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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루 이야기

폭풍이 부는 혼마루에


죄악의 시작은 은발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으로 넘어오기 전부터 은발 미중년 남캐를 사랑하던 사리카는 혼마루에서 퇴근할 때마다 흑심을 품고 빵긋 웃으며 남캐 사수하러 현실로 돌아간다. 그녀가 말하는 남편은… 그렇다.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화면 너머 이야기로 이해하셔도 좋고 사리카 드림 유니버스 남편 4명을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저도 어떻게 할지 몰라 애매하게 설정함.)

 

그녀가 매번 혼마루에서 퇴근할 때, 근시나 친한 남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현세로 나가는 게 하나의 일과다. 그때 50cm의 사리카몬에서 160cm의 사리카로 돌아가고, 일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파라다이스인 은발 미중년 남캐를 보러 갈 생각에 욕망을 숨긴 행복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나 간다! 내 남편 보러 간다! 오늘 일도 끝! 은발 미중년!”

 

이런 식으로 주접부리면서 나가는 것이 그녀의 일상. 그러나 그 남사들 중에서 유독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남사가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은 사리카가 저런 식으로 웃고 나가는 모습을 이 남사에게 보여준 것이 모든 사건의 발달이자 화끈이였을 것이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감정이야말로 가장 인간(生存者)다운 것이라 생각하는 자에게 그리 말한다 해도 감정을 없애거나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황금빛 눈을 가진 남사는 항시 배웅할 때마다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시상에 한 번 새기고, 시상을 통해 대뇌피질을 관통하여 뇌에 잔상을 두 번 새겼다.

 

아루지는 무엇이길래 모습을 변하며 저런 표정을 지으며 퇴근하는가. 그 의문이 타로타치의 안에서 꼬리를 달고 출발한다. 저런 표정을 우리가 있을 때가 아닌 퇴근하실 때 하신다면 우리랑 있는 것은 즐겁지 않으신 걸까. 단지 업무인 걸까. 왜 우리에게는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실까. 왜 항상 작은 모습으로 우릴 대하실까.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대상은 아무래도 그녀를 데려온 콘노스케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리하여 타로타치는 조심스레 아루지의 방에 찾아가 그곳에 머무는 콘노스케에게 질문을 한다.

 

“콘노스케 씨, 왜 아루지는 저런 모습으로 혼마루에 있으신 겁니까? 어떤 것이 원래 모습입니까?”

“사정이 있어서 작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사정은 아루지가 직접 여러분에게 하셔야 하기에 저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원래 모습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표현하고 싶은 모습이야말로 진짜 모습입니다. 허나 이런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심신자의 건강을 걱정하실 여러분에게 조심스레 한 말씀 드리자면, 작은 모습 또한 심신자의 모습이며 그녀의 건강상 작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여러분을 걱정하여 저런 모습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 빛이 바래지는 모습.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웃음. 아니, 평소 보는 웃음과 결이 다른 그런 표정.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 모습 또한 진짜라면, 우리는 왜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모자라서입니까? 아니면… …. 저희에게 그러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우리랑 같이 있는 아루지는 무엇입니까? 왜 우리에게 표현하고 싶은 모습이 큰 모습이 아닙니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으시다면, 왜 작은 모습으로도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십니까? 왜 자그마한 사리카몬으로 혼마루에 존재하시며, 왜 퇴근할 때에만 그 모습으로, 그런 표정을 지으시고….

 

타로타치는 근무 내내 아루지를 관찰하였다. 혹시나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데 놓친 것이 아닐까 싶어서. 다만 그녀는 웃을 뿐이었다. 입꼬리만 잔잔히 웃으시는 미소, 쉬이 휘어버리는 눈웃음이라던가, 다른 남사와 재밌는 이야기를 하시며 포복절도하는 모습이라던가, 일이 고되어 허탈하게 웃으시는 모습이라던가, 정원에 핀 어여쁜 꽃들을 보며 웃으시는 모습이라던가.

