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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루 이야기

에피소드 I 달의 수행

미카즈키는 수행에 나섰다.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보통 자신을 썼던 주인이거나 만든 과정을 보고 오는 것이니, 우선 자신이 태어났을 무렵부터 걸음을 옮겼다. 허나 자신은 누군가에게 귀속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검이었으므로, 자신은 기나긴 천년을 여행할 셈이었다. 그래서 첫날에 아루지에게 넣을 편지의 운을 떼고, 간간이 적었다.

 

이런, 완전히 보고서 같지 않은가. ,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어 자신은 흐르는 강물을 타고 내려가듯 배에 탄 것처럼 유유히 역사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산죠 무네치카, 귀족 태생이었던 그는 아주 우아하게 [우치노케]를 넣어 권력자에게 헌상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권력자들의 곁에 있었다.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직접 자신을 뽑아 휘둘렀으며, 마지막까지 검을 든 사람답게 죽었다. 자신은 또 다른 권력자에게 넘어갔다. 정확히, 누가 자신을 휘둘렀는지는 이 이상은 애매하다. 다시 종이를 펼치고 붓을 들어 편지를 이어나갔다. 점점 자신의 신세 한탄이 되는 것 같은 말이었지만, 이쯤 돼서 편지를 써주는 것이 낫겠지.

 

이윽고 자신은 돈에 의해 여러 주인을 전전했으며, 창고방 신세가 되었다. 이때쯤 자신은 인간에 대해 다시 평가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혼마루의 다른 검처럼 치기 어린 시기도 있었다. 주인을 생각하고 주인이 휘두르는 검날에 기뻐하며 감정이 펄떡이던 때가 있었다. 다만, 이때 무언가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시대의 흐름인 것을. 검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나긴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모셔지는 삶. 터널처럼 오랜 어둠 속에서 있다. 인간들을 보러 나오기도 하고, 인간들이 자신을 연구하기도 하고. , 여러 주인을 타고 조심히 보존되어 모셔져 있던 검들이라면 당연히 겪는 것일 터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의 피가 흐르지 않는 시기지 않느냐?. 그래서 붓을 들어 마지막 편지를 적어내렷다. 곧 만날 수 있겠지. 수행의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니 말이다.

 

그러나 이상했다. 아루지는, 20xx년도에서 온 것이 아니더냐? 그러면 이쯤에서 너는 존재하는 것 같았다. 부러 시간을 내 아루지의 현세 집으로 방문해봤지만, 그 집은 황폐해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폐허처럼 말이다. 이상했다. 아주 이상했다. 너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던가. 고개를 들어 집 주변을 둘러보았는데도,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수행 오기 전에 짬을 내 들렸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래, 이 집에는 죽음이 서려 있었다.

 

역사개입인가. 나는 짧게 읊조리고 자리를 떴다. 그뿐이었다. 계속해서 흘러가기 위해 자리를 뜨고 강 위의 배에 몸을 실었다. . 이상도 하지. 2205년까지 돌아가도 나는 혼마루에 있지 않았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하하, 수행하러 갔다가 미아가 되었다는 건 꼴사납지 않으냐. 그러나 여기에 나는 있었다. 확실히 존재했다. 그쯤에서 콘노스케와 마주쳤지.

 

미카즈키 씨.”

마중 왔느냐? 기다렸단다.”

 

내가 콘노스케를 바라보자, 그 여우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본체로부터의 부탁을 받아, 여기서부터는 혼마루에 돌아가기 전에 따로 저와 같이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신기한 일이로구나. 그래, 앞에 나서보련? ”

 

내 말에 콘노스케는 앞으로 나서려다가 이 말만은 경고하며 넘어가는 것 아니겠나?

 

이제부터 보시는 일은 과거에 기록된 일로써, 간섭을 할 수 없습니다.”

원래도 할 수 없지.”

그러니까, 그냥 보기만 하시면 됩니다.”

 

의미심장한 말만 남기고서, 자신이 가는 공간에는 타박타박 작은 여우가 걷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부터는 그 여우가 걷는 길을 따라, 아주 검은 터널을 지났다. 꽤나 긴 터널이라 어디로 가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중간중간 자신의 목소리로 하는 혼잣말 위주의 여러 말이 들려왔다. 인간들에게 실망한 혼잣말, 평화가 진짜 평화가 아닌 걸 깨닫는 혼잣말, 인간의 근본적 더러움의 소리,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 절규하는 소리. 우는 아이의 소리와 함께 불타는 소리까지도. 절규가 수 천 개가 합쳐진 것 같은 아비규환이었다. 앞서가는 콘노스케는 말이 없었다. 나 또한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이 소리를 듣는 것이 나의 과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 한마디가 들렸다.

 

사그러들어간 목소리가 들리느냐?.”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주 그리운 목소리기도 했다. 다만 항상 밝은 목소리였던 것과 다르게 크게 침전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말에 반응하듯 글자 하나하나가 벽면에 박히는 듯했다. 이윽고 검은색 터널이 일렁이듯 움직였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너는 그리하여 이곳에 있지 않으냐.”

