審神者物語 - 零, 韓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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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아직 확실히 증명된 것이 없는 이론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와는 관계가 없고 완전히 다른 사실이 군데군데 있으며, 이 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완전한 창작의 이야기입니다.
눈을 감으면 그때 사건이 재생되었다.
커다란 굉음과 위아래가 뒤집히는 느낌. 아무것도 없던 도로에 일렁이는 검은색 무언가가 차를 덮치고 물고 운전대를 잡은 나는 휘어졌다. 죽을 것 같은 위기가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왔을 그때 나는 단지 간절히 바랐다.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그리 간절히 생각하자 한참을 나뒹굴던 차는 멈췄다.
그와 동시에 나이면서 내가 아닌 것이 사고 근처 언덕에서 번쩍 손을 뻗었다. ‘나’이자 내가 아닌 것이 있는 곳으로.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나는 운전하던 차에서 빠져나왔고, 지나가던 착한 주민들의 신고로 온 구급차의 삐용삐용 소리를 뒤로하고 의식이 끊겼으니까. 병원에서는 내가 굉장히 운이 좋다고 했다. 뭐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몸도 튼튼하고 멀쩡하다고. 대신 기억에 문제가 있는지 내 이름을 물으면 두 이름이 생각나곤 했다. ___과 사리카. 당연히 내 이름은 ___인데도 이질감이 들었다.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오면 나는 항상 내가 살려달라고 빌었던 때를 떠올린다. 사고가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다시 보고 싶지 않았을 곳에 와서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다. 나도 이유가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점과 사리카라는 이름을 왜 나라고 생각하냐는 것과... 언덕에서 일어서는 장면을 왜 내가 기억하고 있냐는 것이다.
몸이 분명 달랐다. 그걸 기억하는 것은 옷이 달랐기 때문이다. 좀 더 반짝거리는…. 그래, 금색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었다. 단연하건대 현대의 옷과는 동떨어진 옷이었다. 그런 의문을 가진 채로 멍하니 사고 현장을 둘러보며 있을 때였다.
가만히 앉아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박학다식해 보이는 분이 나를 기웃거리고는 왜 이러고 있냐고 물었다. 딱히 뭐라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냥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지나가는 소리로 말했다.
“천기가 여기로 내려왔다는 신화가 있지요. 혹시 신화 좋아해요? 여기, 일본 신화의 스사노미코토가 내려온 타카마가하라 언덕이라는 학설이 유력해요.”
나는 속으로 그야 여기가 맞으니까요. 라고 대답하려다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상대의 말에 내가 반응하자, 그는 웃으면서 공원을 둘러보라며 팜플렛을 손에 쥐여주었다.
손에 쥔 팜플렛을 피고는 주변을 한참 걸었다. 그러다 해가 지면 시간이 다 되었다고 들으며 쫓겨났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 다음 날에 다시 왔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 주변을 걸었고, 그때마다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형체들이 붙어 나를 뒤따라왔다.
[이보시오. 풀려나니 좋소?]
무엇을? 사고 이후 퇴원한 지 겨우 일주일도 안 되는 시점이었기에, 사고 후유증으로 환청이 들리나 싶어 무시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말소리가 들렸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그런 흩어질만한 소리였다. 그래서 내가 보이는 풍경에 집중하여 그때마다 항상 언덕을 멍하니 보며 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 언덕을 삼 일째 바라보자, 이상하기도 하지. 출입금지된 저곳에서 내가 한참을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아무것도 못하는 채로 가만히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죽으면 죽을지언정 흩어지지도 않고 이곳에 바보천치처럼 계속…. 그러면서도 살고 싶어 했다.
[살고 싶어!]
그때 내가 아닌 나 또한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여기 있었던 나 또한 지금은 내가 되었고, 차를 삼키며 나를 일부 씹어먹어 버린 검은색 형체는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가다 흩어지고는 사라졌다. 텅 빈 자리에는 “내”가 들어왔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나는 누구야?”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근처에 뒤따르던 다른 형체들이 마구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너는, 재앙신.]
