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story. 소우자 1. 이 감정에 대하여
한동안 부단히 후도 근처를 돌아다니며 아루지에게 쫒겨 그를 챙겨주자, 슬슬 그 노력을 눈치채기 시작한 후도는 겨우 수행을 가고싶다 말을 꺼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여자는 그걸 기뻐하며 흔쾌히 배웅해주었을 뿐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가는 길 내내 힘낼 수 있게 여러 말을 해주고 말이다. 그 말들을 후도 유키미츠가 부끄러운 듯 다 받아주자, 마지막으로 그녀가 말했다.
“못 해도 괜찮아. 언제든 혼마루로 돌아와도 괜찮으니까.”
“네이, 네이.”
이후 몇 번이고 달라붙는 다정한 그녀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후도는 수행을 떠났다. 그가 수행복을 착용하고 떠나는 모습까지 정말 눈물겨운 신파극이나 다름없었다.
“....”
아주 충성심 넘치는 칼이라 그런가. 전 주인이 죽을 때 아무것도 못했다고 우울해하는 모습도 자신에게는 웃기는 코미디였다.
소우자는 인간이 싫었다. 정확히는 전주인이 싫은 것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인간은 순식간에 유명한 인물을 따라하고, 천하를 원해 자신을 속박하고 상처내고 가둬놓는 족속들 아닌가. 모두가 그럴 것이다. 자신이 있는 혼마루의 주인 또한.
‘주인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이번 주인 또한 그럴 것이다. 아닌 척하며 자신에게 천하를 가져오라는 듯이 자신을 스스럼 없이 새장에 가두겠지. 칼임에도 칼로 사용되지 않고 전장을 누비지도 않으며 단지 권력자의 방 안에 진상되어진 채로 영원히 권력의 상징으로써 인계를 떠돌 것이다. 자신이 부러질 때까지.
‘아직은 혼마루 성채의 관리인 ‘아루지’직책이지.’
그런데 왜 주인임을 거부하는가. 그러면서 수행을 다녀온 남사들에게 주인이라고 듣는 것은 굳이 정정하지 않는가. 수행을 갔다오지 않은 우리는 당신에게 검이 아니란 말인지? 이걸 노리고 말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정말 기분 나쁘고 저열한 인간이다. 이거에 대해 그녀에게 항의하면 그녀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하며 대답을 했다.
‘너희는 이 시스템에서 나를 자발적으로 주인으로 선택한게 아니잖니? 그리고 나도 왕은 이제 되고 싶지 않으니까. 음… 피차 일반이라고 생각하자.’
‘칼이 주인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어디있지요? 뭐, 수행을 다녀온 남사들에게는 왕이 되고 싶은 겁니까?’
웃기지도 않지. 칼들이 자발적으로 주인을 선택하는 일이 어디 있답니까? 칼들은 단지 자신의 소유자에게 의지할 뿐인 물건일 뿐인데.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그건 똑같은 것 아닌지. 그냥 당신은 선별적으로 주인, 그러니까 왕이 되고 싶어하는 위선자일 뿐. 내가 이를 지적하자 그녀는 이어 말했다.
‘왕이라고는 생각 안하는데, 수행을 갔다오고 나서의 애정표현인 것 같아서 그냥 냅두고 있단다.’
‘애정표현? 웃기지도 않군요.’
‘사실 난 소우자가 불러주는 [당신]이라는 호칭이 나은데 말이야.’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곤두박질 쳐지는 지위로 당신이 뭘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마음의 안정? 그딴 것이 혼마루 성채의 주인에게 필요한 것인지? 매일 작은 모습으로 하찮은 짓만 하고, 정말로 당신에게 권위는 필요없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이 혼마루에서 나는 무엇입니까? 인세에서 [권력]의 상징이었던 나는 대체 무엇이냔 말입니다. 내 표정에 그녀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짜증이 난다. 돌아서면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 남사들과 웃고 떠들어도, 혼마루 성채의 일을 해내고 있어도, 다른 남사랑 애정행각을 하던,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깜깜한 하늘에 벌레소리가 가득 매워진다. 깊은 생각을 하는 동안 해도 져버리고 단지 검은색으로만 메워진 세상에 자신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둠이 점점 자신에게 침범해 앞길이 보이지 않는 듯이, 어둑어둑해져간다. 달빛은 형체를 잃은지 오래인 어두운 하늘을 한동안 그리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애초에 숨길 기세도 없었던 인기척은,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발걸음만 들으면 안다. 저건 그녀의 발소리다. 늦은 밤에 뭐하는 짓인지.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발걸음이 멈췄다.
“당신이 주인임을 거부한 이상, 당신은 저에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
“저는 천하를 손에 넣은 자의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저의 삶 자체에 천하가 관련된 이상, 그건 이야기와 칼의 복합체인 저 자체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천하를 가진 자의 것이 됩니다.”
“....”
“그러니, 당신은 저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다만 잠시 침묵하고는, 다시 가까이 자신의 옆자리로 다가왔다. 어느정도 거리가 있지만, 옆에 있는 자신에게 참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맞아.”
당신은 당당하게 내 말을 긍정했다. 순간적으로 확 치밀어오는 짜증을 꾹꾹 눌러담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그럼 그렇지. 당신 또한 나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가? 예상했던 것인데도. 겨우 진정시킨 짜증이 다시 올라올 쯤에, 자신의 무릎 위에는 부드러운 담요가 덮어졌다. 왜 그런 말을 하고도 이때까지도 나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 건지. 그 사실을 깨닫자 마자, 몸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이어 밤에는 춥다는 말과 함께 당신이 이어간 말은 이러했다.
“하지만, 별도 먼 옛날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단다.”
당신은 별이 아닙니다만. 뾰족하게 나오는 말을 간신히 집어삼키고 계속 해보라는 듯이 당신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꾸준히 그 자리에 있어주었기에… 인간들에게 [나그네의 별]이자 [하늘의 지표]가 되었지.”
북극성이야기인가. 최근에 들어온 칠성검이라는 자가 당신을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너희들이 주인이 아니듯, 너희들의 주인은 온전히 너희들이야. 인간의 몸을 받고 인간의 의지를 받은 이상, 인간이 가진 자주성을 너네들이 가지게 되는 거야.”
인간들이 가진 자주성? 멍청하기 짝이 없게 움직이며 천하를 탐하는 것 말입니까? 내가 비꼴려고 입을 열려고 하자,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며 할 말을 막았다.
“들어보렴. 나는 너희들의 지표가 되고 싶은 거야. 어디로 갈지는 너희들이 정하렴.”
“우리가 어디로 갈지 어떻게 알고 말입니까?”
내가 당신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대답해주자, 당신은 웃으며 이어 말했다. 한국에서는 별자리가 따로 있다며 이것저것 가리키며 말했다. 하늘 가운데에는 자미원과 천시원과 태미원이 있고, 가장 가운데에는 자미원이 있는데 그 곳에 북극칠성이 있다고 말하며 방향을 알려주었다. 또한 이어서 일곱가지의 별들을 보며 각각 이름을 읊어주었는데,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발음이라 잘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알아들은 것은 북두칠성 꼬리를 기준으로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것 정도일까.
“남쪽에는 불이, 동쪽에는 바다가, 북쪽에는 얼음이, 서쪽에는 땅이 펼쳐져 있으니, 저 북극성을 보고 나아가고, 아닌 것 같으면 되돌아오면 돼. 이 혼마루는 등대가 되어 너희가 갈 길을 비춰줄테니까.”
누가 옛 외국의 신이 아니랄까봐 전혀 모르겠는 말 투성이. 단지 자신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어감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만 눈치챌 뿐이다.
“그 와중에 천하를 가지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니?”
천하가 이리 쉽게 내던져질만한 단어였던가. 자신을 집착하고 옭아매던 인간들이 당신의 그 말 한마디에 으스러지는 듯 했다. 왜 이리 초연한건지. 길을 잃지 않고 굳건히 걸어가는 당신의 표정에 할 말을 잃었다.
“삶은 성과제가 아니고 하나의 과정이라서…그 와중에 깨달으면 좋고, 아니면 자기가 행복한 방향으로 수정해서 나아가는 것 뿐이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수행을 떠난 후도가 떠오른다. 어디선가 열심히 지금의 주인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쓰고 있겠지.
“천하는 그 과정에서 오는 부수적인 것일 뿐. 그러기에 천하를 가지더라도 그게 목적이 아니었으니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거야.”
“천하인데도 말입니까?”
“그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권력 말고도 더 중한 것이 있을리가 없다. 천하보다 더 중한 것이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자신은 그리 갇혀 살아왔던 것 아닌가.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싶어 새장 속에서 버둥거렸다. 새장 속에서 나가고 싶어 문을 덜덜 떠는 손으로 열어보면, 그 새장의 문은 열려있었다.이 곳에 올 때부터 닫혀있지 않았던 것처럼.
이럴리가 없는데. 그럴리가 없는데. 당신들이란 족속은 천하를 위해 자신을 탐해야 하는데.
외국인이라 그런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땅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에서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다. 얽히고, 속박하지도 않고, 단지 자신을 인간의 몸으로 현현한 그대로.
“천하가, 목적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지금 숨쉬는 삶 그 자체.”
철썩. 어디선가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가 작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밀물이 끝난 듯, 썰물이 되어 무섭게 쳐들어오는 파도의 소리. 근처 바다에서 나는 걸까.
“지금 행복을 느꼈으면 그만이고, 고통스러우면 빗겨나가고, 언젠가 다시 맞서 싸울 수 있게. 앞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철썩. 방금보다 더 큰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너는, 지금 행복까지 아니더라도 편안하니?”
자신은 파도 앞에 서있었다. 저 멀리 혼마루 근처 바다에서 나는 파도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바로 옆에. 거대하고 드넓은 바다의 파도가 보였다. 일렁이는 파도물결 사이에 자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펴지고, 다시 일그러졌다가 바다 거품이 되어 날리고. 쉽게 자신을 덮어버릴 파도 앞에.