 

그 웃음 속에는 비슷하지만, 그때와 다른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민히 깨달을 수 있었다. 타로타치는 현세와 떨어져 오래 봉납 되어 있어 자신의 감정을 내뱉는 것은 어렵지만, 오래 무언가를 관찰할 줄 알았다. 눈에 빨간색으로 화장한 것으로 그녀의 모습을 꿰뚫어 보고, 경험이 그러하기에 이름 모르는 감정까지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타로타치는 차분한 눈으로 자신의 곁에 있는 아루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관찰하면서 얻은 정보로는 다음과 같다. 아루지는 가만히 일이 없는 상태를 즐기며, 그때마다 자신 옆에서 뒹구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실없는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혹시 저를 보시는 이유가 따로 있냐고 물으면, 눈 화장이 맘에 들어 바라보신다고 답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내방복도 맘에 드신다는 말. 이런 말뿐이었다.

 

그러나 만일 정말 그러시다면 이시키리마루도 좋아하셔야 하지만, 이시키리마루는 그리 좋아하시진 않으신 눈치였다. 그 눈동자에는 미안한 감정이 엿보이시긴 하셔서, 아루지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또, 아루지는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은 싫어하시는 것 같다. 항상 재미있는 것을 찾으시며 괜히 초기도인 하치스카에게 농담을 건네고 허점 찔리는 것을 즐기신다. 더해 하시는 말을 계속 들어보면 무조건 즐거운 것과 재미있는 것을 찾으시니, 그리 찾으시는 이유를 물어보면 그녀는 타로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그편이 즐거우니까."

 

즐겁다는 감정이 무엇일까. 갇혀서 평화를 기원했던 신검에게는 낯선 단어이다. 아루지에게 자신의 얼굴이 좀 더 설명해달라는 표정으로 읽혔던 것인지, 조금 고민하시며 다시 부차적인 말을 붙이셨다.

 

"너도 검으로써 사용되면 즐겁잖니."

 

그건 글쎄.

뇌리에 새겨둔 그녀의 표정을 비교해보았다. 검으로써 사용되면 즐거운 것인가? 아니, 그건 자신이 응당히 검이라는 목적으로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검을 휘두르는 자신이 즐거웠을까. 혹은 아루지에게 즐겁게 비춰진 것일까. 타로타치는 섣불리 단언할 수 없었다. 단지 그때는 자신이 검으로써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게 즐거운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 감정에 대하여.

 

 

이런 곤란하고도 어려운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자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를 찾고자 하였으나, 항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던 동생은 아직 이 혼마루에 현현하지 못했다. 아루지도 지로를 데리고 오고 싶은 눈치로 단도방을 들락이셨지만, 때가 있는 법인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다른 존재에게 털어놓는 것이 좋을까. 자신보다 이 혼마루에 더 오래 있고 오래 경험이 쌓인 남사들에게 여쭤보는 게 좋겠지.

 

그런 남사로 제격인 남사는 이 혼마루에는 아루지와 자주 농담을 하는 미카즈키 무네치카와 이시키리마루 뿐이다. 그래서 밭 내방이 정해진 남사를 찾아가 한번 즐거움에 관해 물어보았다.

 

"재미나 즐거움이라… 밭일하는 것일까. 생명이 돋아나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벅차오르지."

"흐음, 역시 나는 아루지가 만담하는 것을 볼 때 가장 즐겁다만."

 

그들의 답변 역시 타로타치에게 확실히 와닿는 것은 아녔다. 물론 아루지가 실없는 이야기를 하실 때의 표정을 보면 눈을 떼기 힘들고 아루지가 즐거워 보이지만, 자신의 감정은 잘 모르겠다.

 

이시키리마루가 이야기한 밭일이라면, 물론 밭일하면 땀을 흘리고 새 생명을 보면 보람차지만, 그런 의미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세상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루지의 취향이나 세상의 이야기는 앞서 느낀 의문점을 해소하는 데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지 몰라 듣는 것일 뿐. 자신이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두는 용도일 뿐….

 

내가 찾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즐거움은 나는 무엇으로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으면 아루지가 그 표정을 짓는 답도 알 수 있겠지.

