처리 안해주잖아.”

“으음, 주인이 통 써주지 않아서 말이다.”

“무엇을.”

“나를 말이다.”

 

같은 사항 말하는 거 맞아? 나는 미카즈키를 꿈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알 수 있는 말을 해. 수행을 갔다온 남사를 잘 출전시키지 않는 것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극을 갔다오지 않은 남사들이 영력을 올리기가 쉽다. 그러나 수행을 갔다온 후에 영력을 올릴려는 용도로 내보내면 쬐끔밖에 진전이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영력변화가 일어날때까지 내가 계속 출진 명령을 내려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솔직히 귀찮다. 근데 그것때문에 삐져서 도와주지 않는 건가? 하지만 내보내봤자 몇 판만에 컨디션 안좋다고 드러누울 것이 아닌가. 그럼 그때마다 하코타테로 일대일 상담 나가야한다. 그뿐인가? 눈치보여서 다른 남사들도 똑같이 해줘야하고, 그럼 계속 그렇게 빙빙 도는 것이다. 싫다. 나 피곤해 죽는다.

 

“말이 없구나, 내 주인은.”

“아니… 그게 아니라 수행 갔다온 애들은 영력이 빨리 올라가지 않아서 내보내기 지친다고 할까. 아하하.”

 

이런식으로 얼버부릴 수밖에 없겠군. 뭐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긴 하지 않나. 미카즈키는 나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차를 홀짝 마셨다. 아니, 이거 냄새를 맡아보니 술이다. 이놈의 술주정뱅이들. 뭐, 밤에 마시는 건 나도 터치하지 않기로 했지만 얘네들 너무 말술이다. 나는 행여 술을 권할까봐 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한 달빛 아래 혼마루 너머의 뒷 정원에는 저멀리 달맞이 꽃이 오므린 채로 놓여져 있었다.

 

“뒷 정원에 달맞이꽃이 있었던가?”

“몇 개 가져와 심게했지. 보겠느냐?”

 

그거 가져온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나요?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미카즈키가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잡았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뒷 정원으로 향했다. 나 또한 그를 따르려는데, 근처에 있던 어린 요괴 하나가 도쿠리병을 들고 따라온다. 처음보는 여우 아이인데 심지어 술시중까지 하고 있다니. 나는 나머지 한 손으로 웃으며 건네받았다. 너는 가서 쉬어도 된단다. 찡긋 윙크를 해주자 그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혼마루로 돌아갔다. 

 

지금에서야 눈치챘는데, 미카즈키의 두꺼운 장갑 너머로 미적지근한 열기가 느껴진다. 전에는 좀 차가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조금이라도 차가운 바람이 스치면 춥다고 혼마루는 춥지 않느냐 식으로 꼽을 주던 때가 떠오른다. 지금은 봄인데도 장갑을 끼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추워하나보다. 하긴 아직 아침과 밤에는 춥지. 

 

나는 미카즈키를 따라 뒷 정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미카즈키는 말이 없이 발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나는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추운지 옷을 한 겹 더 입었다. 저러면 움직이기도 힘들지 않나? 아니, 그는 몸이 전체적으로 마른 편이니 움직이기 쉬울지도. 갑옷 저러면 정말 일일이 풀기 힘들텐데 어떻게 아직도 안풀고 있대? 잠은 언제 잘려고 말이다. 밤이니 조금 풀어도 좋으련만.

 

“와!”

 

달빛은 환하게 우리를 뒷 정원의 달맞이꽃들 무리로 인도했다. 자신이 여러번 밤까지 야근을 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산들바람이 달맞이꽃을 슬쩍 흔들었고, 달빛은 어두운 곳 없이 환히 비추고 있었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달은 혼마루에서 보던 것보다 좀 더 컸다. 주위의 달맞이꽃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꽃무리 가운데에 서자마자 ‘톡’하는 소리와 함께 봉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앉아 꽃잎을 쿡 건드렸다. 꽃잎의 따뜻하고도 부들부들한 촉감이 전달되어 온다. 

 

“카구야히메같구나.”

 

불쑥 미카즈키가 자신을 향해 그리 말했다. 왠일로 칭찬이지? 맨날 못생겼고 심보 못되게 쓴다고 혼냈으면서 말이다. 흠. 카구야히메는 미카도와 헤어져 달로 돌아갔다고 했던가. 장단 좀 맞춰줘 볼까. 나는 몸에 영력을 둘러매어 현현모습으로 바꾸었다. 평소 간단하게 입던 모습과 다르게 황금빛이 들어간 문양이 소매 끝에 크게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라색인 옷은 다른 누가 생각해도 높으신 분 같으리라. 바람에 긴 귀걸이가 찰랑였다.