 

너의 그 말에 터널처럼 가둬져 있던 공간은 검은빛이 쓸려 지나가더니 사라졌다. 아예 다른 장소로 자신과 콘노스케를 옮겨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터널이 아니라 전장이었다. 수많은 시간소행군들 속에 형태가 일그러진 와중, 그 가운데에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다만 옷이나 장식들이 전부 검은색이었다. 마치 장례식처럼 말이다.

 

저분의 이름은 검은 미카즈키라고 불리던 시간 소행군입니다.”

“....”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뒤에 아루지와 똑같은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입은 옷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검은색으로 칠한 듯한 현세의 옷, 지금과는 달리 검은색으로 어두워지는 머리카락, 빛이 없는 눈동자. 그녀가 손짓하자 그 손짓에 수많은 소행군들이 움직이며 절규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 사람은아루지가 말했던 조각이느냐?”

아뇨.”

 

콘노스케는 그리 짧게 끊고는 말했다.

 

본인입니다.”

 

그럴 리 없었다.

 

다르지 않더냐. 머리카락 색이고, 평소에 입는 옷이고.”

바뀌었으니까요.”

“....”

이건 지워진 역사입니다.”

 

자신이 아는 아루지는 저런 침음하는 절규를 하고 있지 않았다. 항상 즐겁고 유쾌함을 추구하던 모습으로 햇빛 밑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저 모습이 뭔가. 마치 장례식 행렬과 같이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검은색으로 물들은 자신이 그녀의 뒤를 뒤따라갔다. 그럴수록 검은 내가 할 법한, 아주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왔다.

 

인간은 싫었다. 인간은 자신들을 만들고 내팽개치고, 서로를 살육하는 존재이다. 지성의 가죽을 쓰고 어찌 그러겠는가? 다른 동물조차 그리하지 않는데. 검으로 태어나 누군가를 벤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자신을 들고 전쟁에 맞서 싸웠다면 더 모를 일이다. 인간들은 자신을 두고 구경하며 시시덕거린다. 그러다 점점 사람들 속에서 들어가 잊혀 간다. 잊혀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들 욕망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검 장식품이 되어 영원히 나오지 않는 창고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속에서도 다른 검들은 인간들의 욕망에 부대끼며 주인의 죽음에 울부짖는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 다른 검들이 매달려야 하느냐? 왜 그들의 목숨에 일희일비하느냐.

 

그들이 스러질 때마다 생각했다. 이런 일은 시작부터 없애버려야 한다고. 자신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역사를 수정해버리면 수정할 수 있는 자들이 미래에서부터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시간소행군이 되었다.

 

앞에서 걸어가던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자신을 향해 뒤돌아보았다. 창백한 얼굴에는 건조한 슬픔이 메말라 붙어있었고, 몸에는 검은색 옷이 사신처럼 새겨져 있는 그녀가 자신을 보며 물었다.

 

"아이야. 뭘 바라느냐?."

"딱히 바라는 것은 없단다."

 

검은 자신은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이 동시에 머리에 들어왔다. 그녀가 드물게 웃으니, 목에 한 쇠 장식물이 자신의 눈에 띄었다. 왜 그런 것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지 뚫어지라 보다가, 나는 말을 걸지 못하기 때문에 흘러가는 기억을 계속 지켜보았다.

 

"너는 고민할 때 검은색이 깜박거린단다. 알고 있었니?"

"그랬나."

 

나는 짧게 침묵을 지켰고, 그녀는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단지시간소행군이든, 역사수정주의자든 간에 그사이에 스러지는 검들을 보면 슬프기 마련이지. 태초부터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없었어야 했는데."

"맞아. 처음부터 없었어야 했어."

 

그녀는 그의 말에 긍정했다. 그리고 전쟁이 남긴 처참한 흔적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인간에게는 과거를 수정할 권리 따위, 주면 안 됐어. 책임지지도 못하고 희생당할 생명을 이리 늘릴 것이었다면."

 

그녀는 땅에서 흙을 한 움큼 잡아들어 올렸다. 그 흙 사이에는 쇳조각과 약간의 피가 뭉쳐있었다.

 

"결국엔 내 주변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그럼 적어도, 이 싸움에서 너희들은 성불했으면 좋겠구나."

 

그녀는 그 막을 하며 잠시 자신을 보더니, 다시 쇳조각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목에 있는 장식을 몇 번이고 더듬었다.

 

그건 검인 자신에게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누가 이름 없는 검들의 시체를 들여다보겠는가. 이런 땅에 굴러다니는 쇳조각 따위를 누가 들여다보며 인간에 의해 탄생한 물건만은 행복하길 바라는가. 검은 과거의 자신은. 속절없이 자신의 눈에 그녀를 새겨넣었다.

 

 

 

그녀를 따라가는 길에는 시체가 흐르고, 눈물이 강이 되어 발밑을 적셨으며, 부서진 검의 잔해들이 흘러내려 갔다. 혼마루의 몇몇 성채도 공격하여 몇몇 황폐해진 곳도 있었다. 여자는 전과 똑같은 얼굴로 주저앉으며 말했다.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고치고 싶은 건가?? 하하, 그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겠네.”

 

검은 달이 그녀의 말에 답했다. 마치 당연하듯이.