[가엾은 대가야의 여왕.]
[그리고 현재 살아있는 인간.]
내가 그들의 대답에 뒤를 돌아보자, 기쁜 듯이 흐물거렸다. 이것이 그들의 대답인 걸까? 좀 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너를 죽인 너의 조카는 너를 재앙이라고 이름 붙였지.]
[얄궂게도, 너는 정말로 그런 힘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너는 이곳에서 재앙을 다스렸다.]
[바보 같은 자. 그런다고 돌아오는 자는 아무도 없는데.]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여럿 겹쳐졌다 흩어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몇몇 단어는 알아듣겠지만 듣지 못하는 말도 있었다. 겨우 건져낸 문장은 위의 것이 전부였다. 나는 조카에게 죽었고, 누군가를 기다리다 죽은 것. 그 정도의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다. 뭐, 뒷말은 모른다쳐도 말이다. 하지만 문장으로 구성되어있다고 해도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내가 무슨 여왕이란 말인가.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을 하자, 그들은 자신의 뒤를 쫓아왔다.
[우리도 벗어나게 해줘.]
[우리에게도 구원을.]
[새 생명을.]
그렇게 계속 쫓아오다가 나 자신이 공원을 완전히 벗어나면 아쉬운 듯 자신을 빤히 바라보면서 다시 공원 안으로 꾸물꾸물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나가는 문은 붉은색인 홍살문이었다. 삿된 것들을 모조리 쏴 없앤다는 홍색 문. 그래서 통과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저들은 이곳에 매여있는 것 같았다.
내 기억을 더듬어 내가 잘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 장소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존재했다. 정확히는 내 부모님 집이었다. 내가 살던 서울의 집은 전부 방을 빼고, 회사도 그만두고 내려와서 부모님 집에서 사업을 준비했었다. 부모님은 차 사고가 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이쪽의 나도, 저쪽의 나도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자들은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듯했다.
자기 전에 조금 생각을 해봤다. 자신은 왜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 언덕에서 일어났을까. 항상 잘 앉아있었으면서 왜 그 날은, 왜 살고 싶다고 하며 일어났을까. 부모님을 잃은 나는 왜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 투성이 이다.
더 생각하는 것이 무리여서, 나는 말 없이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에는 그들을 직접 찾아갔다. 한꺼번에 이야기하면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니 내 이야기를 들어볼 겸 겸사겸사 한 놈씩 천천히 말하게 해서 말이다. 한 명씩 듣는다 해도 그들은 기쁜지 인간의 형태도 아니면서 인간처럼 웃는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 봤자 나는 스마일 표시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감정이 나에게도 전달되는지, 덩달아 조금 마음이 들떴다.
“너는 누구야?”
[모르겠어.]
“그럼 가장 원하는 것이 뭐야?”
[나도 당신처럼 몸을 얻는 것?]
순간 위협적으로 일렁였지만, 나는 그가 진심으로 남의 몸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무섭지 않았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젓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지금 말고, 아주 예전부터. 여기에 남아있던 이유.”
[... 모르겠어.]
“내 생각에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그런가?]
[다음엔 내 이야기를 들어줘.]
그러자 다들 한 명을 대표로 이야기를 들었는지 너도나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소리가 엉켜 들려와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니, 확실히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또렷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얼굴이 없었을 뿐이다. 뻥 뚫린 것처럼 말이다.
[그만하시오. 시끄럽소.]
얼굴 없는 옛 장군과 같은 자는 그들에게 그리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이상 이자들과 얽히면 좋지 않을 것이라.]
“그럼 당신이 내 답을 줄 수 있어?”
[무엇인가.]
“나는 왜 자리에서 일어났지?”
나는 그에게 짧게 물었다. 그들과 이야기 하면 나는 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이 면담을 해산시킨다면 적어도 이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건 모른다. 돌아가라.]
하지만 그는 명백한 축객령을 내렸다. 결국, 나는 꿍시렁 거리며 그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내 곁으로 따라오는 것이 말했다.
[나는… 좀 더 높은 하늘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
“하늘?”