 

“공주 같으냐?”

 

웃으며 그 대사를 건넸다. 미카즈키는 잠시 놀란 표정을 했다. 받아쳐줄지 몰랐겠지? 깜짝 놀란 그의 얼굴을 장난스럽게 바라보자, 그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카구야히메, 달로 돌아갈 생각이십니까?”

 

계속 상황극을 맞춰달라는 건가.  OK. 계속 이어주마. 나는 최대한 카구야히메처럼 대답했다.

 

“유배가 끝났으니, 돌아갈 때도 되었지.”

“그러하시다면, 나에게 그대를 기억할 이별의 선물을 주시겠습니까?”

 

아,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 아냐. 있었다. 카구야히메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불사의 약을 미카도에게 건넸었다. 그럼 나도 뭘 건네야하나? 내 손에는 미카즈키가 아까 마시던 도쿠리병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술병을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불로불사의 명약이오, 만물을 잊게 해주는 약이로다. 이걸 그대에게 드리지.”

 

그리 도쿠리병을 그에게 내밀자, 미카즈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언제까지 내 손을 아프게 할꺼야? 하며 병을 흔들자, 그는 마치 슬프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놀라자, 그는 도쿠리 병을 바닥에 두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두 손으로 내가 내민 왼쪽 손을 잡더니 조심스레 자신의 입술을 지긋이 눌렀다.

 

나는 갑자기 생각이 멈췄다. 촉감과 시각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환각이지 이거?

내가 그리 생각하던 말던 그는 오랫동안 손가락에서 입술을 여러 움직이다 이내 손에서 입술을 뗐다.

 

“응. 나는 이것으로 될 것 같구나.”

 

나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고, 바로 내 앞에 자신이 알던 할배가 아닌, 헛짓거리를 하는 놈에게 정권을 내질렀다. 물론, 그는 한 손으로 그걸 웃으며 막았다.

 

“너 자꾸 왜 이러는데!?”

“이런, 주인이 화났구나. 어쩌나. 달래는 것에는 재주가 없거늘.”

“아니! 저번부터 진짜 왜 이러냐니까?!”

 

나는 미카즈키에게 되는 대로 맞으라고 주먹을 내질렀으나, 아주 알콩달콩한 드라마에 나오는 귀여운 여주인공의 앙탈이 되는 것 같아서 곧 그만두었다. 애초에 체력도 없어서 나만 씩씩거리고 있지 않은가. 짜증만 잔뜩 오른다. 미카즈키는 처음부터 이런식이라니까!

 

“왜 자꾸 되도 않는 작업부리는 척해! 마치 나를 좋아하는 것 같잖아.”

“나는 주인을 좋아한다만?”

“아오! 씨!”

 

그는 자꾸 듣는 사람을 꼴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단어의 뜻 차이를 이용해 원래 그랬다며 대답하는 등으로 말이다. 지금 그런 말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니 답답해서 가슴을 쥐어뜯을 지경이다. 내가 눈을 부라리며 발을 동동 구르자, 그제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내가 그런 마음이면 어쩔건가?”

“어?”

“내가, 그대를 연모한다면.”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그야 당연하잖아. 당신 타로 아빠처럼 행동하고 타로의 마음을 대변해줬잖아? …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당신은 정말로 타로를 진심으로 아꼈잖아. 매번 내가 괴로워할 때 책임지라고 등을 떠밀었잖아.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타로 편을 들지 말았어야지. 그냥 웃기만 하며 차를 마셨어야지. 평소에 당신이 잘하는 것처럼 방관했어야지.

 

믿기지 않는 내 표정이 미카즈키에게도 상처였는지, 씁쓸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는 그가 말했다.

 

“뭐, 한낱의 꿈이란다.”

“꿈?”

“마침, 카구야히메도 바다로 돌아가고, 미카도도 달로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도저히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겠다. 카구야히메는 대나무 공주인데 왜 달이 아닌 바다로 돌아간다는 거야? 미카도는 왜 달로 돌아가는 것일까? 나는 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마치, 커다란 초승달이 사키모리 작전 때의 그 배경처럼… 

 

“그래도 기쁘구나. 달이 가까이 가면 바다가 가장 먼저 마중나올테니.”

 

도저히 뭔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사이 미카즈키의 손이 내 시야를 가렸다. 온통 어둠 뿐이었다.

 

자신이 눈을 떴을 때, 사니와 업무실에서 깜빡 잠든 채였다. 시계는 한 시. 마치 방금 경험한 게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진짜 꿈이었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혼마루 밖을 바라보았다.

 

아까 미카즈키가 앉아있던 별관은 텅 빈 마루만이 달빛을 머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