 

내가 잘못 온 것일까?”

그럼 그것도 고치러 가면 되겠구나.”

 

이어온 질문에도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여자는 대답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무엇이 원통했을까.”

너무 많은 소리에 기울이는 것은 판단을 흐리게 한단다.”

 

그녀가 죽은 여우 요괴에게 손을 뻗자, 검은 달은 이를 막으며 눈을 가렸다. 여자는 가려진 시야에 익숙하지 않은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어 말했다.

 

왜 권력자들에게 원통함이 있을까.”

가진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지.”

아니, 그거와는 달랐다.”

 

그에 검은 달이 그녀의 눈을 가렸던 손을 떼며 말했다.

 

너는 지배하는 자요, 왕으로서 군림하는 자이다. 너무 자잘한 것은 옆에 있는 다른 소행군에게 맡기려무나.”

“....”

 

그때, 너의 얼굴은 무언가 놓아버린 표정을 했다. 무언가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여러 번 들썩였으나, 말의 형태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여러 번 바닥의 시체들과 소행군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기도했다.

 

아시여, 인도하소서.”

 

그 길로 너는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은 달을 중심으로 콘노스케가 뒤쫓아가, 나 또한 그리했다. 그는 그녀의 마음에 들 수 있게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인간이든, 무슨 칼이든, 시간 정부 소속 분체의 목이든 뭐든 직접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그때 그녀는 말했다.

 

너는 너와 같은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는구나.”

그야, 나는 이들과 다르지 않더냐. 애초에 시간소행군이거늘.”

 

한 좀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그녀가 검은 달을 보지 않으며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검은 달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걸 원한다고 생각했느냐?”

그럼 아니더냐? 몰랐구나. 다음에는 맘에 드는 것을 준비하마.”

 

검은 달은 살풋 웃었으나, 그 속은 초조해 보였다. 마치 이런 것을 준비하면 그녀가 웃어줄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확실하다. 저건 자신이었다. 시야가 빙빙 돌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하하, . 아니, 웃음이 나올 때가 아닌가.”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올 정도라니.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부정이 끼어도 저리 깨끗한데도, 자신은 단 한 사람의 감정을 얻기 위해 저리 부정을 쌓은 것이다. 어찌 저리 미련할까. 가끔 들었던 의문이나 감정. 그 모든 것이 이곳에서 출발한 것이 틀림없다. 기억 없이도 너를 시선에 담고, 너를 생각하면서.

 

미카즈키 님, 괜찮으신지요? 재생을 멈출까요?”

아니다, 되었다.”

 

일어서야만 한다.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이제는 없는 일이라고 해도. 다시 고개를 들어 없어진 과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너는 모두를 사랑하는 아이가 아니었나? 내가 알기론 너는, 많은 아이들이 권력자의 행패에 죽어가는 것에 절망하였을 텐데.”

글쎄. 기억나지 않는 너무 오래전 일이구나.”

 

과거의 자신은 너무나도 태연히 말했다. 마치 자신의 맘을 알아달라는 듯한 몸부림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아예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아마도. 너라는 존재겠지.”

 

그 말에 그제야 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너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너를 망쳤구나.”

 

그 이후로, 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리를 떠났다. 검은 달은 그 말에 놀라 너의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가만히 침음했다. 생각난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곱씹어보고 있었지. 다음에 무얼 주어야 할지 생각하는 채로.

 

그다음부터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보면 거리를 두었다. 또한, 시간소행군을 한꺼번이 그리 많이 담당하고 있으면서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질 수 있을 만큼만 임무에 내보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아니, 수만의 단위가 흩어졌다. 이 정도는 뭐, 항상 있는 일이다. 소행군은 금방 다시 채워진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내보냈다. 거의 전원을.

 

이윽고 비어있는 성채에는 그녀 하나만이 남았다. 아니, 하나만은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그녀를 따르던 대태도가 최근에서야 원래 모습을 하게 되었다. 그 모습이 타로타치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그녀의 말만 기다렸다. 나도 그의 반대에 앉아 물었다.

 

화가 많이 났느냐?”

나지 않았단다. 근데, 너희 둘에게도 출전 명령을 내리지 않았느냐?”

어찌 주인의 곁을 비운단 말이냐.”

맞습니다. 주인의 곁을 비우면 누가 주인을 지킵니까.”

 

그 말에 그녀는 슬피 웃으며 이어 말했다.

 

지킨다라.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느냐?”

당연히 살아있지 않느냐?”

살아있다는 정의는 무엇이냐.”

 

그 말에 둘 중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둘은 생명체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단지 츠쿠모가미의 분체로써 여기 있는 것이 아니던가.

 

살아있다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가 일어서서 저 멀리 창문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답하지 못하는 침묵만이 주위에 감돌았다. 여기선 어떤 말도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하리라.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저 멀리, 저 너머로 날아가는 새를 보며 말했다. 그 새는 성 바깥의 누군가의 팔에 앉았다.

 

살아있다는 것은, 행복을 추구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녀는 둘이 앉아있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새를 데려온 사람을 멀찍이 바라보았다. 얼굴을 가리는 누더기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저 존재를 알았다. 시간 정부에 근무하는 남사들이었다.