 

타로타치는 오랫동안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붙잡고 혼마루를 서성였다. 돌아다닌다고 답을 얻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조금 풀렸다. 가끔 보이는 아루지 모습이 자신을 좀 답답하게 만들었으나, 그건 즐거움과는 상관없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고민을 할 때 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루지가 나타나 자신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불어 작은 50cm의 아루지를 밟을 뻔하여 화들짝 발을 빼고 넘어졌다. 아루지는 딱히 다치지 않았으나… 아루지를 밟을 뻔한 것에 자신의 몸이 매우 놀란 듯 몸 안에 벌렁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아루지는 타로를 놀라게 한 자기 잘못이니까 그리 낙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묻고는 혹시 모르니 발목에 얼음을 대고 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후 단도들과 수리실을 나가는 아루지를 보며 타로타치는 이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자신이 커서… ….

…자신도 작았으면 좋았을까, 단도들과 함께 귀애하는 미다레 토시로와 아루지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만 보았다.

 

 

수리실에서 나온 후, 자신이 근시로 임명되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아루지에게 왜냐고 물으면, 아루지는 자신 있게 내가 적임이라고 말하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렇게 큰 자신이? 자신감이 없다는 속내가 아루지에게 닿았는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도닥이시며 같이 여러 번 출전하셨다.

 

반복되는 승리와 칼로서 활약하는 것 덕분에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아무래도 역시 대태도가 좋다는 아루지의 뿌듯하다는 말과 자신 외에도 두 명의 대태도가 같이 출전하는 점 때문이겠지. 직접 아루지에게 칭찬받을 때는 정말 보람찼다. 아무래도 아루지가 이 점을 보고선 검으로써 쓰이는 게 기쁘지 않냐고 말씀하신 거리라.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찾는 즐거움은 아니었다. 아니, 분명 즐겁긴 했지만, 다시 아루지의 웃음을 보면 내가 찾던 것은 즐거움이 아니었다는 것만 절절히 깨달을 뿐이었다. 결국,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가끔 출진하고 돌아오는 혼마루가 어수선하다 싶더니, 단도들과 아루지가 깜짝파티를 준비했다고 한다. 혼자 사색에 잠겨 생각할 것이 많아 일부러 다른 남사들에게 부탁하여 자리를 비웠더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전에 아루지를 밟을 뻔한 것을 많이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준비했다고 하는 동료들의 말에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보다, 아루지가 원래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건네는 꽃다발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일 뿐. 근데 이 시점으로 달라진 것 같다. 몽글몽글하게 펴있는 꽃잎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던지, 이파리나 맥을 더듬으면 그때 아루지의 웃음이 눈앞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아무래도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겪은 즐거움. 아무래도 검으로써 아루지가 인정해 주는 것일까? 돌이켜보니 비슷한 즐거움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꽃이 지고 평화로운 이 나날이, 다들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이 날이, 아루지가 환하게 웃어주는 이 날이.

 

 

—---- 근시라는 기대.

 

 

근시가 되고 꾸준히 아루지와 업무를 진행했다. 같이 혼마루 물품을 점검하고, 모자란 부분이나 예산적인 부분, 그리고 검들의 강한 수치가 보이시는지 육성계획을 같이 짜기도 하고…. 그러나 아루지가 자신을 인정해 주신 것 외에 사적으로 가까워진 부분은 그닥 없었다. 가끔 자신이 앉아있으면 옆에서 아루지가 작은 모습으로 뒹굴거나, 자신 옆에서 일하거나 하는 정도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면 근시 축하 날 아루지에게 받은 꽃들이 자신을 반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꽃병에 꽂아놓은 꽃들 하나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물을 갈아봐도 도통 효험이 없어서, 내 지식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아루지에게 조언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 꽃병의 꽃을 본 아루지는 물에 꽃잎부터 담그면 싱싱해진다고 조언해 주어서 그리 따랐다.

 

 

어느 밤은 아루지가 퇴근하지 않고 왁자지껄하기에, 원인이 되는 방의 문을 열었더니 몇몇 남사들이 씻고 나온 때였다. 놀란 것은 아루지가 머리를 감고 나온 하치스카의 뒤에서, 작은 모습이 아닌 160cm의 모습으로 그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옆에는 아루지 귀애하는 듯한 미다레 또한 앉아 하치스카의 머리를 만져주며 키득거렸다. 초기도이기 때문에 얻는 귀애일까. 아루지가 자신에게 저런 적은 없었다. 자신에게 자주 보여주시지 않는 그 모습이었다. 즐겁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어떻게 땋아줄까 하는 아루지의 목소리가 귀에 닿자, 나는 문을 닫고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었다.