파도? 아니다. 이건 바다다. 망망대해 위에 철썩이는 파도를 맞으며 서있는 것이다. 반박따위 할 수 없었다. 이 굳건한 믿음과 애정 앞에서 자신은 하나의 나룻배밖에 되지 않았다. 겨우 자신이 내밀 수 있었던 비꼬기는, 단 한마디였다.
“천하태평 무사안일주의….”
욕심이 없다는 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인간의 삶이 겨우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니. 자신들의 역대 주인들이 들었다면 코웃음만 쳤을 패배주의적 연설이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쉬라고 자리를 뜰 때까지 자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편안한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질문이었다. 항상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갇혀있던 새에게는 너무한 질문이지 않은가. 솔직히,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말을 들은 이후로부터 자신의 시선의 끝은 항상 당신이 있었다.
그래, 당신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다. 나에게 당신은 빨려들어갈 것 같은 커다란 파도이자 망망대해였다. 해일과 같이 넘실거리는 파도로 자신을 삼켜버릴, 포식자와도 같았다.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떨렸다. 저 해일을 맞으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반파되어버릴까?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 시험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할 일은 후도의 편지를 가져오는 콘노스케에게 시비를 거는 일이었고, 콘노스케는 도발에 응해 그르릉 거리다가, 여차저차 얌전히 자신의 손에 잡혀버렸다. 그리고 그 콘노스케를 데리고 당신의 집무실로 가는 것이다.
‘똑똑’
“들어와.”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순간 표정을 갈무리 못하는 사이,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콘노스케가 이때다 싶은 듯 버둥거렸다.
“놓으세요 소우자 사몬지님! 저 혼자 걸어갈 수 있습니다! 콘노스케 학대를 멈추세요!”
“시끄럽습니다. 좀 얌전히 계시지요. 그렇게 악바리 써봤자 어차피 다왔습니다만.”
“음? 소우자 무슨 일이야?”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라 생각한 건지, 고개를 들어올린 당신은 웃으며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심장이 순간 답답해졌지만 확인해야하는 것이 있기에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후도의 편지가 왔다더군요. 천하에 관심이 없다지만, 이 정도는 관심있을까 싶어.”
“아! 편지가 왔구나. 어? 오늘은 드물게 흔들린 글자가 아니네?”
콘노스케에게서 당신이 후도의 마지막 편지를 건내받고 좀 펼쳐보자 마자, 이 대롱여우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냉큼 당신의 품 속으로 파고 들며 숨고는, 얼굴만 쏙 빼놓고 자신을 꼬나보며 울기 시작했다.
“사니와님 사니와니임!”
“아이구, 소우자는 동물에게는 친절한데 왜 그러니. 어쨌든 나쁜 의도는 없었을꺼야. 그래그래.”
“그럴리가 없어요! 그럴리 없어요! 너무 소우자님 편을 들지 말아주세요!”
자신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콘노스케는 끼잉 울며 당신 품 속에서 통곡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앞으로 콘노스케를 안을 때 엉덩이를 받춰 들어주는 것이 좋다는 등에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며 편지를 다시 닫았다.
…닫았다?
어리둥절해하며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뭔 문제가 있냐는 듯이 자신을 다시 쳐다보았다. 눈이 딱 마주친 순간, 당신과 눈을 마주볼 수 없는 건 자신이었기에 눈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뭘 떠본다고. 하는 수 없이 먼저 본론을 꺼냈다.
“...편지는 안읽으십니까?”
“나 못 읽겠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더니,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외국인. 당연히 옛 글자는 못 알아볼 것이다.
“이래서 외국인이란!”
남사들이 진심을 전달해줘도 그걸 읽지 못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 마음도 읽을 줄 모른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냔 말입니까?
“아냐아냐, 나중에 번역기 써서 읽어보지 뭐. 가져다줘서 고마워.”
“...딱히 당신 좋으라고 가져다 준 건 아닙니다만. …지금 읽어주시겠습니까? 저도 내용이 궁금해서 말이지요. 이정도는 제가 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뭐, 읽지 못하면 제가 읽으며 해석해드리지요.”
이렇게 된 이상, 당신이 남사들의 진심을 읽는 것을 보고 싶다. 그리고 진심을 읽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싶다. 저 편지를 보고 후도를 안쓰러워할까, 아니면 사랑스러워할까. 안된다면 억지로라도 읽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선뜻 그리 나서며 편지를 당장 읽어달라는 압력을 가하자, 갑자기 당신은 내 앞에서 허둥지둥 거리며 괜찮다고 뒤로 빼기 시작했다.
“아냐아냐! 나중에 읽을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콘노스케?”
“흥! 사니와님은 글자 읽어줘도 몰라요!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른다구요!”
“나 그렇게 바보 아니거든?!”
“바보에요! 사니와님은 바보에요!”
품에 쏙 들어간 대롱여우는 다시 얼굴을 당신 품 속으로 숨기며 자신을 놀리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과연, 대롱여우 역시 여우인가. 이런 자신의 속마음이 새어나가지 않게 소매로 입을 가렸다. 아마 당신은 맹하니 내가 무슨 표정을 했는지 알지 못하겠지.
“아무튼, 가져다 줘서 고마워. 후도 편지 기다릴까봐 일부러 데려다 준 거지?”
“아닙니다만.”
“그래, 그래.”
당신은 또 자신을 보며 짜증이 솟구쳐오르게 만드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만 보면 자신은 순식간에 어린 자가 되어버린다. 저어기 밖에서 생각없이 공을 차는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와 같이 말이다.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보지 말라고 말했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옆에서 당신이 언제 편지를 읽어볼까 얼쩡거려보았지만, 결국 당신은 후도가 오는 당일까지 편지를 열어보지 않았다.
…
아, 알겠다. 당신은 누군가의 진심을 보는 것이 싫은거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당신을 따른다면 항상 피한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럴거면 당신도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지 말지. 왜 그리 애틋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남사들의 진심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을꺼면 왜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는지. 차라리 천하를 원한다고 하지. 천하를 원하냐고 쏘아붙일 때마다 그리 씁쓸한 얼굴을 하지 말지. 속이 막힌 듯 답답하고 뒤틀리며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만, 그래도…
결국 당신이 저 멀리서 웃으면 무력하게 시선을 빼앗길 수 밖에 없어서.
자신이 당신에게 날카로운 말을 무심결에 해버리면 차라리 욕을 하지. 당신은 그저 자신이 감정을 가라앉히기를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조금 울고 싶어졌다. 차라리 자신을 힐난했으면, 뭣도 모르는 주제에 선을 넘는다고 화를 냈으면,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혼을 냈으면 나았을 텐데. 단지 그녀는 못들은 척 넘어갈 뿐이었다.
자신의 생에 이런 상대가 있었던가?
자신이 말을 톡 쏘던 비꼬던 가만히 바라보면서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을 노력을 하고, 조금이라도 맘 편하게 대하는 남사들에게 자신이나 후도를 부탁하고…..
….그러면서 후도가 조심스래 수행에 간다고 하니까 진심어린 응원해주고…이번에는 저 자신이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만이 인식되어 속이 울렁거린다. 차라리 속 썩이는 남사로 기억되었으면 나을텐데.
후도가 수행을 마치고 술을 덜 마실거라고 돌아오고, 태평히 웃는 걸 보니 다시 속이 꼬인다. 당신, 진심 거부당했습니다만? 뭐가 좋다고 그리 웃으십니까?
“이제 주군이라고 부를거고, 지금의 주군의 충실한 부하가 될거야!”
“어쩜! 이리 대견하게 돌아왔니!? 그래, 그래. 맘대로 불러!”
…
당신말입니다. 그리 헤벌쭉하는 얼굴하지 말아주시죠. 어차피 진심을 받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앞에서만 선량한 척, 받아주는 척할 거라면. 차라리 들키지 않게 하란 말입니다.
어차피 내가 천하를 가져다줘도 당신은 거부하겠지. 이런 것 따위 필요 없다고 내동댕이 쳐버리면 나을련만. 당신은 가만히 말없이 자신의 표정을 들여다보겠지. 천하는 신경쓰지도 않으면서. 천하가 이리 조잡하고 조그마한 것일지 전에는 생각도 못했으나, 당신에게는 가치도 없는 돌덩이 같은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인데. 내가 당신에게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인데. 차라리 전처럼 천하를 얻는 상징품으로써 천하를 얻고 자신을 당신의 새장에 가두면 좋으련만.
여전히 어두운 밤에 혼마루를 서성였다. 달빛도 전혀 자신의 앞길을 밝히지 못했다. 단지 당신이 가리켰던 작은 북극성만이 아주 작은 빛을 낼 뿐. 계속해서 어둠 속을 서성거릴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아직도 안자?”
그리 헤메던 와중에 자신과 마주친 것은 또 당신이었다. 장소 또한 당신이 북극성을 가리켰던 그 마루에서.
“... 오밤 중에 돌아다니는 걸 보아하니, 결혼한 남사 둘도 별로 쓸모가 없으시군요?”
“요즘 덥지? 나도 자다 깼어.”
이야기하기 싫은 지 주제를 꺾어버리는 그녀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웃기는 사실은 나 또한 그 두 남사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얌전히 당신의 말돌리는 것에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
“무슨 고민이 있어?”
“글쎄요.”
그러나, 자신이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당신에게 관심을 대놓고 요구하는 것 같지 않은가. 자신 또한 말을 바꿔,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단지, 자신이 수행을 가면 어떻게 자신을 그리 굳건히 믿는지 궁금해서. 별들이라도 볼까 나와봤습니다.”
“하긴, 소우자도 슬슬 영력 한계치에 도달하는구나?”
또 대견하다는 듯이 수행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후도를 보는 것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자신은 그런 표정을 원하는 것이 아닌데. 자신이 수행을 떠나면, 남사가 아닌 당신이 우리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어찌되는지도 모르면서 맘편히 나갈 수 있냐는 말을 하는 것 뿐인데.
“그래. 그럼 기도하자.”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다는 듯이 내 한쪽 손을 뺏어 두 손으로 포개었다. 순식간에 전달되는 온기에 온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듯이, 인간들이 말하는 흔히 알레르기 반응처럼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거부반응일까. 필시 그런 것이려다.