 

둘 다 나가려무나.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그리 말씀하셔봤자 꼼짝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집불통만 모았구나.”

 

그녀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리고는 한쪽 모서리를 향해 가르쳤다.

 

그렇다면 저쪽으로 가있으렴. 이건 명령이란다.”

따르지 않겠다.”

 

나는 그리 말하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소리지만 똑똑히 들렸다. 저 멀리에서 성채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말이다.

 

이 이상은 주군을 보필하는 남사에게는 자존심 문제란다. 아무리 명령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 멍청이들.”

 

그녀는 짧게 읊조렸다. 아마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일 터이다. 하지만 나도, 옆에 있는 타로타치도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른 소행군들과는 달리 우리 둘은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가 그들과 모습이 다르지 않은가.

 

타타리가미 사리카!”

 

곧바로 그녀가 앉아있는 성채의 일부를 부수면서 들어왔다. 하기야 계단으로 들어오면 우리들의 공격을 받으며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그들의 교양 없는 판단이 합당한 판단이라 볼 수 있다. 들어온 건 은발의 남사야만바기리 쵸우기였다. 그리고 뒤이어 같이 들어온 의미심장한 웃음을 하고 들어오는 이치몬지 노리무네. 표정이 잘 보이지 않게 부채로 가린 채로.

 

기다리게 했구나! 너의 죽음이 왔다.”

"기다리렴. 일그러진 것들은 아름답구나. 가엾게도."

 

그렇게 놈은 검은 나와 너, 그리고 타로타치를 훑어보더니, 부채를 접고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특히 당신은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일부러 위치를 드러내다니. 당신은 이 소행군들의 왕 아니었던가? 어디로 이렇게 빼냈는지전투 의지는 있나?"

 

그 말에 너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성이 없으면 왕도 없지. 이제 나는 왕이 아니야"

"우하하하! 온몸에 군주의 행동이 새겨진 인간이! , 이래서 일그러진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

 

그는 웃겨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떠들다가, 단숨에 웃음을 지웠다. 자신의 흥미보다는 더 우선할 것이 있다는 듯이 정색한 표정을 하고 선,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듯 눈을 내리깔며 자신들을 쳐다보았다.

 

"일단, 당신을 구금하겠다."

"글쎄그건 못할 거야."

", 과연 그럴까?"

"나를 여기로 끌어들인 놈은, 처음부터 날 살릴 생각이 없었거든."

 

나는 그들에게 칼을 들다 말고 너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너를 역사 수정주의자로 만든 존재가 있고, 그 존재는 네가 살아있길 바라지 않는다고 덤덤히 말하다니. 그렇다면 처음부터 너는 너의 죽음을 받아들인 채로 소행군에 온 것이냐? 그럼너에게 나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이었느냐?

 

허나 이 싸움에서 한 눈을 판다는 것은 바로 목이 달아나는 것이지. 기필코 살아남아서 너에게 물으리라. 나는 옆의 타로타치와 함께 칼을 치켜세워 그들을 막아섰다.

 

, 말 안 듣는 놈들은 어디나 있는 법이지. 시간 정부에도, 소행군에게도.”

부탁할 게 있어.”

그건 얌전히 투항하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개가 이빨을 드러내어 아득거렸으나, 너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듯, 그냥 웃으며 밀어냈다. 너의 영력은 거대해서 그들은 속절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나, 다른 전투와 달리 너는 우리 또한 밀어내었다. 마치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거부하듯이. 화들짝 놀란 타로타치와 내가 너를 바라보았을 때, 너는 여전히 미묘하게 웃고 있었다. 슬픈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버리는 것을 원한 것인가? 가까스로 우리가 입을 열어 너를 불렀다.

 

주인?”

말했잖니.”

 

그러나, 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내 주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할 거란다.”

 

그 말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거란 의지였다. 그래서 우리 또한 정리한다는 뜻일까? 심장이 비정상으로 뛰었다. 오랜만에 정을 준 인간이었다. 애처로운 죽음의 그림자를 이끌고 다니는 소행군들의 우리들의 왕. 그게 너였는데 왜 그리 잔인한 말을 하나.

 

우리가 이런 표정으로 대치하건 말건, 뒤에 있던 그들 사이로 뒤에서 나타나는 자가 있었다. 나는 그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의복. 그리고 남다른 위상의 본체가 자신의 뒤로부터 너에게 조금씩 걸어가며 말했다.

 

"늦었느냐."

 

미카즈키 무네치카의 본체였다. 자신의 본체는 그녀의 힘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듯이 조금씩 걸어왔다. 그때 뒤에서 정부의 개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본체가 오면 위험합니다!”

핫하하, 그래, 그래. 허나, 하나의 재앙신 본체를 상대하는 것인데, 어찌 분체가 상대하는고? 이리 나서야 균형이 맞지 않느냐.”

 

그는 조심이 눈을 내리깔고 자신을 쳐다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본체와 마주치는 순간 자신이 무력해졌으니.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까딱일 수 없었다. 옆에 있던 타로타치 또한 마찬가지다.

 

본체가 납시다니, 일이 꼬였네.”