[아까 말했었잖아. 왜 예전부터 있었는지.]
그 대답을 하는 검은 것은 이윽고 형태를 갖추었다. 아까 자신을 쫒아낸 놈처럼 얼굴은 없으나, 인간의 형태를 말이다. 하지만 꽤 불안정한 모습이라서, 형태 끝은 검은색으로 일렁였다.
“그래? 그럼 당장 갈 수 있는 건…저기 낮은 산에 올라갈까.”
[난 여기서 나갈 수 없는데도?]
“혹시 물건에 들어올 수 있어?”
나는 작은 인형을 꺼냈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에코백에 달고 다녀서 꼬질해진 하얀 토끼 솜인형이다. 딱히 가방을 정리하지 않고 다녔기 때문에 멋모르고 들고온 지금도 달려 있었다. 손 발도 착실히 달려있으니 들어갈 수 있겠지.
“홍살문을 통해 못 나간다는 거잖아? 이 인형 정도면 통과할 수 있을 거야.”
[나도, 나도 들어갈래!]
“미안. 오늘은 하나밖에 없네. 내일은 집에서 더 가져올게.”
[꼭 이야. 꼭!]
그렇게 여럿이 돌아가고, 내게 하늘을 보고 싶다고 말한 자는 꼬질한 솜인형에 들어갔다. 인형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정말 귀여워 보였다. 뭐, 어떤 매체에서는 칼을 들고 사람을 살인하는 인형을 말하지만, 이 손은 내 손가락도 제대로 잡지 못해서 톡 건드리는 수준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쪼만한 솜인형을 작은 산 위로 데리고 올라온 나는 물었다.
“어때 맘에 들어?”
[좀 더 높았으면 좋을 텐데.]
“미안, 오늘은 이게 한계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별로 안된 몸은 이걸로도 벅차다. 차라리 전망대에 데려다주는 게 나았을까.
[… 요즘은 높은 곳 많아?]
“그치…. 비행기 타면 더 높을꺼야. 구름 위인걸? 아니, 좀 운전해서 나가면 대구에 전망대라도 있으니 거기가 더 나았을려나.”
[그렇구나.]
그는 그걸 끝으로 인형에서 빠져나왔다. 바람이 선선히 부는 아래에서 빠져나온 놈은 인간의 형태가 뚜렷했고, 이목구비까지 또렷했다. 성별은 애매한 얼굴이었지만 나를 보고는 한 번 웃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기쁘다는 듯이 웃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아, 나에 관해 물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움직이지 않는 솜인형이 어딘가 서글펐다.
그 이후로 계속 공원으로 출퇴근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공원에 가서 여러 인형을 들고 가서, 가방에 한 번에 그들의 영혼을 담아서 차 안에 넣어두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인형들이 속닥이며 웅성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대부분 공원에서 나가는 게 처음이라는 듯, 신기하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저번 아이와 같이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갇혀있었던 반증인지 그중에는 어딜 가보고 싶다는 일이 제일 많았다. 바다 같은 거 말이다.
나는, 이미 떠나간 저번 아이에게 못 보여준 전망대를 보여주고 싶어서 대구로 먼저 차를 끌고 갔고, 그들은 전망대 안 솜인형 속에서 기뻐했다. 그리고 이어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몇 시간 차를 타고 나가 겨우 도착한 바다를 봤다.
그때 어느 아이는 처음 아이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형상을 하고, 손을 꼭 한 번 잡아보고는 사라졌다.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그래서 가끔 눈을 감으면, 친구들과 편히 여행을 다니는 것 같았고, 여행이 끝나면 항상 내 손을 잡아보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들의 욕망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는데도, 몇 마디 건네면 기쁘다는 듯이 반응하고, 이리 쉽게 가버렸다. 데리고 있던 나머지 한 명도 다른 아이들이 다 떠나자 꺄르륵 웃고는 올라가버리고…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로워졌다.
공원으로 다시 가보면 검은색 무언가들은 이제 단 한 명도 더 보이지 않았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공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처음 만났던 얼굴 없는 자가 다가왔다.