 

또 꽃 하나가 시들해졌다. 전에 아루지가 말해준 대로 다시 꽃을 물에 담갔다가 꽃병에 꽂았다. 꽃은 싱싱해졌으나, 한번 시든 꽃이 예전과 같을 순 없는 일이다.

 

 

결국, 하치스카에게 독대를 청하여 상담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니까. 하치스카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내내 경악의 표정에서 미간 주름만 달리 될 뿐,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착실히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점을 알아듣고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나 뾰족한 수는 그도 없는 듯했다. 형식적인 위로와 아루지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아루지가 들여온 TV라도 보며 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었다. 머리 비울 때 딱 맞는다면서.

 

잠시 머리라도 식힐 겸 그리하기로 했다. 아루지가 TV를 들여온 방은 아루지가 머무는 방에서 조금 떨어진 방으로, 단도들이나 수련을 하는 남사들이나 많이 들락날락하는 유동인구가 많은 방이었다. 그날따라 남사들이 원정이나 출진 나가느라 바쁜지, 단도 몇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쉬던 야겐 토시로는 자신이 들어온 것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TV라는 것을 조정했다. 같이 있던 나마즈오 토시로가 역시 이야기가 있는 것이 즐겁다며 야겐이 조정한 것을 다시 재조정하고는, 나오는 화면을 응시했다.

 

TV에서는 인형극처럼 인간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 여자와 한 남자, 인형처럼 뻐끔거리며 서로의 감정을 오가고, 흑백영화처럼 상영되는 이야기는 아주 극적으로 치달았다.

 

“저기 봐봐, 마에다. 이야기 알겠어?”

“인간들은 저런 감정을 느끼는 군요.”

“서로 오해했던 인간들이 다시 마주하는 장면이야. 으왓!”

 

나마즈오가 말하자마자, TV에서는 서로의 감정에 파묻혀 오해에 치닫는 두 사람이 이윽고 우산도 없이 서로 뛰어오는 장면이 나왔다. 동시에 자신의 눈에는 자신과 아루지로 변하며 빗속에 파묻혀 키스했다. 서로의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는 두 사람이… …

 

들려오는 와키자시들과 단도들의 목소리 속에서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그랬다. 이제야 내가 뭘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루지의 미소나 신임 그런 것을 원한 것이 아니다. 처음 그때 봤던 아루지의 미소 속에서 날 것의 감정을 엿봤던 것이다. 기쁨이나 행복도 맞는 말이지만, 격렬하고도 정제되지 않았음에도 정열적이고 욕심이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날 것의 감정을.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고서 헛걸음하고 검으로써 신임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고는 자신을 달래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단지 그 감정을 갈망만 한 것이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방에 돌아오니 꽃병의 꽃이 져 있었다. 아루지가 말해준 대로 다시 물에 한번 담갔지만, 이번에 꽃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래,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감정을 자각해버린 이상, 겨우 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모르고 썩은 꽃에 물을 줘봤자 한순간뿐이며 갈망만 깊어져 갈 뿐이다.

 

 

그래, 뱉고 나면 어떻게든, 자신을 멀리하든 하실 것이다. 그러면 나을 것일 테니까. 썩은 꽃을 정리하시는 것처럼, 자신도 쉬이 내칠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리 아루지에게 가려던 중, 아루지가 미다레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원에 있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기둥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안에서 자신이 있는 것을 모르도록.

 

그러나 아루지와 미다레와의 이야기는 자신이 원해서 들은 건 아니었다.

 

“아루지는 내가 싫어?”

“아니? 아루지는 미다레가 좋은데? 이것 봐! 아루지, 미다레에게 매달려있다!”

“근데 표정이 달라. 내가 원하는 표정이 아닌걸.”

“미다레가 원하는 표정이 뭐길래?”

 

잠시간의 침묵이 돌았다. 나는 기둥 속에서 아루지의 그림자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였다.

 

“모르겠어. 뭐라고 할까, 내가 원하는 이미지가 전달이 안 돼. 내가 이렇게 하면… 으음, 아냐! 아루지 그 표정을 원하는 게 아닌걸.”