무슨 짓인지는 대략 파악은 했다만, 꼭 그래야 하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하나도 파악하지 못했구나.”

 

본체와 말을 주고받던 너는 항상 달고 있던 악세서리를 드러냈다. 양 손목, 양 발목, 그리고 목에 하고 있던 쇳조각들.

 

이걸 해제하는 순간, 영력이 폭발해서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다.”

호오, 그러면 가진 채로 데려가면 되지 않느냐.”

그리 쉬운 일이면 이리했을까? 너희 쪽에 가는 순간 영력이 응축되어 폭발할 거다.”

허면?”

 

본체가 최대한 너를 안전하게 데려가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신 또한 저것의 존재를 알았으나, 정확히 어떻게 발동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녀 외의 역사 수정주의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옴짝달싹 못 하는 몸에 갇혀 간절히 네가 안전해지길 바랐다.

 

시체가 된다면 말이 달라지지.”

 

너는 본체 미카즈키 무네치카를 아까보다 더한 영력으로 밀어제쳤다. 역시 본체를 밀어내는 것은 너에게도 무리였던 듯, 그와 동시에 너의 입과 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런. 아무리 신이라도인간의 몸체는 한계가 있어. 그 이상 쓰면 죽을 거다."

"부탁할 게 있어."

 

이제 너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거의 기어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피를 몇 번 토해내기도 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너에게 달려가 차라리 내가 고통받길 바랐다. 그래야 했다. 네가 죽는 것보다는 자신이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인간은 죽으면 끝이니까. 자신들처럼 다른 분체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니까.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너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눈에서 파도가 흘러내리는 듯했다.

 

저기 있는 두 애들정화해서 다른 혼마루에 내보내주지 않겠니?"

"...소원은 그것뿐이냐?"

"그래."

 

우리를 버리지 마라. 너는 우리들의 주인이지 않았느냐? 어찌 먼저 우리를 버리느냐. 너는 우리들의 왕이니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너를 향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한 발 한 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너에게 손을 뻗은 순간, 너는 고개를 돌리고 내가 아닌 하늘로 몸을 돌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그럼한순간이지만 살아있던 거야."

 

마지막으로, 그녀의 영력이 터지듯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너의 양손과 양 발목, 그리고 목에 있던 그 악세사리는 타는 듯한 연기를 냈고, 근처의 건물바닥은 부서지고 있었다.

 

자신은 본체에 의해 그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손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네가, 네가.

미카즈키 무네치카 본체가 와도 그녀는 구할 수 없었다. 분체인 그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미카즈키는 땅을 내리쳤다.

 

여긴 그냥 재현실이었을 뿐인데도, 몇 번이고 무너진 성채를 향해 손을 뻗어 파헤치려고 했다.

 

"미카즈키님. 그건 단지 홀로그램이에요."

"알고 있단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주체가 되지 않았다. 점점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 나는 그리하여 시간 정부에 의해 회수당했고, 한동안 본체와 마주하였다. 그러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단지 마지막에 그는 이리 말했다.

 

만일, 기억을 삭제된다고 해도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찌할 것이냐?”

 

나는 단지, 그거면 되었다고 대답했었다. 본체는 웃으며, 영력 폭발이 그녀가 역사 수정주의자가 되기 전의 과거로 되돌아가 역사수정이 되었다고 전달해주었다. 시간 정부도 이를 파악하였고, 그리하여 바로 사니와 제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아아, 그래서 내가 이 혼마루로 왔구나. 네가 있는 곳으로 쳇바퀴 돌 듯, 달처럼 지구 주변을 다시 돌고 돌아서. 내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자, 익숙한 모습의 그가 근처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본체가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볼지 모르겠구나.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어떤가? 이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혼마루로 돌아가면 되는데.”

“....”

, 현재 혼마루가 맘에 들지 않나? 하하, 꽤나 즐거워 보이던데 말이다.”

왜 이 기억을 돌려주었느냐?”

 

내가 그리 말을 걸자, 옆에서 콘노스케가 귀를 기울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본체는 천천히 입을 열며 말했다.

 

나는 말이다, 그리 누군가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진 적이 없지. 어느 주인도 나에게 특별하지 않았다. 알지 않느냐. 그래서 네가 이 천년을 흘러내려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주 절절히 그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너의 분체고, 그 감정의 일부를 내려받았을 테니까. 어떤 감정은 더 격할지라도, 그것은 분체로 만들어질 때 조합의 문제. 본체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분체가 특별히 누군가를 여긴다면 계속 그 모습을 보고 싶더구나.”

 

그것이 배웅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나에게 그 말을 한 이후, 그만 가야 하겠다며 사라졌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괴들은, 재빨리 나에게 와 옷을 갈아입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으면 이 수행은 끝이었다.

 

“....”

 

옷을 갈아입는 내내, 네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자꾸 주인이 아니라 아루지라는 직책으로 부르라는 말, 우리들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말은 어쩌면 자신의 말 때문일까? 너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당연한 일이다. 역사수정으로 다시 살아난 네가 어찌 기억하겠는가. 하지만 이제 말없이 네가 울으면, 최소한 두 팔을 벌려 안아줄 수 있다. 죽음이 따라다니는 네가 아닌, 너의 웃음을 볼 수 있고 색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너를 볼 수 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왜 내가 돌아오자마자 그리 반겨주는 것이냐. 왜 그리 웃어주며, 나에게 그리 가까이 와주는 것이더냐.