“천지신명께 비나옵니다. 이 아해가 가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기를. 그리 아프지 않기를. 가야하는 길을 그리 돌아가지 않기를.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마고할미께도 비나옵니다.”
어떤 신에게 비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이 츠쿠모가미로 살아오면서 이렇게 심장이 낯간지러운 일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두 손에게서 손을 재빨리 빼고 당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 단지 그뿐이다. 당신은 그런 내 모양새가 웃긴지 깔깔 웃으며 자러 돌아갔다.
…치욕? 아니다. 그런 단어로는 자신의 감정을 전부 표현할 수 없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일까?
이렇게 손을 잡힌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빈틈없이 차오르는 것. 그 생각이 대부분 당신에 관련된 것. 닿고, 또 품에 깊숙히 안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면,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것이라면…
자신은 농락당한 것일까?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저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혼마루 내부에 그녀에게 무슨 말이 나오는지 하나도 모르지 않는가. 단지 자신만이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후도 산책을 맡기며 잠시 도와달라고 하는 모습, 감주캔을 주워서 야겐과 같이 가져다 버리는 모습, 내가 당신 주변을 돌며 서류를 하나 지적하는 모습, 그에 고마워하는 당신의 모습. 그 하나하나 모습이 겹쳐지고 마지막에는 당신이 다시 내 손을 잡고 기도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합쳐친다.
굳게 쌓였던 벽은 바닷물에 부딪혀 부서진 지 오래다.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을 보면서도, 그 애정이 좋아서, 친절함과 함께 자신의 영역에 와 바닷물이 되어 철썩인다. 그 물길에 나는 어찌하지 못하고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점점 자신의 안에 당신만이 겹겹히 쌓이며 채워진다. 그때 주변이 어두워져 내 앞을 바라보면 당신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서 꼼짝도 못하게, 숨막힐 듯이 자신을 덮는다.
…
……
근데, 그게 생각한 것보다 그리 숨막히지도 않는다. 아프지도 않았다. 정말 당신처럼 다정한 물결이 어디론가 쓸려나간다.
왜 쓸려나가지? 나는 쓸려나가는 물결을 보며 당황했다. 이 물결과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 영원히 이 따뜻한 물길 속에서… 나는 그 물결을 또 잡고자 바다에 젖은 채로 그 빠져나가는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 걸어나갔다.
빠져나가는 바닷물은 이윽고 당신의 형상이 되어 멈추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형상은 어딘가 먼 곳을 보며 한껏 슬퍼하는 표정으로, 멈춘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어느 검은 웅덩이를 뒤지고 있었다.
소우자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건 검은 웅덩이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곳은 당신이 가장 슬퍼하는 것들이 담겨 있는 곳. 엉망이 되어 다 뜯어지거나 빠지거나 잘린 시체 더미만이 쌓여있는 곳. 아루지라는 자가 그 곳을 뒤지고 있었다. 이걸 바라보는 것이 자신 뿐만이 아닌지, 어느새 자신의 근처에는 잉어요괴가 울상인 채로 서 있었다.
[여전히, 그때를 헤메시는 거지.]
[천하를 돌려준다고 했으니까.]
잉어요괴 옆에는 두꺼비 같은 것이 서서 잉어의 말을 주고 받았다. 자신을 이야기 하는 건가? 하지만 저 시체더미에서 자신을 찾을리 없었다. 자신은 여기 있지 않나. 그렇다면 단 하나, 자신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찾는 것이다.
[우째쓰까잉.]
[저기봐! 살아있는데 직접 목을 벤다!]
그 말에 자신은 그녀를 급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검은 심연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형체 또한 검은 색. 목에는 하나의 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찡그린 표정으로 울며 항상 들고 다니던 무딘 칼로 베어냈다. 칠성검보다 더욱 골동품이라 날이 살아있지 않을텐데. 거의 망치처럼 그녀는 그걸 계속 찍었다. 당신은 그동안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단지 그 잘린 목을 들고 조용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근처에 커다란 바다거북이 나타나 말을 이었다.
[저잣거리에 걸린 목을 보고도 살아있을꺼라 그리 믿었는데도. 결국은 아씨 스스로가 목을 베어버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구나.]
[어쩔 수 없잖여. 다시 살아났으면 지 생을 살 것이지, 죽어라 천하를 돌려준다며 멍청이처럼 구니.]
[심지어 다시 태어난 그녀의 목숨을 노리니까, 신을 노린 죄는 큰 법이지]
“신을 노린다?”
주변의 요괴들이 알아서 실컷 떠들며 자신에게 정보를 주기에, 그들의 뒤에서 몸을 숙여 물었다. 이곳으로 자신을 부른 것도 이자들일지도 몰랐다.
[몰랐나보구마이. 놈이 시간을 돌려서 대가야를 돌려준다면 아씨가 죽어서 과거에 있을 필요가 있… 에구머니나! 사람이야! 아니, 섬나라의 신이잖아!? 우째 여기 들어왔댜?!]
“…그렇군요. 그래서였군요.”
이제야 알겠다. 이제서야 자신을 보며 왜 누군가를 떠올리고, 자신이 준다는 천하를 그리 거부한 건지 이해가 간다. 아니, 당신은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었는데 자신이 이제서야 깨달은 것 뿐이다. 대침구때도, 사키모리때도. 그래서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은 그자를 끝없이 그리워했었다.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고도 몇백년의 시간을 넘어서. 자신은 그 사실이 미치도록 부러워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그 자가 당신에게 천하를 준다고 해서 그리워한 것이 아닌 것을 안다. 단지, 천하를 준다는 사람을 가여워하고 애뜻해 하여 계속해서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겠지. 그래서 돌아온 미카즈키 무네치카를 보고 말 없이 울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대침구 때 옆에 있을꺼라고 말하던 타로타치가 그리 애정을 받은 것이다.
주먹이 꽉 쥐어졌다. 이리 될 줄 알았다면 자신이 옆에 있을 것을. 이때만큼은 날카로운 말 밖에 못하는 자신이 아니었으면 했다. 그러면 처음부터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자신을 어려워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했어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타로타치가 옆에 있으면서도, 미카즈키 무네치카까지 데려왔으면서도 자신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잊지 못해 나를 통해 그를 본 것이니까. 그래, 나를 본 것이 아니라 그를. 그녀 자신이 직접 죽여야하는 자를. 그래서 저기서 날도 없는 검으로 찍어내린 것이다.
다시 고개들어 당신을 바라보니, 자신이 한 일을 알고 그 머리통을 끌어안고 있었다. 가련한 사람. 차라리 자신을 시켰으면 나았을 텐데. 그리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그녀는 한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더니, 마치 서양의 어느 동화의 한구절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하여, 공주님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구나.]
“....”
[직접하면 저리 되시겠지. 우리가 보기에는 그러한데, 곁에 있는 당신의 식견으로는 어떠한가?]
자신의 옆에는 해골만 남은 존재가 누덕한 물건너 갑옷을 입은 채로 서있었다. 단지 하얀 뼈만으로 보아하니 죽은 지 오래된 귀신같아 보였다. 아직까지 잔념을 남기고 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오래된 귀신.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어느새 바다요괴들은 어디가고 그들로만 이 바다가 꽉 차있을 정도로 수십, 수백명 이상이 서있었다. 기이하게도 그건 전부 자신의 품에 있었던 물거품만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백골에게서 안타까워한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나, 그들이 마치 당신의 신하처럼 보여서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 경계하지 말게나. 우리가 초대한 것일세. 우리는 아씨의 힘을 일부 받아 짧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지.]
“....”
[이름을 말해야하나? 우리 하나하나의 개체에는 이름이 없고, 우리를 뭉뚱그려 척척귀신이라고 하지.]
“... 아씨라는 것은 그녀를 말하는 거지요? 제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까?”
[막아주게나. 그를 죽이면 필시 아씨도 무너져내릴 걸세.]
찢어도 시원찮을 놈을 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그래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에겐 무르게 대한다. 자신에게 대하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경계라고는 한톨도 남아있지 않은 점을 보면 말이다.
“좋습니다. 대신에, 당신들이 말하는 아씨가 내 주인이 되어주어야겠습니다.”
그래. 인연을 끊을 때에는 칼을 부적을 삼아 사용한다고 하였다. 만일 그것이 자신이 된다면, 놈이 받아야할 애정을 전부 끊어내 그 애정만큼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하리라. 반문에서 돌아오는 말은 의문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주인일 텐데?]
“그 주인을 말하는게 아니니까요.”
자신은 그렇게, 잠에서 깰 때까지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았다.
side story. 소우자 2 선을 넘지 않는 사람
일단, 소우자가 처음으로 한 일은 평소보다 옷을 풀어 입는 것이다. 옷을 좀 더 벌리고 주변에서 알짱거리며 빈틈을 노리는 것이다. 자신의 주인은 허술하고 맹하니 틈을 찾으려고 하면 있을 것이다.
“소우자, 어디 아파?”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사리카는 소우자가 은근슬쩍 치대는 수작질을 할려고 하자, 사리카는 가지고 있던 깜찍한 담요를 건네주며 들어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똥씹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다른 타도들이나 당황해하며 모른척 하던 단도들, 그리고 눈을 절대 웃지 않으며 은근슬쩍 화내던 미카즈키까지 빠져나오는 공기를 참지 못했다.
그래, 이 혼마루의 주인은 “수작질”이라는 것에 의도치 않게 철벽이었던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게 아픈 걸로 보입니까?”
“응. 열나? 해열제라도 줄까?”
“....”
더 크게 쏘아붙이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소우자는 돌아가야만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저건 상냥함이 몸에 붙었기 때문에 나오는 습관이다. 자신의 오늘 이런 식으로 옷을 입은 것이 열이 나서라고 판단하고 말을 걸어준 것임이 틀림없고, 절대로 자신의 마음을 알고 거부한 것이 아니다.
…검사 마음도 모르는 멍청한 주인 같으니라고. 소우자는 괜히 애꿎게 신포도를 바라보며 욕을 했다.