 

미다레는 안에서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러자 안의 형광등이 깜빡 꺼졌다 다시 비추며 아루지가 원래 크기로 돌아가고, 미다레를 안아주는 그림자가 보였다. 왜일까.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마치 자신을 보지 않으면서 꿰뚫어 보는 양, 뒤이은 아루지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미다레가 원하는 걸 주지 못할 거야.”

“....”

“그치만 나는 미다레가 좋단다. 아루지로써가 아니라, 내가.”

“다른 형태인 거야?”

“아마도. 비슷하지만 다르겠지. 그렇지만 그거 말고는 전부 응원해줄 수 있어. 든든한 아군처럼 말이야.”

 

명백한 거절의 뜻이었다. 심지어 그리 귀애하는 미다레에게.

 

“나는 미다레랑 이 관계가 좋단다.”

“응. 나도.”

 

뒤이어 짧게 ‘미다레 좋아(好き)’ ‘아루지 좋아(好き)’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하기도 전에 거절당한 것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좋아(好き)가 아닌데.

 

그렇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퍼진 다정한 목소리가 자신을 감쌌다. 서글프다는 감정이 이런 것이었던가. 아니면 절망이 이런 것이었던가. 현세를 너무 멀리한 터라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말하기 싫었다. 하지만 동시에 말하고 싶었다. 왜 이리 따뜻이 대해주시냐고. 왜 이리 곁에 두시냐고. 차라리 동생에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아직 오는 길이 먼지, 험한 건지 오질 않는다. 동생이라도 빨리 오길 빌며, 오밤중에 술 한 잔을 방 귀퉁이에 놓았다.

 

 

다음날, 손에 무엇하나 제대로 잡히지 않았으나 아루지는 자신을 탓하지 않고 쉬라고 했다. 근시인 나 또한, 바깥이라도 노니다가 오라고 쫓겨났다. 3부대들은 원정으로 반 쫓겨나며 혼마루는 다시 텅 비었다. 그러나 여전히 햇빛은 강하고 따사로웠지만, 머릿속에는 아루지의 어젯밤 말만이 맴돌았다.

 

‘나는 이 관계가 좋단다.’

 

이런 사무적인 관계가 좋으시겠지. 이런 무거운 마음을 전달하면 난처하시겠지. 미다레에게 말을 전할 때도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을 것이다. 그림자의 몸짓 하나하나로도 그 감정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아루지. 꽃이 피는 봄이 지나도, 꽃이 다 썩어 문드러진 후에도 제게 다시 꽃을 피우는 날이 오겠습니까? 영원히 피지 않을 거면 피어나게 하시지도 마시지. 영원히 봄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목련처럼 피어난 감정은 누덕누덕하게 변질되어 지는 것 또한 추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바닥을 집어삼켰다. 빛도 없이 어두워진 바닥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도 없게 만들 따름이었다.

 

 

오늘은 고민이 많으신지 늦은 밤까지도 퇴근하지 못하는 아루지가 보였다. 모든 남사들이 쉬러 가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서야 장지문 너머로 기지개 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루지.”

“엄마! 아니, 타로 안 추워?”

“춥지 않습니다. 일은 마무리되셨는지요.”

“그래. 얼른 들어와. 춥겠다. 그리고 아루지가 아무리 나가서 쉬라고 했어도 할 일 없으면 들어와도 괜찮아.”

 

아루지는 덮고 있었던 천을 자신에게 넘기며 그리 말했다. 밖이 춥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따뜻함이 오히려 서글퍼서 말을 걸지 못했다고 고할 순 없었다.

 

그렇게 아루지는 자신에게 주겠다고 기어코 물을 끓이고는 서랍에서 우롱차를 꺼내 따뜻이 우려 건네주었다. 퍼져나가는 찻잎의 색이 자신의 눈동자와 비슷한 색이 우러날 즈음에, 부산히 움직이는 그녀가 보였다.

 

“돌아가십니까?”

“응? 아아, 응. 집에 가서 자야지.”

“...남편분도.”

“응? 응. 아 맞다!”

 

그리 말하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며 자신에게 따뜻한 차를 몇 번 마시게 하고는, 자신의 손을 잡고 상점으로 향하셨다. 손 안쪽으로 따스한 온기가 전달되어 부끄러웠다.

 

늦은 밤의 혼마루는 한산했다. 상점에는 점원조차 없어 스스로 계산하고 스스로 돈을 내는 제도로 바뀌어 적막한 와중에, 아루지는 기어코 자신을 상점 안으로 끌어들였다.