 

속에서 억누르고 있었던 수많은 감정이 나에게 그리 물었다.

 

 

--

 

 

 

수행에서 미카즈키가 돌아온 날, 어딘가 태도가 변한 것을 바로 눈치채지 못한 사리카는 그를 환히 맞아주며 이리저리 한꺼번에 온 편지들을 비둘기에게서 받아 확인하였다. 그리고, 내용을 보며 땅을 쳤다. ‘아이고 내가 수행하러 갔다 오랬지 누가 인생을 되돌아보라고 했냐 이 할아버지야.’ 등의 말을 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영혼이 천 육백 년 전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세월을 전부 기억하고 있진 않다. 도저히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혼마루가 좋다고 해도, 자신의 모든 세월을 훑어보며 정진의 마음을 가지는 게 합당한가? 자신의 결론은 아니다.”였다. 자신은 분명, 영혼을 쪼개어 주었으니 인지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필시 자신은 그런 기회가 주어져도 자신이 흘러내려 온 삶 전부를 되새기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아 두렵게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하게 화를 내면서 왜 그리 미련하냐고 소리치고 싶어도, 이 선택이 자신에게만 안 좋은 것이지 미카즈키 본인에게는 합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성질만 나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도수 낮은 과일주를 낼름 빼 왔다. 잠도 안 오니 얼마나 큰지 감이 오지 않는 달이나 보며 생각을 정리할 참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주인을 똑 닮았는지, 수행에 돌아온 미카즈키가 사리카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미카즈키가 더 먼저 와서 한 잔 걸치고 있었다.

 

그래, 나의 주인. 같이 마시겠느냐?”

“....”

 

나의 주인’? 나의? 아니, ? 그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츳코미 본능을 누르고 그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갑자기 낯가리고 싶은 그녀였다.

 

달은 유독 밝은 느낌이었다. 오밤중이었는데도, 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라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술을 꼴딱 마신 사리카가 입을 먼저 열었다.

 

솔직히 모르겠어. 도대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천년 동안 수행을 했는지. 아무리 수행을 몇십 년씩 하는 검이 있다 해도 천년은 하지 않잖아.”

하하하, 그게 불만이었더냐.”

 

그는 슬쩍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 답답이 같으니라고. 사리카는 그리 생각하며 이어 말했다.

 

그렇게 혼마루가 좋으면서, 중요하면서 천년 동안 떠나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떤 거야? 어떻게 그리 혼마루를 떠나 그리 쉽게 안심할 수 있던 거야? 대침구가 있었는지 별로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한 거야?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그래, 시간만 맞춰서 보내는 거니 나는 미카즈키, 네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혼마루를 그리워했는지 잘 모르겠어. 그게 좀 미련하고 두려워.”

 

사리카는 옆에 앉은 미카즈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음에 쌓아둔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두렵다.’라는 말이 미카즈키의 속을 건드렸다. 너 또한 자신에게 그랬는데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대가 약 천육백 년을 살아왔듯이 나도 비슷한 세월을 지내온 것일 뿐이다. 되새기듯 하나하나 훑어보며. 안 그런가?”

 

미카즈키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찼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슬픔과 고통, 여러 감정이 자신의 내부를 휩쓸었지만 가장 밑바닥에 있던 것은 기쁨이었다. 네가 그리 말했지 않느냐. 존재한다는 것은 고통받으며 감정을 느끼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 그것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게 같을 리가 없지. 내 기억은 아주 흐릿해. 자세히 기억하지도 못하고, 미련하게 한 곳에 앉아있었을 뿐이니까.”

그럼 같은 미련함 아니느냐? 핫하하. 그래. 같단다. 네가 지금을 중요시하듯, 나도 내가 있어야 할 이곳을 중요시한 것뿐이고. , 그런 것이란다.”

 

미카즈키는 술을 한 잔 더 잔에 따랐다. 잔에는 흔들리는 투명한 술과 그 술에 달이 밝게 비추었다. 사리카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자, 미카즈키는 그녀에게 시선을 옮기며 이어 말했다.

 

우리 또한 네가 말하는 직책으로써의 아루지를 상대할 때 그대가 느끼는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겠지. 이리 오래되고 신과 같은 존재가 우리를 받아들일지 말이다. 그런 불안감 같은 걸 그대가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럼, 우리는 대등해진 것이지. 두려워하지 말거라.”

뭐가 대등해. 나는 후회에 사로잡혀 그 많은 세월을 허투루 보냈는데어떻게 같아?”

그럼, 이렇게 생각하자꾸나. 수많은 세월에 있었던 일이 지나간 것일 뿐이다. 나 또한, 지나간 세월에서 으로써 쓰였던 연수는 매우 적으니까 말이다. 어때, 비슷해졌나?”

 

사리카는 이 말에 더 답하지 못했다. 단지 밤이 늦었는데, 술을 단번에 마신 후유증인지 점점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이 미카즈키 눈에 보였다.