그가 나가자 뒤따라 단도들이 “주군, 알면서 저러는 걸까….” 라는 말이 조금 오갔지만, 일에 집중한 사리카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단지 미카즈키만 사리카 옆에서 치대다가 방해하지 말라고 애꿎은 주먹만 맞았다. 전혀 타격이 없었지만.
결국, 여러번 이런 수작질이 있은 후에야 궁금증을 참지 못한 단도들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주군, 요즘 소우자님이 이상하지 않나요?”
라던가. 사리카는 그 말을 듣고 조금 곰곰히 생각해보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후도 수행갔다오고 싱숭생숭하던 것 같던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와중에 소우자의 상담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이 대답은 근처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듣고 있던 남사들에게 전부 까마귀소리를 들려주는 꼴이었다. 자신들의 주인은 정말 바보야- 라는.
“그거 말고? 전에 들어봤더니 수행가는 남사들이 조금 부럽다고 하더라고.”
“대장, 진짜 모르는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거야?”
이렇게까지 딴소리로 대답하니 수리실에서 온 야겐이 참다 못하고 끼어들었다. 마침 수리실 결제내역을 가져온 그는 조금 답답했다. 이 사건 이전부터 소우자의 고민상담을 조금씩 들어준 그다. 단연컨데 오다조에서 그와 가장 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소우자가 사리카 그녀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최근들어 더더욱 깊어진 것 같은 감정 말이다. 아니, 어제는 아예 아루지가 있는 곳을 향해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아루지는 정말 얼굴 표정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뭐가? 수행불안감이라면 방금 말했는데.”
이게 가장 중요한거 아니었어? 라고 심각한 고민을 하며 되묻는 그녀를 보니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아루지, 분명 타로타치나 미카즈키랑 갈 때까지 가지 않았나? 결혼까지 하지 않았나? 근데 어째서 이렇게 둔하지? 이런 마음이 듣고 있는 모두에게 몽글몽글 피어났다. 야겐은 결국 대신 말해보기로 했다. 물론, 이런 행동은 연애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지만, 자신의 대장은 평생가도 모를 수도 있다.
“소우자, 대장 좋아하잖아.”
근처에 있던 단도들이 멈추고 야겐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 이야기를 직접 했어야 했냐는 표정이었지만, 야겐은 다른 단도들에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고 사리카만을 쳐다보았다. 옆에있던 단도들만 난리가 났다.
‘어, 어떻게 저런 말을….’
‘서, 설마 야겐도.’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다들. 꼭 그런 감정만 가진 남사들만 있겠어?’
그리고 마지막 말을 한 미다레는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충격먹고는 고개를 떨궜다. 왜, 여기서 거절당한 남사 아닌가. 정확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조금 다르지만, 자신을 그런 대상으로 바라봐달라는 면에서는 어느정도 결이 같다. 그래서 침울해진 미다레를 마에다와 고코타이가 위로하며 뒤를 바라보니, 이번에는 소우자가 근처에 서있어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쪽이건 야단이 났다. 여기서 더 안좋아질 순 없으리라.
“뭔 소리야? 소우자는 나 그리 안좋아해.”
몇 초 전에 한 생각을 저렇게 반격하다니. 심지어 저 말을 본인이 듣게 말할 수가 있다니. 정말 잔인한 주군이라고 단도들은 생각했다.
“그럼요. 저는 아.루.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자기 몸상태도 생각하지 않고 일 치르고 걱정시키더니, 이제 걱정 안해도 될 정도로 제대로 보시고 계시군요.”
저봐라 저저. 어떻게 저렇게 비꼴 수 있나. 아루지는 그래도 최선을 다하다가 피를 토한 건데 그 건으로 저렇게 비꼬고 있다. 그의 편을 들었던 야겐도 당황하며 땀을 조금 흘리고 있다.
“거봐. 소우자도 저렇다고 하잖니. 소우자한테도 민폐니 그런 말들 말렴. 해산,해산.”
어떻게 주군은 갈수록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입을 가질 수 있는거지? 방금 그 말 안했어도 좀 더 괜찮은 분위기에서 해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이걸 고스란히 지켜보던 미다레는 주군을 정말 좋아하긴 하지만, 입만 열면 남사들 화나게 하는 입이라고 생각했다.
“대장. 그거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 엥? 그렇게까지 물어볼 정도의 말이었니?”
“응.”
“난 평범한 말이었는데…. 어쨌든 소우자도 싫다니까 그런 말 말자.”
사리카는 얼른 수리실 결제목록을 살펴보고 결제도장을 찍은 후 야겐에게 들려주었다. 가볍게 한숨을 쉬던 야겐은 결국 미련이 남았는지 주군을 바라보다가 돌아갔다. 다만 남아있던 마에다만이 ‘먼저 좋아하시는 게 아니면 얄짤 없으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이 떠난 자리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저런 고집불통은 먼저 선을 넘지 않는다. 역시 타로타치가 예외적인 남사였던 것이다. 미카즈키 또한 그렇고.
이런 식으로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사리카는 여전히 무뚝뚝해 수작질이 안통하는 상사로 업무를 진행중이었고, 옆에서 계속 수작질하는 소우자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가 말하는 말을 의심없이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보통 표정이나 그런 걸 통해서 의미를 파악하지 않나? 생각이 없는 건가? 어떻게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바로 받아들이는 거지. 교토에서 일생을 여럿 보낸 소우자는 그녀의 성정에 조금, 아니 매우 화가 났다. 자신만이 마음 졸이는 이 관계에서 평정을 유지할 존재가 어디있겠는가?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소우자는 그녀에게 다짜고짜 쏘아붙였다.
“당신, 내가 나서서 일을 해주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음, 심심해한다는 생각?”
“상대가 저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안합니까?”
꽤나 구체적이었으나 인내심은 다 닳아버린 소우자에게는 꽤나 직접적인 말이었다.
“꼭… 남사들이 날 그렇게 생각할 리가 있니. 세상에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성애적인 의미의 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에휴, 나도 SNS보면서 자꾸 다른 집 사니와와 남사들 엮는 짓 좀 그만해야하는데.”
한숨이나 쉬면서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주인을 보고 있자니, ‘당신 코가 석자인데 지금 누굴 이어주고 있냐.’ 고 말하고 싶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관심 자신에게나 주던가. 옆 혼마루의 자기 동소체에게만 주고 옆집 혼마루 주인과 이어주느라 정신 팔려있다니. 이 속이 뒤집히는 기분을 당신은 모르겠지. 소우자는 두고보자고 속으로 칼을 갈았다.
일이 터진 건 그날 휴일이었다. 휴일에 같은 사니와를 어쩌다가 만나기로 했다며 약속을 엄청 기대하며 나갔고, 남사들을 그녀를 배웅했다. 그런데, 사니와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그녀가 갑자기 혼마루에 돌아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잠시 근시를 바꿀께. 소우자, 단도해보련?”
“예.”
한껏 속으로 칼을 갈던 그는 자신있게 웃으면서 난쟁이들에게 물자를 건네고는 의식을 치뤘다. 그리고, 안에서는 코가라스마루가 나오며 아루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다음엔 타로타치. 그다음에도 타로타치.
“....”
사리카는 어버버하며 코가라스마루와 타로타치를 습합시키고는 말이 없었다. 주변 땅을 보면서 땀이나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하고는 소우자를 힐끔 쳐다보고 다시 땅을 보며 땀을 흘리길 반복했다. 이정도면 눈치빠른 소우자는 아루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눈치챌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검을 데려온다는 의미가 소우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그의 주인이, 이렇게 계속 레어태도랑 기다리고 기다리던 타로타치 습합을 주게 한다는 것은… 주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방금은 미카즈키 무네치카 습합까지 도와주었다. 습합을 유독 싫어하는 남사들에게 직접 습합을 먹이니 약간 고소하기도 했다. 미카즈키고 타로타치고 습합 안하겠다고 주인이 단도 시키면 굳이굳이 못하는 척을 하지 않았나. 아니, 실제로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일단, 타로타치는 일부러 자신을 빼고 있었으니 말이다.
소우자가 이러는 사이, 사리카는 후다닥 습합방에서 도망갔다. 정확히는 도망쳤다.
“호오? 이렇게 나오시겠습니까?”
누가 좋아하는 사람이 똑같은 놈들 답다고 할까봐서인지 소우자는 미카즈키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그녀를 계속 쫒아갔다. 뒤따라 찾은 사리카는 심호흡을 몇 번하고 진정했는지 다시 그전과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단도를 잘하는 것 뿐인데 왜 착각하고 그래!”
“과연 착각일까요?”
“아냐아냐, 착각 ….”
사리카는 펄쩍 뛰어오르며 자신의 뒷편에 서있는 소우자에게서 떨어졌다. 이 점이 불쾌해서 눈썹을 꿈뜰거린 그는 어디가냐고 그녀에게 쏘아붙였으나, 땀을 흘리며 도망가는 사리카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한동안 이런 숨바꼭질은 계속 됐다.
“어디”
“흐아악!”
“계속”
“꺄아아악!”
“도망쳐 보세요?”
“으아앙!”
업무실이나 휴게실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 당연한 것이, 지금 혼마루의 근시는 사리카가 설정해놓은 그대로였다. 당연히 근시가 따라붙게 되어있는데도 의미없이 도망가는 짓만 하며 자꾸 혼마루 내부 지도만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건 그녀의 도피성향이었다. 그래놓고는 은근슬쩍 단도방으로 가서 단도를 다시 시키기도 해서, 한숨을 쉬며 소우자가 얌전히 단도를 해주는 결과물을 보고 다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이상은 그녀에게 한계였다.
“잘래.”
“그러시지요.”
아루지 방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사리카 뒤로 소우자가 바짝 따라붙으며 걸었다. 음? 이상했다. 왜 이쪽으로 오지? 이쪽으로 갈수록 사몬지 방이랑은 정 반대 방향이다. 사리카는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는 소우자를 보며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왜… 쫒아오는거야?”