[그들을 다 내보냈소?]
“내보낸 건 아니야. 자신들의 의지로 성불한 거지.”
[그렇소이까. 그럼 내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오.]
“너는 원해서 이곳에 남아있던 거 아니야?”
내가 되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슨 이유로 이곳에 홀로 남아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것일까.
[나는 지키고자 하는 자요, 시간이 흐르면서 뭘 지키는지 잊어버렸지. 그걸 찾아주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렇게 되묻기 전에, 그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홍살문 뒤쪽으로.
“...”
떠나간 다른 애들도 저런 의복을 입고 있었지. 나는 여기에 방문한 첫날에 여기에 가라고 팜플렛을 받은 것이 생각났다. 아직 가지고 있을 터이다. 가방을 뒤적거리며 팜플렛을 찾아 펼쳐보니, 근처에 관련된 박물관이 있었다. 이 박물관에 가야 한다! 나는 강한 충동에 휩싸여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언덕에서 일어섰나.
박물관 안에 있는 수많은 유물 속을 걸었다. 시간 속에서 정체없이 헤매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그리 걸으며 헤매다가, 입구 자체를 지나친 것을 깨달았다. 입구 앞의 마네킹들이 입은 것은 가야의 의복이었다. 그래, 그들도 이런 옷을 입었었다.
다시 박물관에 들어와 안내를 듣고 유물을 바라보고 찾아보고… 역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아직 무리인지, 안내 음성을 뒤로하고 안에 마련해둔 의자에 앉았다.
[가야는 한반도 남부에 12개의 왕국을 통합해 세운 연맹 왕국이다.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진주의 고령가야 등 여섯 나라가 있었다. 562년에 신라에 흡수되었으며… 고령은 대가야의 이진아시 왕이 …. ]
이진아시. 대가야를 세운 첫 번째 여왕의 이름이었다. 이때만 해도 여왕이 되는 것이 바람직했지. 내 기억상의 이야기다.
[고령의 대천원을 일본 신화 시작인 타카마가하라고 보는 학설이 있으며, 여기에 나오는 이진아시가 이자나미, 이자나기로 변형되어 전해졌다는 주장을 포함하여… … ]
첫날에 떠나간 아이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의 정체를 묻자, 흔쾌히 대가야의 여왕이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정말로 대가야 사람일까? 하지만 이 박물관에 남아있는 역사자료는 많이 없어 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왜 지금의 나와 혼합된 것일까. 내가 지금 확신할 수 있는 정보는 현재를 사는 ___와 혼합된 것뿐이다. ___은 따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고, 완전히 나였던 듯이 합쳐져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문뜩 불현듯이 스치는 가정이 있었다. 내가 여왕이었다면 나를 지키는 자들도 있었을 터. 혹시, 그 장군은 나를 지키기 위해 있었던 걸까? 나는 다시 공원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뭘 지켜야 할지 모른다고 부탁하였던 자는 여전히 홍살문 뒤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아직도 얼굴이 없는 채로 말이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
“혹시, 만약에… 엄청 어처구니없는 가정이지만, 내가 대가야의 여왕이었다면.”
그는 표정도 보이지 않는 뻥 뚫린 얼굴을 들어 올려 나를 향했다. 불현듯이 예상이 갔다. 혹시나 내가, 그러니까 나를 기다리던 너희들이.
“혹시 나를 지키기 위해 여기 남았니?”
그는 맞다 아니다 등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아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목구비가 돌아오기 시작했으니까.
동시에 나도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저 언덕에 앉아있었던 것은 돌아오겠다고 내게 약속한, 내 아끼던 부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언덕에서 저 멀리 잘린 부하의 목을 보고도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며 나는 기다렸다.
그러나 정치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의 조카는 물이나 뇌전을 다루는 힘을 가진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이리 말했다.