 

이상하네그리 혼마루가 좋으면, 빨리 돌아오지.”

 

그 말을 끝으로, 풀썩 사리카는 옆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졸려 하는 버릇이 있으니 아무래도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좋아할수록 좀 더 자신을 알고, 더 강해져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영체니까 깨달음을 얻을수록 강해지니, 언령을 쓰는 그대라면 내 말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카즈키는 마룻바닥에 엎어져 색색 잠든 그녀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너는 이전과 달리 열정적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지. 전과 달리 복잡하고 어떨 때는 아쉽기도 하나, 그것 또한 살아가고자 함에 뒤따라오는 옛 감상일 뿐이다. 미카즈키는 그리 사리카의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한 손가락으로 넘겨주었다.

 

하늘의 달빛이 자신에게 말하는 듯했다. 달은 그저 존재하며, 지구를 돌 뿐이고 그냥 지켜볼 뿐. 지구와 거리가 있고 결국 영원히 다가가지 못하고 헤어지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지구의 열기와 닿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물론 그리하면, 바다는 자신을 거부하며 수십 개로 갈라질 것이다. 잠들어 굽이친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리 알려주고 있었다. 달은 지구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릴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 다만, 그리 무너져도 달의 중심은 지구인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다 마신 술을 옆쪽으로 치워두고, 그녀를 안아 들어 주인의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침실에는 타로타치가 있었다. , 그랬다. 너무 오랜만에 혼마루에 돌아와 잊고 있었다. 마지막에 그녀의 옆에는 타로타치도 같이 있었지 않은가.

 

괜찮네. 직접 하지.”

 

타로타치가 그녀를 건네받으려고 하자, 미카즈키는 굳이 사양하며 그녀를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눕혔다. 머리카락 하나하나 훑어보며 흩어진 머리카락까지 정리해주며, 보고 있던 타로도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그 또한, 짐작 가는 일이 있어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곱게 이불까지 덮어주고 나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카락은 물결과 같이 부드러워 간지러움이 장갑 너머까지 전해졌다. 이내 파란색이 빠진 하얀색 머리카락 끝자락에 닿았다. 그리고 타로가 있는 것을 잊은 듯, 그 머리카락에 키스했다.

 

그래도 역시 자신에겐 뜨거웠다. 자신은 필시 갈 수 없는 영역이리라.

 

더는 말하지 않기로 하고, 이 감정을 묻기로 했다. 그가 천천히 일어서며 방에서 타로타치에게 웃으며 방을 나서자, 타로타치는 누워있는 사리카를 두고 그를 따라나섰다.

 

겨우 죽은 것처럼 살아왔던 이천 년 속, 미미한 감정 속에서 얻은 것이었다. 이천년의 세월을 겪은 그에게는 이 이상은 너무 빨랐다. 천천히,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결국에는 이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없을지라도, 이후 지구에게서 점점 멀어져 혼자 다른 곳으로 멀리 떨어지게 된다고 해도. 만일 자신이 더 살아있을 수 있다면 그때마다 이런 감정이 있었다고 회상하리라. 그것만으로도 지금 그에게는 벅차다. 그때까지 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뿐이다.

 

그래, 그는 단지 그답게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재같이 고요하고, 점점 더 멀어지는 이 하늘 위의 위성처럼.

 

 

문제는 사리카는 중간부터는 잠든 척했다는 것이다. 물론 술을 마시고 존 건 사실이나, 그가 자신을 침대에 눕힐 때 어느 정도 깼다. 근데 왜 일어나지 못했냐면.

 

뭐야? 뭐야?’

 

사리카는 지금 방금 미카즈키가 무엇을 하고 나간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선 코를 골았는지 다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 안 곤 것 같다. 사실 지금 꿈인가? 볼을 꼬집어봤지만 실제로 아프다. 아냐, 꿈에서도 고통은 느낀다고. 그래서 벌떡 일어나다가 근처 탁자에 발을 찧었다. 차마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몸 밖으로 나오려는 고통을 안으로 다 집어넣었다. 그래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일이란 말이다!

 

아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자꾸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타로는 이해라도 간다. 자기가 먼저 시작한 일이 아닌가. 근데 미카즈키는? 시아비 노릇을 하다가 요번 대침구 사키모리작전으로 속 터지게 했었던 장본인 아닌가? 안 그래도 요즘 따라 호네바미와 나마즈오의 낌새가 이상해 정부에게 정보요청을 받아서 속이 알아서 썩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아니, 이 남사에게 도움을 바라는 건 무리다.