“당신, 어차피 내가 아무짓도 안하면 아무것도 안할 것 아닙니까?”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아무 짓도 안하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건 직장상사로써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상대가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은 상대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사리카는 의미심장한 말을 필사적에 머리를 굴려보고 대답했다.
“그야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뭐, 뭔소리야? 사리카는 되돌아가는 질문을 삼켰다. 왜 그게 문제인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뭔 말인지 모르고 답해준 게 문제일까? 그러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소우자가 이상해 발길을 다시 틀어서 단도방으로 유도했다. “또 입니까?” 하면서 얌전히 단도를 해주는 소우자의 손길을 보고는 안심하고는, 재빨리 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사니와. 바보 사니와. 멍청한 아루지. 검을 다루는 남사들 체력이 좋겠는가, 하루종일 서류 업무 처리하면서 백업이나 하는 사니와 체력이 좋겠는가? 심지어 키 큰 사람의 걸음 폭이 더 큰데. 금방 따라잡히는 건 뻔할 뻔자이다.
“내빼는 겁니까?”
당연히 금방 따라잡힌 사리카는 분해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소우자 또한 뒤따라 방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뒤따라 방으로 들어올 것 같더라니. 하지만 그가 뭘 원하는지는 몰랐으므로 사리카는 모든 것을 다 회피하고 자기로 했다. 그러나, 얌전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사리카 옆으로 당연하듯 옆에 앉는 것 아닌가. 사리카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아냐아냐, 안그래도 멘탈 예민한 애한테… 말 좀 다듬어서 말해보자.
“무슨 할 말 있니?”
조심히 그리 말하자 소우자는 소매로 입매를 잠깐 가렸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뇨. 다만, 전에 미카즈키가 일을 잘하니까 상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전에 근시를 미카즈키로 임명하고 일을 잘하면서 무슨 상이 없냐고 깐죽거리길래 냅다 멱살을 잡아서 키스함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 설마 해달라는 건가? 미쳤나, 얘?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돌리니 아까보다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도망치는 것밖에 할 줄 모르죠?”
소우자는 그리 말하며 사리카를 따라 옆 이불을 들추며 속으로 들어왔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회피하고 싶었던 그녀는, ‘아니, 나 이 이상은 한계야. 더이상 생각하는게 불가능해.’하며 잠을 청하고 싶었다.
“그래그래, 아줌마 이제 자도 되지?”
은근슬쩍 자신을 그렇게 보지 말라는 선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겨우 온 소우자가 그냥 넘어가겠는가? 이 한 발자국만 넘으면 자기가 원하는 고지에 들어가는데, 겨우 한 발자국 앞에서 선 안 쪽으로 도망친 사람을? 소우자는 단지 이 상황에서도 잠으로 도망치려는 이 여자의 행태가 조금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원하는 자신 또한.
“당신은 이 상황에서 잠이 옵니까?”
사리카는 그 말에 웃으면서 눈을 꼭 감았다. 자긴 잘 거니까 더이상 말걸지 말라는 신호였겠지만, 그 남사에게는 택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였다. 눈을 감으면 어느 로맨스 소설이나 창작물에서는 요컨데, 키스의 해달라는 어떤 신호이기도 하지 않은가.
소우자는 하나의 갈림길에 섰다. 여기서 선을 스스로 넘고 원망받을 것인가, 아니면 넘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계속 애만 태울 것인가. 그 짧은 시간 안에 소우자는 판단을 마쳤다. 차라리 넘고 이 마음을 접는 것이 나으면 나았지, 후자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까지 모든 자존심까지 버리고 매달리느리 차라리 혀를 깨물고 말리라. 뭐, 그는 이미 가진 자존심을 다 내던진 상태라서 더 버릴 것도 없었다.
“하여간 당신이란 사람은 끝까지 먼저 다가오지 않죠.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죽어도 선을 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이리 나오는 것도 용서하시죠. 아시겠습니까?”
소우자는 사리카가 곱게 그어놓은 선을 짓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는 귓볼을 어루만지며, 입 안으로 자신의 가시 돋은 혀를 넣어 마음껏 선 안의 달콤함을 즐겼다. 이리저리 선 안을 휘젓고 다니며 그녀를 옭아매고, 놓다가도 다시 옭아매면서. 인간의 애정표현이 원래 이리 달콤했던 것일까? 인간의 몸 안쪽은 왜 이리 따뜻한 것일까. 철이 녹아버릴 것 같은 용광로의 온기가 맘에 드는 듯이, 그는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밀착시켰다. 조금이라도, 단 몇 초라도 더. 몸이 서로의 체온을 달궈 숨이 뜨거워졌을 때에, 선 위에 올라서 그녀의 표정을 보기 위해 눈을 떴다. 자신을 힐난할까? 아니면 자신을 혐오할까? 그도 아니라면…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마주한 그 순간, 소우자는 숨이 멎었다.
사리카는 명백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어떠한 말도 없이 단지 붉어진 그녀의 볼을 마주하고 자신을 당황스럽게 보는 눈빛만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는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며 스르륵 눈길을 피했다.
소우자는 찰나에 수백번의 고민을 했다. 이 이상 중심부로 들어가느냐, 마느냐. 선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면 저번에 못 먹었던 포도를 못 먹더라도 와인이든, 포도주스라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신포도, 그러니까 그녀의 마음 자체가 아닌가? 멋대로 들어가면 포도를 먹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도 아니면… 소우자는 눈을 슬쩍 내리 깔았다. 남사가 졸졸 따라오는데도 이렇게 허술한 옷차림. 오늘까지 내내 그녀 주변을 따라다니면서 생각하는 거지만 이 여자를 내가 꼬시는건지 내가 이 여자에게 꼬셔지는건지 모를 정도로 빈틈투성이인 옷이었다.
욕망만이 들끓었다. 차라리 키스하지 않았다면 이런 욕망도 들지 않고 단지 빈틈투성이로 입은 그녀에게 잔소리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방금 경험한 것이 너무 달았다. 따뜻한 열기에 녹아버리고 싶을 만큼.
이미 추는 기울었다. 소우자는 입을 가리고 있는 사리카의 손을 잡아 치우고는 입을 벌렸다.
—----
좃됬다.
사리카는 울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일어났다. 죽을 것 같았다. 허리고 위고 지금 작살날 것 같다. 특히 위장은 아까부터 격렬하게 “너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고 있다”라고 비웃는 듯이 알려주고 있었다. 안다고! 알고 있다고! 어떻게 타로타치 이후로부터 하나 나아진게 없니! 미카즈키때도 아파서 책상 위에 쓰러지더니 요번에는 위가 말썽이다. 자기 몸 조지는데 이렇게 방법이 많다니 정말 다재다능이다. 타로타치를 잡아먹은 이후 술만 안끊었으면 간까지 조졌을 것이다.
인생은 일단 조져졌다. 누가 남사 세 명을 데리고 잠자리에서 노는가? 위가 쓰렸다. 남편이 두 사람이 있는데도 일어난 일이니 부덕한 사리카 자신 탓이다. 확실히 거부할 것을. 그렇지만 도대체 왜 키스를 잘하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그리고 뒤이어서는 할 거 다 해버렸지 않은가. 부끄럽고 자신이 쓰레기같다.
“옷깃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안에 가슴골이 보이지 않습니까.”
“으으으….”
너도 옷 … 아휴 됬다. 사리카는 입을 다물었다. 얌전히 씻고 머리 말리고는 옷을 입고 있으려니 이미 옷을 다 갈아입은 소우자가 자신의 옷을 봐주면서 다시 봐주는 것이다. 그리고 몇 번 시도하려다가 소우자는 안에 단추를 달아야겠다고 말하고는 반짇고리를 찾는 것을 저지했다.
“그냥, 그냥 출근할래….”
“... 안에 뭘 입으시는 게 낫겠군요.”
“아, 알았어.”
삐걱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사리카가 옷을 갈아입자, 옆에 있던 소우자는 그걸 도왔다. 물론 그녀가 “니가 왜?”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밤새 내내 시달렸던 몸을 생각하면 “지도 미안했던 거지….”라는 어림짐작한 답이 그럴싸하게 나와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출근하자마자 SNS을 키고 어느 단어를 봐버린 것은 사리카의 잘못이 아니다. 소우자 왤케 잘하냐는 말을 익명의 SNS에게 말하기 전에, “오늘은 키스데이입니다 짜잔!” 이라는 말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이럴수가. 하필 소우자와 키스를 한 다음 날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전날 기억에 사리카는 단말기를 보다 책상을 내려쳤고, 그에 같이 출근한 소우자가 무슨 일이냐고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업무확인 안하고 무얼하고 계십니까?”
그녀는 어버버 거리며 단말기를 숨기려고 했지만, 서있는 소우자 입장에서 볼 때 참 가소로운 몸짓이었다. 당연히 사리카의 단말기는 그에게 뺏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단말기에 보이는 것은 “키스데이”라는 단어이다. 무슨 말인지 소우자가 모를리가 없었다.
소우자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딴청을 피우며 눈길을 피하는 아루지만이 거기 있었다. 그 또한 어제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소우자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손을 대었다. 부끄러워하는 꽃처럼 핀 붉은 뺨에 온기가 닿자, 그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툭 뱉었다.
“이리오시지요. 어제 그리 모자랐다면야. 어차피 다른 두 남사에게도 할 것 아닙니까?”
“어제 한 걸로 해! 어제 한 걸로!”
그러나 그 말은 먹히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키스에 사리카는 머리와 위가 뻥 터지며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 덥군요. 물 좀 가져오지요.”
소우자 또한, 벚꽃을 날리며 잠시 탕비실로 들어갔다.
어제에 이어 오늘, 그가 선을 넘고 나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전부 되새김질하고 혼자가 되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 귀, 목 전부가 열기로 차올랐다. 전부 꿈이라면 깨지 않을 거다. 계속해서 영원히 잠들고 말리라. 지금까지 경험한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일까?