‘기본적으로 여女는 지신족地神族의 후손이니 여왕이 하늘의 힘을 쓰는 것은 삿된 것을 다루는 힘이로다. 또한. 말을 할 때마다 힘을 가지니, 이는 삿된 것임을 피할 수 없을지니. 매번 하늘의 재앙이 올 때마다 그들의 힘을 받은 것이다. 이 삿된 것의 혓바닥을 자르고 죽여 하늘에 바치는 것으로 하늘의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신에게 바쳐라!’
때마침, 그때는 전쟁으로 인해 제사를 지내지 못해, 태풍이 지나가는 참이었다. 평소였다면 힘을 약하게 하는 것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터인데, 심한 피해로 조카를 앞세운 반란이 일어나 나는 쫓기듯 이곳으로 피해왔다.
이어 하늘의 힘을 받은 재앙신으로 몰리며 죽고, 이곳에 사장 당했다. 아니 풍장에 가깝겠지.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정말로 재앙신이 되었다. 그러나 떠나지 않았다.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니. 그래서 이곳에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저승사자가 와 그러면 인간으로 환생하실 것이냐고 물었을 때도, 자신의 영혼을 덜어서 환생시키라고 했을지언정 이 언덕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 언덕에서 일어났던 것은, 영혼이 연결되어있어서 일어난 것이다. 분리되어있던 영혼이 위기감을 느끼며 언덕에 있던 '나'는 일어났고, 자동차 사고를 당한 '나'와 합쳐졌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언덕에서 기다리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기다린 세월을 날려버리고 합쳐졌다.
아니,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 언덕 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바다 건너 나를 찾아오는 이가 있어도, 그를 불쌍히 여길 뿐. 언덕에서 절대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떠나보낸 아이들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 걸어 나오면 보이는 곳에서 언덕에서 내려오지 않는 나를 바라보며 노심초사하던 아이들아. 너희들은 세월이 지나며 무슨 생각을 한 거니. 멍청하고 실패한 너희들의 왕을 보면서.
[기억하셨군요.]
그들의 욕망은 나였다.
홍살문 너머에 삿된 것이 남아있다면, 필시 거기서 죽은 내 동료, 내 부하, 내 시녀들일 터이다. 그들은 자신의 소원을 이뤄달라는 척하며 나를 이곳저곳을 데려다주고, 그걸로 만족했다.
이게 너희들이 원하던 것이었더냐. 내가 살아가는 것이, 언덕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희들의 한이고 원이었던 것이었나.
[이제라도 온전히 죽을 수 있어 기쁩니다.]
그래, 이들은 나를 놔두고 육신이 죽어도 죽지 못했다. 터져 나오는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 눈물이 되어 연신 흘러내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죽어서. 그들도 계속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육신을 잃어버리고 기다렸던 기억조차 잊어버렸다. 슬프게도, 어리석게도. 상사가 어리석게 굴면 두고 가버리지. 홀로 가버리지… … ….
그 또한 성불할 심산인지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떠내보내라고.
[삿된 것들이 살고 싶어한다는 것은 오명입니다. 육체가 없으면 한이든 원이든 또렷하지 않은데 그 누가 살고 싶어하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주군을 지킨다는 명을 잊어버린 채 죽고 싶어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지쳤다. 너무 오랜 세월을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탓이리라. 홍살문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로.
내가 책임지고 그들을 죽여야 한다. 보내줘야 한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그의 손에 내 손을 얹어주었고, 이로써 이곳에서 죽어서도 나를 지키던 아이들은 전부 승천하였다.
한동안 거리의 삿된 것들에게 신이 나타나서 그들을 돌려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이 소문은 삿된 자들에게만 돌았고, 그들 중 죽음을 염원하던 자들이 나에게 와 성불했다. 이 소문은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계속 돌 것 같았다.
앞의 사건도 있었기에, 나는 가진 것을 정리하고 한동안 이 지역을 떠나기로 했다. 그때 외삼촌이라는 자에게 전화가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터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한동안 외삼촌이 집을 관리했었는데 더이상 관리할 수도 없고 처분도 쉽지 않아 나에게 넘긴다는 이야기였다.
마침 딱 상황이 좋은 이야기라, 나는 군말 없이 받은 주소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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