 

“괜찮으신 겁니까? 저를 데려오시면 상점이 좁진 않습니까?”

“당연하지. 이리 와서 서보렴.”

 

아루지는 자신과 함께 몇 번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여럿의 창문을 보고 나서 이윽고 자신의 경장 의상을 몸에 여럿 대보는 것이 아니던가. 화들짝 놀라 자신에게 이러실 필요가 없다고 전달해도 막무가내로 계산하여 금화를 상점에 놓고 경장 의상을 들고 나왔다.

 

옷을 선물해 주시는 의미가 따로 있으신 걸까. 나는 아루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표정을 살폈으나, 특별히 큰 의미는 없으신 것 같았다. 또다시 쓸데없는 감정을 기대했구나. 전혀 그런 걸 원하지 않으시고, 아무런 의미 없는 이 천에 어떠한 감정이라도 담겨있길 원하며.

마치 벼랑 끝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한낱 천이 자신을 귀히 하는 이유라도 되어 자신이 뭐라도 된 것이라도 느낄 수 있게 말이다.

 

이 감정을 단념하거든, 그 이야기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아마도 그때는 아루지가 흙이 되어 아스러진 한참 후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통제불가능할 정도의 화산같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아루지가 눈치채지 못하실 리가 없다. 이런 감정을 멋도 모르고 품어 그리 바라보았으니, 누가 모르리라. 중간에 상담을 요청한 하치스카도 바로 알아차릴 정도의 마음이다. 숨길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 답을 주지 않으시는 것 또한 이미 어떠한 하나의 대답이리라.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자신을 멀리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아루지의 옆이 좋았다. 근시가 되어 옆에 있는 것이 기뻤다. 한두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숨결을 듣는 게 한 가닥의 이성을 잡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어 한 번도 피어본 적 없는 꽃을 피워본 것이 좋았다. 썩어 낙화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단지 그것이 좋았다.

 

분명, 이 감정은 좋아한다(好き)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우 호불호를 말하는 한자로 이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으리라.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연恋욕의 감정이었고, 독배와도 같은 애愛의 감정. 그렇다고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삼키고만 있을 수도 없는 감정이다.

 

그녀의 자그마한 등 뒤가 보였다. 내 앞에서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그런 한없이 작은 크기가. 나는 저절로 무릎을 꿇었다.

 

“아루지.”

“응?”

“저는… 첫 번째는 바라지도 못합니다.”

“음?!”

 

부디 바라건대, 이 마음을 아셔도 자신을 저 멀리 못 보는 곳으로 치우시지 않기를. 다시 갇혀서 그대를 그리는 길이 없기를.

 

“두 번째라도 좋습니다.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마지막이라도 좋습니다.”

 

가까스로 꺼낸 말에는 눈물도 담겨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답, 하지 못하시더라도… 저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곁에 두어 주십시오.”

 

아루지의 손이 눈에 닿았을 때야 깨달았다. 앞에 있던 자그마한 모습은 어디 가고, 푸르른 머리카락에 걱정이라는 표정을 담은 채로 바짝 자신을 안아주고 있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움이 담겨있었고, 짓는 표정 하나하나에 걱정이, 눈동자에는 자신이 비추었다.

 

그래, 자신에게는 이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눈동자 속에 비치는 자신의 눈동자가, 더 깊은 열을 가두고 꿈틀거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리 생각했다.

 

 

 

—---- 착각이라도, 실수라도.

 

 

아루지는 한동안 자신을 애매한 선 안에 넣어두었다.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보고는 당황하는 눈치를 숨기시고는 그리 대하셨다. 전보다 물러선 두 발자국 반의 거리감에 속이 서글펐다.

 

아루지의 방에서 여러 남사들의 소리가 오가는 것 같으나, 불편하신 것 같아 여러모로 그 방을 자주 피했다. 그중에 누군가를 귀애하시는 건 미다레 토시로 정도였으나, 앞에 그렇게 된 이상 혹시 다른 남사를 귀히 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을 것이라, 자연스레 물러나게 된 것이었다.

 

안다. 알고 있다. 이 짓이 미련한 것임을 뼈저리게 알고도 이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야, 타로타치잖아. 뭐해?”