그가 문뜩 올려다본 탕비실 내 창문 밖에는 햇살이 점점 가득히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에 벚꽃잎이 넘실거렸다. 그래. 이건 현실이다. 자신의 입술을 슬쩍 손가락으로 더듬으면, 그녀의 감촉과 열기가 다시끔 전달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괜찮다. 어떤 시련이 자신을 방해할지라도 이 기억만 가지고도 어떻게든 그녀 옆을 비집고 들어갈 자신이 생겼다. 그래, 요컨데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요전번처럼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말이다.
side story 소우자 3. 이나바와의 다툼
이나바 고우는 이 혼마루에 온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 기가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그로 인한 충격은 말로 더할나위 없었다. 아니, 이놈의 혼마루 성채 관리인은…영력은 꽤나 고급품이었다만, 머리는 빈 게 확실하다.
천하를 손에 넣은 자의 검이라고 불리는 소우자 사몬지 그 작자가 갑자기 앙탈을 부리며 성채 관리인에게 기대고는 온갖 연인이나 할 자태를 하는 것이다.
그 자태를 처음 본 날에는 어이가 없어서 대놓고 관리인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나바가 들어올 때에는 자신에게도 소우자 사몬지에게도 “천하는 필요없단다.”라고 말해놓고서는 지금에서야 홀랑 저 놈을 품에 안은 행태라니! 이를 까득 갈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자신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닌가? 역시 소우자 사몬지에게 달린 천하만을 탐하는 것인가? 다짜고짜 관리인 업무실에 들어간 그가 째릿 노려보았다.
“당신 또한 천하인이 되고 싶은 게 맞나? 그래, 소우자 사몬지만 가지고?”
얌전히 앉아있던 사리카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그녀는 소우자의 패기와 틈을 보고 들어온 당일의 일이었기 때문에 위까지 아파왔다. 심지어 자신이 이나바든 소우자든 항상 했던 말이 있지 않은가. “천하는 필요없다.” 한 입으로 두말하다니 여자로써의 수치다. 그녀는 이나바를 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입만 뻥긋거리며 필사적으로 고개만 도리도리할 뿐이었다.
“하여간, 멋도 즐거움도 모르는 남사가 어찌 천하를 알겠습니까?”
그 상황을 깬 건 파르르 떠는 사리카를 안은 소우자의 말이었다. 이나바는 눈을 깔고 앉아있는 그 둘을 바라보았다. 천하를 얻어? 겨우 한낱 여자 품 안에서?
“검의 수치같은 놈. 주인 근처에서 알량거리면서 천하를 손에 넣는 게 네 수법인가?”
이건 명백한 도발이다. 전 주인 옆에서도 이렇게 몸으로 사람들을 홀리며 사는 것이 아니었냐는. 그러나 이런 도발로 말하자면 이나바는 전혀 모르겠지만, 도발 당하는 놈이 찔리는 것이다. 심지어 소우자 사몬지는 그 생활을 불행하다고 느꼈고 부럽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 도발에 화낼 필요도 없는 남사인데다가, 본인이 하는 독설에 비해서는 정말 아기의 칭얼거림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소우자는 가볍게 대꾸했다.
“천하가 자연히 굴러들어오는 줄 아시는지요? 모르셨겠지만, 뭐든 노력해야 손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저라고 방 안에 얌전히 있었는 줄 아시는가요? 움직이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뭐, 가져보지 못한 당신은 전혀 모르시겠지만서도?”
사리카는 “얘 왜 갑자기 딴소리야?”라는 느낌으로 당황하며 소우자를 쳐다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우자는 평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리카는 이 상황에서 왜 자신을 쳐다보는지 알 수 없어 땀만 삐질 흘릴 뿐이다. 그냥 이러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점점 그녀의 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우자에게 천하는 자신의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주인의 마음]이었으니, 그걸 가지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린 것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었다. 소우자는 이제 자신이 안은 주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 모습은 누가봐도 애첩이 황제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모습이라, 어처구니가 없었던 이나바는 표정을 온갖 방법으로 구기며 그 둘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실전도 제대로 나가보지 못한 놈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군.”
“그렇다면 당신도 천하의 상징이 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둘의 대화가 점점 날카롭게 뻗어가고 있다. 그걸 가운데에 껴서 보는 사리카의 스트레스는… 포탄처럼 폭발했고 이윽고 위가 경련한 것처럼 욱신거리며 사리카를 아웃시켰다. 얼마나 통증이 심했는지 인간형체를 유지못하고 사리카가 작은 모습으로 변하며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 아이고오! 아루지, 배가 아프다! 배가!”
“비켜라! 방해다!”
바닥에 쓰러지며 구르기 시작하자, 이나바는 맘에 안들었던 관리인에게 신경질을 내며 눈을 부라렸다. 뭐, 천하를 손에 넣은 남사와 천하를 얻지 못한 남사들끼리 싸우는 중이었는데 당연한 일이다만, 주인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단지 소우자만 사색이 되어 바닥에서 구르는 사리카를 껴안았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됬습니다. 그쪽과 상대할 필요도 없겠군요.”
“이이잉….”
“귀여운 척 하지 마시죠.”
그렇게 그가 이나바 고우를 노려보면서 그리 작아진 사리카몬을 안고 후다닥 수리실로 뛰어간 것도 며칠 전이다. 아직도 그는 열이 뻗쳐있었다. 그도 초반에는 소우자가 주인 근처에서만 맴돌 때만해도 ‘천하의 검이라고 하지만 그도 나름 고생이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 또한 천하를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고. 그게 주인의 뜻에 반하든 말든 이나바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살펴본 결과, 소우자 사몬지는 지금 완벽히 황제의 애첩처럼 관리인에게 꼬리를 살랑 흔들며 품안을 파고들고 있지 않은가. 천하의 검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그가. 옆에 있던 초기도인 하치스카 코테츠가 불쾌하다며 도망을 가던 말던.
이게 소우자 사몬지가 천하를 손에 넣은 방식이란 말인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아첨해서? 자신이 손에 못 넣은 천하를, 이렇게 한심한 방법으로? 남사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수준으로? 심지어 이제 관리인 곁을 당당히 차지해서 더이상 천하를 밥먹듯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자신을 조롱하면서 천하따위를 탐하는 자신을 욕해야 정상이 아닌가? 소우자 사몬지는 그래도 되는 남사이다. 천하는 자신이 항상 가지고 싶어 하던 것. 왜 저리 필요없다는 듯이 내팽겨 치는가? 자신이 그리 원하는 것을 알면서. 자신이 인정했언 유일한 라이벌이 버린 것을 개같이 주워먹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불쾌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얻을려면 너무나 먼 욕망이자 꿈. 인간으로 현현한지 별로 되지 않았던 이나바는 자신의 분노를 어디로 풀어야할지 몰랐다. 그러기에 당연히 얌전히 지나가던 소우자 사몬지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번 주인에게는 천하를 주지 않은 셈인가? 언제까지 움직이지 않을거지? 원래부터 이런 식이었나?”
“요즘은 주인도 모르는 개새끼가 짖는 시기인가요?”
돌아온 말은 관리인이 없어 더욱 날카로워진 소우자의 말이었다. 또, 이나바는 몰랐겠지만 소우자는 그가 사리카가 아파 바닥에 데굴데굴 구를때 소리지른 것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었다. 즉, 공격할 기회를 이를 갈며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전 주인만 주인인가보죠. 저도 주인이 여럿 바뀌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봐서. 원하신다면 당신이 직접 바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 전 주인 말고 지금의 주인에게 말입니다.”
쉴틈없이 그를 공격하는 사실기술에 대한 정신력폭력에 이나바 또한 주고 받는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쌍욕만 없었을뿐 지나가는 남사들 다 당황할 정도로 냉기가 폴폴 흘렀다.
“하, 인간 몸을 가지더니 알량하게 주인에게 하는 짓거리가 네 방식인가?”
“부러우신가요?”
우연히 지나가던 시시오는 전병을 와삭 집었다. 이건 평소에 못볼 구경거리다! 오키타 조 또한 저 둘의 싸움에 말리지 못하겠다는 듯 당황하며 일단 시시오를 떨어뜨렸다. 아니, 근데 소우자 요즘 얌전하다가 주인 앞에서 애완동물처럼 굴며 딱 붙어있다가 이게 무슨 짓이람?! 주변에서 이런 행동을 하던 말던 소우자는 가볍게 말 뒤를 이었다.
“뭐, 그럼 당신도 해보시죠? 그 어떤 것도 손에 못 넣다니, 불쌍한 검이로군요.”
그래, 소우자는 자신감이 가득 차있다. 사리카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단 하나의 사실이 그에게 아주 큰 버팀목이 되었다. 이렇게 자존심만 센 녀석이 그녀에게 치대봤자 사랑? 얻지 못할 것이다. 자신도 겨우겨우 얻은 것인데. 그가 말하는 천하든, 자신이 말하는 천하든 무엇 하나 얻지 못할 것이다.
“어이, 거기!”
“자자, 같은 혼마루에서 지내게 됬으니 좋은 말까진 아니더라도 나쁜 말은 나누지 말아야지.”
그새 이즈미노카미와 이시키리마루가 이 난장판을 발견한 것인지, 그들을 중재하러 나타났다. 소우자는 그들을 보자마자 “예. 오셨군요.”하며 저놈을 당장 눈앞에서 치워달라는 행동을 취했다. 훠이훠이하는 손짓을 보니 이시키리마루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사이가 안좋다니. 난감해하는 그들을 앞에두고 때마침 달려온 코테기리가 뛰어오며 이나바에게 말을 전했다.
“찾았습니다, 이나바! 원정 출전 명령입니다.”
“좋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 이나바는 홀로 뚜벅뚜벅 원정을 향해 걸어갔다. 그 부대는 영력 만렙을 찍은 하치가 부대장에서 은퇴하고 그 뒤를 이어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대장이 된 부대였다. 자존심을 키웠으면해서 사리카가 점지한 대장이었고, 실제로 최근에는 자신감이 좀 자란 것 같았다만.