 

사실 요즘 따라 드는 생각이 있다. 시간 정부에서 말하는 시간소행군 토벌이란 건 허울뿐인 핑계고, 사실 미래에서 검사들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에 복지 차원에서 만든 것이 혼마루가 아닐까 생각 중이다. 왜냐면, 그렇지 않은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박박 깨끗이 빨아야 할 심리문제가 있는 남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노인사회복지처럼 이것도 해보시고 저것도 해보시고 급료 받아가시며 경제활동에 참여해봐라, 이 기회에 검사들끼리 사회경험도 해보시고 사니와는 그거 총괄해주며 인간혐오나 전주인 숭상 고치라고 그러는 의도가 확실히 있다고 본다. 그렇다. 사니와는 검사들을 위한 사회복지사였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혼마루를 봐라. 타로타치는 자신의 침실을 뺀질나게 들락날락하며 둘이서 자기 불편하다고 매트리스 교체를 요청했고, 결국 자기가 하는 사이에 홀랑 2인용 매트리스가 결재되어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항상 사무실에 앉아있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시아비라는 자는 방금 이야기하다가 술에 취해 깜박 잠들은 복지사에게 뭐, 뭐라고? 믿을 수 없다. 아니, 뇌에 과부하가 오니까 못 본 거로 할 것이다.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듣지도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다. 너무 술에 약해서 곯아떨어진 것으로 하자.

 

검사복지사의 복지는 누가 실현해주려나

 

검사복지사는 조금 울적한 채로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건 전부 아루지의 침실에서의 이야기다.

 

 

 

재빨리 그를 따라 나간 타로타치는 걸어 나가는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마음을 내놓지 않으실 겁니까?”

이런, 그래도 되겠나?”

 

그는 뻔뻔하게 말했다. 마치 자신이 뺏어도 되냐는 마냥 말이다. 하지만 그도 이게 부끄러운 말인지는 알고 있는 듯, 타로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았다.

 

선택은 아루지가 하십니다. 아루지가 당신을 밤에 방으로 불러도 저는 그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혼자서 거기까지 상상했다고? 미카즈키는 그제야 뒤돌아 타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들어온 황금빛 눈은그래, 태양과 마주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 속에서, 자신과 같은 감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타로는 예전에 기억을 되찾았다. 자신과 같이 수행 때 알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달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아는가?”

 

그는 그가 원하는 대답 대신 딴소리로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태양의 빛을 받는 온도는 정부에서 말하길, 132도 정도라고 했던가. 그렇다네.”

 

타로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어리둥절하며 형식적인 대답만 내놓았다.

 

뜨겁군요.”

대신에 밤에는 대략 영하 100도 이하까지 내려간다는군.”

.”

 

더 모르겠다. 타로는 그의 말에 더 대답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주인의 마음은 너무 뜨겁고 열정적이야. 닿으면 둘 중 하나는 타거나 얼어버릴 것이다.

아하하, 그런 얼굴 하지 말게나.”

 

당연하다. 타로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지키지 못한 유리알 같은 사리카가 태양 빛을 내며 반짝인다. 그러면 당연히 손을 뻗어서 닿아 보려고 할 것이다. 그녀가 살아있는지, 그녀가 자신들을 기억하는지. 타로는 내빼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천년의 시간을 살아왔고 이후 수행하러 가서 천년을 다시 되새기고 왔다. 그 세월 중 어느 곳에서도 나를 그리 열정적으로 대해주는 주인은 없었지. 어디든 천을 덧대서 잡았고, 내가 느끼는 온도는 천 너머로 전달되는 온도뿐이다.“

 

그리고는 미카즈키는 뒤에 덧붙이며 슬며시 타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기에, 맨살로 전해지는 온도는 내게는 너무 뜨겁구나.”

 

한마디로 두려워서 내뺀다는 소리다. 그녀의 감정에 닿는 것이 두려워서. 미카즈키 또한 자신이 한심하긴 했다.

 

하하, 걱정하지 말아라. 그거 아느냐. 천년이라는 세월 동안 몰랐던 것인데, 달은 서서히 인간들 눈에서 멀어져 가더구나. 아주 천천히. 빨리 죽는 인간들이 알아볼 수 없는 속도로 말이다.”

 

그래서 변명 또한 덧붙였다.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서툴렀다. 오면 인사하고 가면 헤어지는 것으로 끝난 밋밋한 관계만 있던 그에게는, 다른 검들과 같이 주인에게 줘버릴 감정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걸 눈치챈 건 내 수행 때였다. 마치 내가 인간에게 실망하고 정을 떼버린 것처럼 보이더구나. 그래서 요번 주인은 아주 특별하지. 인간의 힘이 아닌 것을 지닌 채로 이리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더냐.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뜨겁단다.“

 

달이 다가갈수록 지구와는 멀어진다. 마치 그녀와 자신의 관계를 표현하기에는 이만큼 딱 맞는 말이 없다. 어차피 시아비를 자처했지 않나. 그녀가 어떤 감정을 뱉어낼지 두렵다. 당연한 지사다.

 

이윽고 달이 점점 지구에서 멀어져도, 가끔 지구를 들여다볼 때 오늘 뜬 이 달이 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될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달빛을 달래는 건 열기 한 숟가락과 먹 한 방울이면 충분하네. “

 

언젠가 지구에서 떨어져 지구를 다시 바라보았을 때 그것이 한없이 푸른 점이 되걸랑 달은 이날을 떠올리며 도륜처로 갈 것이니라.

달빛은 그리 결정한 미카즈키가 어리석다는 듯이 구름 속에 숨어버렸다.

 

그러니 구태여 전하지 않는 꽃을 보고 감상을 남기는 것은 실례란다.”

 

그렇게 말하는 미카즈키의 얼굴은 애처로워 보였으나, 타로타치는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