 

와키자시인 나마즈오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번에 안방에서 추태를 보인 후로부터 자신을 신경을 써주는 모습에 부끄러워졌다.

 

“생각할 게 많아서 잠시 걸으려고 합니다.”

“아하. 오늘 혼마루 회식이라던데. 늦지 말고 이번에도 혼자 앉아있지 말고, 아루지에게 말이라도 걸어봐. 근시니까 가끔 아루지에게 퇴근하지 말라고 졸라도 보고.”

“그건….”

“아루지는 부탁에 약하거든!”

 

뭘 알고 있는 것인지 나마즈오는 그리 말하고 손을 흔들며 말당번을 하러 사라졌다. 자신도 나마즈오처럼 솔직하면 좋을 텐데. 그래야 아루지도 장난삼아 가볍게 대답해주셨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빨리 지나가며 해가 떨어졌다.

아루지는 기쁜 날이라고 남사들이 주는 술을 한 잔 받아마셨다가 바로 비틀거리시고는, 두 잔 마시다가 쓰러지셨다. 쓰러지시며 너희의 기준이 이상하다고 버둥거리셨지만, 아무래도 회식인 만큼 다른 남사들이 즐기기 바라며 내가 쓰러진 아루지를 데리고 회식을 여는 큰 방에서 빠졌다.

 

회식을 즐기지 못한다고 멋모르는 다른 남사들이 미안해했지만, 나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아루지를 방으로 데려와 푹신한, 아루지는 매트리스라고 하시는 곳 위에 그 위에 아루지를 눕혔다. 추위를 많이 타시니 이불도 여미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가만히 누워있는 아루지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잠시 일어서 회식 방에서 술을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루지는?”

“몸을 잘 못 가눠서 누워계십니다.”

“술이 약하구만. 하하 그러니까 못 마시면 못 마신다고 말해도 된다 해도 미련하게.”

“...예. 그렇지요.”

“여기 챙겨가세요.”

 

다른 남사들이 여럿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고, 아루지가 너무 고집이 세다는 말도 오갔으나, 그 사이에서 마에다 토시로는 자신이 초반에 마시던 술병과 잔을 넘겨주었다. 언제 봐두고 챙겨두었는지, 바로 건네주어서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루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혹여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냥한 남사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아루지랑 불편했다는 것을 아는 듯 짜고 배려한 것이었다는 것은 술을 들고 방을 오는 도중에 깨달았다. 하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한다고 지금 상황에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지만서도.

 

그리 창문을 뒤로 두고 앉아 아루지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달빛이 창문 단위로 깨어져 아루지를 덮었다. 잠시 오지 않는 지로를 생각하며 술을 따랐다.

 

그때 일렁이는 바다색 눈동자가 눈을 뜨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로.

 

 

 

 

‘시발’

 

사리카는 나지막하게 속으로만 읊조렸다. 이거 옆에서 잠들어있는 애가 들으면 또 자책할 게 분명하다. 조심스레 한쪽 손으로만 이불을 들쳐 펄럭이는 이불 속을 들여다보았다.

 

오 시발 신이시여! 아니 내가 신이지 아니, 여기서 나한테도 재앙을 일으키면 어떡해? 복을 달라고 했더니 보옥도 아니고 주옥을 주었네! 주옥도 이런 주옥이 없었다.

 

아니 사실 이건 자신의 속성 때문이 아니었다. 멍청하게도 갑작스러운 술에 절여진 뇌가 상황판단과 이성판단을 제대로 못 한 일이었다. 심지어 호르몬 조절도 못 하고! 한번 뒤진 몸이면 호르몬도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해야 정상이 아닌가. 어설프게 죽어서 그래, 어설프게!

 

이리 탓하면 뭐하나?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자신한테 고백한 남사를 술기운에, 예쁘다 예쁘다 하다 고백받았으면 미안하다고 차질 못할망정! 하지만 저번에 말한 건 뭔 소리인지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대답을 못 했다. 그 말의 의미는 애를 달래고 돌아와서 눈치챈 거였다. 근데 인제 와서 '그건 미안하다.' 라고 말했다가 사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들으면 어떡해? 근시 자리가 좋았다는 말이고 모든 게 나의 도끼질이었다면? 모든 게 한 편의 연극이라면? 트루먼 쇼라면?