그거 아는가? 광공의 다른 말은 예민보스이다. 에비앙 아니면 픽 죽어버리는 광공, 검은 옷을 입지 않으면 픽 죽어버리는 광공…. 그러니까 소우자의 말싸움에서 내빼는 형태가 된 이나바 고우는, “그 어떤 것도 손에 넣지 못하다니, 불쌍한 검이로군요.”에 원정에 나가서도 미치도록 시달렸다.
평소와 똑같은 장소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부대장인 야만바기리는 평소와 다른 시간소행군의 행태에 난전을 표했다. 심지어 그는 새로온 부대원과 의견충돌이 있은 후, 어찌저찌 수습해서 돌아왔으나 자존심이 팍 죽어버린 상태, 다른 부대원들 또한 수리가 필요한 엉망진창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심지어 이나바 고우가 멋대로 전장이탈하여 다른 고우들이 수습하러 나갔다. 사리카에게 이 꼬라지가 보고 들어가자, 후다닥 달려온 사리카 앞에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 고우들과 만신창이 고우가 있었다.
사리카는 고개를 돌려 이게 어찌된 일인지 다른 애들을 떨리는 동공으로 쳐다보았으나, 같이 갔던 초기도 애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야만바기리만 떨리는 눈동자로 당황한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마치 애가 울 것 같았다. 아이고 시발.
“일을 하다보면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는거야. 응? 인간관계도 그런거지.”
“역시 나같은 것보다…”
“떽! 복제품이든 가짜든 그게 무슨 상관이니! 너는 우리 혼마루의 어엿한 검사인데. 그건 변하지 않아!”
사리카는 풀이 죽은 강아지같은 현 초기도 부대장을 애기처럼 어르고 달랬다. 이런 말 몇 번 나누다보니, 조금은 덜 시무룩해진 만바가 수리실로 들어갔다. 뒤이어 수리실에 줄줄히 들어가는 초기도애들을 보자, 그녀는 만바와 같이 한 번씩 안아주며 수고했다고 몇 마디 짧게 인사를 나눴다. 사리카 뒤에 서있는 소우자는 꽁해보였으나, 원래 이런 다정한 인간이라 그 이상은 티내지 않았다. 뭐… 대충 일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는 예상이 되었기에.
“당신, 잠깐만요.”
“응?”
뒤에 있던 소우자는 사리카가 5명의 초기도남사를 배웅한 이후에 잠시 자기가 인성질 부린 것에 대해 털어놓았다.
“... 그래서 그렇게 된 것 같군요.
솔직히 그는 조금 두려웠다. 자신과 이런 관계가 되고 나서 큰 문제를 일으킨 건 지금이 처음이니까. 하지만 그녀도 자기가 왜 화냈는지는 아마 알고 있겠지만…
“화내시렵니까?”
“아니? 뭐, 이렇게 많은 남사가 있다보면 어느 누구와는 사이가 나쁠 수도 있는 법이지. 풀 죽지마.”
사리카는 별말 없이 소우자를 안아주고 뒷수습은 자기가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사리카 입장에서는 소우자가 말한 것 중에 틀린 말은 없었다. 단지 조금 말투가 쎘다는 것 정도일까? 애초에 그렇게 잘잘못을 따지자면 이나바가 선제공격한 게 문제겠지. 그리고 이런 일이 있으면 원래 관리인은 자기가 나서야 하는 게 맞다. 사리카는 종종걸음으로 뒤에 있는 고우들을 바라보았다.
와… 처참하다. 사리카가 방금 수리실에 보낸 애들보다 더 처참했다. 안그래도 영력레벨을 아직 키워주지 않아서 그런지 완전 초전박살이 났다. 그와중에 이나바가 사리카를 향해 손가락을 하나 까딱했다. 언뜻 보이는 손바닥은 피범벅. 당황해하는 사리카가 이나바를 향해 다가가 상태를 살피려고 하자, 주먹을 내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요구대로 주먹을 내밀어주자, 만신창이가 된 그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이리 말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를 지키고 왔다.”
“....”
내보낸 원정은 세이죠작전. 도쿠가와 이에야스 관련 역사를 개변하지 않도록, 하는…
… 사리카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먹먹해 할 말이 없어졌다. 자기가 천하에 무슨 원수를 졌다고 천하에 관련해서 강박증 걸린 애들이 내 인생에 세 명째 있는건가? 사리카는 억울해서 팔짝 뛰고 애들 안쓰러워서 어물어물 달래는 소리를 했다.
“소우자는 말을 돌려서 날카롭게 하는 습성이 있어서,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아니었을거야. 원래 오해를 많이 받아.”
이나바는 사리카의 말을 듣고 뭐 어쩌라는 표정을 했다. 아무래도 그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겠지? 에잇, 개빡쳐! 괜히 달래려고 했네. 그녀는 그리 꿀밤을 콱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참고서 패를 들고 고우 애들을 수리실로 천천히 들였다.
그때 쯤 이나바의 머릿속에 문뜩 소우자의 말이 스쳐나가는 것이었다. 왜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뭐, 억울하면 당신도 해보시죠? 아무것도 손에 못 넣는 주제에]
분명 이런 말은 아니었는데, 대충 이런 어투였다. 이 여자를? 자기 취향도 아닌 이 여자를? 죽어도 싫었으나, 그래도 소우자 사몬지에게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엿은 먹이고 싶었다. 자기 기준상 최대는…
“계속 근처에서 돌아다닐꺼면… 손이나 잡아서 치료나 도와라.”
“음? 많이 아파?”
이나바는 고개를 돌리고 말이 없었다. 사리카는 또 자기가 뭘 놓쳤나 싶어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끌어 모아 그의 손을 조심히 폈다. 아까 살짝 본 거와 달리 피부가 까져있는 정도가 아니라 피떡이 되어있었다. 미친 거 아냐? 손 잡는 문제가 아니라 진짜 얘 상담들어가야겠다. 절대로 저번과 같이 일터지는 건 사양이니까 말이다. 사리카는 속상한 얼굴로 호네즈오를 생각하며 패를 야겐에게 건네고 고기덩어리처럼 보이는 그의 손바닥을 영력으로 깨끗히 치료시켰다.
“다른 고우들을 치료시키고 방으로 휴식보내렴… 그리고 이나바 고우, 넌 나 따라와라.”
“임무는 잘 완수시켰을텐데?”
“그게 완수라고 생각하니? 당장 안와?”
사리카는 그리 억지로 이나바를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뒤따라 밖에서 소우자가 서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사리카는 다짜고짜 이나바를 쇼파에 앉히고 이리저리 서류를 찾으며 물었다.
“이나바 고우, 본인이 천하에 너무 집착하는 거에 어떻게 생각해?”
“당연한 것 아닌가? 그건 나의 목표다. 당연히 집착할 수 밖에.”
한심한 대답이 나오자 사리카는 자기소개서 서류를 거칠게 빼내고 올라오는 성질을 꽉꽉 누르며 대답했다.
“자신을 가졌으면 응당 천하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닐텐데?”
“내가 필요없다고 해도?”
“상관 없다.”
사리카는 머리가 슬쩍 어지러웠다. 에휴. 이게 이 성채 관리인인 자신의 죄다. 이 답답이를 향해 사리카는 똑바로 쳐다보며 조심스래 사실기술에 의한 언어폭력을 가행했다.
“내가 이런 말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그거, 정말로 네 욕망이니? 그냥 전주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 아냐? 전 주인의 욕망에 자아를 냅다 맡겨버린 거 아니고?”
“....”
말만 유들유들했지 소우자보다 심한 사실적시에 의한 언어폭력이었다. 이나바는 그 말에 발끈하여 반격하려다가 할 말이 없어졌다. 자신 또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기 때문이다. 이나바만 할 말이 없어서 받아치지 못하는 분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뭐, 사리카 또한 속이 시원한 표정이 아니라 두통이 오는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 이 둘 중에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네가 인간으로 현현한지 별로 되지 않은 건 알겠어. 그러니까 전 주인이든 본령이든 다 빼놓고 분령인 네가, 천하 말고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뭘 원하는지 등의 자아를 찾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종이 한 장 줄테니까, 이거 일주일 내로 채워서 나에게 제출해. 알겠지?”
사리카는 추가로 이번 시말서는 자신의 책임이 있으니 작성하겠다고 이나바를 향해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나가보라고 말했다. 일방적인 주인의 진심 어린 잔소리였지만, 반박할 수 있는 말은 무엇 하나 없었다. 결국 이나바는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처럼 종이 한 장을 가진 채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밖에는 소우자 사몬지가 삐딱하게 서서 나오는 이나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맘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을 맽었다.
“뭐, 주인에게 한 소리 들은 모양이니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죠. 이 이상 주인을 곤란하게 만들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누가 애인 아니랄까봐. 꼴값이 따로 없다고 생각한 이나바는 여전히 미간에 주름이 진 채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정확히 일주일 후, 원정은 일주일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며 너저분하게 돌아왔다. 전보다 나은 점은 다른 고우들이 가지 않았다는 점이고, 전보다 나쁜 점은 이나바가 전보다 더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점일까? 코피도 나면서 입안에 피가 고였는지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그 꼬라지를 본 사리카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래, 광공들은 말도 뒤질나게 안듣는 습성이 있었다. 정말 얼굴값한다고 생각한 사리카는 뒤질나게 아파보이는 이나바에게 정권을 내질렀다.
“너 이자식! 일주일 전의 교훈은 어디갔어!”
“... 하나도 아프지 않다만? 뭐하는 거냐?”
물론 말만 저렇지 사리카의 명치가격펀치로 몇 초 후 슬슬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뒤에 있던 야만바기리는 뒤질나게 말을 안듣는 이나바 때문에 또 의기소침해진 상태였다. 또 부대장은 안맞는 것 같다는 풀 죽은 말에 사리카가 애를 달래는 건 당연지사였다. 수리실은 다시 야겐의 지시를 받는 치료도우미 요괴들과 남사들로 붐볐다.
사리카는 이번에는 삐딱하게 앉아 이나바 놈의 상태를 계속 보면서 차례를 기다렸다. 어떻게 이렇게 속을 썩이나. 심지어 이번에도 손바닥이 다쳐있었다. 검사들에게는 어찌보면 검을 놓지 않았다는 어떠한 훈장이겠으나 사리카에게는 무식하게 버텼다는 증거밖에 되지 아니올시다. 이렇게 불만 한 가득이라지만, 어쨌든 인간 몸을 가진 이상 손바닥은 통증에 민감할 터이니 이번에도 사리카의 영력으로 먼저 치료를 했다.
이나바는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알뜰살뜰 살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신은 애인과 싸운 상대가 아니던가. 아직 영력레벨도 낮고. 이정도 영력이면 이곳저곳 내보내서 마구 굴려서 키우는게 맞을 것이다.
알고 있다. 이 성채 관리인이 마음이 여린 것이겠지. 일주일동안 여러 이야기를 듣고 다니면서 안 사실이지만, 이 혼마루의 몇몇 남사들에게는 그녀가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심지어 성애대상자로써 말이다. 자신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도 꾸깃하게 주머니에 넣어져 있는 자기소개서 라던가. 지금도 직접 자기 근처에서 잔소리하면서도 상처를 봐주는 것이라던가. 이런 점이 누군가에게는 좋았던 것이겠지. 인간이 아니었던 자신들을 각각 심신껏 마주해주지 않는가.
그도 사리카의 이런 점은 싫지 않았다. 요 일주일동안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는가. 이나바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사리카를 ‘남사들을 여럿 건드리는 쓰레기같은 관리인’에서 ‘행동거지가 다정해 남사들이 여럿 달려들고 그걸 말리지 못하는 우유부단 관리인’으로 수정했다.
“...자기소개서는 다 못 썼다.”
“그래, 다쳤으니 천천히 생각해.”
“하지만,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래도 천하인이 될 것이다.”
사리카는 잠깐동안 이나바를 보며 말이 없더니 이리 말했다.
“난 천하인이 될 생각이 없는데, 직접 될려고?”
“천하인을 부하로 부려먹던가 말던가, 마음대로 해라.”
그쯔음에 이나바의 치료가 끝났다. 야겐이 또 멋대로 날뛰는 건 자제하라는 충고를 건넸지만, 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돌아갔다.
“어떻게 생각해?”
“바보같다는 생각?”
사리카가 슬쩍 야겐에게 말을 건네보니, 수리실의 남사는 그리 대답했다. 뭐, 맞는 말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리카는 괜히 한 번 웃고는 업무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몰랐으리라. 업무실에 들어간 지 몇 분 후에 대련장으로 다시 달려가게 되리라고는.
소우자는 막 수리실에서 나오는 이나바에게 팔에 하고 있던 염주를 내던졌다.
“따라오시죠.”
평소에 본 적없는 화난 표정을 한 소우자 덕분에 주변에 복귀하려던 초기도 멤버들은 입을 떡 벌렸다. 말은 안했지만 소우자는 초기도 원정 멤버에 속했다. 사리카가 ‘엣? 생각해보니 소우자는 초기도가 아닌데!?’ 하면서 나중에 빼기 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착각할 만 했던 것이, 소우자는 단도실에서 처음 나온 남사였다. 혼마루의 시작과 함께했으니 후에 초기도가 줄줄이 나와 원정부대를 꾸릴 때 넣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우자의 성정을 잘 알았다. 아주 잘.
‘저 미친 놈 또….’
다른 혼마루의 소우자 사몬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속으로 썩힌다고 했던가? 자기네 혼마루에도 그런 소우자 사몬지가 있길 바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결과는, 뭐… 그의 싸움 실력도 잘 알았다. 처음에는 말로 상대방 정신을 찌르고 좀 타격이 있다 싶을 때 물리적으로 뚜까 팬다. 다른 남사들도 처음보는 태생 싸움꾼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그런 소우자가 자신들의 아루지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는 ‘에이, 설마~’ 했었다. 아루지 품 안에서 애교부리는 그를 보기 전까지는.
아무리 원정을 개판으로 이끈 장본인이지만 저 소우자에게 뼈와 살이 분리되는 것은 조금… 원하지 않았던 남사들은 하치스카를 찾았다.
그리고 그동안 이나바는 소우자에게 개박살이 났다. 당연한 일이다. 소우자는 영력이 이미 만렙이고 수행을 앞두고 있었다. 그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똑같이 영력 만렙인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 정도. 그에 비해 이나바는 요즘 원정을 뺑뺑이 돌았다고 하더라도 영력 레벨이 한참 아래다. 그러니 실내대련장에 먼지가 풀풀 나도록 맞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리고 그걸로 사리카가 불려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소우자 나름 사정이 있었다. 이나바가 요즘 다치고 들어오면 사리카가 붙어서 치료를 해주는 모습이 아주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봐라. 일주일 전부터 수리실에서 수리받으면 될 것을 계속해서 일부러 아루지에게 수리 부탁한다? 이건 소우자 마음 속에서는 수작판정이 났다. 왜냐면 자신 또한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리카와 소우자의 관계문제도 있었다. 사리카 근처에 계속 있어봤지만, 그녀가 먼저 스킨쉽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소우자 자신이 그녀에게 ‘요구’해야 들어주는 형태인 것이다. 아무래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섣불리 그녀의 선 안에 들어간 것이 원인이겠지만, 그래도 싫다/좋다 정도는 말해줘야 확실히 알지 않나. 이러다가 이나바 고우라는 놈이 끼부리면 사리카도 ‘그려려무나.’ 라고 허락해주는 것 아닐까? 거절도 못하고 그냥 어물쩡 승낙해주는 것 아닐까? 지금의 자신처럼.
그쯤 하치스카의 부름을 받은 사리카가 달려왔고, 이나바는 수리실에 나온지 몇십분 만에 다시 수리실로 들어갔다. 사리카는 골이 아파 머리를 벽에 기댔고, 강제로 그녀에게 끌려온 소우자는 말이 없었다.
수리실에 들어간 이나바는 아까와 달리 표정이 밝아보였다. 물론 아까와 달리 어디 피가 난 것도 없고, 그냥 멍든 정도지만 말이다. 후환이 없게 팬 것도 무서운 능력이라고 생각할 때 그가 한층 훤한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 천하를 가졌던 검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지. 내게 천하는 아직 멀었지만,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인다.”
뭘? 대체 뭘? 일방적으로 쳐맞았으면서 뭐가 풀렸냔 말이다. 근데 본인이 저렇다니 더 말할 것도 없고. 하여간 어디든 남자 놈들은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할려는 성향이 있다. 심지어 남사들은 본체가 검이니 말 다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리카는 한숨을 쉬고서는 야겐에게 말썽쟁이를 부탁하면서 소우자를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혼내실겁니까?”
“네가 함부로 이런 일을 벌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까, 일단 상황 좀 듣고 판단해볼 수 있게 도와주겠니?”
자기가 잘못한 걸 아는 소우자에게 나무라봤자 나올 것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말을 둥글게 해서 소우자를 달래는 것뿐. 사리카는 쇼파에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의 옆에 앉아 심신껏 다독였다.
“소우자는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니까, 내가 못 느끼는 걸 느꼈을 수도 있잖니. 나는 말하지 않으면 몰라.”
“....”
“혹시 이번에도 이나바 먼저 본 것에 속상했니?”
“예. 그렇습니다.”
“이런. 그건 남편에게 내가 못된 짓을 했네.”
역시 이것도 꽁해있었구나. 그녀는 소우자의 손을 잡고 도닥였다. 소우자는 곰곰히 말을 씹어보다가 ‘남편’이라는 말에 번뜩 눈을 뜨고 사리카를 바라보았다. 남편? 정말로?
“저, 당신의 남편입니까?”
“... 그럼?”
순식간에 사리카에게 서운한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눈이 녹고 꽃이 피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소우자는 그제서야 그녀에게 몸을 기대고 한껏 끌어안으며 자기 감정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좋다,싫다 말하지 않았던 점, 먼저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는 점, 그러면서 이나바가 끼부릴때 가서 손을 잡아줬다는 점, 치료다 될 때까지 같이 있고 사무실로 불러 상담해줬을때 놈이 수작질하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당신은 너무 초연한 얼굴로 있었다는 것 등등.
“잠깐, 잠깐만!”
“뭡니까?”
소우자는 품에서 빠져나갈려는 사리카를 꽉 껴안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녀 생각에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했다.
“나는 싫다면 싫다고 말을 하는데?”
“놈이 했으면 거절 안하셨을 거 아닙니까?”
“아냐, 너 내가 미카즈키 명치에 주먹날리는 거 못 봤니? 싫으면 정말 싫다고 말해.”
그래, 그녀의 문제는 좋을 때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싫을 때만 싫다고 말한다. 소우자는 그때를 회상했다. 처음 선을 넘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채로 고개를 돌리며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를.
“그러면 그때 좋으셨습니까?”
우당탕탕. 사리카는 재빨리 그 화제에서 피하고자 도망칠려고 했으나 소우자가 더 빨랐다. 말하기 싫다는 얼굴로 울먹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그에겐 택도 없었다. 이건 말하기 부끄럽다는 그녀 나름대로의 제스쳐. 분명히 좋았다는 표시겠지. 하지만 소우자는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사리카의 입에서 좋다는 말을 반드시 들을 것이다.
“마, 말하기 싫엇!”
“아뇨, 꼭 말하셔야합니다. 세 번 이상 말해주세요.”
그녀는 이제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세상에 이럴수가. 남사 세 명을 들인 것으로 모잘라 이런 수치플레이라니!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사죄라면… 싸긴 하지. 누가 남사 세 명이서 돌려자고 불장난질 한단 말인가. 원하지 않았지만 이건 쓰레기나 다름없다. 아니면 중국 황제거나. 눈을 질끈 감았다. 말해야해! 도망치면 안돼. 더이상 도망칠 곳이 있는 줄 아냐? 네가 저지른 일 책임져 사리카!
“조으으.. 왔어. 좋았다구! 그래서 거절 못했단 말이야.”
“좋습니다. 앞으로 두 번만 더….”
“끄아악!”
사니와 업무실에는 사리카의 비명소리와 소우자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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