 

하지만 이 자리로 그 모든 게 다 날아갔다. 속옷은 여기저기 던져 있잖아.

 

내가 뭔 미친 짓을 한 걸까? 회사 부하에게? 한쪽 손으로 자신의 얼굴의 반을 쓸었지만 그렇다고 나오는 답은 없었다.

 

“아루지.”

“어? 응? 응.”

 

돌겠다. 언제 깼니. 방안에 떠도는 아련한 달빛을 보니 아직 해도 안 뜬 깜깜한 새벽이다. 그래, 이 이상 말이 늦으면 아루지로도 실격일터이다….

 

“날이 춥습니다. 목도 아프실 터이니 더 누워 계세요.”

‘아아아악!!’

 

아주 정확하게 현실 직시하게 만드는구나. 아프다, 아루지. 몸도 마음도…

 

“... 해 뜨면 경찰서 갈게….”

“...예?”

“직장 내 성폭력 신고는 스스로 할게… 걱정하지 말렴….”

“....”

 

충격받은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던 타로는, 반 정도 일으켜서 내 몸을 잡았다.

 

“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까?”

 

생각도 못 한 말이 튀어나와 나 또한 반 정도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니 타로는 이미 우는 듯한 얼굴이었다. 절망이 칠해진 눈에는 자신만이 담겨있어서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내 말이 나오지 않게 했다.

 

“하, 하룻밤만이라도… 마음이 맞았다고 하면 안 됩니까? 저는… 저는.”

 

이미 타로타치의 눈에서는 도륵 눈물이 떨어지고 난 이후였다. 나는 상황이 주옥된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애를 계속 울릴 수도 없다. 타로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이 뚝 떨어지자 온몸에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도로 누워 타로를 바짝 안았다. 더 상황이 망하더라도 이건 수습하고 가는 게 옳으리라.

 

“타로야.”

“...네.”

“내가 너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안았겠니…. 이리 오렴.”

 

아니? 나도 모릅니다. 이건 거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조그마한 구멍이 뚫린 상자 안이지요. 그 안에 든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나도 모릅니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건데.

 

그 후 이불에서 한참 타로를 달래다가 아루지 방안에 딸린 샤워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어젯밤 일로 온몸이 삐걱거리는 듯했다. 몸과 마음이 이 모양 이 꼴이 되든 말든 출근해야 하는 현실만이 서글펐다.

 

 

 

“얘들아…. 아루지 망했다.”

 

조심스레 회의 방으로 들어가 신세 한탄이라도 하려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 없이 방 안에 싸늘한 공기뿐이었다.

 

“책임져.”

“뭐를?!”

“타로타치를 책임지게나.”

“에?”

 

망했다는 말 한마디 밖에 안 했는데 왜 다들 질렸다는 표정을 하는 건데?

 

“책임져! 타로타치를 가지고 놀다니… 타로타치가 불쌍하지도 않냐?!”

“이 자식! 그런 말 하며 웃지 마!”

 

하치가 이때다 싶어 나를 까기 시작했지만, 그 얼굴은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웃지 말라고 받아치자, 미카즈키는 즐거운 듯이 껄껄 웃었다.

 

“거기까지 갔으면 할 수 없지. 어여 타로타치를 책임지시게나.”

“너도 뭐가 신난다는 듯이 웃고 있는데!!”

 

나는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귀를 닫았다. 이 자식들 왜 이렇게 실실 쪼개?! 특히 둘 중의 한 명은 바람잡이다. 이리 씩씩 거렸으나, 이후 뒤따라 들어오는 말은 무거웠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도망치지 말게나.”

 

회식 전날, 퇴치당하거나 봉인 당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려서 피해다녀서 직접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한… 이시키리였다.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단지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흐아아… 그렇지만, 그렇지만 애를 내치느냐고! 그런 얼굴을 하는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억울해서 도망치는 한소리 했다가 이번엔 정말 경멸의 표정이 어린 하치로부터 마지막으로 한 소리 들었다.

 

“내쳤어야지.”

“어중간한 다정은 독이지.”

 

 

하치스카와 미카즈키는 아침 출근 때부터 아루지의 비명을 디저트 삼아 차를 홀홀 마셨다.